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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호][커버스토리 'HIV/AIDS' #2] 20년의 PL 커밍아웃 : 러브포원 대표 광서님 인터뷰 (2)
2018-11-30 오후 18: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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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1월 

 

[커버스토리 'HIV/AIDS' #2]

20년의 PL 커밍아웃

: 러브포원 대표 광서님 인터뷰 (2)

 

 

1990년대 초 종로의 게이업소
1994년의 교통사고와 HIV 감염 확진
1998년의 PL 커밍아웃 : <시사저널> 및 KBS 2TV <영상기록 병원24시>
1990년대 말엽 언론과 사회의 HIV/AIDS 이슈에 대한 태도
1998-99년 감염인 쉼터 생활
1999년과 2002년, 두 번의 태국 HIV/AIDS 유관기관 방문
게이커뮤니티의 HIV/AIDS 혐오
2014년, HIV 감염 20주년 파티
1999년 9월 러브포원 창립
2000년대 초반의 러브포원 회원모임

2004-2007·2009년, 감염인 인권회복을 위한 음악회
HIV 감염인과 비감염인 '사이'라는 화두
2005년, <HIV 감염인 및 AIDS 환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공동연구
러브포원의 전화상담
HIV/AIDS 운동에 있어 정부와 자본이라는 화두
감염인 진료 거부 사례와 운동 단체의 투쟁
수동연세요양병원 사건
2017년, <건강하게 생활하는 TIP> 책자 발간
20년의 PL 커밍아웃, 달라진 것과 그대로인 것
게이커뮤니티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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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cess for all : 감염인 인권회복을 위한 음악회>(2009.12.18.).

"Access for All"은 2004년 태국에서 열린 제15회 국제에이즈회의의 주제로,

"모두에게 치료접근권을 보장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진: 퀴어아카이브)

 

 

 

2004-2007·2009년, 감염인 인권회복을 위한 음악회

 

 

터울 : 러브포원의 활동내역을 죽 봤는데, 역사가 깊은 만큼 굉장히 많은 일을 하셨더라고요. 내년이 발족 20주년을 맞으시는데요.

 

광서 : 끼파티해야 되나요? (웃음)

 

터울 : (웃음) 인상깊었던 게, 제가 몸담고 있는 친구사이에서 지보이스의 활동이 도드라지기도 해서, 감염인 인권회복을 위한 음악회를 여셨던 게 눈에 들어왔어요. 제가 기억하기로 2017년에 KNP+에서도 <한여름밤의 빨간 음악회>라는 행사를 열었는데, 저는 그 음악회가 되게 좋았거든요. 얼굴을 가린 채였지만 감염인들이 나와서 노래도 했었는데, 비슷한 컨셉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음악회가 그 때도 있었다는 게 좀 놀라웠어요.

 

광서 : 그 음악회는 그 때 당시에 러브포원하고, 세울터라고 있었어요. 그리고 당시 감염인들을 도와주시던 두 분이 계셨는데, 그렇게 넷이서 얘기를 하다가 HIV/AIDS를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행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왔고, 생각 끝에 음악회를 기획하게 된 거죠. 처음에는 대학로 쪽의 소극장을 구해서, 가수분들도 알음알음 소개받아서 모시고, 감염인 아마추어 가수도 오게 하고, 그렇게 하자고 했는데. 거의 대관이 다 됐었는데 그걸 틀어버리는 거예요. 에이즈라는 주제 때문에.

 

터울 : 행사의 컨셉을 듣고요?

 

광서 : 네. 그래서 우리가 뭐라고 했던 게, 아니 음악회 한다고 해서 감염인들이 피뿌리고 노는 것도 아닌데, (웃음) 왜 안되냐고 항의했었고. 그리고 그 때 대한적십자사에서도 일을 많이 도와줬어요. 사실 우리가 돈이 없으니까 처음엔 맨땅에서 시작했거든요. 가수분들도 어찌어찌 소개받아서 한영애씨, 한동준씨, 나무자전거, 장필순씨, 안치환씨도 오시고 그랬어요.

 

터울 : 다 제가 너무 좋아하는 분들이세요.

 

광서 : 그런데 흥행은 실패했어요. (웃음) 그냥 똔똔이 됐죠.

 

터울 : 어쨌든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매해 개최하신 거잖아요. 이런 음악회를 5회까지 했던 건 꽤 오래 한 셈이고, 공력을 많이 투자하셨던 행사였던 것 같은데,

 

광서 : 너무 힘들었던 게, 사회를 내가 봤어야 됐었고, (웃음) 공연기획사도 내가 연락하고 포스터나 티켓도 내가 중간에서 담당해서 나오게 하고, 그러니까 이거 하다가 내가 대상포진을 앓은 적도 있었어요. 왜냐하면 그 때 내가 카페에서 일도 하고 그럴 때였거든요. 몸이 힘든 거예요.

 

터울 : 그리고 그 때 약을 안드셨다고 하셨죠?

 

광서 : 네. (웃음)

 

터울 : 그 영향도 있으셨을 거고요. (웃음)

 

광서 : 그 다음부터 먹었죠. (웃음) 그런데 지금도 기억나는 게, 그 때 오셨던 가수분들이 너무 관심을 가져주셨고, 또 그 때 녹색지대에 있는 한 분 같은 경우는, 우리 분위기가 솔직히 막 노는 분위기는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그날 말씀하신 게, 아니 음악회인데 분위기가 왜 이렇게 처지냐고, 분위기 좀 띄워보겠다고 말씀하시고.

 

터울 : 저는 되게 이전까지 몰랐었던 게 의아할 정도로 이게 나름 큰 행사였더라고요. 이게 항상 성소수자 운동 씬이 좁다보니까 뭘 하면 다 최초인 것 같잖아요. 그런데 들여다보면 그 전에 뭐가 항상 있는, (웃음)

 

광서 : 내가 그래서 얘기하는 거예요. 최초란 말 함부로 쓰지 말라고. (웃음)

 

터울 : 파보면 꼭 활동이 있어요. 사람들이 기억을 못해서 그렇지. (웃음)

 

광서 : 최초가 아닌 게 많아요, 진짜. (웃음) 그런데 난 그랬던 것 같아요, 보통은 이런 행사를 계기로 조직을 정비하고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기반을 만들려고 하는데, 사실 우리 쪽에서는 이 일을 하면서 돈을 줄 수 없는 입장이잖아요, 다들. 그러다보니까 그게 어려웠고, 또 하나가 이런 활동을 하다가 사람들한테 욕먹었던 적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나중에 하는 얘기가 내가 일을 거의 혼자 하는지 몰랐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까지 일을 많이 했냐고 그러다러고요. 말하자면 그 때는 욕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욕이 아닌 게 된 거죠. (웃음)

 

 

 

HIV 감염인과 비감염인 '사이'라는 화두

 

 

광서 : 그런데 잠깐 다른 얘기를 좀 하면, 사실 AIDS란 게 결코 가벼운 질병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활동하는 분들이 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게 보여서, 예를 들어서 아무리 치료제가 개발돼서 하루에 한번씩 약을 먹으면 될 정도가 되었더라도, 내가 약을 먹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는 게 더 좋잖아요. 그런데 막 활동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감염이 돼서 나타났는데 나는 화가 너무 나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너무 아무렇지 않게 '약 먹으면 되는데 뭐가 문제야'라고 얘기하는 게, 조금 나는 걸렸어요. 그런데 그게 물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건 아니지 않나는 생각이 들었어요.

 

터울 : 아무래도 90년대부터 현장을 보아왔던 부분이 있어서 그런 인식이 있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드냐면, 감염인과 비감염인의 장벽이 높으면 좋은 건지, 낮으면 좋은 건지는 사실 열려있는 문제 같아요. 게이커뮤니티에서 HIV/AIDS의 낙인이 특히 심한 게, '나는 절대 감염인일 리가 없어'라는 인식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내가 감염인일 수도 있다'고 상상해보는 게 되게 중요한 낙인 경감의 지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쨌든 동시에 HIV 감염 예방을 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니까, 그런 어떤 분투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이슈인 것 같아요.

 

광서 : 요즘 사람들 얘기가, 예전에는 HIV/AIDS하면 공포의 질병, 그런 식으로 너무 부각시킨 건 있지만, 지금은 또 너무 만성질환이라고 얘기하면서 약간 좀 경각심이 덜해진 게 있는데, 이 두 가지에 담긴 의미를 둘다 잘 갖고 가는 게 매우 중요할 것 같은데, 그걸 둘다 잡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터울 : 그렇죠. HIV/AIDS의 문제는 항상 그런 줄타기의 감각이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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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인권위원회, <HIV 감염인 및 AIDS 환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2005.12.

 

 

 

 

2005년, <HIV 감염인 및 AIDS 환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공동연구

 

 

터울 : 행사 얘기로 다시 돌아가서, 음악회 말고 러브포원에서 했던 행사들에 대해 조금 더 소개해주시죠.

 

광서 : 2005년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주받아 <HIV 감염인 및 AIDS 환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공동 연구 사업을 수행했었어요. 그 이전까지는 감염인들의 인권침해 상황에 대해 드문드문 부분적으로 이야기가 되었는데, 처음으로 그것이 어느 정도 모아져서 문서화된 게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터울 : 사실 비슷한 시기에 친구사이에서도 HIV/AIDS 관련 연구에 참여했던 적이 있죠. 2004년 <한국 남성 동성애자들의 성행태와 후천성면역결핍증에 대한 인식>이라는 논문으로 출간된 적이 있고요.

 

광서 : 그리고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자살 문제예요.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체감하기는 힘들 수도 있는데, 감염인들이 많이 자살하고 있거든요. 작년 우리 연구결과를 보면, 감염인의 자살 시도율이 동일 연령대에 비해 40배가 높아요. 여기서 묻고 싶은 게, 의학적으론 아주 발전해서 하루에 한번 약 먹으면 되고, 앞으로는 주사 한번 맞으면 두 달 동안 약을 안먹어도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데, 왜 아직까지도 감염인들이 그렇게 자살을 많이 할까-에 대해서는,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도 같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터울 : 20년 전에 비해 HIV/AIDS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사실상 똑같은 상황이잖아요. 의학적인 발전에 비해서.

말이 나와서 말인데, 활동하시면서 이런저런 HIV/AIDS 혐오세력들의 접근이나 전화를 받아보신 적이 있는지 궁금해요. 그런 사람들의 활동 때문에 사회적인 낙인이 안 없어지는것도 사실이잖아요.

 

광서 : 그런데 우선은 사실 가장 체감이 컸던 건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의 낙인이에요. 왜냐하면 나랑 상관없고 그런 경우는 대부분 무시할 수 있는데, 가뜩이나 게이커뮤니티가 좁고, 어떻게 보면 게이들도 소수자라고 느끼는 상황에서, 이중삼중의 낙인이 있다보니까, 감염인들이 숨을 쉬기 어렵게 되는 거죠. 아까도 얘기한 것처럼, 지금은 이해가 안되는 그런 상황들이 그 때는 많았고. 나를 막 욕하던 술집 주인이 있는데, 그 술집에 일하던 친구도 감염인인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 주변에는 감염인 없다고 그렇게 얘기하고. 그런 것들이 아마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반동성애 세력들의 경우는, 사실 그런 걸 볼 때마다 영향을 안받으려고 하면서도, 아 내가 저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되게 쓰레기고 사회악이구나, 그런 느낌이 간혹 들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어떻게 보면 나같이 닳고 닳은 사람도 그런 느낌이 드는데, 갓 감염됐거나 그런 사람들이 봤을 땐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고. 전에 한번 토론회 같은 델 간 적이 있는데, 거기에 그 사람들이 작정하고 온 거예요. 작정하고 '에이즈=동성애'를 외치고 있는데, 끝나고 나서 내가 느낀 게 말로 사람을 죽인다는 게 이런 거구나-라고 느꼈어요. 온몸이 실제로 너무 아픈 거예요. 되돌려주고 싶은데 되돌려줄 방법도 없고. (웃음)

 

터울 : 그게 문자 그대로 '혐오발언'의 뜻이 되는 거잖아요.

 

광서 : 나는 그래서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는 관계자들이 너무 고맙고 한편으로 염려되는 게, 그런 행사를 할 때마다 그런 혐오발언들을 다 앞에서 막아주고 있잖아요. 그 사람들은 끝나고 나서 괜찮을까-라는, 그런 생각도 들어요. 그런 소리를 옆에서 들어도 힘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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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브포원 홈페이지(2018.11.현재)

 

 

 

 

러브포원의 전화상담

 

 

터울 : 러브포원에서 전화상담도 하셨었나요?

 

광서 : 했었어요. 24시간 전화상담을 받았었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니까 감염인들이 정보가 없다보니까, 진짜 사소한 뭔가가 있어도 나는 뭔가 특별한 치료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터울 : 건강에 대한 편집증이 생기죠, 몸에 대한.

 

광서 : 심지어 새벽 3-4시에 전화가 와요. 그러곤 "나 눈에 다래끼 났는데 어떡해야 돼요?" 그래요. 그러면 병원 가세요- 그러고 끊는데, (웃음) 그 사람한텐 그게 너무 중요한 문제인 거예요. 왜냐하면 HIV에 감염되면서 병원도 지정 병원에 갔어야 했던 때였기 때문에, 모든 것들에 있어 새로운 치료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터울 : 24시간 상담을 거의 혼자서 하셨던 거군요.

 

광서 : 그 때는 휴대폰 두 개 들고 다녔어요. 하나는 내 것, 하나는 상담용.

 

터울 : 그렇죠, 그걸 혼자서는 감당을 못하죠. 상담업무가 참 힘든 것 같긴 해요. 감정소모가 심한데 뭔가 남는 느낌이 있지도 않고, 끊임없이 뿌리는 느낌이잖아요. 소진되기도 쉬울 것 같고. 그래도 어쨌든 그 와중에 낙이 있으셨다고 한다면, 뭔가 정보를 얻고 사람들이 바뀌는 모습들을 보는 것이었을까요?

 

광서 : 그러니까 나중에, 지나고 나서 그 때 고마웠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떤 친구들은 내가 아니었으면 자긴 죽은 목숨이었다-라고까지 얘기하는 분들이 간혹 계세요. 그런 얘기 들으면 어쨌든 내가 한 일들이 그냥 완전히 의미없는 건 아니었구나, 그런 생각은 들죠.

 

그런데 진짜 게이커뮤니티에 나쁜 놈들이 많아가지고, 감염인인 걸 알고 돈 뜯어내는 사람도 있고, 막 협박하면서,

 

터울 : 사실 그런 경우들은 잘 기록되지조차 않은 일이잖아요. 지금 이렇게 인터뷰가 되고 녹취가 풀려서 기사화되면 이게 기록으로 남는 건데, 더 기록되어야 할 게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광서 : 내가 상담했던 분의 경우는, 이 분은 지방에서 흔히 말하는 유지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과거 나이가 든 대다수의 게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분도 결혼을 하고 애가 있었던 상황이었어요. 누굴 만났는데, 만나고 나서 HIV 감염 사실을 알게 된 거예요. 덜컥 겁이 나니까 만나던 게이에게 자기 감염 사실을 얘기하고, 상대에게 HIV 검사를 시킨 거예요. 그만큼 이 사람은 상대방에게 잘해줬던 거죠. 심지어는 집도 구해주고 가게도 해주고 다 해준 거예요. 그렇게 하면서까지 그 상대방을 곁에 두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그 상대방 게이가 이 사람을 고발하겠다고 협박하는 상황이 된 거예요. '너 처음부터 감염 사실 알고 나 감염시키려고 만났지' 그러면서. 그 상황에서 이 사람은 협박 가운데 돈을 몇 번이고 몇천씩을 해준 거예요. 그러다 힘드니까 연락이 온 거죠. 그 얘기를 듣다보니까, 상대방 게이가 진짜 쓰레기거든요.

 

터울 : 만약 그 사람이 감염됐다 하더라도, 해당 파트너에게 감염됐다는 걸 입증할 수도 없잖아요.

 

광서 : 심지어 그 상대방 게이는 감염이 아예 안된 사람이었어요. 이 사람은 자신의 감염 사실을 알고 혹시 감염됐을까봐 검사를 시켰던 거고요. 그래서 그 사람에게 단호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하면서, 어차피 얘한테 끌려가느니, 지금부터 통화 기록과 문자 내역을 다 캡쳐해서 협박죄로 고소할 거라고, 강하게 대응하라고 얘기했더니 한동안 연락이 끊겼어요. 그리고 나중에 이 분의 연락을 받았는데, 이 사람이 그렇게 나오니까 상대방 게이가 이전의 애인에게 연락이 왔다면서 미안하다고 하고는 전애인에게 돌아갔다고 하더라고요.

 

터울 : 협박을 한 사람이?

 

광서 : 네. 그러니까 그렇게까지 세게 나올 줄 몰랐던 것 같아요.

 

터울 : 어쨌든 헤어지긴 했네요. 이게 참, 게이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문제와도 연결되는데, 게이커뮤니티를 가까이 하지 않고 너무나 인적 네트워크가 부족한 상황에서, 좁은 커뮤니티에서 연애를 시작하게 되는 경우에, 두 사람이 뚝 떨어지게 되면 정말 그 두 사람 사이에서 깽판이 벌어지게 될 경우에 온갖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생겨나잖아요. 연애 사기부터 시작해서.

 

광서 : 은둔이란 사람들이 보통 그런 걸 겪게 되죠.

 

터울 : 그렇죠, 거기에 PL 이슈까지 끼게 되면 더 난맥이 생기는 상황을 소개해주셨던 것 같아요.

 

광서 : 이 사람들은 어쨌든 동성애자라는 게 알려져도 그렇지만 PL인 게 알려져도 안되는 상황이니까요.

 

터울 : 이중의 아우팅이 되는 셈이니까요. ...참 이게, 정말 좋게 포장이 안되네요. (웃음)

 

광서 : HIV/AIDS는 좋게 포장이 안돼요. (웃음)

 

터울 : 알겠습니다. 체념하기로 하고, 이대로 내보내야죠 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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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국제에이즈컨퍼런스(International AIDS Conference) 사전행사 (2018.7.22.)

 

 

 

HIV/AIDS 운동에 있어 정부와 자본이라는 화두

 

 

터울 : 살짝 어려운 얘기를 좀 나눌 게요. HIV/AIDS 관련 민간단체와 일정하게 관계하고 계신데요.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특징이라고 하면, 정부에서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다 각자 개인과 단체들이 후원을 받아서 운동을 키워왔고, 2000년대 들어서야 국가인권위원회나 아름다운재단 등을 통해 펀딩이 들어오게 되었는데요. 운동 스스로 정부와 자본에게 펀딩받은 경험이라든가, 그 과정에서 정부와 자본과 어떻게 윤리적인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경험과 논쟁은 미국에 비해서는 비교적 초보적인 상태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HIV/AIDS 이슈에 있어서만큼은, 초창기부터 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에서 돈을 받아서 사업을 했던 경험이 있고, 남성동성애자가 위험취약군으로 되어있어서 정부로부터 커뮤니티에 돈이 들어오는 상황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정부, 제약회사의 자원을 어떻게 운동에 끌어쓰고, 그러면서 어떻게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을지에 대한 경험과 논쟁의 결들이 더 풍부하게 존재했던 것 같아요.

 

가령 한쪽에서는 2003년부터 iSHAP이 출범해서, 질병관리본부 산하의 사업부로서 정부의 돈으로 검진을 하고 콘돔을 나눠주고, 그것도 당연히 중요한 활동 중의 하나인 거죠. 그리고 다른 쪽에서는 2008-9년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에 대한 의약품 접근권 투쟁이 벌어진 바 있었죠. 이 이슈는 제약 회사의 이권과 약제의 특허권이 끼어있는 복잡한 문제이기도 했고요. 이렇듯 전선이 폭넓게 퍼져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런 걸 보실 때, 활동하시면서 정부 및 제약 회사의 자원과 관련된 경험을 여쭙고 싶어요.

 

광서 : 되게 조심스러운 이야기이긴 한데, 그런 자원에 대해 너무 배척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푸제온 투쟁 당시엔, 사실 푸제온이 그 당시에 감염인에게 필요한 치료제였고, 결국 끝까지 협상이 안돼서 결과가 안좋게 됐지만,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사건이란 생각을 해요. 그리고 그 이후로 감염내과 전문가들이 푸제온 도입에 대해서 응급성이 없다는 발표를 한 적이 있거든요.

 

터울 : 응급성이 무슨 뜻이죠?

 

광서 : 그러니까 그 약이 아니어도 대체할 약이 있다는 거죠.

그리고 제약 회사가 이윤을 많이 추구하는 건 비판받아 마땅한데, 한편으로 내가 네덜란드에 갔을 때 너무 부러웠던 게,

 

터울 : 어떤 경위로 가게 되셨죠?

 

광서 : 2018년에 세계에이즈회의 홈페이지를 통해 조직위에서 주는 스칼라십 신청을 했는데, 왕복 비행기표값이랑 회의등록비는 주겠으니 나머지의 체류비·생활비는 자가부담하라고 해서 갔다온 거였어요. 거기에 이번에 캐나다 쪽에서, 요즘 한참 뜨거운 U=U(Undetectable=Untransmittable, HIV 감염인이라 할지라도 약제 복용을 통해 몸 안에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을 경우, HIV 전염 또한 불가능하다는 뜻)를 가지고 제약 회사에서 펀딩을 받아서 하나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준비해서, 부스를 차리고 거기서 본인들의 주장을 피력하고, 그게 올해 학회의 메인 이벤트처럼 활동했었어요. 그 사람들은 국제회의에 다 스칼라십을 받아서 활동했고. 난 사실 그게 너무 부러웠거든요.

 

제약 회사의 펀딩을 받는다고 해서 해야 될 말을 못하거나 휘둘리거나 하는 건 잘못되었지만, 나는 이쪽의 자원을 가능한 받아서 우리 쪽에 필요한 데 쓰면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조심스럽긴 한데, 러브포원의 경우는 온라인 교육 동영상 제작이라든지 설문조사, 책자 만드는 건 다 사업 프로포절을 내서 펀딩을 받아서 진행하고 있는 거거든요.

 

터울 : 주로 어디서 펀딩을 받으세요?

 

광서 : 골고루 다 냈어요. 처음에는 한국얀센(Janssen Korea)도 있었고, 길리어드(Gilead Sciences), GSK(Glaxo Smith Kline),

 

터울 : 이게 다 제약회사인 거죠?

 

광서 : 그렇죠. 펀딩을 받고 사업이 끝난 뒤에는 증빙하고 결과보고서를 제출하면 되는 거고.

 

터울 : 그렇게 나름대로 사업을 위해서 펀딩을 적극적으로 알아보시는 건데, 혹시 이렇게 돈을 받을 때 사측에서 요구하는 게 있었을까요?

 

광서 : 요구하는 건 그거였어요. 사업을 하면서 본인들의 로고나 약품 이름이 들어가면 안돼요.

 

터울 : 아, 오히려 들어가면 안되게 하나요?

 

광서 : 네.

 

터울 : 되게 신기하네요. 보통은 넣는 게 이익일 거라고 생각할 텐데, 오히려,

 

광서 : 그게 제약 회사 특유의 태도인 것 같아요. 우리가 교육이나 설문조사를 할 때도, 거기에 의료인이 있냐 없냐를 봐요. 특히 감염내과 교수가 있으면 안되고.

 

터울 : 그건 왜 그런 건가요?

 

광서 : 제약 회사의 펀딩이 현직 의료인에게 영향을 주는 걸 막는 거죠. 만약 의료진에게 제약 회사의 돈이 들어가면, 그 의료진은 처방할 때 해당 제약 회사의 의약품에 대해 더 신경을 쓰게 되잖아요. 그걸 차단하려는 목적인 것 같아요.

 

터울 : 그러니까 사측에서 나름대로 공공성을 생각하는 거군요. 의료진이 제약 회사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는 그런 장치들인 거군요.

 

광서 : 그리고 강의 내용 중에 자기 회사의 약품명이 들어가면 이거 빼달라고 연락이 와요.

 

터울 : 이게 전형적인 자본주의 기업에서처럼, 자사 로고가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홍보 전략과는 반대로 돌아가는 거군요. 어떤 의미에서는 더 교묘한 것이기도 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나름대로 어느 정도 공공성에 대한 제어 장치가 있는 것이기도 하고.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좀더 정교하게 되어있네요. 어떻게 보면 '마음 편하게 돈받아써도 된다'는 식의 사인을 주는 거군요.

 

광서 : 물론 마음껏 펀딩해주지는 않고, (웃음)

 

터울 : 그렇죠. (웃음) 남의 돈 받는 게 쉬운 건 아니죠.

 

광서 : 그리고 프로그램 비용만 책정되니까 인건비 명목으론 줄 수가 없고.

 

터울 : 어쨌든 그런 자원들을 잘 이용하는 것도 중요한 전략이라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광서 : 외국 같은 경우도 그런 자원을 많이 활용해서... 물론 데모가 필요하거나 비판할 땐 비판해야겠지만, 필요할 때는 활용할 필요도 있는 것 같아요.

 

터울 : 이제는 단체들도 어느 정도는 외부 재단의 펀딩을 통해 사업을 하는 추세이니까요. 어쨌든 정부와 자본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필요하나, 그런 자원들을 운동의 프로젝트에 사용하는 노하우나 입장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광서 : 사실 세계에이즈회의나 그런 행사들도 다 제약 회사 돈으로 운영되는 거거든요. 아주 원론적으로 따지면 거기도 가면 안되는 것일 텐데,

 

터울 : 네, 무슨 말씀이신지 전달이 되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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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V 감염인을 위한 스케일링 목적으로 진료 시트에 비닐을 감아둔 모습 (2015.10.2, 서울시립보라매병원)

 

 

 

 

감염인 진료 거부 사례와 운동 단체의 투쟁

 

 

터울 : 이제 투쟁 얘기를 할 게요. 투쟁을 안하셨던 게 아니기 때문에, (웃음) 진료 거부에 대해서 좀 얘기나누고 싶어요. 진료 거부야말로 지금까지 투쟁하고 있는 이슈이기도 하고, 기사를 보니까 진료 거부를 직접 경험하신 적도 있으시더라고요. 그 때의 경위가 궁금합니다.

 

광서 : 사실은 병원 진료 거부나 감염인 인권 침해 관련해서 시위할 때, 거기에 사용된 사진 중 대부분이 내가 경험하고 내가 찍은 거예요. (웃음)

 

터울 : 아 그래요? 그 치과병원에서 비닐로 둘둘 만 사진도,

 

광석 : 다 내가 찍은 거예요. 병원에서 "우리 병원은 에이즈 청정지역입니다" 걸어놓은 사진도 내가 찍은 거고.

그러니까, 항상 진료 거부는 많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의료진들이 하얀 가운을 입고 있으면 뭔가 신뢰가 팍팍 가잖아요. 그래서 뭔가 다 얘기해도 될 것 같은데, 그런 식의 진료 거부가 내가 다니고 있는 병원에서 일어나면 상처를 더 크게 받고, 어떤 친구는 그걸로 인해서 의료진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깨져서 치료를 안하다가 사망하는 경우도 있어요.

 

나도 이제 병원에 가면 싸움닭 아닌 싸움닭처럼, 자꾸 그런 게 보이다보니까 자제하려고 하는데, 막상 보면 자제가 안돼요. 2010년에 입원했을 때도, 식판에 내 이름 써있고 'HIV' 써있고, 다른 식판엔 '일반식' 써있는 거예요. 사진 찍으면서 내가 먼저 봐서 다행이지 누가 와 있는데 그걸 봤어봐요. 그래서 그것도 불러서 바로 얘기하고.

 

치과 문제도 되게 불쾌했었죠. 시트를 랩으로 둘둘 싸고,

 

터울 : 아 그 사건의 당사자셨군요. 전혀 몰랐어요. "우리는 김장김치가 아니다"라는 역사적인 구호의 주인공이셨군요.

 

광서 : 네, 나 배추될 뻔했어요. (일동 폭소)

 

터울 : 너무 불쾌하셨겠어요. 그래서 요새 치과에 가면 그 사건이 생각나요. 만약에 내가 감염인이면 난 여기서 어떤 대우를 받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광서 : 난 사실 클럽에서 머리 찢어져서 응급실 간 적도 있었거든요. (웃음) 그런데 그 때는 오히려 걱정이 되는 거예요. 접수하는 의사분이 있는데, 피가 나도 아무렇지 않게 진료를 보길래, 내가 감염 사실을 얘기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 사실은 HIV 감염인이라 혈액 조심하세요', 이렇게 얘기했는데, 그 분은 아무렇지 않게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다 알아서 해요'라고 대답하시더라고요. (웃음)

 

그런데 문제가 되었던 병원은 전혀 딴판이었던 거죠. 치과에 "에이즈 청정구역"이라고 써붙여놨는데, 내가 여기 다니고 있는데, 무슨 청정지역은 뭐야, (웃음) 전에는 서울 시내 서대문구 지역에 있는 치과병원 10군데를 기자랑 같이 다니면서, HIV 감염사실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어요. 그러니 8군데에서 진료를 거부하더라고요.

 

터울 : 그렇게 당사자로서 경험을 하시고, 그 일에 대해 운동 단체에서 대응을 하기도 했었잖아요. 진료 거부에 관해서 보고서도 나오고.

 

광서 : 일단 그런 게 있으면 나는 증거를 남겨요. 먼저 병원에 얘기를 하고, 병원에서 듣지 않으면 그 때 운동 단체와 얘기를 하죠.

 

터울 : 그런 사례를 당사자로서 계속 제공해주시는 거군요. 말하자면 채증을 해주시는 거네요. (웃음)

 

광서 : 그런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기록을 남기는 게.

 

터울 : 저도 그 사진들을 봤는데, 그 사진의 당사자가 형이라는 건 진짜 처음 알았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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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동연세요양병원 측의 방치로 사망한 故 김무명씨의 1주기 추모제 홍보전단 (2014.8.21)

 

 

 

수동연세요양병원 사건

 

 

터울 : 수동연세요양병원 얘기로 넘어갈 게요. 워낙에 큰 이슈였는데, 이 때 어떤 마음이셨고, 어떤 식으로 연대하셨는지 궁금해요.

 

광서 : 거기서 감염인이 사망하게끔 방치하고, 그 안에서의 여러 사태들을 보면서, 그리고 병원측에서 나중에 고소고발까지 가는 걸 보면서, 흔히 하는 말로 사람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사람 보면 너무 창피한 게, 어느 의사가 '나 환자 몇 번 진료했어', 그런 걸 자랑하냐고요. 사실 전문성도 없는 거고, 그렇게 따지면. 그런 식으로라면 나도 '감염인 몇 명 상담했어' 그렇게 자랑해야되나? (웃음)

 

그 수동연세요양병원 사건이 나한테 어떤 의미로 다가왔냐면, 병원을 옮기게 됐어요. 사실은 감염인들이 병원을 옮기는 건 되게 큰 문제거든요. 또 다른 어딘가에 가서 나를 드러내야 되고, 그런 부담이 있는 건데. 나는 98년에부터 신촌세브란스에 다녔어요. 그러다가 수동연세요양병원의 감염인이 사망했을 때 "이 환자는 사망할 수도 있는 환자였기 때문에 최근에 진료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는 말도 안되는 소견서를, 세브란스의 최준용 교수가 써준 거예요. 그런데 나중에 의료법을 공부하고 보니까, 사망한 환자에 대해서 소견서를 써주려면, 그 환자가 사망한 시점의 48시간 안에 진료를 본 사람만 써줄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도 아닌 사람이 써준 거죠.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최준용 교수한테 장문의 편지를 보냈어요. 김준명 교수에게도 같이. 편지에 그렇게 썼어요. 선생님들 논리라면 나도 죽을 수 있는 환자인데, 지금까지 살게 해줘서 고맙고 더 이상은 내 몸을 맡길 수 없어서 나는 병원을 떠나겠다고 편지를 쓰고 나온 거죠.

 

터울 : 아, 거기에 연루되었던 의사한테 계속 진료를 받고 계신 상황이었군요.

 

광서 : 최준용 교수가 김준명 교수의 제자인데, 같은 세브란스쪽이니까 수동 측에서 소견서 써달라고 부탁받아서 써줬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터울 : 너무 기분이 이상하셨을 것 같아요. 나와 매일 대면했던 의사가 그런 짓을 한 거잖아요.

 

광서 : 그러니까요. 그런데 둘다 메일을 읽고는 답장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 다음부턴 학회장 같은 데서 마주치면 인사를 안해요. 그리고 러브포원 홈페이지, 최준용 교수에게 쓴 이메일을 공지사항에 올려놨었어요, 일부러. 이 사람의 논리를 보면, 감염인은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환자거든요. 

 

터울 : 이건 또 처음 알았네요, 세상에. 저도 이 사건은 기억하거든요, 너무 비극적이어서. 이게 '수용'의 문제와도 연결되잖아요. 과거 '수용소'에서 발생하던 굉장히 전형적인 일들 중의 하나였는데, 거기에 조선일보의 그 말도 안되는 너무나 악의적인 그 기사와,

 

광서 : 박국희 기자. 이름도 안 까먹네.

 

터울 : 그런데 어쨌든 본인의 내담 의사였던 사람이 그런 사건의 주인공이었다는 걸 깨달으셨을 땐 너무 큰 충격이었을 것 같은데요.

 

광서 : 그래서 바로 병원을 옮겼어요. 병원을 옮길 때 상담 간호사들이 되게 미안해하더라고요, 나한테. '선생님, 주치의만 옮기면 안돼요?' 그러면서. 어차피 여기에 있으면 서로 다 보게 될텐데 그래서 나는 옮기겠다고 한 거죠.

 

터울 : 그렇게 거의 20년 가까이 있었던 병원을 옮기게 되셨던 거군요. 이걸 안 여쭤봤으면 큰일났을 뻔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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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하게 생활하는 TIP>(2017)

 

 

 

 

2017년, <건강하게 생활하는 TIP> 책자 발간

 

 

터울 : 2017년에 <건강하게 생활하는 TIP> 책자를 발간하셨습니다. 당사자의 시각으로 넣을 수 있는 정보들이 담긴 느낌이었는데요. 준비하시면서 어떤 걸 중점으로 두셨는지 궁금해요.

 

광서 : 일단은 다시는 안 만들겠단 생각을 했고, (웃음) 너무 힘들었어요. 사실 2004년 쯤에 질병관리본부에서 <감염인 생활상담>이라고 해서, 민간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상담할 때 도움이 되라고 책을 만든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너무 오래됐고 그 사이에 정보들이 많이 바뀌었는데, 질병관리본부에 몇 번 요청을 해도 만들 사람이 없으니까 못 만들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제약 회사에 이걸 만들겠다는 프로포절을 낸 거죠. 그랬는데 그쪽에서도 너무 필요하다고 하면서, 오히려 꼭지를 나눠서 한 3-4번 나누어 만들자는 제안이 왔는데 나는 한꺼번에 만들겠다고 했죠. 다행히도 같이 글을 써주신 분들이 흔쾌히 OK해주셔서, 혼자 했으면 엄두를 못냈을 거예요. 어쨌든 만들고 나니 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터울 : 책자 중에 어떤 부분에 제일 애착이 있으세요? 이 부분은 감염인에게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광서 : 다 중요한데, (웃음) 일단은 초점을 맞췄던 게, 나는 사실 모든 영역에서 활동가들이 나온다는 건, 그만큼 그쪽 영역 현장의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거든요. 그리고 감염인들도, 누구나 다 나와서 활동할 필요는 없다고 보고, 나름대로 약을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내면 된다고 보고요. 그래서 감염인들의 생활정보에 대해 많이 넣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약 먹고, 같이 생활할 땐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그 다음에 내가 안타까운 게, 사람들이 감염 사실을 알게 된 후에 만에 하나 가족들이 잘못될까봐 떨어져나와 사는 사람들을 많이 봤거든요.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거든. 그래서 그런 것들에 많이 중점을 두었던 것 같아요.

 

터울 : PL 친화적인 의료기관 목록도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광서 : 그런데 의료기관들은 사실 상담간호사가 있는 기관 말고는 상황이 자주 바뀌어서, 그때 그때 확인을 해봐야 하는 상황이긴 해요.

 

터울 : 그럼 이 책자를 제작하실 때도 제약 회사의 펀딩을 받고 하신 거고, 거기에 제가 기억하기로는 회사의 로고가 전혀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광서 : 네, 전혀 안 들어갔어요.

 

 

 

 

20년의 PL 커밍아웃, 달라진 것과 그대로인 것

 

 

터울 : PL로 커밍아웃하신 지 2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요. 20년 전에 비해 어떤 점이 바뀌었고, 어떤 점이 그대로인지 궁금해요.

 

광서 : 어쩌면 바뀐 것과 바뀌지 않은 게 똑같은 하나인 것 같은데, 이 질병을 바라보는 시각은 똑같은 것 같기도 하고 바뀐 것 같기도 해요. 어떤 친구들은 이전과 다르게 바뀌어서 같이 옆에서 감염인과 호흡하려고 하고, 어떤 친구들은 더 심하게 배척하려고도 하고. 누가 전에 그랬는데, HIV/AIDS는 아무리 좋게 포장을 해도 좋게 보일 수가 없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말이 어떻게 보면 맞는 것 같아요.

 

아까도 아름답게 포장이 안된다고 말했지만, (웃음) 이걸 어떻게 포장해야 아름다워질까요, 미담을 막 써놓기도 그렇고. 그리고 나는 사실 지금도 느끼는 게, 감염인들이 하루하루가 투쟁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사는 곳에서. 그게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런데 그게 아름다울 수는 없잖아요?

 

터울 : 뭐 굳이 아름다울 필요는 없죠, 사실. 아름답지 않다는 것에서 시작해야 되는 것일 수 있고.

 

광서 : 일단 달라진 걸 굳이 꼽자면, 자신을 드러내는 감염인이 많아진 것? 모든 이들에게 드러내지는 않더라도, 지인들에게는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그리고 예전에는 포장마차에서 술먹으면서 HIV/AIDS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는 먹다보면 자기들끼리, 물론 잘못된 정보도 오가지만, (웃음) 술먹으면서 HIV/AIDS 얘기하고 있고.

 

터울 : 맞아요, 논쟁된다는 게, 말이 있다는 게 침묵보다는 훨씬 나은 상태인 것 같아요.

 

광서 : 물론 가끔 그 논쟁이 너무 커서, 상처받는 분들도 있어서 안타깝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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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커뮤니티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

 

 

터울 : 마지막 질문입니다. 2018년 현재 게이커뮤니티의 감염인과 비감염인에게 각각 따로 하고 싶은 말씀 한 마디씩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광서 : 감염인들에게는, 나도 못하고 있는 거지만, (웃음) 누군가에게 감염 사실을 얘기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당당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HIV/AIDS 문제에 있어서, 굳이 내가 감염인이니까-라고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냥 어떤 이슈가 나왔을 때 그냥 도둑이 제발저린 격으로 말을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경우에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비감염인들에게는, 제발 공부 좀 했으면 좋겠고. (웃음)

 

터울 : 어우 통쾌하다, (웃음)

 

광서 : 사실 감염인들도 공부해야 돼요. 너무 몰라. 상담하면서 가장 갑갑할 때가, 자기가 먹던 물컵의 물을 조카가 먹었는데 감염되냐고 난리치는 사람들이 있어요.

 

터울 : 여전히, 이반시티 상담실 게시판에 올라오는 질문들처럼,

 

광서 : 자기가 감염인인데 그래요. 최소한 자랑할 건 아니더라도 자기 몸은 자기가 알고 있어야 되거든.

 

터울 : 한 가지만 더 여쭤볼 게요. 선구적인 PL 커밍아웃을 하셨던 선배님이시잖아요. 앞으로 또 PL 커밍아웃이 많이 있을 것 같은데, 그 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광서 : 첫 번째는, 모르겠어요 아직은... 힘든 상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 상황에서도 커밍아웃을 결심했다는 것에는 격려를 해주고 싶고,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게이커뮤니티와 일반 사회 안에서 HIV/AIDS에 대해서 괜찮은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항상 좋은 사람만 만날 수는 없거든요. 예를 들어서 지금은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서 괜찮다고 얘기하니까 괜찮다고 여길 수 있는데, 막상 이 자리가 아닌 다른 현장에 갔을 땐 그게 안 괜찮을 수 있단 말이죠. 그럴 때 그 사람이 받는 충격이라든지 상처가 되게 커요. 그래서 그런 것들에 대해서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 사실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래요.

 

터울 : 최근 가진사람들 행사에서 한 친구가 PL 커밍아웃을 했는데, 실은 어떻게 잘해야 되겠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내가 잘해야 되겠구나-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광서 : 그러니까 최근 들어 대사회 커밍아웃이 아니더라도, 행사장에서나 어디에서 부분적으로 PL 커밍아웃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일단 조금씩 그런 환경들이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인 건 맞긴 한데, 조금 전에 얘기한 것처럼 이 친구에게 향후에 어떤 게 화살이 돼서 돌아올까도 좀 고민해봐야 하는 거고, 그런 상황이 됐을 때 이 친구가 감당해낼 수 있게끔 돼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할까 걱정되기도 해서,

 

터울 : 그렇게 되도록 해야 되는 게 커뮤니티의 숙제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PL 커밍아웃을 하는 현장을 보고 옷깃을 여미게 되었던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광서 : 마지막이 되니 또 화가 나는 게, 화나는 걸 또 얘기해도 되나? (웃음) 내가 감염인이라고 나한테 험한 소리 했던 사람이 꽤 있거든요. 나는 그 사람들이 진짜 벽에 똥칠할 때까지 건강하게 살다 죽었으면 좋겠는 거예요. 그런데 감염됐다고, 병원에 실려왔다고, 나를 찾는다고 그러면,

 

터울 : 그러니까 형을 감염인이라고 욕했던 사람들이 감염이 됐을 경우군요.

 

광서 : 네, 그럴 때 진짜 화가 나는 거예요. 그렇게 되고 나서 나를 왜 찾냐고. 그리고 한 친구는 나한테 더러워 죽겠다고, 문자도 보내지 말라고 그러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술먹자고 해서 만났더니 자기 감염됐다고, 미안하다고 질질 짜고 있고. 그 사람들이 그런 모진 소리 했을 때 그게 내가 제일 힘들었는데, 그렇게 욕을 했으면 살기라도 잘 살아야지, (웃음)

 

터울 : 너무 보살이시다, (웃음) 저같으면 딴 병으로라도 죽었으면, 이렇게 생각할 것 같은데, (웃음)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니 너무 보살의 마인드이신 것 아닌가요?

 

광서 : 아니 그게 아니라 내 인생에서 지워버렸으니까. 기억 안나게 했으면 좋겠는데.

 

터울 : 아 신경을, 나쁜 소식으로라도 나한테 귀에 안들어왔으면 좋겠는데,

 

광서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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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울 : 준비된 질문이 다 끝났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 없으세요?

 

광서 : 힘들다. (웃음) 가볍지가 않은 이야기들이어서, 너무 무거운 얘기만 한 게 아닌가 싶네요.

 

터울 : 그래서 제가 마지막으로 가벼운 질문 하나만 하려고요. 제가 형한테 늘 그런 얘기 하잖아요. 죽기 전에 한번 자자고. 그럴 때 형은 나에게도 취향이 있다고 말씀하시는데요. (웃음) 그 말씀 진심이세요? 정말 저 식이 안되시나요?

 

광서 : 응. (웃음)

 

터울 : 알겠습니다. (웃음) 이것으로 인터뷰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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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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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경 2018-12-08 오후 14:40

어려운 경험들을 솔직하게 잘 드러내 주어서 고맙네요.
광서 대표님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는 우리들의 삶의 문제들이 참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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