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모처럼 운영회의가 무려 3시간도 안 되어 끝이 났다.
처음 있는 일이라서 믿기지 않기도 했다.
그만큼 안건지에 공을 들인 사무국의 노력이 있었을 게다.
뒤풀이 자리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와도 다르지만, 같은 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과도
많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는 그들에 비해서 너무 멀리 걸어가 있고, 일부는 여전히 비슷하면서도,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의 방향이 점점 달라지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구지 이유를 들어야 한다면 나이와 경험일 것이다.
더불어 똑 같은 말 속에 경험이란 깊이가 더 무거워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겸손하지만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리고 겉 모습을 버리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갈라 형이 늘 술자리에서 해 주었던 말이 생각이 났고, 그 말이 새삼 오늘 더 많이 생각이 난다.
오늘은 EBS 방송 촬영의 거의 마지막 날이었다.
앞으로 한 번 방송국에 직접 가서 녹화하는 기회가 있을 거라고 PD 님이 설명을 해 주셨다.
늘 반복되는 질문과 답을 하면서 조금을 지루할 수 있는 말들을 하면서, 내 삶에서 친구사이가
미친 영향력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지나치게 고립되었고 무의미하고 무가치했던 삶을 살아가다가, 운동이니 뭐니 상관없이
즐겁게 살아가는 선배들의 모습이 인상이 깊었고, 그것은 언제나 선명한 시원함 같은 것이었다.
매 주 일요일 마다 합창을 하고, 노래 못한다고 지지리 구박을 받으면서도, 함께 해서 행복한 순간들이
더 많았다. 물론 구박을 많이 받을 때는 속으로 욕을 엄청 많이 했었다 ( 베이스 화이팅 ^^)
그런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젊은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니 정말 행운이었다.
내가 이 곳에서 받은 좋은 에너지로 어둠에서 빛으로 나갈 수 있었기에, 누군가에게 그만큼 돌려주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 나는 지금도 인권운동에 관심이 있는게 아니라 내가 받은 마음의 빚을 돌려주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한편으로 이만큼 했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또 한편으로 나의 그런 마음이 누군가에게 부담이 되거나 짐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반성도 든다.
좀 더 사실을 말하자면 이전의 나와는 달리 종종 자신이 없어지곤 한다.
세상은 안개 속에 있고 모든 것은 선명하지 않으며, 어찌되었던 살아가면서 해야 하는 선택들에서
종종 죄책감이나 자기 비하를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어째서 삶은 젊은 시절이나 눈가에 주름이 가득한 시절이나 안개 속에 있을까?
한치 앞도 못 보면서 먼 미래를 꿈을 꾸고 있는 나의 모순을 발견한다.
사랑을 가장하면서 평범함을 버리고 특별함을 추구했던 나의 오만과 거만함도 발견한다.
어째서 평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지 못했을까?
돌아보면, 지금까지 나의 삶은 부모와 제도권의 교육이 길러내고자 했던 모습의 삶이었다.
소수자이면서 소수자를 떼내고 나면 주류와 구분할 수 없는 그런 삶이었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하잘 것 없고 시시한 삶 말이다.
그래서 일 년 동안 죽 쉬어보기로 했다.
내 방식대로 삶이란 것이 무엇인지 도통 알 수 없어서 말이다.
이런 선택도 누군가에 비해서 축복일 것이다.
내가 길을 발견할 수 있을지, 길을 나설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 그리고 모든 존재가 그렇듯이 평범한 사람, 평범한 존재이고 싶다는 소망만이 확실하다.
평범의 답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들, 책에서가 아니라 내 속에서 나오는 답 말이다.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왔고, 지난 몇 달간 조금은 신경 씌였던 방송촬영이 종착지를 보고 있어서,
기분이 한결 편해진 기분이다.
나의 손을 떠난 나의 모습을 영상으로 확인하는, 여전히 생소하고 어려운 작업들, 나와 함께 길을 걸어 주었던
고마운 사람들이 생각이 난다.
다시 길 위에 서면 그 기억들과 힘을 넘어서서, 새로운 날들과 새로운 하늘을 보며 숨을 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