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추천신고 조항 삭제로 인해 갈 곳 잃은 제12회 인권영화제
인권영화제가 갈 곳을 잃었다. 올해로 12회를 맞는 인권영화제가 상영관을 찾지 못해 영화제 날짜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인권영화제의 김일숙씨는 “서울아트시네마, 인디스페이스 등에 대관을 신청했으나 영화진흥위원회의 추천이 없다며 거부당했다”고 말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추천이란 상영등급분류에 대한 면제 추천. 현재 국내에서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선 모든 영화들이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에 의해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상영등급분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를 비롯해 국내에서 열리는 대다수의 영화제들은 문화다양성 확보의 차원으로 영진위의 상영등급분류 면제 추천을 받아 등급심의 없이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서울환경영화제의 황혜림 프로그래머는 “거의 형식적인 차원에 가깝지만 영화제쪽에서 추천 신청을 하고 영화를 상영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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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권영화제는 경우가 다르다. 인권영화제는 1회부터 등급심의 면제를 위해 추천을 받는 건 표현의 자유를 침범하는 것이라 판단해 상영등급분류 면제에 대한 추천을 신청하지 않았다. 6회까지는 대학교의 강의실을 찾아다니며 상영했고, 7회부터 5년 동안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제를 열었다. 그렇다면 왜 올해만 유독 추천이 없다는 이유로 상영장을 못 찾고 있는 걸까. 영화인회의의 최승우 사무차장은 “사실 지난 5년간도 서울아트시네마쪽에서 사후추천신고를 해왔다”고 말했다. 사후추천신고는 영진위 규정집에 있는 조항으로 영화제 기간 중이나 이후에도 추천을 신청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2007년 사후추천신고 조항이 영진위 규정집에서 삭제됐다. 따라서 이전엔 영진위의 추천이 없어도 사후추천신고로 불법의 소지가 될 수 있는 부분을 극장 쪽에서 방지할 수 있었다면 올해부턴 그게 불가능해진 셈이다. 이에 인권영화제는 3월27일 인권운동사랑방에서 간담회를 갖고 ‘영비법 개정을 위한 표현의 자유확보 공동행동’을 제안했다. 이번 사건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영비법의 상영등급분류 조항 때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자리엔 퀴어영화제, 환경영화제, 이주노동자영화제, 한국독립영화협회, 영화인회의 등의 단체에서 참석했고 영비법 개정을 논의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영진위의 상영등급분류 면제 조항은 영진위의 입장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영비법 내에 상영등급분류 면제 조항을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꾸려진 ‘영비법 개정을 위한 표현의 자유확보 공동행동 준비위원회’는 4월11일 워크숍을 갖고 이후 행동을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