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키스장면이 개혁개방 신호탄
2008-12-18 오후 12:50:08 게재
79년 이후 ‘성적 호기심’ 폭발 … 동성애 논란 지속
18일은 중국이 개혁개방을 천명한 중국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1978년12월18~22일)가 열린 지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은 정치·경제적 분야를 중심으로 시행돼 왔지만 개혁개방이 중국사회에 미친 영향은 실로 막대한 것이었다. 지난 30년 동안 일어난 사회·문화적 변화를 통해 중국사회의 변천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성문화는 한 사회의 개방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중국의 성문화는 개혁개방 이후 30년 동안 혁명적인 변화를 겪어오며 중국사회의 개방을 주도해 왔다.
◆키스 사진에 사회가 발칵 = 1979년6월18일 오전 영화잡지 ‘대중전영’ 린샨 주필 책상에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멀리 신장으로부터 온 이 편지는 ‘대중전영’이 실은 사진 한 장에 크게 분노하는 내용이었다.
“당신 네 잡지사가 편집 출판한 1979년 5호에 실린 사진을 보고 매우 분노했다. 마오 주석이 만든 사회주의국가에서 문화대혁명의 세례를 받은 후에도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당신들은 자본가계급의 잡지와 다를 바 없는 정도로 타락한 것이다. 정말 유감이다.”
‘대중전영’ 1979년 5호 뒤표지에 실린 사진은 1976년작 영국영화 ‘슬리퍼 앤 더 로즈 (The Slipper And The Rose)’에 등장하는 남녀 주인공의 키스장면이었다.
당시 ‘대중전영’ 부주필이었던 탕자런은 “개혁개방 이후 공개 발간한 간행물 중 처음으로 키스 사진을 실었다”며 “뒤표지에 이 사진을 싣기로 한 것은 큰 결심을 필요로 했다”고 말했다.
신장에서 온 편지를 이어 1만1200여 통의 편지가 ‘대중전영’ 편집부에 도착했다. 2/3는 지지하는 내용, 1/3은 반대하는 내용의 편지였다. 성문제를 놓고 치열한 사회적 대토론이 벌어졌던 것이다.
‘경화시보’는 “이 사건은 학계에서 개혁개방 이후 성혁명의 첫 사례로 끊임없이 인용되고 있다”고 12일 전했다.
저명한 사회학자인 중국인민대학 판수이밍 교수는 “1978년 전의 중국은 ‘무성(無性)사회’였지만 개혁개방에 따라 일어난 ‘성혁명’은 ‘무성사회’를 빠르게 마감시켰다”고 밝혔다. 또 “당시 중국사회는 성과 관련된 어떤 화제도 전사회적인 주목을 받았다”며 “키스 사진 사건은 시작이었을 뿐이다”고 말했다.
키스 사진 사건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인 1979년10월1일에는 한 폭의 그림이 중국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당시 막 준공된 베이징수도공항에 전시된 대형화 ‘발수제-생명의 예찬’이었다. 서로에게 물을 뿌리는 윈난성 소수민족 태족의 고유명절인 ‘발수제’를 소재로 한 이 그림에는 3명의 여인이 나체로 등장했다.
◆누드에 꽂힌 중국인들 = 수도공항이 개장 2개월 만에 30만 명의 방문객을 기록하는 데 이 그림이 큰 몫을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베이징 시민들 사이에서는 나체가 등장한 그림에 대한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논란을 우려한 공항 측이 3개월 만에 그림에 반투명한 천을 두름으로써 그림의 매력은 반감됐다.
성적 호기심을 만족시킬 대상이 많지 않았던 당시 누드가 포함된 회화, 영화, 전시회 등은 큰 인기를 끌었다. 1988년 베이징에서 열린 ‘유화인체예술대전’은 여성 누드에 대한 중국사회의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전시회였다. 1988년 12월22일 중국미술관에서 열린 ‘유화인체예술대전’에는 중국 최고의 미술대학인 중앙미술학원 출신 화가 28명의 작품 136개가 전시됐다. 작품 대부분은 여성 누드가 소재였다.
이 전시회를 계획했던 중앙미술학원 거펑런 교수는 “전시회 개막 후 매일같이 중국미술관 서편 매표창구에는 표를 사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1km 가까이 줄을 서있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18일 만에 관람객 22만 명이 다녀갔지만 이를 미술에 대한 관심으로 해석하는 시각은 거의 없었다. 한 외국인은 영자지 ‘차이나데일리’ 투고문에서 “다른 나라 예술사상 이런 사례는 찾아 볼 수 없다”며 “원인은 매우 간단하다. ‘예술’에 중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누드’에 중점이 있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성적 표현이 적나라한 소설들도 성적 호기심과 배척의 대상이 됐다. 1982년5월 출판된 테네시 윌리엄스 작 ‘장미문신’은 하룻밤 사이에 중국 전역의 모든 크고 작은 서점에서 사라졌다. 음란한 내용이 너무 많다는 당국의 지적 때문이었다. ‘장미문신’은 개혁개방 후 성적 표현 때문에 판매가 금지된 첫 작품이 됐다. 소설을 출판했던 옌벤인민출판사는 60만 위안이라는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금액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1988년 전까지 중국에는 60개의 도서가 음란하다는 이유 때문에 금서로 지정돼 있었다. ‘채털리부인의 사랑’도 음란금서목록에 올라 있었다. 하지만 후난인민출판사는 ‘채털리부인의 사랑’이 금서목록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경제적 어려움을 벗어나고자 출판을 강행했고 약 30만 권이 예약판매됐다. 이 때문에 후난성 출판국 국장, 부국장과 후난인민출판사 총편집인이 당국에 의해 큰 처벌을 받았다. ‘채털리부인의 사랑’은 2004년 합법적으로 출판됐지만 5만 권이 팔리는 데 그쳤다.
◆동성애입법 매년 제출 = 예술작품의 성적 표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개혁개방 직후 폭발했던 것과는 달리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논란은 개혁개방에 착수하고도 한동안 시간이 흐른 후에야 일기 시작했다.
1991년 안후이성 차오후현 공안당국은 동거 중인 여성동성애 커플을 검거했다. 당시까지 중국에서는 동성애를 ‘불량행위’로 단정해 법적 처벌까지 단행해 왔다. 하지만 안후이성 공안청은 91년 당시 “동성애가 무엇인지, 동성애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현재 중국 법률에 명확한 규정이 없는 상황 하에서 동성애는 ‘불량행위’로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고 밝혔고 여성동성애 커플은 석방됐다. 안후이 공안청의 입장은 동성애에 대한 중국 당국의 첫 법률적 해석으로 기록되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동성결혼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여성 성사회학자인 리인허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3월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정치협상회의, 중국의 대의제기관)가 열리는 때에 각종 루트를 통해 동성결혼합법화를 위한 입법안을 제출하고 있다.
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
원문은 http://www.naeil.com/News/politics/ViewNews.asp?nnum=442823&sid=E&tid=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