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다시 한번 기회가 되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최근들어, 축제때문에 흥도 겨우실테고 한편으로는 여기저기서 들려나오는 여러가지 목소리때문에 복잡하실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저 역시, 페이스북 뉴스피드만 봐도 너무나도 다르고 극명한 두가지 세계, 두가지 목소리가 항상 충돌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세계와 목소리를 나누는 경계선 위에 여전히 서있습니다.
요 며칠 간 다시금 심각하게 고민을 해봤습니다. 제 자신 제 신앙에 대해 여러번 고찰해주는 것이 제 성적 정체성인듯 싶습니다. 아무래도 지난번 서울역 행사때, 아무것도 손에 들지 않고, 그저 행렬을 조용히 먼 발치에서 따라가기만 한 이후로 든 생각이 많아진듯 합니다. 부정할 수 없는 제 자신의 정체성이지만, 그러나 세상에 드러내기가 힘든 상태, 그저 몇몇 사람들에게만 알려질 뿐 내가 몸과 맘을 다해 섬기는 사람들과 공동체에서는 절대로 알려져서는 안될 금기라는 점에서 선뜻 저는 제 발로 친구사이 사무실을 왔어도 '피켓을 들 수 있는 신분이 아닙니다.'라는 대답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작년 여름에 커밍아웃을 하고 한동안 그저 물 흘러가는대로 두면 괜찮겠구나 하면서 안심했지만, 서서히 제 안에 감춰진 욕망들이 하나 둘 구체화되가면서 저는 제 이상, 현실, 욕망 등을 가르는 장벽과 괴리가 점점 커져가는구나만 느끼고 있습니다. 오히려 커밍아웃을 하기 전보다 훨씬 애매해진(친구 앞에서는 게이, 가족과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앞으로 결혼을 준비하는 청년) 상태때문에 맘 한켠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최근에 남자 소개시켜 줄까?말하는 몇몇 친구들의 말을 들으면서 잠시 혹하지만 이내 신앙과의 충돌, 아웃팅 같은 불안때문에...)과 점점 욕망 앞에 무기력해져만 가는 제 자신만 발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신앙이 제 성적정체성과 충돌해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기독교신앙이 꼭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적어도 제가 속한 공동체에서 신앙을 한다는 것은 저를 구성하는 이 성적정체성에 대한 포기를 요구받습니다. 개개인이 가지는 이 성적정체성 자체를 두고 확고하게 교리적 단죄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그 성적정체성이 타락하고 약해진 인간본성의 단면이며, 그러한 행위가 '음욕'의 죄악에 포함되는 것을 제 교회는 확고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이 언젠가 바뀔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실제로 진보적 성공회나 장로회 성직자들께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들을 통해 기독교신앙과 제 자신이 양립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는 종교라는 특성때문에 바뀌는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리고 생각해볼 기회가 인류역사로 보면 그렇게 길지 않으니,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저는..제 정체성이 기독교 공동체 간의 불화와 논쟁의 씨앗이 되고, 한편으로는 '성은 생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라는 반박하기 힘든 윤리적 선언에 제 정체성이 묶여 있다는 점에서 적어도 교회에서는 차마 제 정체성이 받아들여질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더욱 힘든 것은, 저는 제가 속한 교회를 사랑하고 제 이십대에서 많은 부분을 희생하면서, 저와 뗄 수 없는 제 일부라 여기며 이 교회에 많은 것들을 바쳤고, 교회 역시 제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법과 이웃을 사랑하는 법, 완덕으로 도달하는 길 등을 배우면서 저는 이 교회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그들의 신앙을 돌보고 싶은 자리에 오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제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할 뿐 아니라, 그 기반이 되는 교회의 가르침인 '생명과 분리된 모든 성적 행위와 욕망은 단죄받아야한다'는 것을 가르쳐야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두가지 점때문에 저는 제 교회가 가르치고 바라보는 저같은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나약한 인간 본성때문에 고통받는 영혼' 그 이상의 시선을 영원히 넘지 못할 것이고, 제 욕망은 단죄받아야 할 것으로 계속 가르칠 것이라는 생각데에 다다랐습니다. 윤리적 선언과 교회의 권위로 결정된 이 가르침이 영원불변할 것이라는 거지요...그나마 저희 교회가 개인적으로 그런 성향을 잘 다스리도록 노력하고 각자가 지니는 십자가의 일부로 투쟁하기를 권면하면서 가급적 드러내지 않기를 권고하는게 다행일까요?(실제로, 그런 상태에 있는 것 자체를 죄인이다라고 가르치지는 않으니까요...)
최근에 축제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저는 이제 이 외줄타기가 점점 힘이 들었고, 결국 그 외줄타기를 끝내려고 합니다. 어떤 것도 제게서 떼기 힘든 것들인데 그 두가지가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공동체를 바꾸는건 어떤가하는 분도 계셨지만 20대에 많은 댓가를 치루면서 선택한 신앙이고 단지 제 정체성에 맞춰서 선택한 신앙이 아니었기 때문에 바꿀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제게 어떤 열매를 가져왔나를 보고 하나를 선택하려합니다. 근데...그게 너무 쉽지 않고, 역시나 제 일부를 도려내는 거니 참 아프네요. 어쩌면, 제 정체성도 인정받아왔다면 제가 생각했던 나쁜 열매를 과거에 맺었을까요? 사실 저만 아프고, 저만 다치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일단 하나를 선택하면, 저는 그 가르침에 온전히 복종해야하고, 저도 그렇게 제 자신을 부정했듯, 여기계신 분들 그리고 다양한 감정을 가진 분들을 '잘못되었지만 불쌍히 여겨야한다'고 가르쳐야겠지요...
감정의 홍수가 폭발했습니다. 맘 속으로 가진 고민, 고뇌 그리고 약간의 슬픔때문에 글이 두서가 없을 수 있을테고, 어쩌면 심기가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저도 위로 받고 싶고 약한 제 모습 그리고 제 주변환경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혹여나,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여러분들께서 바라지 않는 그런 모습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횡설수설한 이 글을 이제 그만 줄이려고 합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 다들 잘 챙기세요 ^^
<A Jihad for Love>(2007)라는 영화 추천드립니다...
https://youtu.be/78jUBRio3So
무엇보다 그런 고민을 겪는 분이 아라님 혼자는 결코 아니라는 사실만 꼭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