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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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내 인생의 퀴어영화 #21 - <그래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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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만 개의 삶과 사랑, 아픔과 감동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매력에 빠져,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즐겨봅니다. 특히 영화에서 그려지는 주인공들의 삶이 내 삶과 연결되어 있을 때 그 느낌은 배가 되죠. 영화로 만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지난 일요일에 크게 앓았다. 하루종일 집에 홀로 누워 끙끙거리기만 했다. 혼자 살기 시작한 이래로 아파 쓰러진게 처음은 아니었다. 조금 견디다가 움직일만 해지면 일요일에도 여는 병원을 찾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 날은 달랐다. 처음에는 서럽다가 나중에는 억울했다. 도대체 날도 좋은 주말에 왜? 남들은 기분 좋게 거리를 거닐며 여유를 만끽할 때 왜 나만? 생로병사는 모든 인류, 더 나아가 생명이 공평하게 겪는 가장 보편적인 조건이다. 이 말은 아픈건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앞으로도 이런 날들이 많을 것이다. 다른 아프지 않은 몸들이 일상을 만끽할 때에 홀로 고통 속에 남겨진 순간. 그게 그렇게도 화가 났나보다.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동성애자라는 나의 성적 지향을 자주 밝히곤 한다. 그럴 때면 자주 쓰는 말들이 있다. 혐오, 차별, 배제 그리고 특히 ‘소수자’. 언제부터인가 그런 말들을 쓰는게 지겨워졌다. 너무도 명징해서 마치 ‘저는 소수자의 세계에서 왔어요’라며 내미는 여권과도 같은 단어들. 그것 뿐일까. 그렇게 명료하게 수렴하고 지나갈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요즘엔 나의 삶이 주는 느낌과 감각을 전하려는 노력을 더 한다. 특정한 단어, 이슈 그리고 나의 정체성을 꺼내기 전의 긴장감과 이후의 미묘한 표정 앞에서 철저히 작아지는 느낌. 소수가 아닌 사람에겐 편하고 자유롭지만 나에겐 어색하고 부대끼는 일. 남들보다 몇 배의 중력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느낌. 여기에 압도되면 방 구석에 홀로 남아 일어서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소수자의 삶을 이해시키는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요즘 나는 이렇게 물어본다.
‘혼자 앓아 누워 보신 적 있으세요?’

<그래비티>에 퀴어하게 이입하기
오늘 이야기 할 영화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다. 의문스러울 것이다. 엄밀하게 말해 이 영화를 ‘퀴어 영화’로 분류할 순 없으니까. 하지만 약간의 비약과 시선의 주관성을 감안해준다면 나는 이 영화에 퀴어하게 이입할 여지는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이 영화의 배경이 우주인 것부터 그렇다. 무중력의 공간에서 갓난 아기처럼 버둥거리며 자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는 주인공들을 보라. 보다 평범하고 보편적인 환경에 있을 사람들은 멀리 떨어진 지구 땅에서 목소리만 전해오고 몇 안 되는 주인공들은 마치 우주의 점처럼 남겨져 있다. 모여도 소수고, 하고 싶은대로 사는건 버겁고, ‘보통’의 한국인들의 삶은 저만치 멀리 있는 것만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삶이 저럴까.
물론 지구에서의 삶이라고 원하는 대로 잘 풀리기만 할리는 없다.(이는 내가 부러움의 눈길로 바라보는 이성애자, 중산층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냐는 맷의 질문에 라이언은 죽은 딸 이야기를 한다. 그녀는 친구들과 놀다 미끄러져 죽었다. 참으로 어이없게도. <그래비티>에선 총 두 번 죽은 자들의 몸이 등장한다. 라이언 박사는 원치 않게 사망한 동료의 끔찍하게 망가진 얼굴을 마주하고, 우주정거장 동료들의 시신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컷을 비집고 들어온다. 그런 식인 것이다. 원하지도 않고 예상치도 못하지만 언젠간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일들. 라이언이 겪었던 상실도 그랬다. 딸의 죽음엔 누구의 잘못도 아무런 인과도 없었다. 그나마의 원인을 찾자면 그녀를 땅으로 잡아당긴 중력 정도가 아닐까.

완벽했던 그 영화가 내게 남긴 의문
그 날 이후 라이언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일을 끝내곤 내내 운전만 했다. 사람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딸이라는 구심점이 사라진 인생엔 오직 경유지만이 존재했을 뿐 목적지는 없었다. 어쩌면 라이언이 집이 아닌 우주로 오게 된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었을지 모른다. 그녀는 왜 여기가 좋냐는 질문에 고요해서라고 답한다.(흥미롭게도 라이언을 제외한 다른 두 남성 캐릭터는 우주를 모험과 성취의 공간처럼 여긴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외딴 곳. 세상사가 불러오는 번민에서 멀리 떨어진 곳. 무엇보다 딸의 죽음을 불러온 그 끔찍한 중력에서 자유로운 곳. 완벽한 도피처. 하지만 이런 우주에서조차 인공위성 잔해에 휩쓸리며 생의 불확실성을 다시 마주했을 때 라이언의 심정은 어땠을까. 사실 나 역시 성소수자 커뮤니티 속에 있을 때 비슷한 일을 겪거나 감정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결국 지구에서보다 더욱 확실하게 아무런 희망도 없이 홀로 남겨진 라이언은 자살을 결심한다. 그리고 그녀의 환상 속에서 라이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맷이 다시 나타나 말한다. 가기로 했으면 가야하는 거라고. 솔직히 완벽에 가깝게 마음에 들었던 이 영화에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차라리 지금 돌아가 빚을 갚지 않으면 가족들이 패가망신 한다는 협박이라도 하지, 저걸로 설득이 될까? 그리고 그것은 영화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이어지는 상실, 절망, 고독 앞에서 결국 감독이 하는 말. 그래도 살아야 한다. ‘왜?’하는 질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의문은 오랜 시간 머릿 속에 남아 있었다.
진공의 공간을 벗어나
얼마 전 문득 든 생각은, 어쩌면 중요한 것은 대사의 내용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캐릭터가 중요했다. 맷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라이언을 살려낸 사람이다. 더 정확히는 이미 잃었을지 모를 삶의 기회를 다시 잡도록 도와준 인물이다. 사실 다른 어떤 좋은 말을 집어 넣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 사람 앞에서 어떻게 라이언이 ‘아니, 나는 더 이상 못 해먹겠어’라고 말하겠는가. 나는 어쩌면 그것이 연대의 의미이자 공동체의 가치가 아닐까 싶었다. 각자가 서로의 삶의 이유가 되어주는 것. 상대방의 등을 떠밀어 계속 살아가게 만들어 주는 곳. 완벽하게 안온한 도피처 같은 건 없다. 심지어 그것이 세상의 무게에서 자유로운 곳으로 여겨지거나 실제로 그런 공간일 때조차도 말이다.
얼마 전 SNS를 통해 커밍아웃을 감행했다. ‘감행’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사실 그럴 필요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한다고 딱히 더 나빠지는 것도 좋을 것도 없었다. 물론 계기는 있다. 그 전에 나는 한 집회에서 성소수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게이인 나를 아침마다 옷장에 넣어두고 오는 일. 이성애자인냥 아침마다 출근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일. 나는 이제 동성애자인 스스로가 옷장이 아니라 관짝에 들어가 있는거 같다고 말했다. 무지개 깃발을 들고 나선 시위가 장례식 같다고 이야기 했다. 같은 성소수자들과 함께할 때가 아니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공간에 잠긴 나의 일부를 애도하는 삶. 발언이 끝나고 나는 내가 무엇을 상실한채 살고 있었나를 알게된 것 같았다.
무해한 진공의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면 나는 그렇게 살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졌다. 부딪혀 보고 싶었다. 두 배의 중력을 이겨보고 싶었다. 관 뚜껑을 부수고 나아가고 싶었다. 예전에는 그 속에 들어가 고이 놓여진 내 옆에 누워 숨을 멈추고 싶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등을 다독이며 조금 더 가볼 것을 독려한 사람들이 있었다. 커밍아웃은 끝이 아닌 시작일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이제 문은 열렸다. 라이언의 대사를 마지막으로 글을 닫고자 한다.
‘이제 운전은 그만 할 거야, 집에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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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 영화 보면서 참 매력적이다.
주인공인 산드라 블록도 참 멋지고, 정말 우주에 나간다는 게 어떤 느낌일까 상상도 해 보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