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사이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 우리 아이들
라이카
지보이스 공연을 앞두고 신경이 좀 예민해져 있었다.
사연이 있어서 중간에 연습에 참여하지 못했었고 개인적으로 준비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았던 데다가 지보이스에서 내가 해야하는 일들, 음 이를테면 언니들을 좀 거들어주고 동생들을 챙기는 일들을 거의 하지 못한 탓이었을 게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공연하는 날에도 맴버들의 닉네임이 헛갈릴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에야 말하는 거지만 공연 전날까지 가사를 외우지 못한 곡들도 살짝 있었다(^^;;)그런데 마침 학교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시기였다. 야근을 하고 불안감에 가사를 들여다봐도 머릿속은 어느새 하얀 백지장으로 변해버리든지 아니면 내 자세는 어느새 턱을 괴면서 꼬리를 무는 공상의 끝을 좇는 빨강머리 앤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반 아이들이 전과 다르게 말썽을 부렸다.
학기 초에는 ‘내가 이런 아이들의 담임이라니! 신이시여, 진정 저를 버리시나이까!’라며 머리를 쥐어뜯고 울부짖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모두 착한 마음씨를 지녔다는 걸 알게되었고 반이 단합이 잘되어 내심 행복해하고 있었더랬다.
하지만 공연 즈음에 한 아이의 문제로 경찰서를 가야하는 일이 한 건 생기더니 한 녀석은 학교를 때려치우고 음악을 하고 싶다고 선전포고를 해왔다.
경찰서 간 녀석은 그다지 큰 사건이 아니고 평소에도 욱하는 성질이 있었던터라 ‘너만 경찰이 무서운 게 아니라 나도 경찰 무섭다. 다신 무서운 경찰 앞에서 쫄지 않게 조심하며 살자. 부모님한테는 내 안 이르마.’ 하고 해장국 사주며 조용히 협박했더니 돼지처럼 처먹으며(?) 알아듣는 척을 했다.
하지만 문제는 학교를 때려치우겠다는 놈이었다. 평소에 암전하고 책을 좋아했으며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고집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자초지종을 듣고는 덜컥 겁부터 났다. 일단은 달랬으나 먹히지 않자 생각할 시간을 갖자며 대답을 유예하고 있었다.
공연 당일 급한 맘에 조퇴를 하고 교무실을 벗어나려는 찰라 그 녀석이 슬그머니 내려왔다.
결론을 내고 싶다고.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버럭 화를 내버렸다.
정말 음악이 하고 싶은 거냐고? 공부하기 싫어 현실로부터 도망가려는 심사 아니냐고? 내가 봐도 한심한 말을 내뱉고 서둘러 학교를 빠져나왔다.
공연 내내 그 아이 생각이 났다.
그 아이를 객석에 데리고 왔으면 어땠을까? 너만 힘들게 사는 게 아니라고, 주어진 상황은 얼마든지 유쾌하게 극복할 수 있다고. 그 어떤 꼰대같은 잔소리보다 훨씬 훌륭한 조언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리고 생각해 봤다. 우리반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연장에 들어와 객석에 앉히며 선생님 파이팅 해줘... 라고 활짝 웃을 수 있는 날이 꼭 올거라고..
음. 공연장에서의 뻣뻣신들린 춤에는 다 사연이 있었군요...
아아 애들 넘 예쁘겠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