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들어갈까도 생각했지만 그러면 뭔가 꼭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고 온 것 같은 기분이 계속 들 것 같아서
서툴게 글을 남깁니다.
장교로 가기 때문에 시기상 입대 인사같지만
사실 이 글을 졸업 인사로 남기려구요.
스무살 재수 끝나고
게이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생각하면서 친구사이 정기총회 나갔던 게 벌써 7년전 일이네요.
생애 최초로 게이를 만난 그날부터 지금까지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형들한테 받은 게 참 많죠.
부모님이랑 떨어져서 서울살이 하면서 힘들었던 것들을 형들이 많이 채워줬던 거 같아요.
물질적인 것도, 정신적인 것도요.
고마우신 분들 나열하는 게, 분명 내일 이불을 걷어 차겠지만, 이제 어차피 두 달 동안은 확인 못할테니 그래도 용기내서 쓸게요.
처음 나왔을 때부터 앞에서 뒤에서 저를 도와준 재우형.
형은 항상 어려운 사람이지만 그래도 형한테 고마운 마음은 항상 있답니다. 진짜로요. 진짜.
일 년 동안 저를 거둬 먹여준 차돌형.
지금 생각하면 여러모로 진짜 스트레스였을 거 같은데 그래도 덕분에 공부하는 그 해 잘 버텨서 이만큼 왔어요.
맨날 밤새 술 먹어도 되게 해준 동하형.
"형, 맨날 이렇게 술 먹으면 나중에 뭐가, 남아요?". "지금 안마시면 마실 수가 없어."
그때는 형 덕분에 술 굶은 걱정은 없었는데. 입학할 때 형이 사준 책 세권 아직 다 못 읽었는데 졸업이네요.
그 옆에서 같이 마셔준 라이카형.
지난 학기에 신세 많았어요. 형 덕분에 알게 된 작가가 많아요. 형의 그 소심함과 세심함을 넘나드는 마음 씀씀이를 배우고 싶었던 적도.
마삼트리오 기즈베형.
지금이야 덜하지만 예전에는 술 한잔 하면서 소소한 얘기하고 싶을 때 형이 항상 있어줬던 거 같아요. 그때는 참 얘기도 많이 했는데.
예전에는 예뻤는데 의대 다니면서 순대랑 맥주 많이 먹어 이렇게 됐다는 재경이형.
형의 일하는 걸 보면 어떻게 저렇게 진심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나 싶어서 놀라울 때가 많아요. 드러나지 않아도 온갖 신경을 다 써주는 형.
이대 동문 갈라형.
형 덕분에 정말 많이 웃었었는데. 신촌에서 마셨던 홍차 맛있었는데. 좋은 말도 많이 해줬었는데. 자주 봐요.
이쁜이 기호형.
형이 저한테 밥 안사주셨으면 아마 이 글도 안썼을지도 몰라요. 그 때 했던 얘기들 고맙습니다.
그리고 티나형.
형 맘에 들 만큼은 아니겠지만 저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죠?
아참 걸레들 빠졌구나.
걸레형아들 미모랑 연봉 유지 잘하고 있어야 돼. 나 제대할 때까지. 알겠지?
분명히 빠진 분들이 있을 거 같은데, 죄송해요. 늘 쓰고 나면 생각나는지라.
사실 고맙고 생각나는 사람들 훨씬 더 많지만 저의 입학과 졸업을 같이 해주신 분들 위주로 썼습니다.
뭐 이런 글 하나로 어떤 보답이 된다기 보다 그냥 어떤 계기를 핑계삼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덕분에 무사히 잘 졸업하게 됐다구요.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 때 친구사이에 나오지 않았으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살고 있을까.
학교 성소수자 동아리할 때도 친구사이에서 보고 배운 것들이 없었으면 아마 그렇게 많이 뭘 할 엄두도 못냈을거에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저는 이제 조용한 곳으로 3개월 떠납니다.
잘 하고 돌아오겠습니다.
남은 분들도 화이팅!
음... 월요일 아침부터 급숙연해지네.ㅎ
졸업 축하해.
학교 들어가기 전엔 몇년 간 애먹이더니 졸업은 소리소문없이 후다닥 하는듯!!
3개월 간 건강하게 잘 다녀오렴.
다른 건 다 나쁘겠지만 최소한 밥은 뭘 먹을지, 어디서 누구랑 잘 지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
아참. 졸업 축하행~
졸업 축하하고 그간 무언가 고민하고 만드는 과정은 너무 즐거웠어. 학생이서가 아니라 언제나 꿈 많이 꾸고 하고싶은 일 많은 기윤이가 되길.
몸 건강히 잘 다녀와~
졸업 축하해요 형. 건강히 다녀와요..!
입대 하루 전의 밤이라는 게, 참 설명하기 힘든 강한 감정이 드는 시간일 것 같아. 그런데 지나고 보면 유독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밤이기도 한 것 같고. 입대 하고 난 후에 오는 경험들이 훨씬 강렬해서 입대 전 날의 기억이 쉽게 옅어지나. 암튼 그래서 뭐든 남겨두면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몸이 아플 때랑, 부조리하거나 너무 유치한 것들을 모른척 해야할 때 참 괴로웠는데.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지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