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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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찍으신 사진)
비욘세, 이소라, 자우림 그리고 지보이스
- 지보이스 <노래 노래 노래>(2023) 박민영
지보이스를 사랑하게 되면 그들의 재능까지 사랑하게 되는 ‘평가 불능’ 저주에 걸리게 되는 것일까? 다행히도 <노래 노래 노래> 공연장에는 이러한 저주에 걸린 사람들로 가득 차서, 보통의 경우에 공연이 마치고서 연출되었을 재회의 장면들이 로비 곳곳에서 보였다. 지보이스를 사랑하는 활동가들, 지보이스를 사랑하는 미술가들, 지보이스를 사랑하는 단원의 친구들, 지보이스를 사랑하는 혼자 온 사람들, 지보이스를 사랑하는 LGBTQA+들. 지보이스를 사랑하는 건강한 일반 시민들. 모두가 지보이스를 사랑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이러한 광경은 마법처럼 저절로 일어났지만, 동시에 지보이스 주최측에서 권장하는 사항이기도 했다. 공연장에서 아는 사람을 보면 반갑게 인사하라는 말, 지보이스의 공연은 그러한 의미의 행사라고 무대 위 스크린에도 적혀있었다. 나 또한 홀린 듯 지인을 찾아 공연장 앞을 서성였고, 수많은 사람들을 반겼다. 뮤지컬 스타를 기다리는 로비에서도, 자식새끼의 졸업 공연장 앞에서도 이와 같은 장면은 보지 못했다.
아무리해도 모자란 안부 인사를 뒤로 하고 시작된 합창의 첫 곡은 <애프터 스팟라이트>(After spotlight). 아이브의 ‘After Like’를 중심으로 대중음악사에서 등장했던 게이코드 일부를 반영하여 리터치한 음악이다. 첫 합창을 듣자마자 긴장이 싹 풀리며, 지보이스는 초심을 잃지 않았다는 감동이 밀려왔다. 원곡대로라면 후렴에 굉장한 고음으로 등장했을 ‘You and i. It’s more than LIKE’ 가사를 과감하게 안 부르고, 적막 속에서 끼스런 춤을 추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 적막마저 고요한 것은 아니었는데 … 단원들의 벅찬 숨소리와 스탭 소리가 반주보다 잘 들리는 그러한 적막. 관객들에게 ‘서툴고 어설픈 지보이스의 정체성’을 내던지지 않았다고 확인시켜준 뒤, 그들은 합창을 이어 나갔다. 인권단체 합창단에서 활동한다는 선망의 시선에 대한 중압감을 노래한 <무지무지 무지개>, 트랜스젠더 활동가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 <오빠의 결혼식>, 장애인 탈시설 운동을 지지하며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선언하는 <들어봐>, 그리고 이 세상을 먼저 떠난 단원을 주인공으로 하는 <북아현동 가는 길> 등. 조금은 어설픈 실력이 고막의 황홀경을 기대하게 돕기보단, 그들의 진심어린 가사에 집중하게 했다. 각 곡의 주제의식만 따르자면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놀랍게도 마음은 편안했다. 아마도 단원들의 교태로운 태도 덕분이리라. 그들의 저음이 어쩐지 더 높은 음으로 들리기도 하고 … 극강의 초고음이 있던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교태로움이 무대에 있었다. 이것이 ‘평가 불능’ 저주의 핵심일까?
저주를 이겨내고 지보이스의 공연을 바로 보자. ‘객관성 기능을 탑재한’ 눈과 심장이 있다면, 어디 한 번 갈아 끼워보자. 운 좋게 저주에서 벗어나봤자 보게 되는 것은, 디바 혹은 프리마돈나만 40명쯤 있는 합창단이다. 조금 끔찍할지언정 한 명 한 명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 대부분 비욘세나 머라이어 캐리, 옥주현, 이소라, 자우림이 될 성싶은데, 누군가 옥택연이 되고 싶다면 마찬가지로 응원할 일이다. 어쩌면 이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환상이야말로 저주 아닐지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공연 책자에 적힌 ‘초대의 글’을 보았다. 단장 상필은 세상의 모든 고백을 짚어본다. 어떤 고백은 쉽게 가닿는가 하면, 방향을 잃고 잘못 전달되는 고백이나 아무리 외쳐도 닿지 않는 고백, 혼잣말이 되고만 고백도 있다고 말한다. 고백을 읊조리거나 내지르는 사람 뿐만 아니라, ‘고백 자체’가 처한 상황도 둘러 볼 줄 아는 마음이라면, 저 섬세함 속에서 나도 환대받고 있겠다는 - 확신이 드는 ‘초대의 글’이 적혀있었다. 이는 ‘부동산에서 얻어 먹은 믹스커피’나 ‘이사 온 이웃에게 받은 떡’과는 비교불가한 강렬한 호의였다. 예상하지도 못한 곳에서 환대와 보살핌을 느꼈는데, 과연 누가 지보이스에게 객관적인 관객이 되려고 할 수 있을까.
게이 합창단 지보이스의 공연을 처음 본 건 작년 겨울,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이었다. 5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14개 단체의 깃발 아래, 협소한 야외무대에서 그들의 합창을 만났다. 찬바람을 덥힐 정도로 녹진한 저음과 모노톤 겨울날 휘날리는 무지개 깃발들이 아주 황홀했다고 기억한다. 노래 못하기로 유명한 지보이스(G-voice)였는데, 수준급의 실력을 보자니 지보이스(Z-voice) 아닌지 영문 표기명을 확인해야 할 정도. 어설픈 노래 실력이 그들의 시그니처라면 이미 초심을 잃은 듯했다. 시간이 흘러 2023년 10월, 지보이스의 20주년 기념공연 <노래 노래 노래>에서 그들을 다시 만났을 땐, 지보이스가 초심을 되찾은 모습으로 보였다. 예상컨대 신규 단원들이 늘어난 덕일 것이다. 그 중 한 명의 신규 단원은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몇 가지 이야기를 던졌는데, 본인을 FTM 트랜스젠더이며 게이인 단원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설렘이 터져 나왔고, 얼굴에는 활기가 돌고 있었다. 그 신규 단원은 지보이스 활동에 관한 내적인 고민을 털어놓았다. 지보이스의 다른 단원들은 자신을 편하게 ‘형’이라 부르라고 했지만, 지들끼리는 서로 ‘언니’거려서 난감하다는 말. 나는 허를 찌르는 농담에 박수를 치며 웃다가, 곧장 눈물을 쏟았다. 안전하다는 감각이 느껴지고서야 던질 수 있는 농담이 마음을 덥혔다. 지보이스가 합창의 ‘어설픈 실력’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능력주의를 경계하거나 서브컬처의 퀴어한 감각, 혹은 위트의 요소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도리어 ‘어설픈 실력’은 “어설픈 실력”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되어 알리는 적확한 사실이 있다. 합창하는 일이 그저 미학적 성취로만 평가받을 대상이 아니라는 것. 그저 아름답고 감각적 황홀경에 그들의 가치를 위임하지 않겠다는 말이며, 인권단체 합창단의 배짱과 포부를 알 수 있는 말이다. 지보이스에게 합창이란 커뮤니티 안팎으로 안전한 감각을 만드는 과정이며, “어설픈 실력”이란 그러한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마법의 주문인 셈이다. 그것이 ‘평가 불능’ 저주의 핵심이자, 기꺼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나는 언젠가 리미니 프로토콜 같은 공연을 올리리라 마음 먹었지만, 어째서인지 정이 가지 않고 도무지 힘이 나지 않았다. <100% 광주>를 보고 그것이 민주주의적 형식을 적절히 반영했고, 통계의 쾌를 끌어냈다는 점에서 압도되었지만, 힘이 나진 않았다. 그 ‘좋음’이 ‘국가에게 온건한 시민’의 몫으로 느껴졌고, 민주주의적 불신과 통계의 불쾌가 곧 나의 몫이 될 성싶었다. 즉, 양적 측면에서 불러일으키는 감동은 내게 믿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석연치 않은 느낌의 정체는 알 듯하다가 결국 어렴풋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지보이스의 <노래 노래 노래> 공연을 봤을 때의 환희는 지난 날의 감각을 형언할 수 있게 도왔다. 민족 정서를 갈무리하는 것보다, 난잡할지언정 종족 정서를 공유하는 일이 내게 우선으로 와닿은 걸까. 남아서 이곳을 바꾸려는 의지의 사람들. 그들에게 ‘현실을 요약하여 보여주는 일’보다 힘이 되는 것은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지’를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노래 노래 노래>의 무대에서는 커뮤니티가 지켜온 것들과 지키고자 하는 무엇, 그리고 기억해야 할 사람들과 감사해야 할 사람들을 말했다. 지난한 시간들을 버티는 일은 고고하고 빛나는 게 아니라, 부서지고 남루해지는 과정임을 말했다. 나는 애써 객관적 평가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실은 이들의 말에 감응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었다. 지보이스의 환대에 압도되었고 힘이 났다. 그 ‘좋음’이 애써 온건한 시민의 몫이 아니여도 된다는 점이 유쾌한 일이다. 눈에 쏟아지는 스펙터클이 아니더라도, 꾹꾹 눌러 담은 한 마디 가사가 충분히 강렬했다. 칭찬을 하자면 글이 끝나지 않을 테고, 염불 외듯 ‘지보이스 사랑해’만 읊조리게 될 터. 단장 상필의 말대로 ‘우리 모두가 살아온 삶을 자축하고 또한 내일을 기대하게 되는 공연’을 보았으니, 공을 우리 자신에게 돌리자. 그리고 옆에 아는 사람이 있다면 반갑게 인사하자.
참고한 글
오혜진, 「지키고 싶었던 것들」(오혜진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씨네21, 2019.11.27.
— 읽을 때마다 또다른 활력이 생기는 글이다. 웹에서 볼 수 있는 짧은 글이니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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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친구사이 회원 / 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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