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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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1] 2014 세계에이즈의 날 <HIV/AIDS와 더불어 살기> 참관기
: 조금만 더 가까이
매년 12월 1일은 세계에이즈의 날이다. 이날 국내외 관련 단체들은 에이즈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예방책을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마련하고,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깨고 차별을 없애기 위한 다양한 운동을 벌인다. 같은 날 친구사이 사정전에서는 <HIV/AIDS와 더불어 살기>라는 이름의 2014 세계에이즈의 날 기념 간담회가 열렸다. 전재우(친구사이 고문)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간담회엔 박재경(의사), 이종걸(친구사이 사무국장), 박광서(러브포원)님이 패널로 참여해 HIV/AIDS에 대한 의학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관련 활동, 감염인에 대해 평소 궁금했던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 우리가 미처 몰랐던 HIV/AIDS 바로 알기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AIDS(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후천성면역결핍증)에 대한 공포심은 대개 무지로부터 온다. 이성애자, 성소수자, 언론, 심지어 의료인도 마찬가지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나는 지금까지 자신을 PL(People living with HIV/AIDS, 감염인)이라고 밝힌 이와 함께 대화해본 경험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한 회원과 이야기하는 도중 ‘우리 주위의 감염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PL이 우리 주위에도 있다’라는 당연한 이야기를 마치 생경한 이야기처럼 받아들이는 우리들을 보며, 나와 내 주변 모두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건 아마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다’라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이성애자의 시선으로 보는 것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내게 충분한 의학적 지식은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 할 수 있는 것은 HIV/AIDS가 질병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HIV/AIDS 이해에 앞서 의학적인 질병으로서 HIV/AIDS와 사회적인 질병으로서의 HIV/AIDS를 분리시켜 생각해야 한다. 과거 HIV/AIDS가 우리나라에 처음 알려졌을 때, 질병에 대한 무지로 인해 공포심과 편견 등 감염인과 질병에 낙인을 찍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모든 질병에는 어느 정도의 낙인이 존재한다. 그러나 HIV/AIDS만큼 강력한 낙인이 존재하는 질병도 드물다. 실제로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차별은 그들을 향한 낙인으로부터 온다. HIV/AIDS 감염인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갖는 태도의 문제는 당사자의 권리를 부정하거나 제한하는 모든 행동으로 흔히 나타난다. 또한 그러한 차별은 여자보다 남자가, 연령이 높을수록, 기혼일수록 높게 나타나는데 바로 HIV/AIDS를 사회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지점이다.
HIV/AIDS는 만성질환일 뿐이다. 감염을 이유로 개인에게 도덕적, 윤리적 비난을 가하는 것은 질병 자체와 분리되어야 하는 또 다른 문제이며, 비과학적이다. 우리 주의의 감염인들은 고립된 채 혼자서 대처를 하고 있고,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회복하는 삶으로 나아가고 있다. 과거 치료체가 없던 시대에 감염인들의 고통의 결과로 우리는 이제 HIV/AIDS에 대해서 이해를 높였고, 이들을 대상으로 약물이 실험되어서 현재 약 20가지의 약물이 개발되었다. 완벽한 약물은 아닐지라도 현재의 치료 약물은 많은 사람들의 희생의 토대로 한 소중한 결과였다. 또한 자신을 포함한 우리 모두는 HIV를 포함한 아직 밝혀지지 않는 바이러스의 숙주이고, 감염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생각해야 하는 게 충분히 과학적인 설명이다. 끝으로 이날 박재경 님은 “의료인들의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인권교육이 매우 부족한 현실이며,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이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지지를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참고] 발제문: HIV/AIDS: 의학적 면을 중심으로 알아보기, 박재경
#2 친구사이의 HIV/AIDS 활동 현황
“올해 친구사이 20주년을 맞이하여 종로3가 포차거리에서 퍼레이드를 할 때 ‘HIV감염인의 친구들, 이리 와서 한 잔 해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나갔어요.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이가 ‘제가 HIV감염인이에요. 퍼레이드를 같이 할 걸 그랬어요’라고 말했을 때 너무 좋아서 막 울었어요. 서울시민인권헌장 선포를 위해 성소수자들이 먼저 시청을 점거하고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시청바닥에 같이 앉을 때, 그 안에 HIV감염인들도 같이 있었을 때 저는 씨익 웃었어요. 그이들이 서서히 HIV감염인의 친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좋아서요.”
제9회 무지개 인권상 수상자 권미란(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님의 수상 소감 中
이번 달에 열렸던 친구사이 송년회에서는 제9회 무지개 인권상 시상이 있었다. 무지개 인권상은 성소수자의 인권향상에 주요한 업적을 쌓고 인권향상에 기여한 이에게 친구사이가 주는 상이다. 그날 시상을 지켜보던 내 얼굴이 왠지 모르게 붉게 물들었다. 그것은 게이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조차 현재의 내 문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눈감고 있던 문제를 내 일처럼 희생해온, 단지 그녀가 ‘이성애자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마주하게 된 나의 무관심했던 민낯 탓이었다. 더욱이 또랑또랑했던 그녀의 수상 소감은 내 머리 속에 오랫동안 남았다.
그렇다면 현재 게이들이 HIV/AIDS에 대해 갖는 생각은 어떨까. 국내의 HIV/AIDS 운동과 친구사이의 활동에 관한 내용을 담은 2011년 당시의 진보평론의 글을 살펴보면, 대다수의 게이들이 HIV/AIDS를 ‘남의 문제’이자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과 HIV/AIDS 혐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자긍심 부족’을 꼽았다. 체감상으로 지금도 그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마저도 성소수자 운동이 시작된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변화와 같은 맥락으로,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다는 점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친구사이’설립 당시 HIV/AIDS 예방 운동은 단체의 핵심 의제였다. ‘친구사이’는 에이즈 예방을 위해 게이바에 전단지와 콘돔을 무료로 배포했고, 예방교육을 진행했다. 하지만 1998년 HIV/AIDS 감염인이자 친구사이 활동가이던 오준수 회원의 사망 이후 HIV/AIDS감염인 인권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후 HIV/AIDS 문제는 감염인 인권 문제, 에이즈 의약품 접근 문제, HIV/AIDS 감염 취약 계층 문제와 맞물려 한층 복잡하게 되었다. 결국 2004년 2월,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같이 한 ‘동성애자인권연대’. ‘친구사이’, ‘건약’, ‘공공의약센터’, ‘인권운동사랑방’과 개인 활동가들이 ‘나누리+’라는 이름으로 모여 HIV/AIDS로 인권침해를 당하고 차별 받는 감염인과 환자들의 인권과 치료권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진보평론 2011년 친구사이 글 중 발췌) 그리고 지난 2013년 에이즈 환자의 사망 사건을 초래한 한 요양병원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증언 대회, 토론회,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활동 등 HIV/AIDS 감염인의 의료 접근권 문제점을 알리고, 감염인 인권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3 HIV/AID와 더불어 살기, 조금만 더 가까이
동명의 연극을 모티브로 1980년대 HIV, AIDS와 관련된 인권단체의 이야기를 담은
HBO TV영화 <더 노멀 하트>의 포스터, 2014
“감염인으로 커밍아웃 했을 때의 도덕적 비난과 상처는 극복하기 어렵다. 감염인으로서 커밍아웃은 성정체성의 커밍아웃 보다 훨씬 더 높은 강도와 어려움을 갖는다.”(박광서, 러프포원)
‘정체성’
“감염인도 게이와 마찬가지다. 이른바 일반 사회, 커뮤니티 두 개의 삶을 산다고 보면 된다.”
‘커밍아웃’
“제가 가장 마지막으로 했던 커밍아웃에서 이성애자 여자 한 분은 안주를 먹다 떨어뜨렸고, 게이 한 분은 저한테 “약 먹으면 별 거 아니잖아.”라고 하더니, 공통적으로 “다시는 이 이야기 누구한테 하지마.”로 끝났다. 본인들은 알게 됐지만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는 게 싫을 수도 있던 거다.”
“커밍아웃을 했을 때, 긍정적인 반응은 너무 아무렇지 않다는 것과 반대는 아예 개념이 없다는 거.”
“감염인의 커밍아웃은 성정체성 커밍아웃과 또 다른 어려움이 많다. 속된말로 호적에서 판다. 아예 가족과 연락이 단절되는 경우도 있다. 독립하기 전까지는 커밍아웃을 권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다른 사람에게 커밍아웃하라고 바라지 않는다. 내가 겪었던 고통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커밍아웃하고 내게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직도 그때나 지금이나 인식이 좋아졌다고 크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려울 수 있지만, 가장 좋은 것은 커밍아웃 했을 때 이전과 똑같이 대해주는 것이다.”
‘사회생활’
“감염인들의 직업선택에 제약이 많다. 영양사 라이선스는 딸 수 없다. 승무원 등 정기검진 등을 통해 발견되면 회사 내부적으로 논의가 된다. 이러한 인권침해 사항들은 공개적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커뮤니티’
“초기 감염인들에게 감염인 모임은 잘 소개해주지 않는다.”
“감염인들은 반의사지만, 오히려 잘못된 정보가 전달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만났다 헤어지는 경우, 누구든 신뢰를 쌓을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주위에서 먼저 아우팅을 시키는 경우가 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많이 헤어졌다. 트라우마가 있다.”
“요즘 계절 중에 가을을 많이 타는데, 평범한 게이들처럼 종로, 이태원에서 술을 마시다보면, 어느 순간 심리적으로 동떨어져 있다고 느낀다. 엄청나게 외롭다는 느낌. 분명 사람들은 내가 감염인인 걸 모르지만, 내 스스로가 위축되어 상대방에게 접근하면 안 될 것 같다.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자괴감이 밀려올 때가 있다. 기본적으로 ‘나는 뭐지?’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간극’
“간극을 좁힐 수 있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달라.”
#4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날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볼만한 이야깃거리들이 많이 나왔다. 우선 감염인의 입장에서 HIV/AIDS관련 단체나 인권활동가들의 활동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거나 남의 일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흥미롭기도, 한편으로 공감되기도 했다. HIV/AIDS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감염인들의 욕구파악을 위해 LGBTI커뮤니티 욕구조사처럼 스스로의 욕구를 표현할 수 있는 장을 단체에서 마련해주면 좋겠다는 피드백이 있었다. 또는 친구사이 누리집 내에 게시판 같이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을 만들면 많은 정보들을 비감염인들도 접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간담회 후기를 쓰면서 HIV/AIDS 감염인 인권단체인 러브포원 누리집 내 자유게시판을 탐독했다. 주로 질문 등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담담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걸 보면서 알 수 없는 감정들을 느꼈다. 온라인상에서 익명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소통하려는 의지 같은 보편적인 인간성에 작은 희망 따위도 느꼈다. 거기엔 사회적인 낙인, 내가 가지고 있던 일말의 편견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친구사이’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말 그대로 그들과 ‘친구사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감염인들과의 소통의 측면뿐만 아니라 회원들의 적극적인 건강권 보장을 위해서라도 이러한 자리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간담회 참여자들의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정기모임, 워크숍 등 회원들이 모일 수 있는 자리에서 다행히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감염인들도 많다고 하니, 가능하다면 감염인들과 직접 소통 할 수 있는 행사가 주기적으로 꾸려졌으면 한다. 그렇게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부에서만큼은 감염인과 비감염인이 아무런 차이와 장벽을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길 바란다. 이날 사회를 보았던 전재우님의 말마따나 그렇게 된다면 아직까지는 너무나 두꺼워 보이는 '콘돔 한장의 두께'도 뚫을 수 있지 않을까. 감염인과 HIV/AIDS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 그들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가장 첫 번째 방법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된 소중한 간담회였다. 끝으로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가 언젠가 내 이야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 내가 아는 사람의 이야기가 된다면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참고] 머리로 익히기 보다 가슴으로 배우는 행사 (HIV/AIDS와 더불어 살기 간담회 후기), 코러스보이(전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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