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이 넘으신 우리 어머니는 내가 보고 싶을때마다 전화를 해서는 "김치 담궈놨다. 가져가라"고 하신다. 보통의 어머니들처럼 자식이 보고 싶을때는 "한 번 와라, 보고싶다"든가 "자주와라"고 호통을 쳐도 될 텐데 우리 어머니의 방법은 늘 이렇다.
몇일전 전화통화를 했건만 오늘도 전화를 하셔서는 때이른 김장을 했으니 와서 가져가라는 것이다. 또 내가 보고싶으신 모양이다.
사실 둘이 사는 내가 김치를 먹으면 얼마나 먹으랴만 일흔이 넘으신 어머니가 나에게 줄 수 있는 물질적인거라곤 김치를 담궈주는게 전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김칫국이며 김치찌개, 김치볶음밥, 김치전, 심지어는 가게에서 만드는 두부김치까지도 어머니의 김치로 만든다.
뭐니뭐니해도 어머니가 담궈주시는 김치가 제일 맛있다며 자주 자주 김치를 가지러 가는게 늦은 나이에 서울생활을 하고 계시는 어머니한테는 낙인가보다.
사실 어머니의 김치는 맛으로만 치자면 그리 뛰어나지는 않다.
나이를 먹으면 모든 감각이 둔해지는 법인데 어머니의 미각이라고 세월을 거스를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요리로만 치자면 어찌보면 내가 어머니보다 한 수 위일수도 있는데 어머니는 내가 잠시 들를때마다 난 주방 근처에도 못오게 하신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집에서 매일 하는데 엄마한테 와서까지 뭐하려고..."
처음 어머니한테 '당신의 아들은 동성애자입니다'라고 얘기를 했을때
다른 어떤것 보다도 나를 괴롭혔던 것은 네명의 아들중에서 가장 많은 얘기를 나누고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아들인 내가 동성애자이고 결혼생활을 하지 않을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어머니가 나하고 같이 살지 못할꺼라는 것이었다.
몇년전부터 "엄마, 나하고 같이 살자"라고 얘기를 하면 어머닌 늘상 그러신다.
"내가 이 나이에 너 밥해 주면서 살아야 되냐?"
하지만 지금 어머닌 이혼한 큰아들집에서 2명의 손주녀석들과 늙은 큰아들을 위해 살림을 맡아하고 계신다.
이혼한 큰아들집에서 나이어린 두명의 손자들과 어릴때부터 밥상을 차려주지 않으면 아예 밥을 굶을 정도로 가부장적인 그릇된 유교관습에 물들어 있는 아들을 위해 밥을 짓고 있는 어머니는 오늘도 막내아들이 보고 싶으신 모양이다.
전화를 끊을 즈음에 어머니는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의 안부를 묻는다.
아직도 딱히 마땅한 호칭을 찾지 못하신 모양인지 그저
"그 친구도 잘 지내고 있냐" 라고 그러신다.
조만간에 어머니께서 그 친구라고 부르는 나의 애인과 함께 김치를 가지러 어머니한테 들러야겠다. 김치담궈났다는 소리가 나오기전에 항상 먼저 찾아뵈야 하는데 어머니의 사랑은 언제나 날 앞서가고 있고 난 뒤따라가며 주워 담기만 하고 있다.
내가 민정호를 찾아낼 때까지만 민정호 이름 쓰는 거 용서해줄께, 나주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