| 기간 |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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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임] 책읽당 읽은티 #41
: 이윤석·김정민, “즐거운 남의 집”

그때만해도 산처럼 높은 시멘트 골목을 꾸역꾸역 꿰맨 모양을 따라, 구멍 난 양말처럼 제멋대로 생긴 집들이 옹기종기 엉겨 붙어있는 동네였습니다. 어머니는 급하게 진통이 와서 동내 산파 경험이 있는 할머니의 도움으로 집에서 나를 낳았습니다. 몇 년 뒤 육교 건너 국민학교가 가까운 동네로 이사를 했습니다. 태어나 몇 년 지내지 못한 동네인데 어떻게 기억을 할까 싶지만, 친구 혹은 옆집 할머니(가 주시는 미숫가루)를 만나기 위해 종종 육교를 건너 그곳을 찾았습니다. 그러다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날에는, 시멘트 골목을 누비며 고개를 올라 온통 금이 간 벽돌 집들을 이정표 삼아 동에서 동으로, 조금 길게는 구에서 구를 넘어 탐험을 했습니다. 물론 어김없이 길을 잃고 울고 있으면 어른들이 파출소에 데려다 주었지요. 세상 서럽게 울면서 앞니 빠진 발음으로 하필이면 ‘팔’이 많이 들어가는 집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머지않아 할머니나 부모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 저에게 집이란 옆집 할머니가 사는 곳. 친구가 사는 곳. 혹은 어떤 색과 무늬가 있어 이정표로 삼을 만한 곳. 가끔 모양을 바꿔서 내가 길을 잃게 했던 곳. 내가 태어났던 곳. 장난감을 잃어버린 곳. 그런 의미였는데 이제는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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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현실과 애증에 치여 저는 아직 둥지를 떠나지 못한 새가 되었습니다. 먹이까지는 스스로 해결한다 하여도 결국 얹혀사는 처지에 집을 꾸미거나 나의 취향으로 재배치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입니다. 못을 박지 못해 시트지를 붙이기로 했다거나, 이사할 집의 독특한 점에 정을 붙이려는 여러가지 시도는 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가끔 이노무 집구석에 가만히 등 붙이고 눕는 것조차 역겨울 정도로 감정이 상하면 집을 구하고, 맘에 드는 가구를 사고, 애니 케릭터 족자나 고고 보이 포스터를 도배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결국 집을 짓고 꾸밀 수 있는 게임이나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고는 했지요.
어떻게 보면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릅니다. 부모님은 마음이야 어떨지 몰라도 월세를 내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보증금을 받지도 않습니다. 가끔 유지보수가 필요하면 보통은 부모님이 해결합니다. 집안일을 거들고 밥을 알아서 챙겨먹는다고 합리화할 일이 아닙니다. 그런 와중에 이 집에 나의 취향을 투영한다는 건 그야말로 사치스러운 생각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번쯤은, 혼자 사는 게이의 집에 약속이나 한 것처럼 놓여있다는 가구나 생필품들로 내 집을 꾸려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거기엔 듬직한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봐도 쓸모없을 것 같지만 독특한 위치에 자리잡은 낮은 창문이 있었으면 합니다. 거기에 높이를 맞춘 선반과 의자를 하나씩 두고 밖을 보고 싶습니다. 풍경이 어떤 ‘뷰’인지는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작고 귀여운 화분도 두개 정도 있을 겁니다. 벽은 변색되어 조금 노란 빛이 도는 하얀 벽지가 좋습니다. 몰딩은 있어도 되는데, 체리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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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수없이 길을 잃고 돌아오던 동네는 이제 매일아침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출근길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냥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단지내를 가로지르는 것 뿐인데, 어쩐지 서운합니다. 상전벽해에 준한 달라짐. 그 시절 어린 제가 여기에서 길을 찾아 돌아가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애초에 길을 잃을까봐 먼 곳으로는 향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 물론. 스마트폰이 없다면요.) 아버지는 가끔 이사하지 않고 기다렸으면 아파트가 들어선 곳에서 큰 재미를 봤을 거라고 하십니다. 이해는 합니다만, 저는 아파트 단지보다 아직 옛날 분위기가 남아있는 현재 거주지가 더 좋습니다. 그나마도 요즘은 오래된 집들을 허물고 빌라나 주차장이 들어서고 있는데, 곧 뭔가 달라지려나 무섭기도 합니다.
어릴 때 이사하지 않고 아파트에 살았으면 제 삶이 뭔가 좀 달랐을까요? 너무 나이 먹기 전에 청년정책이 나왔다면 제 삶은 뭔가 좀 나아졌을까요? 평생의 반려를 일찍 만났더라면 또 어떨까요? 함께 저축하면서 더 나은 집으로 이사하는 꿈을 꿀 수 있었을까요? 다 부질 없는 상상이지만 어쩐지 한가지는 확실할 것 같습니다. 아마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기엔 집값은 너무나도 차원이 다른 금액이니까요. 천이라니. 아니, 억이라니. 그게 한두개도 아니고 심지어 심하면 거기에 공이 하나 더 붙는다니?
이러니 당연히 집이 스펙이고, 전세 보증금이 스펙이 아닐 수 없겠지요. 글을 적다 보니 사실 어릴 때 본 구멍난 양말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던 집들도 나름 재산이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세상물정은 그냥 모르고만 싶어집니다. 짱구네 집이 짱구 아빠 능력의 상징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둘리보다 대궐 같은 집을 가진 고길동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짱구네 집, 둘리네 집으로 생각하던 날들은 적어도 저에게는 다시 오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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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당 생활을 몇 년간 해오면서, 다른 작가 초청의 시간도 몇 번 겪어보았지만, 마치 유튜브의 한 꼭지처럼 연출을 해오신 작가님들은 처음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대접이 너무 박하였던 것은 아닌지 너무나도 신경이 쓰일 만큼 알차게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이 글을 빌어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약속이나 한 것 처럼 비슷한 스타일에 다른 컬러 착장을 하고 나타나셨는데, 그 마저도 기획된 것 같아 재미있었습니다.(우연이라고 하시더군요.) 책에서 상상하던 모습에 더해 준비해주신 사진들을 보면서 내용을 좀 더 구체화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더 좋았습니다. 틈틈이 곁들여 주신 입담까지 깨알같아, 유튜브는 역시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이번 시간은 그러니까 굳이 말하자면 전세였을까요, 월세였을까요? 개인적으로, 독자인 입장에서는 마치 자가처럼 충만한 시간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작가님들께도 전세 정도는 되는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어차피 끝까지 읽지 않겠지. 하고 쓰는 글. 여기까지 읽어주신 당신. 당신은 마치 욕조가 있고 근린 공원이 있는 햇볓 잘드는 2층짜리 단독 주택같아요. 무슨 뜻이냐고요? 사랑스럽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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