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화장실을 차별이라 따져야 하나 | |
[매거진 Esc] ‘특별한’ 싱글들의 점심식사 - 연애에서 차별금지법까지 삼색 성소수자들의 유쾌한 수다 | |
김은형 기자 | |
# 신년 계획, 좀더 재밌게 살자구!
류청규 1월 말에 유엔 산하기관으로 1년 동안 인턴십을 가요. 밀레니엄 프로젝트라고, 유엔이 상정한 지구촌 미래예측 보고서 작업인데 매년 주제가 좀 바뀌어요. 김조광수 가서 미국 사람 하나 잡아서 꼭 정착해라. 돌아오지 말고. 사실 그 프로젝트 정식 명칭이 친구사이(게이 인권단체) 회원방출프로젝트라고 말야(일동 폭소, 두 사람은 친구사이의 오랜 회원으로 친한 사이, 이후 두 시간 내내 티격태격 만담을 연발했다). 수수 센터에서 엘지비티큐(LGBTQ, 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렌스젠더퀴어)캠프를 준비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극저질 레즈비언 잡지를 만들자는 이야기를 한 친구랑 했어요. 에스엠도 넣고, 페티시도 넣고. 사실 레즈비언들도 성적 판타지가 다양한데 우리는 너무 고상하게 논다. 이런 문제의식이 있는 거죠.(웃음) 청규 레즈비언들이 게이들보다 성적으로 보수적인가요? 수수 아무래도 좀 그렇죠. 이를테면 커뮤니티에서 원나이트 같은 이야기 하면 반응이 냉담한 편이에요. 광수 게이들도 처음엔 그랬어요. 90년대 초반만 해도 우아한 게이들이 많았지. 수수 내부검열이 있는 거죠. 인생 짧은데 즐기기도 바빠 죽겠구만(웃음). 그래서 게이 사우나 이야기 들으면 좀 부럽기도 해요. (24시간 여성 전용 사우나 있지 않냐는 질문에) 거기는 가면 아줌마들이 등 밀어달라고 하고, 누가 더 탕에 오래 앉아 있나 버티기 내기하고 이런 곳이지. 루인 단체 입장에서 일단 정비를 할 필요가 있는 거 같아요. 발족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아직 정비가 안 돼서. 지금은 8명 정도가 정규적으로 활동하는 활동가 단체인데 트렌스젠더 아닌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트렌스젠더도 아니면서 왜 활동하냐는 이야기도 밖에서 나오곤 해요. 고민이죠. 청규 그런 것도 참 한국적인 상황인 것 같아. 외국에서는 게이나 레즈비언, 스트레이트(이성애자)들이 잘 모여서 놀기도 하고 일도 같이 하는데 우리는 그런 일이 드물잖아. 루인 개인적으로는 연분홍치마(성적소수문화환경 모임단체)에서 상반기에 에프티엠(FTM,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뀐 트렌스젠더) 다큐멘터리가 나오는 거 같이 활동할 생각이고 트랜스젠더를 주제로 석사논문도 써야 하는데, 그리고 어떻게 돈도 좀 벌고 싶어요. 광수 하여튼 늘 돈이 문제야. 나는 올해 커밍아웃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요. 전에
# 식성, 까다롭고도 오묘한…
청규 커밍아웃한 ‘정절 게이’였던 대학생 때(일동 폭소)는 ‘식성’이라는 말을 받아들이기 정말 힘들었어. 일반사회에서도 ‘따먹는다’이런 건 굉장히 폭력적이고 천박한 표현인데 그 말이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쓰이는 셈이라 불편했지. 그런데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취향에 대한 독특한 은어로 생각하면서 받아들이게 됐지. 레즈비언들도 그런 말 써요? 수수 아뇨. 그냥 맘에 든다, 좋아한다 이렇게 쓰죠. 우리는 순수, 사랑 이런.(웃음) 청규 어떻게 보면 캠피(통속적인) 전략인 건데 ‘끼스럽다’는 말도 그렇고. 사실 여성스러운 게이들이 많잖아요. 그게 이성애자 남자들 사이에 자주 놀림감이 되는데 우리는 역이용하는 거지. 여성스럽지 않더라도 여성스럽게 자신을 표현하면서 양분화된 성의 경계를 허물어내는 전략으로. 광수 그걸 못 받아들이는 친구들이 커뮤니티 안에도 꽤 있어요. 그래서 엄청 싸우고, 심지어 언니라는 표현을 두고 정치적 논쟁까지 벌어진 적이 있다니까. 그런데 아까 게이들 사우나 이야기했는데 레즈비언들은 바 말고 크루징(원나이트 스탠드를 위해 상대방을 찾는 행동) 할 만한 데가 없나요? 수수 전혀 없어요. 그냥 온라인 채팅 같은 걸 하거나 클럽에서 만나죠. 그러니까 5, 6년 굶은 사람도 많아.(웃음) 지난해 파리에 갔는데 마레 지구에 동성애자들이나 유태인이 많이 모이잖아요. 그런데 레즈비언 바는 2개밖에 없고 사람들도 별로 보이질 않더라구요. 그런데 루인은 바이(바이섹슈얼·양성애자)예요? 루인 아뇨, 레즈비언으로 나를 설명했는데 요새는 또 무성애자인 것 같아요. 연애 자체에 별 관심이 없기도 하고, 또 성적 지향성을 설명하기가 모호해요. 보통 트렌스젠더라고 하면서 그 안에 레즈비언, 게이, 이성애자로 나눠서 설명하기도 어렵고. 암튼 누군가를 사귄다면 말 그대로 식성, 채식주의자라는 게 일단 맞아야겠죠. 청규 나는 건장한 스타일이 좋더라. 홍요섭이나 지진희, 송일국, 김상경 이런 스타일? 아, 송일국은 그중 좀 어려 보여서 빼고 싶기도 해. 광수 송일국한테 전화왔다. 빼줘서 고맙다고.(일동 폭소) 청규 개인적 차원에서 식성에 따라 사귄다, 못 사귄다는 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끼순이(여성적인 게이)는 안 돼라는 건 우리 안의 호모포비아인 것 같아.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남성적 게이 외의 부류에 대해 더 폭력적이 되는 거지.
# 커밍아웃, 아흔아홉 번을 해도 한 번을 더 해야
청규 나는 대학 때부터 회사, 이제 가서 일할 데까지 다 커밍아웃했어요. 사실 처음 커밍아웃하고 친구사이 나올 때는 좀 무서웠지. 가면 하리수 언니 같은 사람만 있을 거 같고. 누나들한테는 대학교 때 커밍아웃하고 부모님한테는 지속적인 세뇌를 해서 암묵적 인정은 된 것 같아. 광수 그런데 이번에 가서 또 하실려고? 수수 아흔아홉 번을 해도 또 해야 하는 게 커밍아웃이야. 그야말로 평생 과업인 거죠. 광수 그리고 커밍아웃해도 식구들은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 이러잖아. 수수 ‘손자도 낳아 줄 거지?’ 이러면서. 저 게이라니까요. ‘그니까, 애만 낳으라고.’ 계속 이렇게 겉도는 거죠. 루인 제가 그래요. 가족과 직장만 빼고, 다 알아요. 예전에는 다 말하고 다녔는데 다 알려졌다고 생각해도 끝까지 모른 척하거나 진짜 모르거나 이런 사람들 때문에 너무 피곤해서 알면 알고, 말라면 말라는 거죠. 광수 난 블로그에 나는 게이다, 게이로 산다는 것, 잔뜩 써놨거든. 사촌 형이나 친지들이 블로그 잘 보고 있다 그래요. 그래서 알겠구나 했는데 만나면 전혀 모르는 거야. 블로그 봤다면서? 이러면 어, 그게 니 이야기였어? 깜짝 놀라는 거지. 루인 한편으로 커밍아웃하고 운동하고 그런 것 자체를 싫어하는 소수자들도 있어요. 조용히 잘 살 수 있는데 너희들 때문에 자꾸 드러난다는 거죠. 광수 나는 <디 워> 논란 때 나 게이지만, 너 창피하다 이런 이야기도 들었잖아.(웃음) 괜히 나와 가지고는 성 정체성을 말하는 바람에 동성애 진영까지 다 욕먹는다고.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들을 안 좋게 바라보는 시각이 있긴 하니까, 조용히 감추며 살면 좋은데 뭐 하러 분란을 일으키냐는 거죠. 청규 (목소리 잔뜩 깔며 굵은 목소리로) 계산서 주세요, 이렇게 목소리를 낮추고 말야. 광수 엄마가 시키는 대로 나가서 선보고. 우리 주변에도 얼마나 많아. <후회하지 않아>에도 나오잖아. 게이의 엄마가 ‘섹슈얼리티를 모를 만큼 무식하지 않아’, 이러면서 결혼하라고. 청규 그런데 모든 소수자들이 다 자발적으로 커밍아웃하고 편견과 싸울 만큼 강하지는 않으니까 유부남 게이, 죽어 이년아!(웃음) 이럴 수는 없다고. 오히려 완고한 틀 안에 사는 이 사람들도 피해자잖아. 수수 난 운이 좋은 게, 엄마가 진짜 개방적이거든요. 커플티도 사주고. 광수, 창규 (동시에) 꺄악! 멋지다. 최고, 최고! 수수 엄마는 이제 무생물까지 사랑하라고 하셔서 내가 감당이 안 될 정도야. 그만큼 리버럴리스트인데 아빠는 또 관료주의자시거든요. 그래서 여동생들한테는 지지를 받는데 아빠와 남동생하고는 등을 졌죠. 한 번은 독실한 기독교인인 남동생이 목사님을 집에 모셔왔어. 누나가 지옥갈까 봐.(웃음) 청규 전에 이스라엘 총리 집안인가? 화제가 된 게 아빠는 완전 보수파, 엄마는 개혁파, 딸은 레즈비언에 극좌파, 이런 집안이 나왔어요. 성향은 다르지만 가족생활은 문제없다고 나왔는데 재밌더라구. 광수 서로의 영역만 존중하면 논쟁을 하되, 미워하지 않을 수는 있잖아. 아니 약간은 밉긴 하겠지만 강요만 안 하면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 100명의 마을에는 100개의 성정체성이
루인 하리수가 트렌스젠더 커뮤니티 안에서도 딜레마예요. 특히 10대들은 하리수를 보면서 그래, 나 저거야 이렇게 쉽게 커밍아웃 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트랜스젠더라면 수술도 다 하고, 다 예쁘고, 이성애자라는 양가적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청규 하리수가 자신을 스트레이트라고 말하면서 이미지를 만들어나갔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더 스테레오 타입화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루인 만약 하리수가 자신을 부치(남성 역할의 레즈비언)라고 소개했거나 그런 이미지로 나왔다면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했겠죠. 남자친구나, 결혼 등을 끊임없이 이슈화시키면서 받아들여진 측면도 크죠. 수수 요새도 성소수자 인권 강연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이 게이와 트랜스젠더를 어떻게 구분하냐라는 거래요. 그래도 구분은 그렇게 하고 싶은 욕구가 있나 봐. 청규 내 생각에 개인의 성 정체성은 인구 수만큼 다양한 거 같아요. 이성애자들 사이에서도 미묘한 차이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억지로 틀에 끼워 맞추려고 하면서 폭력이 생기는 거죠. 루인 요새 차별금지법안과 관련한 반차별 공동행동에서 트랜스젠더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도록 애를 쓰고 있는 게 의미는 있는데 법이나 제도가 생활에서 부딪히는 공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하는 고민도 들어요. 이를테면 화장실을 성별 이분법으로 나눴을 때 트랜스젠더들은 난감한데 그걸 차별이라고 문제제기하는 게 가능할까. 성 정체성을 아무리 멋있게 정의해도 여전히 화장실 문제가 난처하다면 그건 뭘까. 수수 화장실이 남녀에서 장애인 화장실까지 구분돼 온 역사를 보면 성에도 아주 다양한 요소가 개입된다는 게 드러난 건데 법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런 이야기들이 충분히 나와야 할 거 같아요. 그런 점에서 차별금지법은 좋은 기폭제가 된 거 같아. 성소수자들이 다양한 상상력과 네트워크로 힘든 5년을 즐겁게 보내라는 신의 계시?(웃음) 광수 이번 공동행동을 계기로 게이나 레즈비언 사이에 전에 있었던 약간의 반목이나 섞이기 힘든 감정들이 많이 사라진 거 같아요. 레즈비언들이 열심히 하는 거 보면서 놀기만 하는 게이도 반성도 하고(웃음), 그래서 차별금지법을 화두로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같이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아, 물론 연애는 연애대로 계속 열심히 해야지.
정리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
기사등록 : 2008-01-16 오후 09:15:06 기사수정 : 2008-01-16 오후 09:38:47 |
번호 | 제목 | 날짜 | 조회 수 |
---|---|---|---|
681 | [여성주의저널 일다] 교회개혁, 동성애 차별도 시정하자 | 2008-02-19 | 685 |
680 | [쿠키 뉴스] “동성애자 예수” 그린 연극 시드니 공연 파문 | 2008-02-12 | 948 |
679 | [여성주의저널 일다] 감동이 있는 스무살 | 2008-02-04 | 905 |
678 | [연합뉴스] 노회찬, 차별금지법 제정안 발의 | 2008-02-03 | 839 |
677 | [데일리서프라이즈] HIV감염인 증가율 지난해 사상 첫 감소 | 2008-01-29 | 793 |
676 | [한겨레] "인권 빙하기 막자" 혹한속 노숙 농성 | 2008-01-26 | 663 |
675 | [프레시안]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가?" | 2008-01-24 | 949 |
674 | [이데일리] 이시연 "수술 전 삶 지옥같아 여러번 자살 기도" | 2008-01-23 | 1068 |
» | [한겨레] 남녀 화장실을 차별이라 따져야 하나 +5 | 2008-01-17 | 930 |
672 | [씨네21] 김조광수 대표 영화연출에 도전. +2 | 2008-01-14 | 931 |
671 | [프레시안] "운동과 대중 사이 거대한 벽, 뚫어야 산다" | 2008-01-10 | 788 |
670 | [inews24] 차별없는 '차별금지법' 만들어야…시민단체 공청회 | 2008-01-09 | 792 |
669 | [경향신문]‘시네마천국’ 속으로…내달 3일까지 시네마테크 영화제 | 2008-01-09 | 901 |
668 | [유성문의 길]슬픈 이반-‘Gayful Sunday’ | 2007-12-22 | 1241 |
667 | [한겨레] 커밍아웃 | 2007-12-22 | 822 |
666 | [한겨레] 우리 존재부터 인정부터 해달라” 말조차 꺼리는대선판 ‘쓴웃음’ | 2007-12-18 | 968 |
665 | [한겨레] ‘커밍아웃’ 동성애자, 첫 공직선거 출마 선언 | 2007-12-13 | 962 |
664 | [주간동아]게이 두 남자, 김연아를 웃기다 +1 | 2007-12-12 | 1480 |
663 | [한겨레21] 자장면이 짬뽕 차별하던가 | 2007-12-11 | 1000 |
662 | [경향신문] 차별금지법 무관심 유감 | 2007-11-23 | 9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