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독차와 게이 퍼레이드
[매거진 Esc] 최범석의 시선 ⑨
» 뉴욕 여행에서 만난 게이·레즈비언 퍼레이드 / 제너럴 아이디어 제공
휴가를 어디로 갈까 일찌감치 고민을 하다가 이때쯤 뉴욕에 재미있는 행사가 많고 세일도 한다는 정보에 바로 비행기를 예약하고 미국으로 날아갔다.
지난해 이맘때에도 뉴욕에 있었는데 마침 그때 봤던 게이 퍼레이드를 다시 볼 수 있었다. 맨해튼 업타운에서 다운타운까지 게이들이 자신들이 꾸민 차에 올라타거나 화려하게 치장하고는 거리를 활보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찍으러 다니고 게이들은 사진에 찍히려고 포즈를 취했다.
한 독일 유학생 출신의 고백
게이 퍼레이드를 보고 있으려니 옛날 소독차가 지나가면 그 차에서 뿜어져 나오던 흰 연기를 쫓아다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그 시절의 나처럼 그 행렬을 계속 따라다녔다. 특이하고 패셔너블한 복장의 사람들이 눈을 즐겁게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뉴욕에서 처음 게이 퍼레이드를 봤을 때 올해보다 더 신선했다. 처음이라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게이 퍼레이드 전에 레즈비언 파티가 열렸기 때문이다. 다양한 인종의 수많은 레즈비언들이 공연에 모여 춤을 추고 자연스럽게 키스를 나누는 모습이 나에게도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게이 퍼레이드에 비하면 레즈비언 파티는 초라할 만큼 규모도 작았지만 누구 하나 다른 사람들의 눈을 신경쓰지 않고 자유롭게 즐기는 것 같아 보였다.
그때 내가 알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독일 유학생으로 그곳에서 이제 교수가 되는 그는 누가 봐도 여성적인 느낌이 게이 같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다. 그는 어쩌다 한국에 오면 자기 나라인데도 조금은 불편하다고 한다. 어렸을 때 자신의 성 정체성이 보통 남성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문제는 그가 그런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았던 게 20년 전으로 한국 사람들의 관용정신이 지금보다 훨씬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만나면 보통 한국 남자답지 않은 모습에 얼굴을 찌푸렸고 수군댔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맘 편하게 살 수 있는 나라로 가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독일로 갔다. 그곳 사람들은 게이이건 레즈비언이건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 천국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 뉴욕 여행에서 만난 게이·레즈비언 퍼레이드 / 제너럴 아이디어 제공
나 역시 패션 디자이너라는 직업 때문인지 게이라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 그리고 패션 디자이너들 가운데는 게이가 많기는 하다. 그런데 내 생각에 그들은 그저 자신이 행복한 삶을 선택한 것일 뿐이다. 그들이, 그녀들이 동성을 좋아하는 건 동성을 좋아하는 게 행복해서일 뿐이다.
동성을 좋아하는 건 행복해서일 뿐
그런 그들을 나와 다르다고 너무 어둡게 보는 것은 옳은 시선이 아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은 서구의 복식, 즉 서구의 문화를 가져와서 내 스타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직업이 아니라도 지금 어느 누구 하나 서양의 문화에서 벗어나 살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화적 관점에서 본다면 게이나 레즈비언 문화도 서구에서 먼저 커밍아웃한 것이다. 그것을 다른 사람의 것, 다른 문화로 배척하는 건 곤란하다.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우리 것으로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문화적 성숙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최범석 패션 디자이너·제너럴 아이디어 대표
* 차돌바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0-20 1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