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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젠더퀴어' #1] 여행자 '정숙조신'님 인터뷰 - 1. 논바이너리란 누구인가
2017-08-01 오후 15: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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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7월 

[커버스토리 '젠더퀴어' #1]

여행자 '정숙조신'님 인터뷰

: 1. 논바이너리란 누구인가

 

 

1. 논바이너리/트랜스젠더퀴어로의 정체화 과정

  1) "젠더 비순응자"(gender non-conformer)
  2) 논바이너리의 어린 시절
  3) 미국에서의 생활과 정체화의 계기

2. 과잉 젠더화 사회에서의 논바이너리

  1) 논바이너리로 살아가는 어려움
  2) 성중립화장실 문제
  3) 게이클럽의 성별 입장료 차등부과와 terf 사이

3. 논바이너리와 게이의 관계맺기

  1) 논바이너리가 본 게이커뮤니티의 과잉 성애화 문화
  2) 논바이너리가 본 '끼순이'
  3) 게이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

4. 게임 속의 논바이너리 

  1) 게임 속에서의 논바이너리 재현 시도와 좌절
  2) 논바이너리 게이머와 게임 속 논바이너리의 미래

5. 성별 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활동

  1) 논바이너리 커뮤니티 운동 단체
  2) 젠더와 섹슈얼리티, 그 이후

 

 

 

 

 

터울 : 이 인터뷰는 친구사이 소식지에서 7월에 퀴어문화축제를 맞아 기획되었습니다. 적지 않은 게이들이 퀴어문화축제에 게이 말고 다양한 정체성의 사람들이 온다는 걸 까먹고 사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젠더퀴어, 논바이너리를 인터뷰하기로 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정숙조신 : 반갑습니다. 

 

터울 : 간단히 자기소개를 해주시죠. 

 

정숙조신 : 게임 만들고요. 작은 인디 팀에서 비주얼 노블을 하나 만들고 있어요. 40대 중반이고, (웃음) 원래는 성소수자 정체성보다 오타쿠 정체성이 먼저였는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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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d in Hand Seoul 2017 뒷풀이 파티 : 2017.6.4., @Trunk, 이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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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법률공동체 두런두런 2017년 퀴어문화축제 유인물 中.

엄브렐러 텀(Umbrella term)은 여러 정체성을 포괄하는 상위 정체성을 의미한다.

이 유인물 PDF는 다음 링크에서 다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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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더퀴어 깃발.

 

 

 


1. 논바이너리/트랜스젠더퀴어로의 정체화 과정

 

 

1) “젠더 비순응자”(gender non-conformer)

 

터울 : 먼저 “젠더 비순응자”로 정체화하셨더라고요. 흔히 쓰이는 엄브렐러 텀(Umbrella Term)보다 조금 더 넓은 개념인데, 물론 논바이너리 자체도 엄브렐러 텀이긴 하지만, 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본인을 설명받기를 정체화하는 경우도 있고, 더 넓은 용어로 정체화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좀더 포괄적인 용어로 정체화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정숙조신 : 제가 젠더 비순응자라는 말을 쓴 것은, 사실상 평생동안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인 게 큰 것 같아요. 보통 학계에서 젠더 비순응자라는 말을 쓸 때 보면, 그 사람이 실제 수행하는 것, 그리고 자기의 젠더 표현을 하는 것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이분법적인 규칙에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킬 때 그런 용어를 쓰는데, 저는 그냥 계속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살아오면서 겪었던 수행성이라는 면과 표현이라는 면 모두를 강조하고 싶었어요. 
구체적인 정체성의 용어가 아닌 것은 알지만, 그걸 되게 엄밀히 따지는 건 저한테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리고 젠더퀴어도 엄브렐러 텀이기도 하지만 특정한 성별 정체성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기도 해요. 어쨌든 저는 기본적으로 100% 남자나 100% 여자로 여겨지지만 않으면 돼요. 

 

터울 : 논바이너리 분들 중에도 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본인을 설명하기를 좋아하는 경우도 있고, 더 넓은 용어로 설명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정숙조신 : 저의 경우는 저에게 딱 맞는 언어를, 정확한 정의를 찾는 게 잘 감이 안 온 게 하나가 있었고요. 또 하나는, 제가 살아온 모습을 묘사하는 말이, 정체성 말고 바깥 사회와 교류하는 양태나 모습을 잘 묘사하는 단어가 마침 있어서, 그러면 그냥 이 말을 쓰는 게 어쨌든 나의 현재 상태를 묘사하는 데 적합하지 않을까, 라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성별 정체성 같은 경우에는 대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정하죠. 내가 나를 무엇이라고 여기는가, 그게 성별 정체성에는 제일 중요한 정의이자 기준인데, 그게 예를 들면 나는 남성과 여성 사이를 왔다갔다해-일 수도 있고, 나는 여성 0%와 여성 75%를 왔다갔다해-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남성과 여성의 스펙트럼과 상관없이 전혀 다른 정체성이 있는 것 같아-뉴트로이스가 사실은 그런 개념에 가깝거든요. 정말 그야말로 세번째 성별이라는 게 나에게는 필요해-그렇게 여기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보통은 자기 안을 들여다보고 성별 정체성 관련 용어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논바이너리라는 엄브렐러 텀 아래의 하위 정체성 개념 자체도 계속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요. 성별 이분법 자체를 해체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는 같겠지만, 예를 들면 퀴어문화축제에서 젠더퀴어와 논바이너리는 거의 비슷한 뜻인데도 같이 호명하지만 무성애자에 대한 호명은 아직 불충분하다든지, 그런 식으로 각 정체성들이 구성되는 속도는 조금씩 다르니까요.

 

 

 

'Non-binary'라는 용어는 성별이분법을 뜻하는 'Gender Binary'에 저항하며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성별이분법이란 이 세상에 성별은 남자 또는 여자 두 가지만 존재하고, 사람은 반드시 둘 중 하나의 성별만 확정적으로 완전하게 가져야 한다는 공고한 이분법적 사고체계를 말합니다. 
성별이분법 아래에서 배제되는 성별정체성은 많이 존재합니다. 남자 또는 여자 두 가지만 인정한다면 뉴트로이스와 같은 성별정체성은 배제되며, 반드시 하나의 성별만을 가져야 한다면 바이젠더, 멀티젠더 등이 배제되고, 확정적으로 가져야 한다면 젠더플루이드 등이 배제될 수 있고, 완전하게 가져야 한다면 데미걸, 데미보이와 같은 정체성은 물론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 젠더리스나 에이젠더가 배제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논바이너리는 성별이분법이 포괄할 수 없는 성별정체성을 아우르기 위하여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 성별 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뜻밖의 여행 : 여행자 종합책자』, 2017.7.1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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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더퀴어의 종류 (출처 : 마성의 게이 네이버 블로그)

 

 

 

 

터울 : 그렇다면 정숙조신님의 정체성은 그런 규정들에게서조차 벗어난 어떤 것인지, 아니면 그들 사이의 속성들이 다 있는 형태인지, 

 

정숙조신 : 제가 얘기한 “비순응”은 제가 제 영혼을 들여다보고 한 말이라기보다는, (웃음) 아까도 얘기했지만 제가 바깥 세상과 맺는 관계를 묘사하는 단어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규범적인 성 표현이나 실천을 따르고 있지를 않으니까. 그래서 거기서 나온 말이고, 그리고 제가 제 영혼을 들여다보면, (웃음) 저는 남자도 아닌데 여자도 아니야, 라는 말밖엔 못하겠어요. 그거 말고 다른 걸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굳이 나도 잘 모르겠는데, 가령 나는 남자-여자 중간인 것 같아, 내지는 남자-여자 둘다 있는 것 같아, 아니면 남자-여자 둘다 아니고 아예 딴 것인 것 같아, 그렇게 묘사를 해봤자, 어느 것인지 저도 모르니까, 딱 그렇게 집어서 얘기할 수가 없는 거죠. 
그리고 보다 구체적인 정체성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걸 거부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 이름에 딸린 상에 자신을 맞추어야 할까봐 그걸 거부하는 사람도 종종 있고요. 

 

터울 :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하시고 난 다음에, 가족분들이 “수수께끼가 풀렸다”라 반응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정체화가 이루어진 다음에는 자신이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나 입장이 분명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타인도 나를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되는 길이 열리는 것이잖아요. 그렇게 정체화하시고 난 다음에 스스로나 타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정숙조신 : 예전 90년대에, (웃음) PC통신 동호회에서 같이 나갔던 분들 중의 하나가, 저한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구성원들 중 남자/여자로 갈려서 노는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거기서 제가 중간에 끼어서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이 되니까, 저를 다른 남자들과 똑같이 다루면 안된다고, 정숙조신님은 반 이상이 여성인 분인데 다른 남자들과 똑같이 대하면 어떻게 하느냐-라는 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말린 분이 계셨는데, 그 때 저는 그 말이 되게 불쾌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그 당시에는 그냥 남자로 정체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의 저의 입장은, 남자도 여러 가지 젠더 표현을 할 수 있고, 폭넓은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고,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아예 정의 자체를 그렇게 바꿔버리는 게 불편했었던 거죠.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그런 해석에 동의를 하는 쪽이죠, 굳이 따지자면. 그런 식으로 자신을 보는 관점이 달라진 게 있고요.
다른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애초에 저의 행동양식이나, 젠더 표현이나 외모 등 여러 가지 외형적인 것들이, 드러나는 양태들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남자의 모습으론 설명하기 힘든 것들이 많다 보니까, 차라리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면, 이게 더 (나에 대한)이해가 빨라지는 듯한,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관념에 조금 더 녹아들기 편리한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이게 상당수의 논바이너리랑 제가 다른 점인데, (웃음) 저는 외모, 특히 목소리, 그리고 젠더 표현 같은 것에서 (논바이너리인 것이) 굉장히 티가 많이 나거든요. 그런데 티가 잘 안 나는 논바이너리들도 아주 많이 있어요. 그러니까 평소에는 그냥 여자나 그냥 남자로 패싱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단 말이죠. 심지어 어떤 사람은 호르몬을 해도 별로 안 바뀌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리고 또 어떤 경우는 굳이 중성적인 젠더 표현만이 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러다 보면 그런 경우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이해시키기가 이중으로 힘들어지겠죠. 그런 면에서 저는 유리하다면 유리한 건데, (웃음) 이런 걸로 또 알량하게 유세 부리거나 할 수는 없잖아요. (웃음)

 

터울 : 그건 사실 정숙조신님이 이원 젠더(남/여)로 패싱되지 않는다는 걸 역으로 의미하는 거잖아요. 

 

정숙조신 : 그렇죠. (웃음) 어쨌든 저는 이런 (누가 봐도 중성적인 모습으로 패싱될 수 있는) 특권 별로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도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남자와 여자가 온갖 모습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논바이너리도 온갖 모습을 가질 수 있어야 되거든요. 

 

석 : 이것도 어찌 보면 제가 가지고 있었던 편견인 것 같아요. 논바이너리는 뭔가 중성적인 느낌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것도 편견이었던 거군요. 

 

정숙조신 : 물론 논바이너리 중에 그런 외형적인 모습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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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무, 「비둘기 합창」(1978)

 

 

 

2) 논바이너리의 어린 시절

 

터울 : 친구사이에서 2014년 아이다호 때 성소수자들의 어린 시절에 관한 전시를 기획한 적이 있었고, 참가자 중 상당수가 게이였는데, 그 중 꽤 많은 사람들이 게이의 어린 시절에 대해 물어봤을 때 “내가 언제부터 게이였을까”를 자문했었어요. 그리고 그것(게이임)의 표징을 젠더 비순응에 가까운, 가령 여장을 한다든지, 이런 요소들에서 찾으시더라고요. 그건 그 자체로 사실이냐는 여부가 중요한 것이라기보다, 지금 확신하고 있는 정체성의 일환을 과거에 투영해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정체성이 논바이너리인 입장에서, 정숙조신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궁금해요. 성별 표현과 관련해서.

 

정숙조신 : 제가 6살 때 만화책에 나오는 캐릭터를 커플링한 얘기를 굳이 해 볼게요. (웃음) 제가 맨 처음에 했던 부녀자 망상이, 6살 때 『소년중앙』에 연재됐던 이상무 화백의 ‘비둘기 합창’을 보고서, 거기 나오는 남캐 둘을 커플링했었는데요. 거기에 독고탁이 초등학교 1학년으로 나오고요, 탁이랑 항상 같이 다니는 봉구라는 캐릭터가 있는데, 걔의 친형이고 고등학생이에요. 권투를 해요. 권투하다 죽어요. (웃음) 그래서 탁이가 그 만화의 나레이터 역할을 하는데, 형이 죽으니까 막 울면서 “곰같이 멍청한 우리 형, 권투만 하다가 죽어버렸다”고 일기를 쓰는 장면이 있어요. 제가 그 장면에 꽂혀 가지고, (웃음) 나중에 어른이 돼서 생각해보니까, 어느새 제가 두 사람을 커플링하고 있었더라고요. 내지는 탁이에게 저를 투영했다거나. 탁이랑 저랑 한 살 차이였으니까. (웃음) 내가 굉장히 하드한 동인질을 했구나, 미성년에 근친에 동성애에, (웃음)

 

터울 : (웃음) 그러면 그건 문화를 향유하고 재현을 소비하는 차원에서 그런 것이고, 본인이 어떤 성별이라고 생각하는가, 정체화의 측면에서는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요.

 

정숙조신 : 성별에 얽매이는 것의 부당함을 어릴 때부터 굉장히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여자가 되고 싶다라기보다, 예를 들면 저는 어릴 때부터 화려한 것, 원색 중심의 밝은 색채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어릴 때 아파트촌으로 이사를 갔는데, 가니까 주변의 아파트를 보니까 모두가 회색 일색인 거예요. 나는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색색깔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데, 왜 이런 것들을 저런 데에 쓸 생각을 안하는 거지? 그런 것에 불만을 가졌고, 특히 어느 순간에 남자 아이에게는 그런 옵션이 더더욱 허용이 안된다는 걸 알고서, 그게 너무너무 불쾌했거든요. 그래서 왜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옵션을 못 가져야 돼? 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보다 보니 여자아이들은 여자라는 이유로 다른 종류의 제약에 묶여 있는 게 같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둘 다 부당하다고 상당히 어릴 때부터 느껴왔던 것 같아요. 
제가 어릴 때, 여자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이유로 든 게 진짜 어이가 없었어요. (웃음) 만약에 내가 여자가 되면, 나는 이제 핵물리학이라든가를 전공해서, 온갖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뚫고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한국 최초의 여성 핵물리학자가 되고 싶다고, (웃음) 그 ‘여자’라는 신분에 주어진 추가적인 제약같은 것에 대한 로망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 하나 더 넘어서야 될 산이고, 그래서 더 가치가 있는, 경우에 따라 내 능력으로 넘어설 수 있는 제약들? 그 정도로만 느꼈던 것 같아요. 되게 어이없죠? (웃음) 

 

터울 : TERF(trans-exclusive radical feminist: 분리주의 페미니스트)들이 되게 싫어할 법한 대목이군요. (웃음)

 

정숙조신 : 그런데 제가 좀 이름있는 대학에 미생물학과로 진학했는데, 대학을 같이 다닌 여자 동기들을 보면, 대학에 들어갈 때쯤에 진짜 비슷한 마음을 먹고 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러다 대학 다니면서 내 능력만으로 안 되는 게 너무 많구나, 사회적 장벽, 유리천장이 정말 쩌는구나, 그런 걸 알면서 좌절하든 각성하든, 그렇게 되는 여자친구들을 많이 봤어요. 그랬었고, 어쨌든 제가 어릴 때 여자가 되고 싶다는 서사는 딱 그 정도였던 것 같아요. (웃음) 드레스를 입고 싶다, 이런 것도 아니었고. 
그리고 성별 제약에 대해 짜증냈다는 기억을 또 떠올리자면, 친척 누나들이, 누나라고 할 게요 그냥. 가족관계 안에서는 그렇게 사니까. 누나들이 갖고 노는 마론인형이 되게 갖고 싶었는데, 갖고 싶었던 이유가, 제가 보통 갖고 노는 로봇은, 그 때가 70~80년대라는 걸 생각하셔야 돼요. (웃음) 관절이 되게 잘 안 움직였어요. 팔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고, 다리는 아예 움직이지도 않고, 그런데 마론인형은 무릎도 굽혀지고, 다리를 펼 수도 있고, 다양한 동작이 다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어쩌다 친척집에 가서 인형 갖고 놀 일이 있으면, 마론인형 갖고 닌자 놀이하고, (웃음) 그런 짓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인위적으로 어릴 때부터 성별을 갈라서 키우는 것들에 부당함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터울 : 보통 게이들의 어릴 적 서사는 마론인형 갖고 인형놀이를 했다-인데, 그 인형을 갖고 닌자 놀이를, (웃음) 흥미롭네요. 대학 때 얘기가 나왔는데, 한국에서 1990년대가 갖는 의미가 있잖아요. 여성주의 운동이 약진했고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태동했고, 다양한 문화활동들이 생겨났던 때였는데, 그 때가 어떻게 기억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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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한혜정,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읽기와 삶읽기 1』, 또하나의문화,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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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룡, 『개인독립만세』, 살림, 2000.

 

 

 

정숙조신 : 그 시대는 또 하나의 문화로 상징되기도 하고 서태지로 상징되기도 하고, 또 저는 김지룡씨의 『개인독립만세』(2000)라는 책이 인상에 남았던 것 같아요. 개인의 행복을 본격적으로 추구하는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기 시작한 시대였던 것 같아요. 제가 92학번인데, 딱 그 학번부터 X세대로 불리면서, 학생운동 말고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목소리가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나온 세대거든요. 운동을 하더라도, 사회에 기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행복도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던 때였고, 그래서 거기에 저도 영향을 많이 받았고. 
80년대에 중고등학생 때의 저는 어쨌든 남자라는 성역할에 맞추려고 노력하다가 계속 실패만 한 시절이었고요. 그 때 제가 자살하지 않았던 거의 유일한 이유가, 순정만화가 있어서였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 『르네상스』(1988-1994)랑 『댕기』(1991-1996)가 나오면서, 이미 발전한 서사의 순정만화가 많이 나왔는데, 거기서 중성적인 캐릭터들을 긍정적으로 다뤘단 말이죠. 페티시 대상도, 웃음거리의 대상도 아닌, 굉장히 진지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로 많이 다뤄졌어요. 
그러다가 90년대가 되어서는 개인의 행복과 개성이 중시되는 분위기이고, 또 그 때 여성학을 처음 접했죠. 그 때에 제가 저를 본 관점은, 남자가 좀 여자 같아도 돼,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였어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여자들도 이렇게 넓은 스펙트럼으로 존재할 수 있고, 남자도 이렇게 넓은 스펙트럼으로 존재할 수 있어-를 깨닫고, 그걸 실천하고 거기에 대해 사람들과 많이 이야기하려고 노력했어요. 저에게 90년대는 그런 시기였어요. 그런 틀로 세상을 바라보았죠. 
그런데 중고등학생 때 순정만화의 중성적 캐릭터들의 문제가, 다들 너무너무 예쁜 거예요. (일동 웃음) 그 부분은 사실 평생동안 저를 괴롭히고 있어요. 이만큼 예쁘지 않으면 나는 논바이너리로서 존재할 수 없다-같은 느낌이 지금도 솔직히 남아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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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네상스』 61, 199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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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댕기』 15, 1992.7.18..

 

 

석 :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게, 제가 중학교 때 BL만화를 보면 그래도 조금은 저에 대해 긍정되는 게 있었어요. 그런데 BL만화 캐릭터들이 다 막 예쁘고, 슬림하고, (웃음) 근데 나는 몸집도 크고, (웃음) 그래서 게이들은 저래야 되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터울 : 그래서 제가 지금도 마른 애를 못 사귀어요. 은근히 트라우마가 있는 거야. (일동 웃음) 쟤는 나를 좋아할 리가 없어,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석 : (웃음) 생각해보면 그 때는 슬림한 몸매가 게이판의 대세이기도 했죠.

 

정숙조신 : 실제로 베어들이 약간 그런 마음이 조금씩 있어서 자기들끼리 놀고 KBC(코리안 베어 클럽)가 되고 그런 것도 있지 않나요? 주위에 베어들 보면 그런 부분이 없지 않아 있어요.

 

석 : 우리는 아웃사이더야, 이런 정서가 있죠. 

 

정숙조신 : 그리고 흔히 통스탠 커플이라고 하는 데서 통 쪽인 사람들도 보면 왜 나는 날씬해지지 못하지? 라는 마음이 어딘가엔 있는 것 같고.

 

터울 : 마음이 아프니까 빨리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게요. (웃음) 

 

 

3) 미국에서의 생활과 정체화의 계기

 

터울 : 그러다 미국으로 가셨는데, 미국에서 여성으로 패싱되셨다고 들었어요. 그 때 미국에서 통용되는 남성성과 한국에서의 남성성에 대해 일정한 차이를 느끼셨을 것 같아요. 거기에 대해 조금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정숙조신 : 일단 미국에서 제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도 않았고 평범하게 다녔는데, 여성으로 패싱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어요. 한국에서는 그런 경우가 딱히 없었거든요. 그런 순간에 어떤 깨달음이 온 것 같아요. 내가 딱히 제대로 꾸미거나 하지도 않았는데 여자로 읽힌다면, 남자라는 라벨을 달고 사는 것에 대해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꺠달음이 왔던 것 같아요.

 

터울 : 남성성의 내용 자체가 자의적일 수 있다는,

 

정숙조신 : 네. 그러니까 내가 남자로 읽히든 여자로 읽히든,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딱히 사는 게 달라지는 게 없는데, 그렇다면 나를 남자라고 호명하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그 전에 여자 같은 남자도 괜찮다고 얘기했었는데, 그냥 딱히 여자라고 남들이 해석을 하더라도 상관없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리고 거기서 한 단계 넘어가서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존재로 나 자신을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설마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건 아니겠지, 내가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해왔다면 분명히 어디엔가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연구하고, 먼저 생각하고, 그런 걸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람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까지 미쳤던 것 같아요. 

 

터울 : 외국에 나가서 그런 경험을 하셨던 거군요. 

 

정숙조신 : 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마침 그 때쯤에, 젠더퀴어라는 제목으로, 트랜스젠더퀴어를 비롯한 여러 젠더 비순응자들의 수기를 모은 앤솔로지가 출간되었어요(Riki Wilchins, <GenderQueer: Voices From Beyond the Sexual Binary>, 2002). 리키 윌친스라는 유명한 트랜스젠더 운동가가 쓴 책인데, 그 사람이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 한번 강연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가서 듣고, 거의 못 알아들었지만, (웃음) 일단 책은 사고, 몇 년 동안 모셔 놨어요. (웃음) 그러고 나서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책을 모시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읽어보곤, 이랬었구나-하면서 좀더 파 봐야겠다, 이러면 정말 제대로 공부를 해야 될 것 같다, 
그래서 그쪽을 좀 알 것 같은 헤테로 선배한테, 혹시 성소수자 관련해서 공부하고 싶은데 모임을 연결해줄 수 있냐고 물어봤어요. 그 때 2010년 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에서 개최한 여름 책 세미나를 소개받았고, 타리님, 토리님, 오김현주님이랑 퐝드님을 그 때 처음 뵈었어요. 

 

터울 : 그렇게 엮이게 되셨군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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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ki Wilchins, <GenderQueer: Voices From Beyond the Sexual Binary>, 2002.

 

 

 

정숙조신 : 그리고 미국에 갔다가 돌아온 직후의 감상을 좀 얘기해자면, 제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가 2000년대 중반이었어요. 대충 5년 좀 넘게 공백이 있었으니 당연히 문화 충격을 받는데, 그게 되게 나쁜 쪽으로, 그러니까 왜 이렇게 사회가 획일적이지?! 싶었던 거예요. 처음에는 제가 ‘미국 물’을 먹어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건가 했어요. 근데 좀더 지내면서 보니 아니더라고요. 제가 떠나기 전의 한국과 비교해도 확연하게 사회가 경직되어 있었어요. ‘남자가 좀 여자 같아도 돼’라거나 ‘개인의 행복과 다양성이 중요해’ 같은 사고방식은 쏙 들어가고, 정해진 삶의 길을 따라가라는 요구가 너무 노골적인. 물론 저 ‘어릴’ 때도 그런 풍조 있었고 막 구리다고 반항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랬지만 그때는 일단 ‘반항’해서 새로운 길을 찾을 여지가 있었거든요. 저만 해도 자연과학 전공해 놓고 대학원 안 가겠다고 뛰쳐 나와서는 전공 확 바꿔서 유학을 핑계로 독립 시도하다가 어영부영 돌아와서 결국 게임업계에 뒤늦게 입문하고, 그 뒤에도 계속 비주류적인 일을 하는 식으로 이른바 ‘정통적이지 않은 삶’을 살았는데요, 돌아오고 나니까 아예 생존 그 자체를 빌미로 인생 트랙에서 한눈을 팔 수 없게 만드는 구조가 되어 버렸더라고요.

 

터울 : 네, 사실 90년대를 겪은 꽤 많은 ‘이쪽’ 활동가분들이 그 시절과 2000년대 사이의 낙차에 대해 많이 체감하셨던 것 같아요.
그럼 잠깐 다시 미국에서의 경험으로 돌아가 볼 게요. 바이너리 트랜스젠더분들의 경우, 가령 지정성별 남성이라면 여성으로 피싱됐을 때 굉장한 쾌감을 느끼고, 내 정체감이 인정받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텐데, 정숙조신님의 경우에는, 남성·여성이라는 라벨링 자체가 되게 모호하고 임의적인 거라고 생각하셨다는 게 재밌는 대목인 것 같아요. 

 

정숙조신 : 왜냐하면 저는 저를 여자로 정체화한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한국에 있을 때 여자 같다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아예 ‘여자다’라는 말을 들은 건 제 기억상 미국에 갔을 때가 처음이었어요. 아무렇지도 않고 캐쥬얼하게, “쟤 남자야, 여자야? 아 여자인가 보네” 이런 것도 아니고, 그냥 슥 보곤 “안녕하세요, 미스” 이런 식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패싱되니까, 

 

터울 : 그 순간에 느낌이 어떠셨을까요. 어떤 사람에겐 화가 날 상황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겐 즐겁기도 한 상황일 텐데, 

 

정숙조신 : ‘저 사람이 보는 눈이 없나’, (웃음) ‘어떻게 모르지?’가 먼저 들었던 생각인 것 같아요. 

 

석 : 제가 이해하기로는, 비순응의 기준으로 봤을 때 ‘행위’로서의 비순응을 수행하시다가, 그런 경험을 겪으면서 ‘정체성’으로서의 비순응으로 넘어가신 셈이군요.

 

정숙조신 : 네. 그래서 미국에서 그런 얘기를 듣고 생각해봤어요. 왜 나를 저렇게 봤을까를 생각해보니까, 그냥 인종에 따라 테스토스테론의 농도가 다른 거예요. (웃음) 저의 신체적 조건으로 미국에 가면 이미 남자의 몸으로 안 들어가는 거예요. 

 

터울 : 기본적인 남성성의 기준이 훨씬 올라가 있으니까, 

 

정숙조신 : 네. 거기서 인종에 따른 육체적인 차이도 실감하고, 나중에 몇 년 지나고 다시 생각해보니까, 백인 남성과 동양인 남성을 같은 젠더라고 부를 수 있을까-에 대해 강한 의심이 드는 거예요. 이미 신체적으로 너무 차이가 나는데. 

 

터울 : 남성이나 여성이라는 단일 범주로 그들을 묶을 수 없다는 걸 계속 체감하셨던 과정이군요. 

 

정숙조신 : 네. 실제로 남성우월주의적인 표현을 할 때도, 미국에서랑 한국에서 양상이 좀 다른 게, 미국에서는 근본적으로 육체를 숭배하는 문화가 정말 있거든요. 그건 유럽과도 좀 달라요. 미국의 특유한 문화라고 생각하는데, 정말로 육체적인 힘이랑, 커다란 덩치랑 근육을 정말로 숭배해요. 한국에만 있으면 느낄 수가 없는 분위기인데, 핑크색 옷을 입는 것 자체를 거기 남자들이 주저한다든가 하는 문화가 워낙 강하고. 
그리고 PC하지 못한 얘기를 할게요. (웃음) 거기 남자들을 보고 제가 받은 느낌은, 여긴 뚱이랑 떡대랑 근돼밖에 없구나, (웃음)

 

석 : 나머지는 좀 뭐랄까, 남성으로 패싱되지 않는 존재인 느낌인 거죠. 너드(nerd)라든가, 진짜 남성이 아닌 존재로,

 

터울 : 데미메일(demi-male)인 건가요. (웃음)

 

정숙조신 : 그러다보니까 남성우월주의를 주장할 때는 힘이 센 거랑, 물리적인 폭력에 관련된 경우가 많이 나오고, 거기서 여자들이 자기 권리를 주장할 때는 마찬가지로 센 언니들이 세게 나오는 거예요. 정말로 세게, 우리 못살겠다, 너네만 잘 살면 다냐, 그런 식으로 싸워서 쟁취하는 형태로 많이 갔고,
한국에서는 그렇게 육체적으로 확 드러나는 남성성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보니까, 좀더 권력적인 우위라든가, 사회적으로 남자들끼리 뭉쳐서 노는 호모소셜(homosocial)한 거라든가, 아니면 아예 제도적이고 관습적으로 남자들을 유리하게 만드는 규칙들을 만들어서 타자를 찍어누른다거나, “어딜 여자가 길에서 담배를”,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그런 양상으로 많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 같아요. 

 

터울 : 한국에서는 그 남성 지배의 형태가 확실히 좀 쪼잔스러운 식으로 나타나고, (웃음) 그러다 이제 성매매 현장으로 가면 그 베일에서 원초적 남성성이 확 드러나는 식으로, 거기서 갑자기 왕 노릇을 하고 싶어한다든지, 폭력을 휘두른다든지, 그런 식으로 드러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헌데 90년대에는 한국에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태동했던 때잖아요. 거기에는 혹시 관여하신 바가 없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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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리안 메인 접속화면.

 

 

 

정숙조신 : 그 때 남자에게 끌린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게이로 정체화해도 되나-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거부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때는 남자로 정체화하고 있었지만, 우선은 제가 다른 사람과 관계맺는 것에 비중을 낮게 두고 있었어요. 저는 개인으로서의 독립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연애산업에 내몰리게 되면 망한다, 주변에서 헤테로들 연애하는 거 진짜 꼴보기 싫다-였는데, (웃음) 당시 성소수자 운동판은 동성애 얘기만 기본적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내가 딱히 얻어갈 것은 없다고 생각했던 게 컸고요. 

 

터울 : 호모로맨틱, 호모섹슈얼이 너무 당위처럼 존재하고, 그게 인권으로 자연히 연결되는 분위기가 있었던 거군요.

 

정숙조신 : 네, 저는 그 때 연애를 원한 게 아니었거든요. PC통신 동호회가 처음 생겼을 때 가서 글을 몇 개 읽었었는데, 거기는 동호회 접속 중인 회원들이 대화방에 다 보이는 시스템이었거든요. 갑자기 귓속말이 들어오는 거예요. “이쪽이세요?”로 시작해서. 말이 들어왔으니까 대충 친절하게 감정노동을 하는데, 정말 막다른 곳에 몰려서 여기 아니면 나를 이해해줄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절절함이 너무 많이 배어나오는 거예요, 그 사람한테서. 그래서 꼭 내가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고, 자기 외로움을 내가 해소해줘야 하는 느낌인 거예요. 이 동네 사람들 정서는 다 이런 건가-라는 느낌과 함께, 제가 다른 동호회에서 보고 겪었던 헤테로들의 연애 관련 온갖 아침드라마, 주말드라마가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가면서, 내가 만약 이 동호회에 들어가서 사람과 엮이면, 헤테로들이 엮이는 것에 한층 더해서 호모들은 3차원 그물로 엮일 텐데, (웃음) 훨씬 더 막장드라마가 되겠구나, (일동 웃음) 

 

터울 : 실제로 그렇죠. (웃음)

 

정숙조신 : 난 여기 끼어들 수 없어, (웃음) 그리고 당장 도망나왔어요. 만약에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제가 거기에 들어갔다면, 저는 지금까지 이 판에 못 있었을 것 같아요. 분명히 제 입장이 배제됐다는 걸 어디선가 깨닫고서 탈락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늦게 커뮤니티에 들어온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터울 : 게이커뮤니티에서 남성규범성과 유성애중심주의는 뿌리깊은 커뮤니티적 기반이죠. 그게 자기 정체성과 부합한다면 친목과 사회성을 유지하는 큰 기반이 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역으로 큰 배제로 작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무성애자 커뮤니티가 갑자기 성장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요. 게이-레즈비언 커뮤니티가 다분히 유성애중심주의적으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에.

 

정숙조신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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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별 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번역팀, 『젠더여행자를 위한 번역책자』, 2017.4.24.

성별 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뜻밖의 여행 : 여행자 종합책자』, 2017.7.15.

 

(여행자 종합책자는 햇빛서점에서 구매 가능합니다.)


 

 

 

2. 과잉 젠더화 사회에서의 논바이너리

 

 

1) 논바이너리로 살아가는 어려움

 

터울 : 다음 얘기로 넘어갈게요. 논바이너리로서 피해 사례와 사고 사례가 중심이 될 텐데, (웃음)

 

정숙조신 : 으악, (웃음)

 

터울 : 가령 1인 탈의실이 없는 공중목욕탕, 수영장, 워터파크, 헬스클럽 등은 이용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말씀해주신 적이 있는데요, 살면서 제일 짜증났던 경험을 하나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정숙조신 : 역시 본인 확인할 때죠. 금융쪽 일을 하다보면, 전화 상담원 교육을 회사에서 얼마나 잘했는지를 본의 아니게 깨닫게 되더라고요. 목소리와 서류가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잠깐 멈칫하더라도 거기서 평범하게 본인확인 절차로 넘어가는 거죠. 제일 나빴던 케이스는, 본인확인 절차를 했는데도 끝까지 본인임을 안 믿는 거예요. 부인이나 배우자가 아니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터울 : 배우자여도 안된다는 식으로,

 

정숙조신 : 네, 아무리 본인확인을 해봤자 배우자라면 이런 정보는 알고 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 식으로 끝까지 나와서, 그 때는 정말 열이 뻗쳐서 매니저 바꿔달라는 말을 했었죠. 웬만하면 거기까지 안 가는데. 

 

터울 : 심지어 이성애자 시스젠더(cisgender) 커플로 오인받는 것에 대한 빡침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팔자에도 없는 ‘배우자’라니, (웃음)

 

정숙조신 : 저는 사실 그렇게 패싱되는 점을 잘 이용하기도 하는데, 게이들이 하고 싶어하는데 되게 두려워하는 게 있잖아요. 길거리에서 팔짱 끼고 다니는 것. 저 그거 너무 잘해요.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아요. (웃음)

 

터울 : 그야말로 이성애자 커플로 패싱되는 순간이군요. (웃음) 정말 이성애는 애증의 대상이죠. 
또 가족관계 안에서 불편하셨던 이야기를 좀 청해듣고 싶어요. 사실 성소수자라면 누구나 정상가족에 치이는데, 성별 표현이 규범적이지 않을 경우는 그 불화가 훨씬 더 심했으리란 건 충분히 추측 가능한 것이죠. 

 

정숙조신 : 부모님에게 직접 들었던 이야기는 아니고 가까운 친척에게 들은 얘기인데, 아이한테 행동 교정을 하려고 할 때 조건부로 칭찬하는 거 있잖아요. 너는 다 좋은데 이것만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이건 안했으면 좋겠다, 그런 식의 이야기를 제가 어릴 때 상당히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나요. 어릴 때 가족, 친척관계에서 저에게 깊이 남은 게 있다면, 그런 말들을 지속적으로 들었던 게 제일 크고요. 
제가 물건을 많이 쌓아놓는데, 제 오타쿠적 성질과도 관련해서, 그런 물건들과 잡동사니들 중에, 저의 나이 규범과 성별 규범에 맞지 않는 것들을 쌓아놓고 산다는 것에 대해, 가족과 같이 살았을 때 부모님이 계속 못마땅해 하셨죠. 그래서 한번 좀 크게 싸우고, 제가 보는 앞에서 그런 것들을 버린다든가 하는 사건도 있긴 했어요. 20대 때의 일이긴 하지만. 그럴 때 정서적으로 크게 다친 적도 있었고.
20대에는 그런 여러 가지 사건들이랑, 제가 바깥에서 이념화된 것들이랑 합쳐져서, (웃음) 빨리 독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경제적으로 바로 독립할 수 없다면 물리적으로라도 얼른 독립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부모님은 옛날부터 저를 많이 공부시켜야겠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그걸 좀 이용했죠. 유학을 가겠다고 했고, 그래서 물리적으로 떨어져있기를 선택한 거예요. 

 

터울 : 그래서 미국으로 가셨던 거군요.

 

정숙조신 : 네. 그렇게 된 이후에 저희 어머니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새아버지를 만나셨고 두 분이 사랑하셔서 결혼을 하셨어요. 새아버지가 뉴질랜드 영주권이 있으셨어요. 어머니는 마침 은퇴를 하면 시골에 살고 싶다, 번잡한 서울이 싫다고 생각하신 차였는데, 제가 미국에 가있는 동안에 두 분이 뉴질랜드로 제대로 이민을 가버리신 거예요. 그래서 제가 한국에 오니까 자동으로 독립한 셈이 됐죠. 그 뒤로는 제가 알아서 돈 벌어서 먹고 살고 있죠. 

 

터울 : 그런 점에서는 굉장히 운이 좋으셨네요. 가족과 치이는 성소수자들이 너무 힘든 경우들이 많은데, 

 

정숙조신 : 맞아요. 그리고 제가 혈연적인 형제가 없다는 것도 굉장히 유리하게 작용했고. 물론 형제가 없어서 제게 여러 기대치가 많긴 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오랜 세월동안 서로 조율하는 과정을 거쳤죠. 성별 표현이라든가, 결혼 제도에 들어가지 않는 문제라든가, 그런 것에 대해 개인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쪽으로 지금은 가닥이 잡힌 상태이고요. 어느 정도 그렇게 될 수 있었던 큰 이유가, 어머니께서 시집살이와 친척들과의 관계에 치인 상태였는데, 사랑하는 분을 만나서 재혼을 하시고 이민을 가셔서 나름대로 꿈을 이루신 거란 말이죠. 본인의 행복을 찾으신 것이기 때문에, 이런 루트가 더 좋다는 걸 깨달으신 거고, 그래서 저한테도 가능하면 제게 좋은 쪽으로 맞췄으면 좋겠다는 입장이 되신 것 같아요. 

 

터울 : 오소독스한 정상가족에 굳이 얽매일 필요가 없다, 

 

정숙조신 : 네. 그런 거죠. 

 

터울 : 미국에서 어떤 공부를 하셨어요?

 

정숙조신 : 의학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어요. 법의학 사건파일이나, 생물학 교과서라든가, 제약회사에서 만드는 팜플렛이라든가, 그런 데 들어가는 그림을 그리는 분과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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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중립화장실 문제

 

터울 : 뜨거운 감자죠. 화장실 문제에 대해 여쭤볼 게요. 보통 성중립화장실이 없는 경우는 어느 화장실에 가세요?

 

정숙조신 : 장애인 화장실요. 옛날엔 그게 하나여서 상당히 편했는데, 이제 장애인들도 2000년대 중반 즈음에 들고 일어났거든요. 우리는 여자가 아니냐, 남자가 아니냐. 그래서 그 때쯤에 법이 바뀌어서, 그 이후 새로 만든 장애인 화장실은 남녀를 갈라서 지어지고 있어요. 저로서는 힘들죠. 

 

터울 : 장애인 화장실이 없을 때는 어디로 가세요?

 

정숙조신 : 보통은 남자 화장실을 가는데,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좀 보죠. 되도록이면 사람이 없을 때를 골라서 가고, 저는 억지로 참는 일은 잘 안하려고 해요. 너무 참았다가 탈이 나는 것보다는, 눈총을 좀 받더라도 가는 게 낫다가 기본이긴 한데, 그 때 그 때 좀 다르긴 하네요. 

 

터울 : 바깥에서 절대 물을 한 방울도 안 마신다는 논바이너리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정숙조신 : 많이 있어요.

 

터울 : 되게 놀랐고, 사실 몸에 너무 안좋은 일이잖아요.

 

정숙조신 : 네.

 

터울 : 혹시 화장실에 들어가셔서, 가령 끼순이나 강부치도 자주 겪는 일이긴 한데, 

 

정숙조신 : 사람들이 놀라고 그런 일은 많이 있었죠. 

 

터울 :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하세요?

 

정숙조신 : 상대 안해요. 그냥 무시. 왜냐하면 저는 입을 열면 문제가 더 복잡해지기 때문에, 그냥 쌩까요. 아무 것도 못 보고 못 들은 양. 그러면 대개는 아예 그쪽에서 대놓고 폭력을 쓰겠다고 작정하지 않은 이상은, 되게 기가 차다는 얼굴을 하는 것 정도가 다예요. 그것 말고 사실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그 정도가 다더라고요. 

 

터울 : 성중립화장실을 놓고 논바이너리의 입장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게 일군의 여성주의자들이죠. 어쨌든 남성이 여성화장실에 들어와서 자행하는 여러 성범죄, 몰카라든지가 있는데, 그런 일들을 보시면 어떠세요? 굳이 정견을 요구하는 게 아니더라도, 감정이나 느낌이 어떠신지… 사실 여성주의자들의 그런 반응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잖아요.

 

정숙조신 : 그렇죠. 그래서 화장실을 하나 더 만들든가, 여성전용과 성중립화장실을 만들든가, 그런 식의 절충안은 어떨까 싶긴 해요. 그런데 그냥 감정으로 얘기하면, 오히려 몰카 같은 경우는, 오히려 남녀가 분리되면 더 위험하지 않을까 싶은 것도 있고 그러네요.

 

터울 : 오히려?

 

정숙조신 : 남녀가 같이 쓰면 그 몰카에 남자도 같이 찍힌다는 얘기잖아요. 그것만으로 남자들이 자기가 피해자일 수도 있다고 인식한다거나, 뭐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겠지만요, 아무튼, 아니면 이것도 순진한 생각이겠지만, 여자가 찍히는 걸 원하는 가해자 쪽이 남자가 같이 찍힐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 나빠하면서 범죄 의사가 조금 감소한다거나요.
 

터울 : 그런데 과거 유출된 연예인 섹스비디오나, 리벤지 포르노 같은 영상물에서 유출한 남성 본인의 얼굴이 뻔히 있는 경우라든지를 생각해봤을 때, 남성들이 자기 몸에 대해 그런 류의 감수성을 가질 날이 요원해보이기는 하네요...

 

정숙조신 : 그리고 다른 입장에서 성중립 화장실이 꺼려지는 이유가 있다면, 기본적인 부분에서도 기분이 나쁠 수는 있어요. 일본에서 그런 기계가 나왔잖아요. 용변 소리를 감춰주는 기계. 실제로 일본 화장실에 가면 가끔 있더라고요. 아무리 칸막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굉장히 취약한 상황에서의 행위를 옆의 사람이 상상한다든가, 내지는 내가 버리고 간 생리대를 다음에 들어오는 남자가 본다거나, 그런 상상을 했을 때 여러 가지로 기분이 나쁠 수는 있겠다는 생각은 해봤어요. 특히나 굉장히 성별화된 사회고, 성별의 위계도 확실하고, 위계만이 아니라 범죄의 조건도 현존하는 사회에서는, 화장실에 대한 감정이 근거가 없는 공포는 아니거든요.

 

터울 : 저도 거기까지 동의가 되면, 이건 사실은 그야말로 이원 젠더 때문이지, 젠더퀴어 때문이 아니잖아요. 그게 흐려지면서 논쟁 구도가 엉망으로 가는 게 이상하더라고요. 

 

정숙조신 : 그렇죠. 

 

터울 : 화장실 사용을 남녀로 가르는 것이 이성애 문화의 과잉 성애화와 관련되어있다고 말씀하신 바 있어요. (웃음) 그 부분이 너무 흥미로워서, 이에 대해 한번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정숙조신 : 대부분 성별 분리공간을 만들 때, 화장실이 아니더라도 예를 들면 기숙사, 학교도 있었죠. 그리고 그 전에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지 못할 만한 공간들도 성별을 분리하는 공간이 많이 있었잖아요. 남녀칠세부동석이라든가… 거기에는 다, 그렇게 남녀를 한 공간에 섞어놓으면 정욕을 품을 것이고, (웃음) 끝내는 실행에 옮길 것이다, 이런 논리가 깔려 있잖아요, 근본적으로는.

 

터울 : (웃음) 이성애 문화, 특히 남녀 분리 공간에 대해 이상한 부당 전제들이 많은 것 같아요. 성애 자체에 대한 전제를 포함해서. 그건 심지어 의식하지도 못한 상태에서의 일들이기 쉽고요. 이성애자들이 이성애에 대해 제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계급에 대해서 부르주아들이 가장 모르듯이.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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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회 RED PARTY : 2014.12.7., @50Fifty, 종로3가

 

 

 

 

행사 당일 클럽 측과 저희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입장료를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클럽 측에서 입장을 담당하는 세 명의 직원 중 한 분이 이 합의에 대하여 제대로 숙지가 되지 않았고 00:30 이후에 입장을 원하는 관객들에게 원래 클럽 측의 가격정책인 여성 입장료 5만원을 요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00:30 이후로 입장하신 관객은 총 300여 명이며 그 중 여성의 비율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으나 대략 30% 정도로 추산됩니다. 입장권과 금액을 정산한 결과 이 중 여덟 분이 5만원의 입장료를 내고 클럽에 입장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입장가격을 듣고 발길을 돌리신 관객들이 많았을 것이기에 피해를 입으신 분들의 숫자는 훨씬 더 많으리라 예상됩니다. [...]

 

게이 클럽들의 경우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이 같은 차별이 존재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섹스앤더시티의 인기와 더불어 각종 패션지에서 게이클럽을 ‘여성들이 남성들의 크루징에 방해받지 않고 즐겁게 놀 수 있는 곳’으로 소개하면서 일반 여성들의 입장이 급증하였고 심지어 일본단체관광객들의 여행상품으로까지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당시 클럽을 운영하던 제 지인은 자신의 클럽이 주요 패션잡지에 소개된 후 초반에는 여성입장객들이 매상에 큰 도움이 된다며 좋아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많은 게이들이 아웃팅의 두려움을 느끼며 클럽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확산되었고 당시 가장 핫했던 이 클럽은 순식간에 아무도 찾지 않는 클럽이 되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여성퀴어와 일반여성을 구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이때부터 대부분의 게이클럽들은 다양한 여성입장 거부정책을 만들어냈고 그 후로 게이클럽 안에서 여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 퀴어문화축제 파티기획단장 Ryu Ethan님의 사과문 中 (전문 링크)

 

 

 

 


3) 게이클럽의 성별 입장료 차등 부과와 TERF 사이

 

터울 : 논바이너리와 게이와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려고 합니다. 이번에 퀴어문화축제 공식파티에서 난리가 났잖아요. 어떻게 보셨어요? 

 

정숙조신 : 굉장히 불행한 사고였죠. 진짜 두 명만 그쪽에서 더 일했어도 안 일어났을 사고였잖아요. 

 

터울 : 결국 논점은 겉보기에 여성인 사람들에 대한 입장료 차등 부과인데, 어쨌든 평소에 게이 클럽을 종종 방문하시잖아요. 성별 비순응으로 정체화하시긴 하지만, 여성으로 패싱될 경우에 입장료가 엄청나게 늘어나는데, 게이 클럽에 들어가셨을 때나 들어가셔서 느꼈던 소회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요.

 

정숙조신 : A모 클럽에서 그걸 심하게 겪은 적이 있는데, 예전에는 신분증을 보는 사람, 입장 통제하는 사람이 입구에 있었고, 실제 티켓을 파는 부스는 그 안에 따로 있는 구조였는데, 제가 앞에서 한번 거부를 당하고, 그 안에 티켓 파는 데에서 또 한번 거부를 당한 사건이 있었어요. 그런데 부르는 가격이 심지어 달랐어요, 양쪽에서. (웃음) 들어가는 사람의 패싱을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것만이 아니라, 아예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 들여는 보낸다면 얼마를 부과하는지조차도 자의적으로 하는구나, 생각했어요. 몇 년 전 일이긴 했지만, 여러 가지 의미에서 충격을 받았어요. 
그 이후로는 저 나름대로 자구책, 예방책이랄까를 만들긴 했는데, 일단 잘 못가죠. 갈 때마다 항상 불안하고. 기본적으로 혼자서 안 가요. 혼자서 갈 때가 제일 위험하기 때문에. 보통은 큰 파티가 있을 때, 예를 들면 베어볼이라든가, (웃음) 그럴 때 게이 친구 여러 명이랑 같이 가는 식으로 묻어가는 스타일이에요.

 

터울 : 혼자 가면 어떤 위험이 따르는 건가요?

 

정숙조신 : 혼자 갔을 때 당신은 남성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들여보낼 수 없다는 상황을 더 자주 겪는 것 같아요. 정말 최후의 수단이 필요하면 입을 꾹 다물고 주민등록증을 꺼내기는 합니다.

 

터울 : 이 문제는 참 어려워요. 이게 왜냐하면, 게이 아우팅 문제랑 엮여 있기 때문에. 어쨌든 여성 배제적임과 동시에 논바이너리 배제적인 정책인 건 확실한 것 같아요. 요새 Trunk 같은 경우는 그래서 게이와의 동반입장에 한해 입장료를 동등하게 부과하더라고요. 

 

정숙조신 : 네, Trunk도 처음에 그 얘기가 나왔어서, 게다가 주인이 트랜스여성인데, 그럼 트랜스여성 손님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싶어서, 너무 이상했거든요. 도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답도 안 보이고. 
트위터에서 이 문제 가지고 한창 싸울 때, 이건 논바이너리 배제적인 사건이라는 해석을 가지고, 어떤 사람은 그냥 여성혐오적인 사건인데 왜 거기에 논바이너리 얘기를 끼어들이느냐, 말도 안된다, 이런 반응을 보여서, 또 거기서 그렇게끼리 싸우는 패턴이 있었거든요. (일동 웃음) 피곤해 죽겠어요 진짜. 지금 논바이너리들의 주적은 여혐 게이도 아니고, 개독도 아니고요, 그 밖의 퀴어포빅한 시스젠더 헤테로도 아니고요, 분리주의 페미니스트(TERF)입니다. 정말 끔찍해요.

 

터울 : “젠퀴벌레”라는 말을 그 사람들 입에서 처음 들었어요. “젠(더)퀴(어)벌레”. 너무 끔찍하더라고요, 이런 말이 나도는 것 자체가. 말이 나와서 말인데, 그들에 대해서 어떻게 보세요?

 

정숙조신 : 정말 싸우고 싶지 않았는데 적이 되어 버려서, 싸워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징그러워요. 예를 들면 일베같은 애들과 싸운다면, 걔네들은 관심받는 것만이 목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선 어떤 반사회적인 짓도 거리낌없이 하겠다-이기 때문에, 그냥 논리적으로 싸울 필요가 없어요, 그런 애들은. 개독 같은 경우엔, 자기들 교세를 위해서 성소수자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말도 안되는 논리를 펼치기 때문에, 역으로 논리에서 밀릴 일도 없고 너무나 이쪽의 정당성이 명확하게 잘 보여요. 그리고 여혐 게이라든가, 퀴어포빅한 성향을 가진 비성소수자들과 싸우게 된다면, 그 사람들은 그냥 ‘기득권뽕’에 취해서, (웃음) 아무 생각도 안해도 되는 게 기득권이기 때문에, 그걸 기본적으로 일깨워주는 게 포인트가 될 거예요. 물론 그 과정에서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이 분리주의 페미니스트의 경우에는, 자기들이 너무나 확고하게 믿는 신념이 있어요. 그게 아무리 잘못된 경로라 해도 굉장히 옳은 도그마라고 스스로 믿고 있어요. 그래서 이것에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에 너무 피곤하고, 답이 안나와요. 그 도그마는 근본적으로 여성들의 공통된 경험을 가정하기 때문에, 성별 이분법이라는 선을 그어야지만 성립될 수 있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논바이너리들이 하는 성별 이분법 해체랑 정면 충돌할 수밖에 없단 말이죠. 그래서 답이 안 나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너무 싫습니다. 사람들 뿐만 아니라 상황 자체가 싫어요. 

 

터울 : 충분히 공감해요. 어떻게 보면 전선이 이렇게까지 그어지지 않았어도 될 문제라고 생각해서. 

 

 

 

(2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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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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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경 2017-08-01 오후 22:51

으왕 ^^ 긴 글인데 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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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