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서 벌어진 도내 최초 게이 퍼레이드
도내 외국인 50여명...'동성애' 상징 무지개 우산 눈길
이균석 기자 qpm@idomin.com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그들만의 행진. 하지만 그들은 즐거웠고 행복했다.
3일 오후 5시 경남대학교 정문. 무지개 우산을 든 외국인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화려한 색깔의 가발을 쓴 사람도 있고, 무지개 모양 천을 덧댄 청바지를 입은 사람도 있다. 얼굴에는 모두 무지개를 그려 넣었다. 일부 한국 사람을 포함해 50여명이 모이자 그들은 커다란 무지개 펼침막을 펴 들었다.
▲ 마산 경남대 앞에서 시작한 게이 퍼레이드에 참여한 사람들이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 우산과 펼침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얼굴은 본인들의 요청에 의해 모자이크 처리했음.)
외국인들이 이날 하려는 것은 ‘게이 퍼레이드’.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버리자는 행진이다. 무지개는 동성애와 동성애 문화를 상징한다.
이날 행사가 준비되기까지 우역곡절이 많았다. 경남대 근처에서 바(bar)를 운영하는 ㄱ씨가 이들을 대신해 경찰에 집회 신고를 냈다. ㄱ씨는 “평소 바에 자주 오는 마산, 창원쪽 외국인들이 2,3주에 한 번 씩은 파티를 여는 데 이번엔 그 주제를 ‘게이 퍼레이드’로 잡은 것 같다”고 “주로 캐나다인이 제일 많고, 미국인, 영국인, 호주인도 있다”고 전했다.
외국인 중심 50명 참가, 해운동 일대 행진
ㄱ씨는 이어 “마산지역의 보수적 풍토를 몸으로 느끼고 있던 이들에게 간단한 행진이지만 ‘동성애’를 주제로 한다는 게 쉬운 결심은 아니었다”며 “혹시 한국 정서에 어긋나지는 않는지 많이들 걱정했다”고 밝혔다.
ㄱ씨는 또 “집회신고를 내는 동안에도 경찰들이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것 같았다”며 “실제 그런 시선을 늘 받고 사는 동성애자들은 얼마나 힘들까 이해가 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경찰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한 경찰관은 “어떤 사람들이 하는 건지 파악도 안 되고, 무슨 의도로 하는 건지도 애매했다”며 “이런 종류의 행진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아무 글자도 없는 무지개 문양의 펼침막’도 경찰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오후 6시께 행진이 시작됐다. 무지개 펼침막이 앞장을 섰고 무지개 우산 행렬이 그 뒤를 따랐다. 탬버린을 치는 사람, 응원용 나팔을 계속 불어대는 사람도 있었다. ‘동성애자임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자’는 내용의 영어 구호도 외쳤다.
‘동성애’ 상징하는 무지개 펼침막 눈길 끌어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코 높은 외국인들이 환호하며 행진하는 것을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들이 왜 행진을 하는 것인지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한 대학생은 “마산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가 기자가 무지개는 동성애를 상징하고 오늘 행사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버리자는 뜻에서 한다고 설명하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시민은 “오늘 한국팀 축구경기가 있냐”고 묻기도 했다.
20여분 정도 행진을 벌인 외국인들은 마지막으로 해운중학교 옆 공원에 도착해 준비해 둔 음식과 음료를 마시며 ‘뒤풀이’를 했다.
이 자리에서 만난 캐나다인 여성 ㅅ씨는 “캐나다에서는 일년에 한 번 이 같은 동성애 퍼레이드가 아주 큰 행사로 치러진다”며 “미국, 영국, 호주에도 수 천 명이 거리를 행진하는 게이퍼레이드가 있다”고 설명했다.
의도 모르는 시민들 ‘축구응원이냐’ 묻기도
이날 행진을 이끌었던 미국인 ㄷ씨는 “외국인이 괜히 한국에 와서 요상한 행동을 한다는 비난을 듣기 싫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ㄱ씨는 “그저 외국인들 스스로 즐기는 소풍 같은 행사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며 “처음에는 나도 이런 걸 왜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각자 역할을 분담해 열정적으로 준비하는 등 진지한 태도에 생각이 달라지더라”고 전했다.
어쨌든 이날 행진은 경남 최초의 ‘게이퍼레이드’로 기록될 것이며 언젠가 한국인들이 주체가 되는 행사가 열릴 수 있는 길을 연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편 이날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도 게이퍼레이드가 크게 열렸다. 또 지난달 28일에는 영국 버밍엄에서 제10회 게이퍼레이드가 열렸으며 6월 마지막 주에는 미국 뉴욕에서 ‘헤리티지 오브 프라이드 퍼레이드(Heritage of Pride Parade)’라는 동성애 축제가 벌어지는 등 지난달 말부터 전 세계 곳곳에서 게이 퍼레이드가 이어지고 있다.
2006년 06월 05일
이균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차돌바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0-20 11:32)
그렇죠. 서울에서만 퍼레이드를 하라는 법 없겠죠. 비록 처음이라 외국인들 일색이었다고는 하나, 지방에서 자꾸 하다 보면, 더 값지고 소중한 행사가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