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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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스케치 #6]
‘프라이드’가 부끄럽게 여기는 불법 존재들의
노프라이드 파티 참관기
노프라이드 파티가 열리기 전날, 애인과 파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어떤 마음으로 파티에 참석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어떤 마음’. 파티에 친구가 있고 용기를 주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 당연히 가야겠다 생각했던 자리에 어떤 마음이 필요할까. 깊게 고민해보지 않았던 질문이 잠들기 전부터 머릿속을 맴돌더니 다음 날 행사장으로 가는 길까지 내내 이어졌다.
행사 당일 사전 부스행사는 건너뛰고 오픈마이크 시작 시간에 맞춰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입구부터 사람들로 가득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여느 행사들에서 봐온 익숙한 얼굴들보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 많아 사뭇 긴장이 되었다.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마이크를 쥐고 무대 위에 오르는 사람들의 얼굴과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노프라이드 파티 포스터가 행사장 출입문에 부착된 모습 (제공 : 노프라이드 파티 기획단)
<‘프라이드’가 부끄럽게 여기는 불법 존재들의 노프라이드 파티>라는 제목처럼 트랜스젠더, 성 노동자, 농인 퀴어, PL, 약물사용자 등 사회와 커뮤니티에서 치부로 여겨지는 이들의 발언이 한 시간을 훌쩍 넘기며 이어졌다. 많은 발언자들 모두 공통적으로 적어도 오늘 여기에서만큼은 자신의 치부를 온전히 드러내고 마음껏 부끄러워하며, 사회가 허락하지 않은 것들, 배제의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했고, 무대 아래 빼곡히 앉은 참가자들이 환호와 박수로 화답했다.
탈학교 트랜스젠더 청소년 당사자들에게 검정고시 비용지원과 퀴어 청소년들과의 네트워킹을 계획하는 마음, 돼지농가에서 구조된 돼지 새벽이와 잔디를 돌보며 본인이 책임질 수 없는 것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늘 고민하면서도 돌봄을 실천하는 마음. 자신의 너절한 감정과 마음에 대해 유려한 언어로 세련되게 정의 내리기를 거부하는 마음, 혐오와 배제를 일삼는 구성원들에게 약물사용이라는 행위를 보지 말고 그 이면의 마음을 봐 달라 요청하며 대화와 사과를 요구하는 마음.
이처럼 사회에서 부정당하고 자긍심의 대오에서 밀려난 이들의 마음속 이야기들은 진창 같은 삶 속에서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버티며 살아내고 있음을 서로에게 증명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일정을 위해 공연은 보지 못하고 먼저 자리를 나오며 지난밤부터 머릿속에서 맴돌던 ‘어떤 마음’으로 파티에 참여하냐는 질문을 곱씹어보았다. 그 답은 바로 오늘 듣고 보았던 모든 이야기와 얼굴을 ‘외면할 수 없는 마음’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외면할 수 없기에 향할 수밖에 없다고.
▲ 오픈마이크 프로그램에서 IW31 에밀리 활동가가 발언하고 한국농인LGBT 수진 활동가가 통역하는 모습 (제공 : 노프라이드 파티 기획단)
"퀴어 이론가 캐서린 본드 스톡턴은 퀴어 아동이 어떻게 "옆으로(sideways) 자라는지" 적으면서, 퀴어의 삶이 흔히 결혼과 출산이라는 직선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스톡턴은 유색 인종 아동 역시 옆으로 자라는데 그들의 어린 시절도 퀴어 아동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백인 아동이라는 모델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내 경우는 어린 시절을 옆으로 보았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 옆으로 보는 것은 또 다른 것을 함축한다. "곁눈질"은 의심, 의혹, 심지어 경멸을 암시한다." - 캐시 박 홍, 노시내 옮김, 『마이너 필링스 : 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 마티, 2021[2020], 101쪽. |
여운을 안고 을지로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사회 속에서 혐오와 증오의 대상이 되고, 이야기하기 꺼려 하며 은폐되는 존재들과 아직 더 드러나지 않은 이 사회의 노프라이드는 얼마나 많을지에 대해 생각하다, 예전에 읽었던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에서 퀴어 아동이 ‘옆으로 자란다’는 표현에 무릎을 치며 밑줄을 그은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사회의 소수자로 혐오와 증오의 시선들 속에서 직선의 삶을 따르지 못하고 자긍심의 반대로 밀려나며 옆으로 자랄 수밖에 없는 이들. 그 위에 오늘 노프라이드 파티에서 마주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겹쳐졌다.
나에게 이번 노프라이드 파티는 혐오와 증오의 시선에 의한 곁눈질이 아닌 서로를 알고자 하는 마음과 연대의 감각을 통해 오히려 내가 더욱 옆으로 자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곳은 함께 앞으로 내딛는 한 발도 의미 있지만, 끊임없이 나를 깨치고,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옆으로 자라는’ 이들의 곁에 서는 것. 그것이지 않을까.
친구사이 정회원 / 낙타
[172호][활동스케치 #4]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관람기 (1) : ‘친구사이’를 보는 친구사이, ‘지보이스’를 보는 지보이스
2024-11-04 19:08
기간 : 10월
낙타님, 잘 읽었습니다...! 외면할 수 없는 마음, 한 발 내딛는 순간에도 곁에 친구들을 챙기는 다정함에 감동받았습니다. 저도 옆으로 자라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