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의 저는 유달리 치마를 고집했고, 건넛방 고모의 화장대를 탐냈고 그리고 시끌벅적한 운동장 보다는 조용한 교실이 좋은, 사회가 정해놓은 성역할의 규범에서 벗어난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갈수록 내 마음속엔 나는 왜? 로 시작되는 무수한 의문들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왜? 다른 남자 아이들처럼 축구를 잘 하지 못할까, 나는 왜? 좀 더 남자다운 말투를 지니지 못할까. 나는 왜? 여자들에게 호감이 생기지 않는 걸까?
긴 고민의 시간 끝에 비로소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 엄습해온 불안과 공포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이후 오랜 시간을 맞지 않은 옷을 걸친 기분으로 각종 차별과 혐오들을 감내하고 지내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타인들의 조롱과 혐오가 아닌 정작 내안에서 나를 향한 동성애 혐오와 싸우는 일이 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은 타인과도 끊임없는 투쟁을 해야 하지만 또 내면의 자아와 힘겨운 투쟁을 해나가야 하는 이중고를 겪습니다. 이러한 긴 투쟁과 물음의 끝에서 비로소 저는 자신을 긍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꼬박 28년 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제가 가장 사랑하는 두 분 바로 부모님께 그 동안 숨겨왔던 저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두 분께 지금 제 주변에는 너무도 좋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당부와 함께 앞으로의 제 인생은 오랜 시간을 홀로 이러한 시간들 속에서 힘겹게 싸우고 있는 많은 사람을 위해 살아가고 싶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더 이상 나는 왜? 가 아닌 내가 왜? 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왜? 이런 차별을 당해야 하는지, 내가 왜? 당신들에게 이런 혐오와 조롱을 당해야 하는지, 또 내가 왜? 처음부터 있었던 내 존재를 굳이 나서서 설명해야 하는지를 타인의 시선이 아닌 온전히 나 자신의 눈으로 그들에게 되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자신을, 또 서로를 사랑하고 얼마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그들에게 끊임없이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제가 지금 이 발언을 하는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는 그릇된 신념으로 가득 한 자들의 비논리적이고 터무니없는 목소리가 사회 이곳저곳에서 퍼지고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고 혐오할 권리는 이 땅,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다만 모두가 행복해질 권리만이 있을 뿐입니다.
서로의 존재를 더욱 존엄하게 여기는 것,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모두가 평등해질 권리를 누리는 것. 그래서 우리를 더욱 사람답게 해주는 세상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더욱 행복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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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으니 이게 뭔가. 싶네요.
뒷북이지만 놀랄만큼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다들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제 기사들과 사진들을 찾아보니 다시 마음이 뭉클, 해져 오네요.
무튼, 행복한 밤 되세요 :^)
아, 너무나 절절하면서 근사한 글이네요...
진심의 힘, 진실의 힘이란 역시 대단하군요.
특히 '처음부터 있었던 내 존재를
굳이 나서서 설명해야 하는지를
타인의 시선이 아닌
온전히 나 자신의 눈으로
그들에게 되물어야 할 것입니다'
명문이예요 ㅠㅁㅠb
저도 늘 내 자신을 세상에 애써 설명해야만 된다는,
그러면서도 이해는커녕 오해와 조소만 받기 쉽다는 데
많이 힘들어하고 절망했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이 세상의 잘못이었죠.
꽃이란 우열 없이 모두 그 자체로서 아릅답고 소중하고,
장미꽃이 억지로 벚꽃이 될 수도 돼서도 안 되듯,
사람도 각자 본모습대로 사는 게 가장 자연스럽기 때문이죠.
중요한 건 서로를 똑같이 존엄한 존재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지
인위적 잣대로 재단하고 배제하는 게 아니죠.
수 세기 이어진 계급 차별, 여성 차별, 인종 차별 등이
수 많은 사람의 부단한 노력과 싸움으로 잘못된 것으로 인식됐듯,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도 점차 그릇된 '전통'이었다는 게 판명나고 있죠.
그러니 우리, 더더욱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고,
너그러우면서도 확고하게 뭉쳐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더욱 행복하고 사랑해야 되구요.
무지개 행동 행사에 참여하신 모든 분,
그리고 앞으로 있을 숱한 노력에 힘을 실어주실 모둔 분,
하나같이 소중하고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정말로...! *^o^*
낙타찡 +_+
그래요. 우리는 행복해져야해요. 그래서 해야할 일이 많아요.
벅차게 살아갈 낙타를 위해! 콩그레츄레이션!
부모님께 커밍아웃과 그이후에도 차근차근 잘 해나가는 형 모습보며 많이 배워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