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저는 예전엔 머리가 꽤 길었지요.
한때는 허리 아래로 내려올 정도로 길었슴다.
바지를 입으면 머리 끝이 바지 안으로 들어갈 정도 (배바지 안 입었어요-_-)
그 머리를 자른건 아마도 97년인가...
그때도 야구를 참 지*같이 봤는데... 그해 가을 플레이오프에서
당시 불구대천의 원수이던 엘지랑 붙었어요. 그리고 오지게 깨졌죠.
그 허탈함에 불꺼진 야구장에 멍하니 앉아있는데
엘지팬이 그 먼거리를 돌아와 바로 앞에서 노래를 불러주더군요.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벌떡 일어나 두들겨 패놓고 야구장 국기게양대에 걸어놓을까 싶었지만 (저 마초라니까요-_-)
패자는 말이 없는 법. 그냥 조용히 그 자리를 떴습니다.
분한 마음에 한숨도 못 자고 아침에 미용실 문 열자마자 갔죠.
"아주 짧게 잘라주세요"
그 긴 머리가 잘려져 나가는 걸 보며 이를 악물고 다짐했습니다.
그 치욕을 갚기 전에는 절대로 다시는 머리를 기르지 않겠다고.
하지만 세월이란게 그렇더라구요.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버텨내면 반드시 옛말할 때가 옵디다.
00년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붙었을 때 두산이 이겼고
엘지팬들이 눈물을 흘리며 야구장에 멍 때리고 앉아있는걸 보면서
가서 춤 추고 노래 불러줄까 하다가 승자의 매너로; 그냥 나왔습니다.
(우리도 옛말 할 때가 꼭 올 거예요. 헌재 엿이나 먹으라 그래요)
하지만 '훗.. 니들 따위'로 여기기까지는 5년이 더 걸렸고 그때부터 다시 머리를 길렀죠.
간만에 빠마도 하고 그랬는데... 얼마 안 있다가 동생이 사고를 당했어요.
동생 수술 전날.. 엄마가 머리 늘어뜨리고 있는 꼴 보기 싫다고 짧게 자르라고 하시데요.
단 한마디의 반항도 못 하고 또 다시 짧게 잘랐죠. 그 이후에는 계속 제 머리가 짧아요.
올해.. 미용실 갈 때가 훨씬 지나서 지저분했지만
내일 야구개막에 맞춰 상큼하게 자르면서 올 시즌 각오를 다지겠다고;
오늘 연차까지 내고 미용실에 가서 짧게 자르고 파마까지 했어요.
텍스쳐펌인가 뭔가 해서 가격도 오지게 비싸더라구요.
지루한 시간이 끝나 머리를 감고보니...
시 to the 망....
망했네요. 머리가 <과속스캔들>에 나오는 왕석현이 됐어요.
9년째 제 머리를 담당하고 있는 드자이너마저 당황해서
'저기... 다음주에도 이러면 다시 오세요.... 수습해드릴게요....'
빠마 참 독하게도 나왔어요........
두산베어스도 올해 독하게 야구해서 우승했으면 좋겠어요......
아 그런데 왜 눙무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덧붙임:
착한 언니들의 착한 기대를 무너뜨리는 인증샷... => http://twitpic.com/4g2pe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