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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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퀴어자랑 #7] 전라도 광주 - 광주, 낮선 곳에서의 1년 9개월
2015년을 맞이해 친구사이 소식지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코너 <전국퀴어자랑>. 일요일이면 일요일마다 어김없이 찾아오지도 않고, 송해 선생님도 없지만, 팔도 방방곡곡에 거주하고 있는 다양한 퀴어들, 그리고 곁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의 세상사는 이야기를 신명나게 소개합니다. 그럼, 다 같이 외쳐보아요. 전~국! 퀴어자랑-

편집자 주 -
이번 전국퀴어자랑의 주인공은 전라도 광주에 내려가서 2년여 동안 살게 된 '토크위드'님입니다.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면서 40대 초입에 들어선 그가, 깊숙한 관계를 두려워하면서도 광주에서는 무엇을 느꼈을까요?
소박하면서도 진실한 그의 고백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서울에 대한 고민
이제 막 40대에 들어섰고, 돈 안되는 문화예술계에 종사하고 있다. 나는 광주 사람이 아니다. 광주에 온지 1년 9개월이 되었고 3개월 후에는 다시 광주를 떠난다. 광주에는 일을 찾아 왔다. 삼십대 중반부터 탈서울에 대해 생각해 왔다. 서울의 복잡함이 싫어서도 아니고, 시골의 자연환경을 동경하는 낭만적인 이유도 아니다. 서울의 복잡함과 세련됨을 누구보다 좋아한다. 도시적인 삶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뭔가 다른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을 겪는다는 것도 두렵고, 힘들다.
그럼에도 탈 서울을 고민했던 이유는 서울에서의 삶이 고비용의 삶이기 때문이다. 아등바등 먹고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을 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소비에 대한 대단한 철학이 있어서는 아니다. 소비를 위해 끊임없이 벌어야 하고, 직장을 지키기 위해 불합리한 체제에 순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문화예술이라는 돈 안 되는 분야에서 일하고 있고, 그 안에서도 특출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일찍부터 소득의 증대보다는 소비의 통제에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무엇보다도 주거가 큰 난관이었다. 1인가구의 단출한 삶임에도, 서울의 집세는 항상 생활을 짓눌렀다.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위해 먹느냐’라는 개똥철학이, 내게는 ‘살기위해 월세를 내느냐, 월세를 내기 위해 사느냐’처럼 느껴졌다. 어떤 때는 내가 월세를 내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했다.
이러한 고민으로 탈 서울만이 소비로부터 해방되어 나의 존엄을 찾는 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던 중 우연히 광주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 물론 광주는 아무리 지방도시라고 해도, 대도시이다. 탈 서울을 했지만, 더 작은 도시, 또는 시골로 내려가는 막연한 계획에 대해 내 자신을 테스트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2015 광주비엔날레 작품. 광주도시철도에서의 모습
평화롭고 여유로운 도시 vs 지루하고 외로운 낯선 도시
광주에서의 생활은 평화롭고 여유로웠다. 겨울은 따듯하고 여름은 온화하다. 출근시간에도 지하철은 붐비지 않는다. 거리와 시장은 한적하지도 붐비지도 않는다. 버스와 자가용의 수송분담률이 높다. 차를 가진 젊은이도 많고, 거리의 주차 단속은 거의 없다. 거리엔 꽃집이 많다는 것도 광주에서 찾은 또 하나의 특징이다. 아마도 건물세가 높지 않아서가 아닐까 추측해 보았다. 광주는 집들은 단독주택이거나 아파트다. 구도심엔 오래된 주택이, 신도심에는 아파트가 들어서 대조를 보인다. 광주에는 어디를 가도 유흥가가 많다. 술집도 러브텔도 어떤 도시보다 많아 보였다. 원룸도 많이 증가하는 듯하고, 원룸엔 싱크대가 방안이 아닌 베란다 안에 배치되어 음식냄새가 옷과 이불에 배지는 않지만, 좁고 겨울엔 춥다.
‘음식은 전라도’라고 하지만, 광주의 음식이 특별할 건 없었다. 내 입에는 오히려 짜다는 느낌이었다. 전주의 비빔밥이나 콩나물 국밥처럼 광주를 대표할 음식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이 전라도 분이라, 내게는 광주의 음식이 특별할 것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순대국엔 순대만 들어 있고, 서울처럼 순대와 내장과 살코기가 들어간 것을 먹으려면, ‘모둠 국밥’을 시켜야 한다. 콩국수에는 소금보다는 설탕을 넣어 먹는 편이고, 순대는 초장에 찍어 먹는다. 비빔밥은 생고기를 넣은 ‘생비’와 익힌 고기를 넣는 '익비'로 구분된다. 상추튀김은 상추를 튀긴 것이 아니라 튀김을 상추에 싸먹는 것이다.
▲무등산에서 바라본 풍경
서울에 북한산이 있듯이, 광주에는 무등산이 있다. 시내버스로 국립공원에 등산을 갈 수 있는 매력이 있다. 도심 속에는 녹지가 서울보다 없다. 흔한 놀이터를 특히 구도심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시내는 지루하고 특색이 없지만,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특색 있는 고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예전에는 큰맘 먹어야 갈수 있었던, 담양의 소쇄원과 광양의 매화동산과 해남의 땅끝마을과 순천의 선암사를 주말에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갈수 있는 점이,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여기까지가 광주에 대해 내가 찾은, 또는 즐기게 된 것들이다. 처음 1년은 광주의 지루함과 낯섬 자체를 즐겼다. 다른 1년은 광주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남도의 자연과 문화를 즐겼다.
▲담양 죽녹원에서의 모습
40대에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다는 것
하지만 심리적 위기는 1년이 지나자 찾아왔다. 처음에는 낯섬이 즐거움이었지만, 계속해서 낯선 이방인으로 남는 것은 어는 순간이 지나자 괴로움으로 다가 왔다. 회사 동료는 회사 동료 이상이 되기는 어려웠다. 일과 관련하여 알게 되는 광주의 사람들은 하나 둘씩 늘어갔지만, 이렇다 할 교우 관계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낯을 가리는 편은 아니지만, 쉽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지 않는 성격 탓도 있겠다. 중년의 나이에 들어선 독신남-남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테니-이 살아오던 곳이 아닌 새로운 터전에서 관계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회사의 어린 친구들 중에 많은 수가 광주가 낮선 이방인들이었지만 그들은 비교적 쉽게 광주를 즐기는 것 같았다. 서울과의 끈을 놓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서울과 광주의 물리적인 거리는 점점 더 심리적인 거리로 다가왔다.
생각해 보면 서울도 나의 고향이 아니다. 그럼에도 왜 서울에 처음 왔을 때처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어려웠을까? 대학생활이 만들어 주는 관계와 직장생활이 만들어 주는 관계의 차이는 아니었을까? 20대와 40대의 차이였을까? 아니면 ‘가정’이라는 삶의 기반이 있는 이성애적 사회관계와 그 관계에 쉽게 녹아들지 못하는 40대 싱글 게이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섬진강을 바라보며 핀 매화
광주에서의 나의 이반라이프는 특별할 것이 없다. 원래부터 나의 이반 라이프는 매우 애매하다. 벽장 안에 숨어 있은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커뮤니티 활동을 한 적도 없다. 누구를 만나든 진정성 있게 대하지만, 누군가와 진한 사랑을 해 보지도 않았다. 쿨하게 원나잇 스탠드도 잘하지만,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언제나 설렘보다 긴장이 앞서기도 한다. 광주에 내려오기 전 몇 년 동안 이반 커뮤니티와의 관계를 잠시 단절하고 살았다. 뭔가 ‘생애주기 변환’과 같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개별적으로 연락하며 생사를 확인하는 이반 친구들이 있었다.
광주에서도 특별히 이반으로서의 적극적인 관계 맺기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모바일 어플을 통해 광주에서 만난 이반들은 대부분 20대였다. 지방은 나이 든 이반들이 더욱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나 또한 그들처럼 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회사에는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외국인이 있다. 비교적 커밍아웃을 잘 하는 편이지만, 왠지 회사로 연결된 그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다른 술자리에서 팀원들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커밍아웃을 했다기보다는 동료의 '혹시나' 하는 물음에 '혹시나가 맞다'고 답했을 뿐이다.
광주에 온지 1년 9개월이 되었고 3개월 후에는 다시 광주를 떠난다. 서울로 돌아가도 또 다시 서울을 떠날 생각을 할 것이다. 어디론가 다시 내려가도 그곳에 적응하려 노력하겠지만, 또 다시 서울을 그리워하는 것을 반복할지도 모른다. 소극적인 성격을 탓하거나, 관계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 대신에, 환경을 탓하기를 반복하며 외롭다고 칭얼거릴지도 모른다. 지난 광주에서의 1년 9개월이 남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지만, 어디에서 어떻게 살든, 사적인 관계든 공적인 관계든,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할 것이다. 혼자이기 때문에 관계에 대해 더 고민할 수밖에 없다. 글을 쓰며 시간과 시간 사이의 기억들을 꺼내 보지만, 그 사이에는 기억보다 더 즐거웠던 시간도 괴로웠던 시간도 있을 것이다. 이제 광주에서의 한 페이지를 넘기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전국퀴어자랑> 연재 순서
#02 경상도 부산 - 전라도 상남자 '카이'의 부산 적응기
#03 전라도 전주 - 지역의 성소수자들과 함께, 낯설지만 같이
#04 경상도 대구 - 저항과 연대의 힘으로 함께 만드는 대구퀴어문화축제
#05 경상도 함안 - 길을 잃는 즐거움 : 게이로서 시골에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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