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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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임] 문학상상, 문학 한 숟갈
: 과감해서 더 끌려
- 박솔뫼, 《만나게 되면 알게 될거야》
박솔뫼 작가에 관한 세간의 평은 보통 이렇습니다. ‘어렵다. 그렇지만 끌린다.’, ‘자신이 할 말을 독자들과 타협하지 않고 한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았을 때 조금은 과감한 서술과 불친절한 표현이 그 이유일 거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정답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별다른 설명 없이 산새들이 노래하는 장면으로 대체한다거나, 등장인물이 환상 속 존재인 천사를 만난다거나, 문장을 끝마치지 않고 새로운 문장을 시작하는 것, 그리고 저자의 다른 책 《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에서 어디서부터가 현실이고 꿈인지 모호하게 표현하는 방식 같은 것들 말이죠. 이런 점이 독자에게 조금은 불친절한 모습으로 다가갈 거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처음엔 조금 어리둥절할 수도 있겠지만 작가가 만드는 작품, 세계관에 매력을 배가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작가는 어떠한 관념, 표현이 떠올랐을 때 그것을 독자들에게 더욱 쉽게 전달되도록 가공하기보다는 본인의 정신에 있는 원형을 작품 속에서 그 형태에 더욱 가깝게 나타내는 듯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책을 읽는 우리는 해석하고 느끼는 데 조금 더 품이 들 수 있겠지만 더 본질적인 관념의 형태에 다가설 수 있는 것이죠.
이효석 문학상을 수상한 박솔뫼 작가의 《만나게 되면 알게 될거야》도 어려웠지만 재미와 위로를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소설의 첫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던 ‘나’는 ‘쌀’이라는 이름의 천사를 만나게 되는데, ‘쌀’을 만나게 전까지의 이야기가 이 작품의 주요 내용입니다. 천사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갈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좋아하는 남자를 원하고, 거주할 주택을 구하고, 인생의 숨겨진 비밀들이 궁금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다른 여자들만 만납니다. ‘나’는 길을 돌아다닐 때 자신이 거주할 집들을 살펴보지만 결국 마음 놓고 머물 수 있는 공간은 숙박업소 뿐입니다. ‘나’는 너무도 답답한 나머지 누군가에게 인생의 근본적인 물음에 관해 물어보려 하지만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은 좋아하던 남자가 돌보는 어린아이 뿐입니다. 여러모로 답답한 상황입니다.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주된 심상은 쓸쓸함입니다. ‘나’가 뚜렷한 목적 없이 혼자 길거리에서 정처없이 떠돌기 때문입니다. 마치 고독을 이겨내기 위한 힘겨운 발걸음 같습니다. 돌아다니는 중에 끼니를 떼울 땐 주로 빵을 먹습니다. 이때 인물의 감정 묘사는 절제되어 있어 쓸쓸함을 느끼는 것은 독자의 상상력에 오롯이 맡겨져 독자는 과잉되게, 혹은 부족하지 않게 적당한 밀도와 양으로 ‘나’의 고독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작품에서 또 하나의 좋았던 부분입니다. 결국 어느날 ‘나’는 고독에 패배하고 맙니다. 어느 골목의 계단에 앉아 눈물 콧물 쏙 빼며 울어버립니다. 이때 천사 ‘쌀’이 나타나서 ‘나’의 눈물과 콧물을 닦아줍니다. 매번 빵으로 끼니를 떼우던 ‘나’에게 ‘쌀’이 나타난 건 의미심장합니다. ‘나’는 ‘쌀’에게 완전히 반해버렸고, 인생의 여러가지 궁금증들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게 됩니다. 실재 앞에서 관념은 무상하다는 것,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상념들은 행복의 바람에 흩날리듯 사라질 수 있다는 의미일까요? 이 해피엔딩은 이 소설을 읽을 쓸쓸한 독자들의 눈물과 콧물을 닦아줍니다.
이 작품이 다른 소설과 차별되는 점은 이야기의 서술 단위를 등장인물의 신체기관으로 삼았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작가는 제일 먼저 등장인물의 눈에 주목하여 눈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먼저 서술한 뒤에, 그런 뒤 코에 주목하여 코와 관련된 서사를 풀어나가고, 또 다른 신체기관으로 확장됩니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서술 방식이 아니라 신선하고 재밌었습니다. 작가의 과감함 속에서 생겨난 신선함이 잘 나타난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솔뫼 작가의 《만나게 되면 알게 될거야》는 조금은 어려웠지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읽을 때 행복하고 즐거웠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인 한국 문학의 문법에서 살짝 벗어난 재미있는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면 박솔뫼 작가의 작품을 추천드립니다.
문학상상 / 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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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4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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