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내게 PL임을 커밍아웃한 바람불던 밤도
그리고 곧바로 내가 양성판정을 받은 햇살 따스했던 오후도
그래도 우리는 둘이었기에 차라리 잘된 거라며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다
우리가 함께 한 10개월이라는 시간이 나를 그렇게 위로하고 있었다
무언가 마침표도 서로 남기지 못한 채로 헤어져
어제와 같은 세상 속에서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는 오늘,
이소라가 부르는 ‘바람이 분다’가 그렇게 귓가를 스쳐 가슴에서 맴돌고 있다
너에게도 들릴까?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더라
벼랑 끝에서 한 발 내딛으려던 나를 잡아주었던 친구들
그리고 너와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
그들 덕분에 오롯이 나의 나만의 것이었던 가짐은
어느덧 ‘지나고 나니 별 것도 아니게 되어버린’ 또 하나의 우리의 가짐으로 변해 있었다
풀어도 풀어도 풀리지 않던 고민들은
풀리지 않은 실타래 채 봄바람에 날리워 보내고
누가 들을새라 눌러 담아왔던 말들은
종로 어느 골목에서의 시끌벅쩍한 웃음소리에 띄워 보내고
어느새 요즘 자꾸 되내이는 시구의 마침표를 찍는 새끼 손가락에 힘을 싣는다
그래 더 이상의 쓸 데 없는 방황은 하지 않기 위해 이제 마침표를 찍어야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로트레아몽 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 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 중 일곱번째 노트> by 남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