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은 친구사이 자유게시판에 올라 온 석란꽃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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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PL 모임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더불어 나를 돌아보는 기회를 얻은 듯도 싶다.
예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HIV에 대한 생각,
"나는 아니겠지"
"뭐 걸리면 걸리는 거지"
"조심하는데 그런 게 왜 걸려"
지금 돌이켜보면, 처음 내가 HIV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땐 내 몸에서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초기 감기 증상같은 조짐이 보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게 나의 오류였고....
바이러스가 내 몸을 잠식하고 결핵이나 폐렴처럼 앓지 않아도 될 병을 접한 다음에야 내 병명을 듣게 됐던 기억이 난다.
게이임을 인정하면서부터 '나를 사랑하자, 나를 아끼자.‘등 타인들에게 떳떳함을 전하고 싶어하며, 나와 같은 성소수자들이 함께 하고 있음에 더 많은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려 했었는데,
입으로 떠들었던 ’나를 사랑하자. 나를 아끼자‘ 라고 했던건 그냥 허울뿐인 입바른 소리였던 것 같다.
사실 바이러스를 처음 접했을 때는 그 어떤 생각도 그 어떤 의문도 가지지 못한체 그냥 몇 달의 시간을 다른 병에 대한 치료를 하며 흘러 보냈을 뿐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난 후 내게 찾아온 갖가지 생각들...
그 중에서도 가장 스스로를 답답하게 만들었던 건 그 어떤 누구에게도 내가 가진 것에 대해 말할 수 없었던 답답함이었다.
어두워 보이지 않기 위해 더 오버해서 밝은 척 했던 모순적인 행동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땐 주위에 많은 사람과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참 즐겁지 않은 생활을 했던 듯 싶다. 내 성격적인 탓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
지금도 마찬가지다.
분명 이제는 밖으로 나가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나 아님 또 다른 PL군에게, 어떤 이는,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해 주는 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분들과,
"지금처럼 지내면 되지 왜 굳이 밝히려고 하는가"라고 불편해하시는 분들 등.
각각의 다른 생각과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있으리라 조심스럽게 생각은 해보지만
그리고 아직도 내 스스로에게 "잘한 일인가~!"라고 물음을 던질 때도 많지만.
최종적인 답은 아닐지라도 스스로 흔들릴 때마다 용기내어 다시 다짐하게 되는 것은,
"이렇게라도 말하고 가진 것을 꺼내 놓아야 지금은 PL군에 대해 말하는 게 불편할지 모르는 다른 사람들도 (PL들을) 자주 접하게 될 것이고, 언젠가는 무던하게 말하고 무던하게 행동하는 마음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내 몸에 난 상처를 가린다고 하여 자연 치유 되는 게 아니니, 그 상처를 끄집어내어 곪아 있으면 터트리고, 치료가 가능하다면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열자"
라는 것이다.
PL 모임후 두서 없이 글을 적긴 했지만 아직도 이런 상태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거라 생각한다.
적은 수의 가진 자들이 그 가진 걸 풀어헤치기에는 아직 용기가 크진 않지만, 그 적은 용기로나마 이렇게 시작되어 한결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고 그 어떤 누구보다 큰 위로가 되는 듯 하여
친구사이와 용기 내주신 ‘가진사람들’에게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