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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호][기고] 캐나다 밴쿠버의 종로3가, 데이비 스트릿(Davie Street) 방문기
2026-04-03 오후 16: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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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3월 

 

 

[189호][기고]

캐나다 밴쿠버의 종로3가,

데이비 스트릿(Davie Street)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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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많은 이들에게 김연아의 금메달로 기억될 2010년 캐나다 밴쿠버 올림픽은, 최초로 성소수자 쉼터—프라이드 하우스—가 마련된 올림픽이면서, 해당 국가 선주민 단체들이 최초로 개최를 유치한 올림픽이다. 밴쿠버 올림픽의 앰블럼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북구 이누이트들이 이곳 근방에 지은 석조물 이눅슈크에서 따왔고, 밴쿠버 잉글리시 만에 서 있는 이눅슈크는 1987년에 새로 세운 것이다. 팔벌려 낯선 이를 환대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2008년에 발족한 캐나다 진실화해위원회가 2015년 출간한 최종보고서에는, 선주민 자녀들을 강제로 백인 기독교 기숙학교에 수용한 역사를 중점 과제로 다루었다. 한국의 진실화해위원회가 이른바 '빨갱이' 사냥으로 인한 학살·고문 피해를 주로 다뤘던 것과 비교된다. 19세기부터 이곳에 '진출'한 백인들은 선주민 자녀들을 부모로부터 강제로 빼앗아 기숙학교에 처넣었고, 백인 대비 1/3의 예산으로 열악하게 운영된 그곳에서는 강제 개종과 선주민 언어 사용 금지 및 문화 말살, 굶주림과 방치, 구타와 성폭행, 출소 직후 백인 가정으로의 강제 입양 및 집단 결혼 등이 자행되었다. 맥락은 달라도 시설 내 폭력 사례의 세목들은 한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모든 일들이 당시 북미에서는 보수가 아니라 진보의 이름으로 시행되었다. 한국사와 서양사에서 진보라는 말의 내용값이 극명히 갈라지는 이유가 여기서 출발한다. 19세기 후반 백인들은 아무쪼록 세상을 더 좋게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이러한 시설을 운영하고, 더 좋은 씨를 위해 우생학을 실천하고, 백인 여성의 인신매매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인종주의 정책을 합리화했다.[1] 백인이 비백인에게 행한 짓을 백인이 백인에게 행할 때에만 마치 그것이 처음 발견된 듯 소스라치게 놀라는 폐습처럼, 캐나다와 미국 서부의 백인들은 선주민에게 땅을 빼앗던 그 방식 그대로 다른 백인들의 땅과 목숨을 빼앗아갔다.[2] 진화위는커녕 그 개척지 정의의 역사를 서부극의 낭만으로 은폐하기 바쁜 미국과는 다르게, 그래도 캐나다는 그 역사를 진심으로 마주할 용기를 낸 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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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까닭에 캐나다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인권단체 연대체에는 선주민 권리 운동 단체의 이름이 함께 올라가 있다. 단체들의 발간물에는 "양도되지 않은 선주민 조상들의 영토에서 쓰였다"는 문구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고,[3] 밴쿠버 시내의 센터에는 캐나다 국기 및 프라이드 플래그와 더불어 선주민 기숙학교 피해 아동을 추모하는 "모든 아이는 소중하다(Every Child Matters)" 깃발이 함께 걸려있다. 깃발의 바탕색인 주홍빛은 1900년대 기숙학교로 끌려간 필리스 웹스타드(Phyllis Webstad)가 할머니가 사준 주홍색 셔츠를 억지로 벗어야 했던 일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의 군부독재 시절 중정과 안기부에서는 사람을 고문할 때 가장 먼저 옷을 벗기고 군복으로 갈아입혔다. 너는 이제부터 사람이 아닌 몸뚱아리일 뿐임을 각인시키는 첫 단추의 의식이었다.

 

"넬리 닝게완스(Nellie Ningewance)는 온타리오 주 허드슨에서 자랐으며,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온타리오 주 수 룩아웃(Sioux Lookout) 학교에 수용되었다. "도착하자마자 도착 신고를 해야 했고, 그다음에 우리를 데려가 머리를 깎았어요." 버니스 잭스(Bernice Jacks)는 노스웨스트 준주에 있는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머리를 깎았을 때 매우 두려워했다. "내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게 보였어. 그런데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 엄마가 너무 걱정돼서… 내 생각은 전혀 안 했어. 엄마 생각만 했지. '엄마가 정말 화내실 거야. 준도 화낼 거고. 다 내 탓일 거야.'라고 생각했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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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의 여론이 2010년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연아를 찬탄하면서, 김연아의 경기를 만든 코치 브라이언 오서와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 두 명이 모두 게이라는 사실을 좀처럼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은 익숙한 기시감이다. 물론 그런 예술의 영역에서 게이의 역할이 유독 빛나는 것은, 식민지 조선 지식인에게 문화 영역에서의 성취가 정치적인 운신의 폭이 거세된 자리에 강제된 사회적 역할이었던 것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저 두 스포츠인과 게이 예술가들의 훌륭한 성취와는 별개로, 게이들은 어떤 좁고 한정된 기저와 맥락 위의 웰메이드 성취에 종종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건 마치 성매매여성의 경우처럼 자발이 아닌 일정한 강제에 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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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의 종로3가 데이비 스트리트(Davie Street)에는 무지개가 걸린 건물이 지천에 깔려있다. 한국에서 퀴퍼날에나 잠깐 연출되는 것들이 이곳은 상시로 구현돼있는 느낌이다. 개중 인상적인 것은 캐나다 로컬 은행 지점들이 내건 무지개 표시들이다. TD와 (이반시티에서 I만 뺀)Vancity 등 캐나다의 주요 은행들은 모두 2SLGBTQ+ 포용 정책과 성소수자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지원한다. LGBT 앞의 2S는 선주민 집단의 성소수자인 투 스피릿(Two Spirit)을 지칭한다. 선주민 인권에 관심이 깊은 캐나다다운 어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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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 앞에 트랜스젠더퀴어를 놓은 나라답게, 밴쿠버는 성소수자 가운데 오직 게이만을 앞세우는 짓에 절대 관대하지 않다. 종태원을 비롯한 다른 많은 게이 게토와 마찬가지로 데이비 스트리트 또한 거리 성매매가 수행되던 공간이었고, 이곳의 부동산을 차지한 백인 게이 남성들은 1980년 웨스트엔드 주민연합(CROWE)을 결성해 이곳의 성노동자/트랜스젠더를 몰아내는 데 앞장섰다.[5] 게이가 사석에서 몸파는 사람 싫어하고 레즈 트랜스 욕하는 거야 그럴 수 있지만, 그걸 조직을 만들어 공적으로 발화하고 활동하는 순간 동성애규범성으로 집약되는 준엄한 역사적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걸 기억하기 위한 웨스트엔드 성노동자 추모비가 데이비 스트리트의 지근거리에 있다. 내가 이성애 사회에 피해를 입었든 어쩌든, 어떤 정체성인 것만으로 사회적 성찰이 면제되는 그룹은 게이는 물론이고 세계 82억 인구 중 단 한 사람도 없다.

 

그 성노동자 추모비가 서있는 곳은 성 바오로 성공회 교회 앞이고, 그곳에도 어김없이 무지개 깃발이 걸려있다. 거기서 현지의 아이들은 교회 정문과 추모비 사이를 뛰어다니며 놀았다. 지역이 어떤 의제를 숙고한 깊이는 때로 그것을 아이들 앞에 내보여도 될 정도에 도달한 것으로 판가름난다. 자본에 의해 전유되었다는 욕을 먹을 대로 먹고 있는 지천으로 깔린 무지개가 바로 이런 포인트들 때문에 그 본연의 의미로 빛난다. 그리고는 성 안드레아 웨슬리 연합교회 앞의 무지개 표지를 봤을 때 거기서 눈물이 터졌다. 성소수자 공개 축복했다고 목사를 출교 조치하여 법정 싸움으로 번진 한국 감리교단의 참담한 현실이 그 위에 오버랩된 것이 첫째고, 한국의 성소수자가 뭘 많이 바랐던 게 아니고 사실은 이런 범속한 걸 바라왔을 뿐이라는 사실에 갑자기 속이 상했던 것이 둘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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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홈페이지에 소개된 게이바 파운틴헤드 클럽(Fountainhead Club)은 여기서 파는 맥주의 양조장이 인근의 스탠리 공원(Stanley Park)에 있음을 명기해놓았다. 게이 남성 아론 웹스터(Aaron Webster)가 크루징하다 2001년 혐오자들에 의해 살해된, 한국으로 치면 탑골공원과 종묘공원에 해당할 곳이다. 살해당했을 때의 나이가 올해 내 나이랑 같은 만 42살이다. 밴쿠버 출신 이성애자 남성 작가 스티븐 가우어(Stephen Gauer)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2011년 소설 <Hold Me Now>를 출간했다. 자식이 게이였음을 몰랐던 아버지가 혐오 범죄로 아들을 잃은 후 자식의 행로를 추적하는 이야기다.[6] 무지개가 왜 무지개이며 그것이 왜 선주민 운동의 깃발 옆에 있어야 하고 그것이 어째서 단일한 정체성에 귀속되어서는 안되는지를 해량한 지역의 기풍이다. 내 감상을 들은 끼순이 베어 바텐더는 이곳이 너의 집이라고 응수했다. 고향의 집이란 그처럼 함부로가 아니라 남들이 공들여서 지은 거처였고, 나는 모처럼 그곳에 있는 것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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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진빈, 『백색국가 건설사』, 앨피, 2006.
[2] Daniel Belgrad, ""Powers' Larger Meaning": The Johnson County War as Political Violence in an Environmental Context", Western Historical Quarterly, 33(2), Oxford University Press, 2002; David Johnson, The Mason County "Hoo Doo" War, 1874-1902, University of North Texas Press, 2006.
[3] Andrei Ouspenski, Sex Work: Transitioning, Retiring and Exiting, Sex Work Exiting and Transitioning Consortium of the City of Vancouver, 2014, p.6.
[4]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of Canada, Summary of the Final Report of the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of Canada, 2015, p.42.
[5] Tara Lyons, Andrea Krüsi, Leslie Pierre, Will Small, Kate Shannon, "The Impact of Construction and Gentrification on an Outdoor Trans Sex Work Environment", Sexualities 20(8), SAGE Publication, 2017, p.884.
[6] Stephen Gauer, Hold Me Now, FreeHand Books,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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