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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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임] 책읽당 읽은티 #40
: 고레에다 히로카즈,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유명하고 말 잘하는 사람들 중 누군가 했던 말로 기억합니다. 일본에는 냄새나는 것은 뚜껑으로 덮고 열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는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 뚜껑을 열기 때문에 주목받는다고. 물론, 이런 의미였다는 것이며 문자 그대로 저렇게 듣지는 않았습니다. 책에서 감독은 자기 말이 온전히 번역되지 않는 것에 대한 길고 긴 이야기를 하는데, 아마 이렇게 듬성듬성 말을 옮기는 저 같은 작자를 좋게 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여기부터 영화 ‘브로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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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감독이 한국 배우들을 데려다 한국이 배경인 영화를 만들었다길래 얼마나 일본 같은 한국영화가 나왔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아무 기대없이 작은 흥미만 가지고 봤던 이 영화는 애매하게 충격적인 결말을 내던져주고 저를 차버렸습니다. 그래서 뭐.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이런 결말로 소영과 우성은 행복해질 수 있어? 그 차를 몰던 사람은 동수? 아니면 상현? 장르 특성상 속편이 나올 리도 없는 영화의 이런 결말을 저는 아직 받아들이기 어려운가 봅니다. 일방적인 실연의 상처가 뇌 한 켠에 주름인 듯 흉터로 남았습니다.
브로커는 사실 영아 인신매매를 다루는 크고 무거운 영화입니다.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기를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받고 파는 두 남자와 버려진 아기, 그리고 아기를 파는 데 동조하는 엄마가 있고, 그들을 현장검거 하기 위해 잠복수사를 하는 여자들이 있습니다. 담백하게 적을수록 참 무겁고 무서운 조합입니다. 스릴러 혹은 범죄물의 시놉시스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만, 항상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담는지가 중요합니다. 무턱대고 미화하면 좋은 소리는 못 듣겠지만요.
그런 점에서 감독은 노련한 것 같습니다. 결국 주연들 중 그 어떤 범죄자도 법적으로 용서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한결 같은 정의의 편이 있던 것도 아닙니다. 주연들은 모두 범죄에 가담하지만 관객이 주연들을 미워하게 두지 않습니다. 크고 어두운 사건들 속에서 따뜻하고 익숙한 작은 이야기들이 은은히 빛납니다. 희미하지만, 어두워서 잘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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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의 결말에 일방적인 실연을 당하고 미련 덩어리가 되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다른 영화를 찾아봤는데, 감명 깊게 봤던 영화가 한편 있었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포스터에 주연 배우가 너무 멋있게 나와서 불순한(?)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스크린에서는 사실 그렇게 멋있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요? 아무튼 감독이 누군지도 몰랐던 이 영화는 “그렇게 아버지다 된다.” 입니다.
이 영화도 산부인과에서 아기가 바뀌어 6년간 키운 아들이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6년간 키운 자식을 바꾼다고요? 이 역시 크고 무거운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에서 “아버지”를 맡고 있는 료타는 성공한 회사원입니다. 능력도 있고 연봉도 제법 높은 모양입니다. 부인이 더 이상 임신이 어려워 하나뿐인 아들이 유일한 자식입니다. 아들은 똑똑하지만 너무 여린 거 같아 가끔은 료타의 마음에 차지 않기도 합니다. 그래도 하나뿐인 아들입니다.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전화를 한통 받습니다. 그리고 바뀐 아이들과 부모들이 대면하고 어려운 결정을 합니다.
이 영화에서 굳이 악역을 한 명 꼽으라고 하면 자신 있게 료타입니다. 자기 친 아들을 소중하게 키워준 부부의 생활수준을 은연중에 무시하기도 하고, 두 아이 모두 형편이 좋은 자신이 키우는 대신 돈을 주겠다고도 합니다. 담백하게 써놓으니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습니다. 하지만 관객은 료타를 마냥 미워하기 어렵습니다. 아들인 줄 알고 키우던 아이가 늘 가지고 놀던 카메라가 있습니다. 필름을 현상해보니, 온통 료타의 사진만 있습니다. 일에 치여 자주 놀아주지 못하고 잠든 모습 마저도, 아들이 마음을 다해 찍어준 아버지의 사진입니다. 마음이 그대로 현상된 사진에 아버지가 있습니다.
나는 이미 아버지였구나. 그렇게 느꼈을까요? 그 동안 정을 떼려고 힘써 외면했던 게 생각났을까요? 눈물이 흐릅니다. 료타가 본인과 가족에게 진짜 필요했던 것을 알아가는 작은 이야기들을 지켜보면서, 관객도 함께 가슴 아파합니다. 료타에겐 막장 드라마 설정 같은 아버지나 새엄마도 있지만, 감독은 그들조차 험상궂게 다루지 않습니다. 알고보면 그들에게도 따뜻하고 익숙한 작은 이야기들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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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들려주는 많은 이야기들이 작으면서 크고, 크면서 또 작습니다. 정책이나 정치인, 사회문제와 같은 거시적인 이야기를 소신 있게 하면서도 얼핏 독선적으로 보일까 조심하는 작은 문장이 있습니다. 때론 한없이 사적인 친분을 이야기하지만 은은하게 삶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은유가 있습니다. 책이 꼭 감독의 영화들과 닮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기어이 뚜껑을 열고 냄새를 풍기려는 사람을 여러가지 방면에서 도와주고 지켜주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본인도 그들에게 감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팔리지 않을 것 같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결국 우뚝 설 수 있게 해준 것은 어떤 토양의 지력이었는지 알 것도 같았습니다.
책 전반에서 풍기는 냄새가 편집자에 의해 편집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사람이 풍기는 체취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가족, 사회, 아이, 인간성, 진심, 사랑, 이런 것들이 잘 섞여 제법 편안한 냄새가 납니다. 너무 달콤하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아도 좋은 냄새가 나는 책입니다. 물론, 제 나름의 감상입니다.
책 후반에는 역시 이 정도로 유명한 감독은 영화광이 아닐 수 없겠구나 싶을 만큼, 많은 영화가 언급되는데 저는 그렇게 대단한 영화광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아는 분들이 말씀하시기를 전부 전설적인 영화들이라는데, 저는 아는 게 몇 개 없더라구요. 주말의 명화, 시네마 천국에서나 보던 것들이라고 하시던데, 정말 전 모릅니다. 모른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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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에서 소영은 베이비 박스 안에 아기를 놓지 않습니다. 비 내리고 쌀쌀한 날 굳이 베이비 박스 밖에 아기를 두고 어딘가로 사라집니다. (뭐 다음 날 다시 돌아오긴 합니다만) 등장인물들이 계속 대사를 통해 상기시키는 장면인데, 이유가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 장면입니다. 너무 궁금해요. 가끔씩 이 장면이 떠오르면, 저는 또 혼자 작은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도 여운이겠지요?
쉽게 쓴 글, 정성스레 읽어 주신 당신.
태어나줘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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