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3-05-30 () 10면 1200자
美교과서 500개 단어 '퇴출' - 종교.성.인종적 논란 증폭
앞으로 미국 교과서에서 '요트를 타다'라든가, '폴로경기를 하다' 같은 말을 찾아보기는 어렵게 됐다. 뿐만 아니라 '소년같다(boyish)'라든가, '식기나르는 사람(busboy)', 나이 지긋한 수다스런 여자(biddy), 귀여운 여자애(babe) 같은 용어도 금지대상이다. 책벌레(bookworm), 장님(blind), 야만인(barbarian)도 안된다.
미국 사회에서는 용어에 대한 논란과 시비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 행정부나 교과서 편찬자들이 가능하면 '정화된 언어' '문제의 소지가 없는 용어'만 골라쓰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정치적, 종교적, 성(性)적, 인종적 시빗거리가 될 만한 용어는 아예 교과서에 오르지 못한다.
로이터 통신은 새 교과서 편찬에 간여했던 뉴욕대학의 다이앤 래비치 교수(교육학)의 말을 인용, 미국의 교과서에 사용될 수 없는 500단어 목록이 있다고 보도했다.
1970년대 성적, 인종적 차별의 편견을 뿌리뽑기 위해 시도된 용어정화 움직임이 갈수록 힘을 더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금지사유를 보면 요트나 폴로는 엘리트주의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또 boyish나 busboy는 성차별에, 책벌레나 장님은 무례한 표현에, 나이많은 수다쟁이는 노령차별에 해당된다. 신(God)이란 단어조차 너무 종교적이라는 이유로 금지대상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헤밍웨이의 세계적인 명작인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는 모두 문제단어가 된다. Old는 노령차별에, Man은 성차별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바다 또한 내륙지방에서만 살아온 학생들에겐 잘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인 만큼 'The Older Person and Water'로 바꿔야 할 판이라는 것이다.
최근 행정부 산하 보건국은 동성애자들의 에이즈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작성할 때에도 게이나 호모, 성전환 같은 용어를 순화토록 종용받았다.
또 미국의 최대 산매업체인 월마트도 진열장에서 선정적인 남성잡지를 철수했을 정도로 이러한 경향은 민간기업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래비치 교수는 "이제는 조국(fatherland)이나 형제애(brotherhood) 같은 말도 사용할 수가 없게 됐다"며 이는 마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정부 관리들이 여론과 국민들의 사고를 조작하기 위해 일부러 애매하게 쓰는 언어 표현법인 'Newspeak'가 현실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정동식 기자 dosjeo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