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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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스케치#2]
청소년 성소수자 글쓰기 프로젝트 ‘퀴어-잇다’ 활동
2020 친구사이 청소년 사업팀에서는 학교나 지역사회 안에서 성소수자를 비롯한 다양한 인권옹호 활동의 모색과 실천을 지원하는 '목소리를 내자' 활동과 더불어, 꼭 대면하지 않더라도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일상 속 경험 또는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관계들을 바탕으로 자기 글쓰기를 하며 자기개방 및 타인과 연결의 경험을 나누고자, 청소년 성소수자 글쓰기 프로젝트 ‘퀴어-잇다’를 진행했습니다.
지난 9월 12일 줌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물건, 학교나 집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경험들, 나의 지지자, 내가 꿈꾸는 나 혹은 세상 등을 주제로 2주마다 한 번씩 총 4편의 자기글을 쓰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든 글쓰기가 끝난 12월 5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프로젝트의 마무리 인터뷰에서는, 그간의 글쓰기를 통한 참여자들의 소회들과 이후의 청소년 사업에 바라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요, 무엇보다 여전히 학교와 가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드러낼 수 없는 고충에 대한 토로와 함께, 특히 지역의 경우 성소수자들에 대한 정보들을 접하기가 어려울뿐더러 학교 도서관에 성소수자와 관련된 도서를 신청했다 거부를 당한 경험들은, 여전히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처한 현실이 어떠한지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한 시간 남짓의 인터뷰의 끝에 한 참여자 분은 어디서든 안전한 공간을 찾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이 말을 들으며 친구사이가 계속해서 해야 할 활동들과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아래에는 퀴어-잇다에 참여했던 청소년 두 분의 글을 공유합니다.
<‘나’를 드러내는 물건> 글: 라우릴
퀴어로 살면서 가장 힘든 점은 저의 퀴어한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을 분리해서, 저를 퀴어가 아니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에게 그 사실이 알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양육자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상태라서 제가 트위터에서 만난 친구에 대해서도, 제가 '이쪽'에서 이룬 성취에 대해서도 어떤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친구가 있고, 그 친구의 장점은 무엇인지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가족과 나눌 수조차 없습니다. 어디서 만난 친구인지 말할 수가 없으니까요. 트위터 퀴어계의 친구와 오프라인에서 만남을 갖고 싶어도 누구와 만나는지 외출 허락을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와 같아서 단념했습니다.
제 생애에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부산퀴어문화축제 홍보 슬로건 공모에 당선되었을 때였는데 누구에게도 자랑할 수 없어서 마음 한 켠에 아쉬움이 남기도 했습니다. 제가 어떤 공모에 당선되었는지 이야기하면 제가 퀴어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말 테니까요. 공모전 부상으로 제가 만든 문구가 적힌 캔뱃지가 제작되었는데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달고 다닐 수조차 없이 꼭꼭 숨겨야 했습니다.
제가 숨겨야 하는 것은 그 캔뱃지뿐만이 아닙니다. 저는 저를 드러내는 상징을 정말 좋아해서 프라이드 뱃지나 손깃발, 무지개 부채 등의 굿즈를 종종 사서 모았습니다. 그렇지만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착용할 수도, 전시해둘 수도 없어요. 여섯 색의 무지개는 무슨 뜻이냐, 요즘 자주 달고 다니던데 의미가 있는 거냐는 물음에는 대답하기가 정말 곤란할 테니까요. 지금은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다녀서 조금은 자유로워졌지만 당황스러운 순간은 종종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 가족을 만나러 나갔는데 제 가방에 꽂혀 있는 무지개 손깃발을 보고 이게 뭐냐고 물으셨을 때는 정말이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책 역시 그렇습니다. 동성애 소재가 들어간 책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양육자 때문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것도, 온라인에서 책을 구매해 집으로 보내는 것도 곤란합니다. 저는 여성 간 성애를 다룬 책을 두 권 가지고 있는데 가족에게 들킬까봐 다른 책의 표지를 대신 씌워 두었습니다. 표지에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 키스하고 있는 책은 별 문제없이 넘어 가지만 여주인공과 여주인공이 키스하고 있는 책을 걸리면 가족과 갈등이 생길 것이 분명해요. 숨겨 두기는 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심정입니다. 이성애를 소재로 한 책은 이렇게나 많고, 집에 두는 것도 당당할 수 있지만 어째서 동성애는 안 되는지 답답한 심정입니다.
애인이 저에게 보낸 쪽지, 저와 애인 사이의 편지도 숨겨야 할 물건 중 하나네요. 저는 법적 성별이 같은 애인이 있고, 애인의 이름만 봐도 어떤 성별인지 추측이 쉽기 때문에 편지를 들킨다면 제가 같은 법적 성별의 애인과 연애를 한다는 게 만천하에 알려지고 말 거예요. 저의 양육자는 보수적인 편이라서 제가 누군가와 연애하는 것에도 부정적인데 애인이 저와 같은 법적 성별이라는 게 알려진다면 저는 크게 혼나거나 어쩌면 집에서 쫓겨날지도 몰라요.
저의 퀴어함을 드러내는 몇 가지 물건은 저에게 무척 소중한 것이지만 가족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는 부분이 무척 슬픕니다. 제게 귀한 것, 제가 아끼는 물건을 남과 나누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그럴 수 없을 때 무력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제가 어른이 되어서 가정을 꾸린다면 제 아이의 정체성을 온전히 받아 주고 무엇을 가지고 있든 사랑할 겁니다. 가정 안에서 안전함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내가 꿈꾸는 ‘나’, 내가 바라는 세상> 글: 단순
내가 바라는 세상: 장벽 없는 퀴퍼를 하는 것, 성별에 대한 구분이 없는 것, HIV감염인이든, 바이든, 젠더퀴어든 모두가 친구 먹을 수 있고 공존이 당연시 되는 세상, 빈곤 없는 세상, 지구가 덜 아픈 세상, 서슴없이 나 자신을 찾아보고 나 자신을 알리는 게 당연한 세상, 섹스에 대해 모든 이들이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세상. 이 정도가 내가 바라는 세상이다. 참 소박한 것 같다.ㅋㅋㅋㅋㅋ
내가 꿈꾸는 ‘나’: 나 자신을 알고 아낄 줄 알며 모두에게 잘하는 멋있는 사람, 그저 퀴어를 위하는 한 사람, 만나면 즐거운 사람, 인생을 즐겁게 사는 사람이다.
결국 내가 꿈꾸는 세상과 ‘나’를 요약하자면, 세상의 모두가 친구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서로의 생각을 존중해 주고, 성에 대한 부끄러움이 사라지며 배척의 두려움 없이 ‘나’ 자신에 대해 깊이까지도 이야기 할 수 있는 세상이다. 또한 ‘나’ 자신은 자기 자신을 알며 ‘나’라는 존재가 두려워 마냥 배척하고, 무시하기보다는 ‘나’라는 사람을 바르게 탐구해보기도 하고 자신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그렇다고 개인만 생각하지 말고 다양한 다른 이들도 이해해보고 생각해보는 사람이다.
지금 내가 꿈꾸고 생각하는 세상과 ‘나’ 자신을 실현하기엔 어렵다. 아직은 나 자신을 무시하고 바꾸려드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은 나쁘다 하기도 하고 더럽다 그러기도 하고 이상한 사상에 찌들어 빠져나오지 못한다 하기도 하고 또 시간이 지나면 너는 달라질 것이다 하기도 하고 배척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꿈꾸는 세상은 마냥 꿈이 아닌 점차 다가오고 있는 실현 가능한 미래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오도록 지금 많은 이들 혹은 우리는 글을 쓰고 연구를 하고 통계를 내고, 인권운동을 하고 많은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은 올 것이고 와야 하지만, 우리 모두를 단합시키기까진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른다. 그러니 지금 자신의 세상에서부터라도 그런 세상을 만들고 그런 세상에서 먼저 살아봤으면 좋겠다. 인생은 짧으니깐.
마지막 긴 글을 마친다. 모두들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다.
친구사이 교육팀장 / 낙타
[172호][활동스케치 #4]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관람기 (1) : ‘친구사이’를 보는 친구사이, ‘지보이스’를 보는 지보이스
2024-11-04 19:08
기간 : 10월
청소년 당사자들의 글에 에너지들이 있어서 좋네
세상은 바뀌기도 했지만 여전히 안 바뀌고 있고, 청소년 사업을 조직이 꾸준히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발견한 것 같네
청소년 사업팀이 긴 호흡을 가지고 인내를 하면서 그리고 작은 행동들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