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판 '트랜스젠더' 혜공왕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서기 660년 백제에 이어 668년에는 고구려까지멸한 신라는 곧이어 한반도 점령과 직접 통치를 꾀했던 당군(唐軍)까지도 문무왕 16년(676)에 완전히 축출함으로써 '일통삼한(一統三韓)'을 달성했다.

하지만 외부의 적이 일시에 사라짐으로써 역설적으로 이미 700년 역사를 모질게버틴 신라는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학계에서는 대체로 당군 축출 이후 약 100년동안을 신라사의 최대 황금기, 혹은 '대평화시대'라 부르고 있으나, 그보다는 오히려 삼국통일과 함께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신라는 왕권이 정점을 차지한 내부의 단결력이 그것을 가능케 했던 외부의 적이일시에 소멸됨으로써 와해 일로를 걸었으니, 그러한 징후가 본격화되는 것은 제36대혜공왕(惠恭王. 재위 765-780년) 때였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보면 혜공왕대 이후 신라는 각종 천재지변과 연이은 반란으로 점철되기 시작하는데, 예컨대 그의 재위 2년(766)에는 하늘에 해가두 개가 나타났는가 하면, 다리가 다섯 달린 송아지가 태어나기도 했다.

또 96명이나 되는 각간(角干)이 난을 일으켰으며, 저 유명한 '미추왕과 죽엽군(竹葉軍)' 설화라 해서, 머리에 대나무 이파리를 꽂은 군사들이 미추왕릉으로 들어가고, 이미 100년 전에 죽은 뒤 신라의 호국신(神)이 돼 있던 김유신의 혼령이 나타나억울함을 호소하는 희대의 괴변이 생긴 것도 이때였다.

결국 혜공왕은 김지정이 이끄는 반란군에 살해되는 비운을 당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생전 이름이 건운(乾運)인 혜공왕은 아버지가 35대 경덕왕(재위 742-765년), 어머니는 김씨 만월부인(滿月夫人)이었다.

즉위할 때 겨우 여덟 살이었으므로 혜공왕은 직접 통치를 하지 못하고 대신 어머니인 만월부인이 섭정을 했다. 신라의 성년은 18세 정도로 생각되므로, 혜공왕은재위 10년(774) 무렵에야 직접 통치를 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재위기간이 반란과 천재지변으로 점철된 혜공왕에게서 실로 재미있는 것은 그가원래는 여성으로 태어날 운명이었으나, 그만 남자로 바뀌었다는 이야기이다.

그의 이런 면모는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에 실린 '경덕왕(景德王)과 충담사(忠談師)와 표훈대덕(表訓大德)'이란 이야기의 다음 구절에서 잘 드러난다.

"왕은 여자이지만 남자가 되었기에 돌날부터 왕위에 오르는 날까지 항상 여자가하는 놀이를 하면서 자랐다. 비단 주머니 차기를 좋아하고 도류(道流)와 어울려 희롱하며 노니 나라가 크게 어지러워지고 마침내 (제37대) 선덕왕(宣德王) 김양상(金良相)에게 죽임을 당했다"그렇다면 원래 여자로 예정된 혜공왕은 어떻게 남자로 바뀌었는가?위 「삼국유사」 같은 이야기에 의하면 음경의 길이가 무려 8치나 되었다는 경덕왕은 아들이 없자 원래 왕비를 폐하고 내쫓은 뒤 만월이란 여인을 새로 왕비로 책봉해 왕자를 보고자 했다.

다행히 만월에게 태기가 있었으니, 왕은 신통력이 뛰어난 고승 표훈(表訓)을 불러 "(스님이) 상제(上帝)께 청을 넣어 아들을 낳게 해주오"라고 부탁하게 된다.

하지만 하늘로 올라가 상제를 만나고 돌아온 표훈은 아들이 아니라 딸을 낳을것이라는 비보를 왕에게 전한다. 이에 놀란 경덕왕은 다시 표훈에게 상제를 만나 아들로 바꿔주도록 부탁하라고 애걸복걸을 한다.

이렇게 해서 표훈은 다시 하늘로 올라가 상제를 만나 겨우 딸 대신 아들을 낳을것이라는 답변을 듣고 왔으나, 대신 "그러나 아들을 낳으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이다"라는 예언을 왕에게 전했다고 「삼국유사」는 전하고 있다.

이런 설화적인 이야기가 얼마나 사실에 충실한 지는 알 수는 없으나, 혜공왕에게는 여성적인 면모가 꽤 농후하게 관찰된다. 아마도 "도류(道流)와 어울려 희롱"하기를 즐겼다는 기록에서는 동성애적인 흔적도 강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여성이 됐어야 했으나 남성으로 바뀌어버린 신라판 '트랜스젠더' 혜공왕이 최근 경남 사천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비석에서 그 이름을 드러내고 있다.

taeshik@yna.co.kr
(끝)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 2004년 7월 5일(월) 오후 2:19 [연합뉴스]

http://news.nate.com/Service/natenews/ShellView.asp?OrgLinkID=222&LinkID=1&ArticleID=2004070514195717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