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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보이 2004-08-18 12:29:39
+0 834
J에게

언젠가 너에게 보낸 편지에다도 썼다시피, 이 세상에서 가장 짧은 편지는 빅토르 위고와 출판사 사이에 왕래된 것이었단다.

'레미제라블'을 다 탈고한 빅토르 위고가 출판사에 출간 여부를 묻는 편지를 원고와 함께 보냈지. 편지에는 '?'만이 덩그라니 찍혀 있었고, 이 뜻을 간파한 출판사 쪽에서는 원고를 다 읽은 다음 '!'라고만 씌여진 편지를 빅토르 위고에게 보냈단다.

기호 하나만으로도 이심전심을 전달하는 단순함! 어느 땐 우리 인생이 그런 게 적어 참으로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는 세 음절의 짧은 문장만 해도 얼마나 복잡한가. 이를 둘러싼 각 개인의 감정의 정도, 포개져 있는 다른 의미들의 불협화음, 컨텍스에 따라 참으로 복잡하게 나뉘어져 있을 게다.

나와 너가 다를진대, 너와 나가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이 다를진대, 이해하는 폭이 다르며 사랑에 대한 이해의 방식이 다를진대, 아울러 사랑을 정의하는 이 세상 수많은 관념를 받아들이는 자아의 촉수도 다를진대, 어찌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문장이 간단명료하게 정련될 수 있을까?

허나 때로 이 복잡한 거미줄 위에서 아슬하게 곡예를 펼치며 살아가는 우리네 어지러운 인생이 참으로 억울하다. 가끔 사랑을 묻는 대신, 물음표가 적힌 편지 하나를 화룡정점하듯 너에게 보내고 싶을 때가 있다. 어지러운 눈치 작전과 섬세한 척 배려하는 척 구는 위선들을 말끔 씻은 하얀 편지지.

어젯밤 너를 닮은 한 아이가 어느 바의 스탠드 테이블에 앉아 있는 걸 보았다. 우리는 거의 1시간 동안이나 말없이 눈빛을 주고 받았지. 그렇게 내 마음 속에서 또다시 곡예를 펼치길 1시간 여, 이윽고  담배를 쓰윽 끌며 그 자리를 털고 일어나 뒤돌아섰단다.

느낌표 하나만으로 사랑을 말하기, 요즘 내게 필요한 사랑을 위한 에포케. 그건 일종의 확 저질러 버리는 무모함이며 용기다.



모리스 라벨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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