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

15 최영수 : 시골 게이의 맛있는 커밍아웃

그의 닉네임은 ‘스파게티나’이다. 스파게티집을 하고 있어서 친구들이 장난삼아 붙여준 별명이다. 우아한 닉네임만 듣고 그 역시 예쁘고 도도한 도회풍(?) 게이일 거라는 선입견은 갖지 않기 바란다. 아래 이야기를 읽어보면 느낄 수 있겠지만 그는 생활력 강하고 듬직하며 시골스런 인간미가 풀풀 풍기는 삼십대 총각이다.  

'요리와 게이라이프'에 포커스를 맞추어 시작한 인터뷰의 내용도 점차 '시골게이 성공기'로 바뀌어갔다. 그에게서는 도시에서 나고 자란 게이들, 인터넷 시대의 수혜를 입은 게이들에게서 볼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다. 벌거벗은 몸을 끓여 만든 진국 같은 것, 그게 무엇인지 찾아보기로 하자.


(최영수님의 훈훈한 말투를 가능한 살리는 방향으로 편집했습니다.)  





우선 소개부터 해주세요. 채팅용 소개 말고, 이름이나 사는 곳 같은...

최영수입니다. 서른 다섯 살이고 사는 곳은, 서울 서대문구 ##로...

잠깐, 동네까지 말해도 되나?

어, 그런가... 뭐 대충 말해도 스파게티집 한다고 하면 다 알지 않을까요? 하하

고향은 어디세요?  

경북 영주요.

서울에 오신지는 얼마나?  

스무 살 때니까 십오 년 됐네요.

그럼 지금은 서울에서 누구랑 살아요?

형, 형수, 조카랑 살고 최근엔 어머니가 건강이 나빠지셔서 같이 살아요.

상경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입 준비하려고 왔는데 떨어져서...

갑자기 대학 입시생에서 요리사로 방향을 바꾼 게 좀 특이한데?  

아, 원래 조리학과 지원했다가 떨어졌어요. K대학이었는데...조금 쎄더라구요. 하하. 그땐 조리학과도 잘 없고 정보도 별로 없었거든요. 그래서 학원 일 년 가량 다니다가 군대 가고, 나와서는 계속해서 요리 계통 일을 했죠. 뭐.

어릴 때부터 요리사가 되고 싶었어요?  

초등학교 삼사 학년부터 자주 뭘 만들어 먹었어요. 만두도 만들어 먹고 꽈배기도 튀겨 먹다가 뻥 터지고...

왜요? 집에서 밥을 안해줬어요?  

시골에 살았으니까 부모님이 바쁘시잖아요.

남자애가 부엌일 한다고 부모님들이 싫어하지 않나요?  





누나들은 일찍 돈 벌러 서울 갔고, 형이랑 저랑 아버지 어머니 넷이 살았는데요, 농사일 갔다 오시면 뭐라도 먹을 걸 해놓아야 좋아하시니까.

아하, 그럼 힘들게 일하는 부모님을 위해서? 그때부터 효자?

아니요. 안 해놓으면 어머니한테 혼났어요. 되게 무서웠어요. 밤늦게까지 일하고 오는데 밥이라도 안쳐놓지 않는다고...

형도 있었다면서 왜 혼자만 해요?  

아, 시골은 왜 그런 차별이 있잖아요. 장남이랑 차남이랑 다른 거... 지금도 전 어머니한테 농담 삼아 따져요. 왜 나만 시켰냐고. 그럼 그런 적 없다고 그래요. 하하.

그럼 본인이 요리를 좋아한 것도 아니네요.

요리에 취미도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 진로 선택할 때는 내가 할 일은 이것밖에 없다 싶었고 다른 생각이 안 났어요.

스파게티집 사장님 겸 주방장으로 알고 있는데 얼마동안 하고 있어요?  

오 년째. 그 전에는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일했어요.

가게 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접하게 될 텐데 혹시나 종로 게이빠에서 손님을 만나거나 하진 않나요?

그런 적 있어요. 여기 혼자 와서 아무 말도 없이 먹고만 가는 남자 손님이 있었는데요. 근데 어느 날 종로 게이빠 문앞에 서 있더라구요.

아는 척 했어요?

아뇨. 결혼반지 같은 걸 끼고 있어서요. 맨날 혼자 먹는 걸로 봐선 혼자 사는 것 같기도 한데... 반지가 결혼반지 같이 생겼더라구요. 그래서...  

그렇군요. 한 곳에서 오 년째 장사를 하면 동네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텐데 총각이 혼자 일한다고 뭐라고 안해요?

난리죠. 아가씨 소개시켜준다는 사람도 있고... 근데 뭐. 말만 그라지.

그럴땐 어떻게?

대충 둘러대요. 해놓은게 있어야지 하면서...

단골 손님들도 생길텐데... 손님들이 청첩장 주면 가요?  

여자, 아줌마 손님들이 많으니까, 그런 적은 없었어요. 그리고 제 철칙 중에 하나가 손님들하고 안 친해지는 거예요.

왜요? 손님하고 친하면 스캔들 날까봐서?

안 좋아요. 괴롭혀요. 여긴 공간이 작아서 테이블 회전이 빨리빨리 되어야 하는데... 친하다 싶으면 사람들이 안 가고 자꾸 뭔가를 바라거든요. 커피도 달라고 하고. 밖에서 손님들이 줄서서 기다리는 거 뻔히 보면서도 안 간다니까.

장사해야 되니까 그만 나가라고 못되게 말하지?  

성격상 못해요. 그냥 왔다갔다 하면서 그릇만 계속 빼오고 행주로 훔치고... 하하

이제 커밍아웃 이야기를 해볼게요. 커밍아웃은 언제 어떻게 하셨어요?  

고등학교 이학년 때 친구들한테 했어요. 사실 초등학교 육학년 때부터 내가 남과 다르다는 건 알긴 알았는데...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좋아하는 친구가 생겼어요. 감추는 게 좀 미안해서, 같이 다니던 애들 한 열 명 되는데 다 강변으로 불러 모았어요. 한겨울에 번개탄 피워놓고 소주 마시면서...... 하하 그날이 내가 첨으로 취한 날이었어요. 그때는 커밍아웃이란 말도 뭔지 모를 때였고, 게이란 말도 없고 그냥 내가 좀 니들과는 다르다는 식으로 말했지요.

그럼 좋아하는 친구도 같이 있는 자리였어요?

네. 그때는 걔도 날 좋아하는 상황이었어요

오호라. 그럼 둘이 같이 커플 발표?  

아뇨. 걔는 그냥 가만히 있더라구요. 흐흐. 근데 걔도 그날 술 많이 마셨어요. 그 친구랑은 열여덟 살 때부터 스물세 살 때까지 사귀었어요. 걔는 중간중간 여자친구도 사귀면서 저랑 만났어요. 뭐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데 그후에 걔는 결혼도 일찍하고 잘 살아요. 참, 씨엠에스(친구사이 후원금용지) 한 장 써준다고 했는데...

헉, 그렇게 몸 팔아서 씨엠에스를?  

하하. 그 친구는 지금 만나면 절 안타깝게 보는 거 같아요. 자기는 그때는 호기심, 성욕해소를 위해 만났던 거라고 하거든요. 사실은 자기가 먼저 대쉬해 놓고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주시면?

고등학교 때 원래 친하게 지냈는데 어느날 걔가 편지를 보냈더라구요. 더 친하게 지내자고. 좀 웃겼죠. 지금도 친구사인데 이게 뭔가 하고... 암튼 그러다가 저도 좋아하게 되고. 그래서 전 철석같이 믿었어요.

혹시... 그분도 자기 정체성을 잘 모르는 게이 아닌가?





아니야. 제가 수십 번도 더 물어봤어요. 근데 끝까지 호기심이라고 하니까 뭐. 그래서 헤어질 무렵엔 제가 말했어요. 야 이 자식아. 넌 뭐 스물 세 살때까지도 호기심이냐고... 하하 . 지금도 가끔 서을로 출장 오면 만나고 해요. 게이빠도 데려간 적 있어요.

호모포비아는 전혀 없나보죠?

네 없어요. 젤 친한 친구예요.

고등학교때 커밍아웃했을 때 다른 친구들의 반응은요?  

사실 그 일 이후 한 달 동안 왕따 당했어요. 하하 친구들도 그게 뭔지도 몰랐을 거고 당황했을 건데...... 지금은 다 잘 지내요. 근데 자기들은 안 겪어보니까 다 잊어먹어. 내가 게이라는 걸 중요하게 생각 안해. 가끔 야, 너 왜 장가 안가냐고 물어요.

그럼 뭐라고 말해요 나 게이야 라고 다시 말해요?

일부로 말하고 다니진 않고 뭐 말할 분위기가 되면요.

그 친구들 말고 커밍아웃한 경험은?  

회사 다닐 때도 했죠.

그때도 단체로 강변에 모아놓고?

하하. 아니요. 회사다닐 때 단체로 병영체험을 갔는데 마지막날 촛불을 켜놓고 자화상을 그리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고백을 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다 울면서 자기 고백을 하는 그런 분위기가 되어서.. 나도 도저히 숨길 수 없다고 생각해서 말했죠.

반응은?  

동료들 특히 친한 누나, 여동생들이 많이 놀랐죠. 뒤에서 막 울고... “흑흑 저새끼 내가 쪼끔 좋아한 놈이었는데...” 하는 식으로요. 하하

그리고 직장에 돌아가서는 괜찮았어요?

아무 생각 없이 했는데 나중에 걱정이 되더라구요, 소문이 금방 도는 거니까. 안 간 사람들한테도 소문이 돌았겠구나 싶어서.. 조금 겁났어요. 그러다 어느날 부장님이 부르길래 쫄아서 갔어요. 따로 부르길래 드디어 내가 짤리나 싶었는데 의외로 그런 거(동성애자라는건) 일하는 거랑 아무 문제 될 일 없으니까 열심히 하라고 하더라구요. 아무일 없던 것처럼 넘어갈 거라고. 고마웠죠.  

혹시, 게이라는게 밝혀져서 당한 불이익은?

음... 없었던 거 같아요. 아. 진급에 자주 떨어지긴 했는데....

에이, 그건 본인이 실력이 없어서 그런거 아닌가?

하하. 그런가...

부모님한테 커밍아웃할 생각은?

부모님한테는...... 할 생각은 있긴 한데... 아직은 도저히 집엔 못할 거 같아요.

형제도?

누나 셋 있고 형 하나 있는데, 어떻게 받아들일까 싶어서... 내가 형 입장이라면 못 받아들일 거 같거든요.

효자라고 소문이 났던데... 부모님 시골에 계실 때는 매주  내려가서 찾아뵙고 한다던데?

형들이나 누나들은 다 가정이 있고 바쁘니까 힘들잖아요. 저야 뭐 혼자고 편한 몸이라 내가 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또 갔다 와야 내가 맘이 편하니까. 어머니가 몸이 좀 불편하니까 뻔하거든요. 한번 가면 집구석이 난장판이야.

똑같은 형제인데 왜 당신만?

아이 참. 안가는 걸 어떡해. 지들이 가면 내가 가?

그렇다면 내가 게이만 아니면 형제간에 나누어야 할 짐을 좀 덜 수 있을텐데 하는 억울한 생각은 안 들어요?  

흠.... 약간... 그런 것도 있죠.

이 인터뷰도 인터넷상에서 하는 일종의 커밍아웃인데, 가족 중 누군가 인터넷으로 보게 된다면요?  

흠... 가족들이 보는 건 좀 두렵긴 한데, 뭐 누가 거길 들어와 보겠어요. 근데, 제 생각에 형은 제가 게이라는 걸 알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어릴 때부터 같이 지냈으니까요. 요즘 보면 형은 나한테 결혼하라고 안하거든요.  

당신이 결혼하면 형 입장에서는 손해니까 그런 거 아닌가? 고향에도 자주 내려가야 하고?

아하하 그럴지도... 근데 누나들은 가끔 하는데 형은 안해.  

근데... 효자면 배우자감으론 마이너스 일 거 같은데요, 이성애자들도 그렇잖아





저는 진짜 효자라고 생각 안 해요. 딱 기본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제 연애 이야기로. 고등학교 친구와의 사귐 이후엔 어떤 식으로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갔어요? 인터넷이든 신문이든 뭐든....?  

아쉬운 놈이 우물 판다고. 군대 같은 곳에서 주워 들은게 있어서 혼자 종로 이태원 같은 곳을 돌아다녔어요. 혼자서 게이빠 찾는다고 이태원을 몇 번을 헤맸는지 몰라요.

그런 식으로 돌아다니다가 하다가 사람도 만나고? 얼마나 사귀었는지?  

네. 그냥 몇 명 안 돼요. 젤 오래 사귄 사람은 육개월?

일반친구를 팔년간 짝사랑했다는 소문은?

아아(한숨). 걔는 진짜 좋아했어. 회사 다닐 때 만난 친구였는데. 거의 작년까지도 좋아했어요. 진짜 친하고 순진하고 나한테 많이 의지하는 동생이었는데...자기는 게이 아니라잖아.  

그럼 한번 자자고 해보지 그랬어요?  

잤다니까. 그래서 난 더 의심을 했어요. 근데 결국은 아니라니까...  
(이후는 타인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하여 생략합니다.)


일본에 남자가 있다고 자랑하고 다닌다던데?

아, 그 사람은 애인이 아니고 아는 아저씨예요. 일본인인데 장사하러 한국 드나들다가 만나서... 나한테 되게 잘해줬어요. 제가 받은 게 너무 많아서...  

당신이 받았다고? 탑이라며?

아이 참 하하. 아니, 선물 같은 거요. 근데 저는 친한 사람으로만 생각하는데 상대방은 더 진지하게 생각해서 조금씩 정리를 했죠. 한동안 전화로 가끔 연락했는데 지금은 안 돼요.

혼자서만 다니고 간헐적 만남 이외엔 친구도 없다고 했는데, "친구사이" 같은 게이단체나 모임은 어떤 경로로 알게 되었어요?  

칠 년 동안 다니던 포장마차에서 혼자 술먹다가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랑 알게 되고 그 분이 "친구사이"를 알게 해 줬어요. 참 십 년 전에 어떤 종교모임에 나간 적 있어요. 전화사서함 153을 통해 알았죠. 아 진짜 옛날 이야기다... 그땐 너무 바쁘고 시간도 안 맞고 해서 그만뒀죠.

거기서 친구 사귀거나 연애하거나하는 것도 없고?

네. 절 좋아해주는 사람이 없더라구요.

그럼 좀 있으면 친구사이에서도 나가겠네요.

으하하.

모임에 나오면서 달라진 점은? 술친구 생긴 거?

그건 원래 혼자서 잘 먹어요. 친구들도 많이 알게 되고, 단체에 있으니 소속감도 생기고, 또... 사는 데 의욕도 생기고 좋아요.

보통 게이라고 하면 도회적이고 도도한 이미지가 강한데, 당신은 고향도 시골이지만 어투도 정감 있고 소탈한 맛이 있어요. 도시에 살지만 시골청년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거랄까? 혹시 지역이나 학력 콤플렉스가 있나요?

십오 년 되었는데 아직 사투리 써요. 아우. 징그러워. 근데 콤플렉스는 없고 농담 삼아 콤플렉스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재밌어 해요. 직장 다닐 때 동료들 사이에서 ‘대학교’라는 단어는 제가 금지어로 만들었어요. 하하. 물론 뭐 아주 없을 순 없겠죠. 대입 떨어지고나서도 K 대학에 네 번이나 갔었어요. 엄마한테 재수해도 되냐고 물어봤죠. 엄마가 “해. 근데 돈은 못 대줘.” 그러시더라구요.





정도 잘 주고 게이들이 많이 좋아할 거 같은데 왜 애인이 없을까?

제가 대쉬를 잘 못해요. 속으로 삭혀요.

좋아하는 스타일은?

좀 작고 마른 사람. 나이는... 제가 나이를 먹어가니까 점점 폭이 넓어져서 아주 어리거나 아주 많지만 않으면... (매우 쑥스러워 함)

그럼 나잖아. 하하. 게이라서 좋은 점은 뭐라고 생각해요?

제 또래 친구들보면 자식들 공부시킨다고 뼈빠지게 일만 하고 있거든요. 정말 장난 아냐. 그런 거 보면...

그 사람들은 자식들이 일종의 보험인데 노후 걱정은?

해야죠.

해놓은 건 없고?  

지금은 없어요. 하하. 해야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있죠. 근데 뭐, 그건 일반이나 이반이나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애인이 생기면 같이 살 생각은?  

애인 떨어진 지가 오래 되어서 생각도 못했어요. 근데 두려워요. 안 좋은 경험이 많았어요. 돈 빌려줬다가 떼어먹히고,,, 카드 훔쳐가서 긁는 사람도 있었고... 그래서 요즘엔 누굴 만나든지 두렵고 의심하게 되는 거 같아요.

젤 심하게 당한 건?

애인 룸메이트한테... 자주 놀러가니까 친하게 지냈는데 애인이 외국 가고 없을 때였는데 술을 마구 먹인 다음에 걔가 자기 집에 데려가더라구요. 술에 취해 자고 일어나보니까... 내 카드가 없어졌어요. 비번도 알아내서 수백만 원어치 긁었어요. 그 사람 집까지 찾아가고 한바탕 소동이 있었어요.

흠... 만약에 지금도 너무 좋아하는 남자가 나타나서 뭔가 요구하면?

하하. 또 해줄지도 몰라요. 성격이 그래. 뭔가 해주는 걸 좋아해요.

츳츳. 이 인터뷰 나가고 나서 꽃뱀들이 또 붙으면 어떡해요?

이젠 뜯길 돈이 없어요.

십 년 뒤 자기 모습은 어떨 거 같아요?

스파게티 말고 있겠죠. 변화 없을 거 같아요. 십년 전 친구들도 지금 그대로 있듯이 십년 후에도 지금 친구들 그대로...

성격이 꽤 낙천적인가봐요?

겉으로는 그래요..  속으로는 고민 있죠.

고민이 뭔데요?

없어요. 흠... 돈 버는거? 로또도 거의 매주 사는데 지금까지 오천 원짜리 딱 두 번 걸렸어. 참나...

진짜로 말하는 거 보면 소심하지 않은 거 같아. 인터뷰 약속하고 나서도 친구사이 홈페이지의 커밍아웃 인터뷰 전작들도 안 봤다면서요?

진짜 안 봤어요.

이거 나가면 메일이나 쪽지가 올수도 있어요.

전 인터넷도 잘 안 하고 메일 주소도 없어요.

앞 주자였던 채경완 씨의 인터뷰 조회수 되게 높았던 거 아세요?

씨앙 그@ 얼굴 되잖아.

왜 당신은 안 돼?

안 돼죠. 하하하

글쎄... 리플 많이 달릴 거 같은데

친구사이 회원들이라도 들어와서 좀 달아줬음 좋겠어요. 안 쪽팔리게... 아 근데 저도 안 보는 게 아닐까... 하하. 제 껀 봐야겠죠.

오늘 말한 것 중 혹시 남들이 알아서 안 되는 거 있어요? 오프더레코드로 할 거?

없어요.

어허. 그럼 이건 커밍아웃이 아니잖아. 자, 다시... 정말 콤플렉스나 말하기 곤란했던 것들 속시원하게 말해주세요.

에이... 없어요.

음... 스파게티에 침 뱉어서 낸 적 없어?

하하 진짜로 없어요.

그래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음... 다들 건강하시고... 

쳇, 연예인 같은 엔딩이네. 아무튼 수고 많았습니다. 술이 좀 들어가니까 이야기가 점점 더 재밌어지는데 아쉽네요.





자정이 가까운 시각, 인터뷰를 하면서 그는 조금씩 맥주를 들이켰다. 이런 인터뷰가 처음이라며 조금 긴장했던 듯 하다. 가게의 셔터는 내려진 채, 자연스러운 술자리로 이어지면서 그의 이야기는 조금 더 진솔해지고 끈적끈적해졌다. 인터뷰어와 촬영맨, 보조 인터뷰어는 술보다 진한 그의 인간미에 흠뻑 빠진 채 아쉬운 마음으로 자리를 정리했다. 지면사정상 모든 이야기를 실을 수 없어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 최영수  (hitsoo@empal.com)
- 인터뷰어 KML (bannambi@hanmail.net)


*이 인터뷰 내용과 사진은 최영수 씨와 인터뷰어의 허락없이 다른 곳에 절대 게재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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