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장익상 특파원 = 동성애가 죄악시되는 인도에서 한 토후국의 왕자가 보장된 부귀영화를 뿌리치고 동성애자임을 고백한 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동성애의 합법화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2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인구 11억명의 인도에서는 아직도 약 150년 전 대영제국 식민지 시절 제정된 법이 통용되고 있으며 이 결과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육체관계는 최대 종신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는 등 동성간 성행위는 엄벌 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로 동성애와 관련해 기소된 사례는 많지 않지만 일선 경찰이 동성애자들을 협박하거나 갈취하고 있다는 사례는 많이 보고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州)에 있는 인구 7만명의 라지피플라에서 가장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는 왕족의 외아들이 약 9개월 전인 지난해 3월 지역 언론에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고백하면서 1면에 대서특필되는 등 지역이 일대 회오리에 휩싸였다.
만벤드라 싱 고힐(41) 왕자의 부모는 이 지역에 현재 호텔로 사용중인 대형 성(城)을 포함해 여러 성(城)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정직한 삶을 살겠다며 신문에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고 신문은 "라지피플라의 왕자가 동성애자라고 고백하다"라는 제목으로 이를 보도했으며 이날짜 신문은 날개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고힐 왕자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14세 때 처음 동성에 눈을 떠 동년배 몸종과 18세까지 관계를 맺었으며 대학 졸업 후 아들을 낳아 600년 전통의 가문 혈통을 이으라는 부모의 권유로 25세 때 결혼했지만 아무런 육체적 매력을 못느껴 15개월 후 이혼했으며 아내는 "다른 여자에게도 이런 불행을 안기지 말라"고 충고했음을 털어놓았다.
2002년 신경쇠약으로 15일간 입원했을 때 더이상 비밀을 간직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의사에게 요청, 자신의 처지를 가족들에게 설명토록 했으며 이로부터 4년 뒤 일반에 동성애자임을 공개하게 된 것.
급기야 왕자의 동성애에 못마땅해하는 주민들은 그의 사진을 불태웠고 그의 부모는 그를 아들이 아니라고 선언하면서 지역신문에 "사회적으로 용납치못할 행동으로 인해 후계자 자격이 박탈됐다"고 공지해버렸다.
또 그의 모친은 "고힐을 내 아들이라고 칭한다면 그 누구라도 모욕죄로 처벌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인도의 왕족들은 1947년 독립과 함께 공식적 정치 권력이 박탈됐지만 상당수는 예전의 엄청난 부와 영향력을 회복했고 고힐 왕자 역시 12살때 지역 행사에 귀빈으로 참석하는 등 예전의 왕족과 다름없이 귀하게 성장했지만 커밍아웃 이후 냉대와 거부반응속에 힘든 생활이 시작됐다.
이후 고힐 왕자는 자신을 천민으로, 또 죄인으로 만든 법을 개정키 위해 활동하는 한편 2000년 자신이 세운 에이즈 예방 단체 `라크샤재단'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인도가 산업화됐다고 하지만 동성애 문제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부모가 짝지어주는 결혼을 하고 많은 아이를 낳아야 하는 등 상당히 보수적이고 체제순응적인 사회에서 쉽게 해결키 어려운 문제인데, 실제로 인구 1천500만명의 뉴델리에서 입소문으로 은밀하게 매주 한차례 열리는 게이바가 2곳 뿐일 정도로 동성애는 금기시되고 있다.
고힐 왕자를 지지하는 인권단체와 변호사단체, 정부의 에이즈담당자들도 법 개정을 위한 로비활동을 펴고 있으며 지난 9월에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 등 수십명의 각계 지도자들이 이 캠페인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법이 개정된다고 일반인들의 태도를 바꾸기가 결코 쉽지 않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고힐 왕자는 그나마 최근들어 아버지의 태도가 많이 누그러져 다행인데 부친은 최근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친구들이나 친척들로부터 압력을 받아 그처럼 가혹한 조치를 취하기는 했으나 좋은 아들이다"고 밝혔으며 가끔 아들과 대화도 나누고 있다.
라크샤재단 운영과 관련, 유엔으로부터 상까지 받았고 언론의 인터뷰도 줄을 잇고 있다는 고힐 왕자는 현재 라지리피플라 외곽 농장에서 유기농 농장에 열중하면서 "동성애자임을 밝힌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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