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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호][활동스케치 #1] 언니의 분장실,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앵콜!
2026-04-03 오후 16:14:55
13
기간 3월 

 

 

[189호]

[활동스케치 #1]

언니의 분장실,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앵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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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을 준비하는 게이들의 모임으로 출발했던 친구사이 소모임 <언니의 분장실>이 어느덧 3년 차에 접어들며, 올해도 각자의 소중한 시간을 엮어낸 낭독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초기의 취지를 넘어, 이제는 희곡을 매개로 성소수자들의 팍팍한 인생을 보듬고 나누는 단단한 장으로 진화해가고 있다는 인상을 평소에도 받아왔다. 그리고 지난 3월 7일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이번 낭독극은 그 감상에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 순간이었다.

 

이번 공연은 김윤영, 진주, 최보영, 황정은 작가가 공동으로 작업한 희곡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바탕으로 진행되었다. ‘반려’를 핵심 주제로 삼은 네 가지 에피소드가 교차하는 구조 속에서 도니, 든든, 백순재, 소나기, 중년남, 진공상태, 초록도마뱀, 현지수 등 여덟 명의 배우가 무대에 섰고, 아미고와 미로가 목소리 연기와 연출, 스태프로 함께 호흡을 맞추었다.

 

극은 산재로 죽은 남편이 여전히 살아 있다고 망상하는 아내와 이를 지켜보는 어머니의 이야기로 막을 연다. 이어 세상을 떠난 반려견의 장례를 의논하는 가족과 친구, 어느 레즈비언 커플이 언니의 자식을 입양하게 되는 불편한 동거, 부모의 불륜과 이혼을 겪어내는 아이들의 시선이 차례로 교차한다. 이른바 ‘정상 가족’의 규범에서 조금씩 비껴가 있는 인물들이 서로의 결핍을 발견하고 기꺼이 돌봄을 내어주는 찰나의 순간들. 이 극이 포착해 낸 그 작고 빛나는 연대의 순간들이 당장 지금의 우리에게 던지는 감동은 실로 묵직했다. 극이 울리는 공간의 울림이 상당히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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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깊은 감동을 느낀 이유는, 극 속의 이야기가 결국 우리가 통과해 온 어긋난 반려와 가족에 대한 자화상이자 은연중에 가장 곤두세우고 있는 삶의 취약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친구사이와 함께하는 수많은 퀴어 커뮤니티 동료들이 이 극을 더 많이 마주하고, 각자의 삶 한편에 귀한 장면으로 남겨두기를 바라게 됐다. 다들 짐짓 태연한 척, 강한 척 세상을 살아가지만, 실은 그 누구보다 상실과 엇나간 관계의 서사 앞에서 다정한 위로가 절실한 존재들이 바로 우리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극이나 희곡을 경험한 사람들만 알겠지만, 인간은 각자 자기만의 '옷걸이'를 붙잡고 살기도 한다.

 

모든 배우가 무대 위 서사의 완벽한 당사자일 수는 없었겠지만, <언니의 분장실>이라는 퀴어 공동체가 품어낸 무대인 만큼 배우들이 다양한 젠더를 유연하게 횡단하고 교차하며 연기해 낸 지점 또한 탁월했다. 일상에서는 때론 ‘끼스럽다’는 납작한 비하로 치부되던 우리의 고유한 특성이 무대라는 장을 만났을 때, 그것이 얼마나 대체 불가능한 매력이자 강력한 무기로 전환될 수 있는지 경험하게 됐다. 더불어, 언니의 분장실 시작한 이후로 처음으로 시도한 한국 희곡의 낭독극이었다는 점도 관객들의 직관적인 이해와 정서적 몰입을 돕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한때 많은 이들이 연극의 자리를 영화가 대체할 것이라 전망했고, 실제로 연극 시장은 축소되며 '돈 안 되는 산업'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하지만 SNS와 숏폼 등 파편화된 디지털 매체가 범람하는 시대일수록, 역설적으로 특정 시공간을 직접 점유하고 타인과 다방면으로 감각을 교류하는 연극과 뮤지컬 특유의 물성은 더욱 선명한 힘을 발휘한다고 느낀다. 마치 스트리밍 서비스가 결코 라이브 콘서트의 열기를 대체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내 안의 웅크린 정서적 동력을 깨우고 타인을 향한 감수성을 확장하며 누군가와 깊이 연결되고 싶다면, 좋은 희곡을 바탕으로 한 연극을 찾아보는 것만큼 훌륭한 선택이 없다.

 

<언니의 분장실>이 빚어낼 다음 무대를 또 만날 수 있을까? 우리에게 또 선택지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즐겁게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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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상근활동가 
심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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