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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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임] 책읽당 읽은티 #44
: 문집 발간 및 낭독회 “No Pain, No Gay”

글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던 시절에,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은 그럴 수 없던 사람들과 다른 생을 살았습니다. 그게 그들의 의도였든, 거대한 시대의 흐름에 밀린 작은 파도 한 줄기였든, 글이라는 것은 한동안 물리력에 견줄 만큼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읽을 수 있는 것만으로 힘이었는데, 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웠을까요? 누구나 잘 쓸 수는 없었겠지만, 그저 쓸 수 있는 사람들 조차도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야흐로 우리말이 중국과 달라 그에 맞춰 배우기 쉽고 쓰기도 쉬운 글이 탄생한 이후로 수백 년이 지났습니다. 한반도 기준으로 읽는 것은 이제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고, 한가지 이상의 글과 말을 아는 사람도 많습니다. 심지어 수많은 언어로 적힌 이야기들이 읽기 쉬운 글로 번역되어 그 판본들이 전국에 수천, 수만 권이 우습게 유통됩니다. 글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의도적으로 난해하게 쓰여진 글이 아니라면 읽는 것은 이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쓰는 사람도 많이 늘었습니다. 읽을 줄 안다면 누구나 쓸 줄도 알 것입니다. 누구에게 보여준 적은 없어도, 몰래 한 번쯤 써본 적도 있을 것이고요. 이제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 힘이 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잘 쓰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다만, 아직도 읽는 사람에 비해 잘 쓰는 사람들은 많지 않고, 어떤 의미로는 아직 경의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이제 어지간하게 잘 쓴 글이 아닌 이상 비 온 뒤 강처럼 범람하는 읽을 거리 중 한 방울과 같죠. 그런 글은 굳이 누가 찾아 읽지 않을 것입니다. 조용히 증발하여 사라지겠지요.
그리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이더라도, 누군가 읽어주었으면 하는 글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리 잘 쓰지 못하더라도 말이죠. 책읽당은 일년에 한번 당원들의 글을 모아 문집을 발간하고, 낭독회를 엽니다. 낭독회에 보통 5~60명 정도의 관객이 방문합니다. 문집은 공식 출간물이 되어 여기 저기 비치됩니다. 간혹 누가 보아도 훌륭한 글을 쓰는 당원도 있지만, 대부분 그 정도까지 쓰지는 못합니다.

얼마 전엔 성소수자 작가의 퀴어한 글이 주류 공급처에서 드라마화 및 영화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별로 거부감을 갖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해도, 아직까지 성소수자가 쓰는 글은 ‘질식하지 않기 위해’ 쓰인다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는 문집 집필에 도움을 주신 박선우 작가님께서 격려문에 인용하신 디디에 에리봉의 표현을 빌린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특별하게 잘 쓴 글이 아닌데 책으로 엮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하기도 합니다만, 그럼에도 몇 년 째 문집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여기 뚫린 작은 숨길을 누군가 알아주는 까닭이겠지요.
우리의 크게 훌륭하지 않은 글들은 어쩌면 메모장, 혹은 개인 저장장치나 서버에 기록되어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을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새 저도 몇 년째 글을 싣고 있습니다.
올해 문집의 글제는 “관계”였습니다. 다양한 해석으로 쓰여진 서툴지만 생생한 글들이 한쪽 한쪽 빼곡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소설이라고 우기는 에세이도 있고, 반드시 소설임을 믿고 싶은 소설도 있습니다. 작품 중 엄선하여 발췌한 부분을 너무 밝지 않은 핀 조명 아래서 차분하게 낭독하는 동안, 빛나는 눈으로 조용히 감상해주신 관객분들께 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작품들을 미리 본 책읽당 당원들이 표제작을 투표로 뽑았습니다. No Pain, No Gay는 그렇게 뽑힌 작품의 제목입니다. 표지도 멋지게 뽑혔으니 친구사이 사무실을 찾아 일독을 권합니다. 참고로 저는 표제작 투표 꼴찌였습니다. 내년엔 안 할 겁니다.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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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는 주네에 관한 수수께끼 같은 경구에서 동성애는 누군가가 질식하지 않기 위해 창안한 출구라고 주장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그보다 동성애는 누군가가 질식하지 않기 위해 출구를 발견하도록 강제한다. 나는 내 사회적 환경과 나 사이에 만들어진ㅡ내가 애써 정초한ㅡ거리, 그리고 '지식인'으로서 나의 자기-창조가 모두 내가 되어가고 있던 존재[즉 동성애자]를 맞이하기 위해 창안한 하나의 방식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나 자신을 주변 사람들과 다르게 발명하지 않고서는 내가 되어가고 있던 존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 디디에 에리봉, 이상길 옮김, 『렝스로 되돌아가다』, 문학과지성사, 2021[2009], 22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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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당 당원 / 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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