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3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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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호][소모임]
책읽당 읽은티 #55 :
우리가 우리인 채로 우리를 만나려면
[거의 사랑하는 거 말고] 김병운 작가와의 만남 후기

(사진 출처 : 문학동네 페이스북)
3월 21일 토요일 사정전에서 [거의 사랑하는 거 말고] 김병운 작가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서른 명이 넘는 게이들에게 둘러싸인 작가님께서는 ‘꼭 여러분들도 이런 경험을 당해보셨으면 좋겠어요.’라며 재치 있게 토크를 시작해주셨습니다.
[거의 사랑하는 거 말고]는 남성 동성애자가 갖가지로 등장하는 7개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입니다. 엄마에게 남자친구를 오롯이 인정받고 ‘정상부부의 삶과 같은 것’을 누리고 싶어하는 게이, 농인으로 온전히 정체화하지 못해 자기 자신과 주변 가족들을 괴롭혔던 아버지를 결국 용서하지 못하는 게이, 친구의 끼스럽고 기갈진 10살 조카를 보고 생각이 많아진 게이, 에이즈로 죽은 줄 알았던 게이 삼촌을 다시 만나게 된 게이 친구와 동행하는 게이, 게이 은사님과 재회하며 새로운 게이 학생을 만나게 되는 소설가 게이, 게이 친구의 전시회에서 퀴어 소설가 전남친의 이중적이고 위선적이었던 태도와 행동을 곱씹게 되는 게이, 아들의 정체성을 오롯이 받아들이지는 못하지만 계속해서 이해를 시도하는 어머니와 샅바 싸움같은 사랑을 주고 받는 소설가 게이가 소설집에는 등장합니다. 게이라는 단어를 너무 많이 써서 이제 내가 게이인지 게이가 나인지 헷갈릴 지경입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게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집니다.
소설에 나오는 게이들의 공통점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온전히 나인 채’ 살아가기 위한 투쟁을 (그들의) 세상이 부서져라 하고 있습니다. 해설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자면, 사랑의 탈을 쓰고 보편이라는 이름의 고정된 틀에 우리를 욱여넣는 ‘돌봄의 폭력’에 맞서, 기꺼이 균열을 내며 ‘거의 사랑’에서 ‘진짜 사랑’으로 이행하는 ‘폭력적 돌봄’을 행하는(혹은 행하고 싶어하는) 자들이 소설에 등장합니다. 우리는 이 등장인물과 얼마나 비슷하며 또 얼마나 다를까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보다 어린 게이들이(뭐 저도 서른 한 살이라 어리다면 어린 나이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이 소설을 보면서, ‘아니 게이인 것 가지고 되게 유난이네;;’라는 평을 했으면 좋겠다고요. 게이가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여 괴로워하고, 주위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을 숨기는 지난한 일들이, 공감을 얻는 보편적 사건들이 아니라 ‘유난스러운 일’이었으면 좋겠다고요. 그래서 어린 게이들이 이 소설을 구시대적이라고 비웃어줬으면 좋겠다고요.
등장인물들의 흔들림과 균열내기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단독자로서의 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의 사랑’이 아닌 ‘온전한 사랑’을 위해서는 자기 긍정이 필요합니다. 그 자기 긍정은 오롯이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 내 주변에 있는 이와 함께 정의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엄마, 이쪽 친구, 일반 친구, 애인, 은사님, 동네 게이 등과 부대끼며 우리는 위로 같은 상처를 받기도, 상처 같은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우리는 손을 내밀며 서로의 기댈 구석이 되고, 거울이 되어 보이지 않던 깊은 곳을 마주하게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우리인 채로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는 서로를 위하는 온정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게이들에게, '평생 그렇게 살아라, 지독하게.'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저주처럼 들리는 말이지만 무엇보다 큰 축복임을 이해해주었으면 합니다. 단독자일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우리이기에 이 세상은 오늘보다 내일 더 재밌어지는 듯합니다.
김병운 작가님께서는 마지막 발언에서 ‘우리는 숨 쉬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작은 혁명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극히 정치적인 삶을 살게 되어버린 우리지만 어떻게 보면 영광입니다. 하루하루를 생존해나가는 것만으로도 세상과 불화하며 변화를 추동할 수 있다니 얼마나 멋있는 일입니까.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에 상처를 내며, 하지만 너무 아프지는 않게, 우리 부디 살뜰히도 오래 행복하게 삽시다.
P.S. 작가와의 만남을 해보면 나만의 연예인이던 작가님도 생각보다 평범한 보통 인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떠한 세계가 무너지는 일이지만 이는 친밀하고 따뜻한 붕괴입니다. 실례될까봐 못 드린 말이 있는데 마지막으로 남기겠습니다. 블랙핑크의 컴백을 기다리듯 당신의 신작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마시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과로하시고 다작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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