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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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스케치 #2]
우리가 이긴다 - 혼인평등소송 원고들과 함께 한 6월 정기모임 후기
친구사이 2025년 6월 정기모임은 한국의 혼인평등소송 원고 22명 중 네 분을 모시고 혼인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혼인평등소송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으며, 22명 중 7명(원 6명이었는데 6월 정기모임을 기준으로 7명이 되었습니다)이 친구사이 회원입니다. 일상적인 돌봄 관계 혹은 가족 관계를 제도적으로 어떻게 포용할지에 대한 상상이 시도되고 있음에도, 성소수자/동성 동반자들은 (일부 성과에도 불구하고) 제도적으로 그 관계성 자체를 부정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혼인평등소송은 지금 확실하게 있는 결혼 제도에서부터 그 관계망을 인정하도록, 헌법재판소로부터 평등권과 혼인권을 인정받고자 하는 소송입니다. 그리고 혼인평등을 위한 싸움은 일종의 트로이 목마이기도 합니다. 지금 가족법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모든 시도가 동성혼 법제화를 위한 시도라며 보수개신교와 그 세력 기반의 정치인들에 의해서 조직으로 가로막히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친구사이는 이 지난한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친구사이 회원을 포함한 22명의 동성부부 원고들과 함께 나서고 있습니다. 친구사이는 혼인평등 캠페인 '모두의 결혼'에서도 함께 하고 있고, 이번 정기모임처럼 앞으로도 회원들과 게이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모임들도 계속 가져보려고 합니다. 정기모임이 어땠는지에 관해 다섯 분의 친구사이 회원들이 후기를 써주셨습니다. 아래는 그 후기들입니다.
친구사이 상근활동가 / 기용
"게이가 무슨 결혼이야?"
몇 년전만 해도 동성혼 얘기를 꺼내면 으레 들었을 법한 반응입니다. '이반'사람들한테든 '일반'사람들한테든 상관없이요. 꿈 깨라는 타박이죠.
하지만 최근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동성배우자도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면서 기류가 유의미하게 변화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드디어 우리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고무된 집단도 있는 반면, 굳이 우리 존재를 드러내어 더 공격받을 수도 있는 일 아니냐며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고, 결혼하고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아예 포기하고 살아 왔는데 이제는 정말로 뭔가 될 것 같은 분위기에 지금까지 자포자기하고 살아 온 날을 후회하는 이들도 보입니다. 어찌 됐든, 동성커플의 법적 승격에 대한 담론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게 커뮤니티 내 주된 분위기라고 감히 추측해 봅니다.
동성커플의 합법적 결합에 대한 관심 고조는 6월 정기모임에서도 확실히 느꼈습니다. 친구사이 내 혼인평등소송에 참여한 게이커플 분들을 모시고 대담이 진행된 이번 정기모임엔 비회원 참여자가 절반을 넘는 듯 했습니다. 커플끼리 참여하시고, 개인적으로도 발걸음 하시고, 한 분이 여러 명의 친구분들을 데려오시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에 못지않게 기존 회원분들의 참석률도 높았습니다. 사정전이 결코 작은 공간이 아닌데, 구석구석 사람으로 꽉꽉 찬 광경은 오랜만이었습니다.
소송에 참여한 친구사이 커플 분들을 모시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의 반려자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왜 소송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소송에 참여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 이모저모를 경청하니 1시간이 재빨리 지났습니다. 특히 각 커플이 구청에 혼인신고를 하러 가서 겪은 일화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어차피 불수리가 될 걸 알면서도 긴장하며 구청으로 발걸음을 한 순간, 불수리 통지를 받고 울먹였던 순간, 그럼에도 구청 직원들에게 "결혼 축하드린다"는 말을 듣고 기념 사진을 찍었던 순간의 이야기를 들으니 제가 마치 현장에 있는 듯 했습니다. 무엇보다 소송에 참여한 게이커플 4쌍 중 3쌍이 친구사이 회원이라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나머지 한 커플도 친구사이와 긴밀한 관계이니 사실상 4쌍 모두 친구사이 사람들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죠?). 레즈비언 커플들 중에는 이렇게 한 단체에 여러 명이 소속되어 소송에 참여하는 경우는 없다고 들었는데, 친구사이가 역시 뭐라도 되는가 봅니다.
물론 이번 정기모임에 오신 모든 분들이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오신 것은 아닙니다. 동거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분들도 꽤 되셨어요. 하지만 이번 정기모임에서 듣고 나눈 이야기들로, '더이상 숨어살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정도의 희망을 가지게 된다고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친구사이에 회원으로 정박하셔서 함께 힘을 실어주신다면 더더욱 좋겠고요.
여담이지만, 저는 꼭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지독하게 얽혀서 책임지고 싶어요. 이 얘기를 꺼내면 지금 애인도 없으면서 벌써 결혼부터 생각하냐는 말을 꼭 듣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힘써주시는 분들이 있으니 동성혼은 더이상 백일몽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법의 보호 없이도 10년, 20년, 30년동안 서로 마음을 지키는 친구사이의 커플들을 보며 기운을 차립니다. 숟가락만 얹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지만, 열렬히 응원하겠습니다.
친구사이 회원 / 모
늘 있는 친구사이 정기 모임을 위해 사정전에 들어선 순간 뭔가 다른 분위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네? 아니고요. 사정전에 들어 갔을 때 테이블 위에 놓여진 샴페인잔들이 조명을 만나 따스한 분위기를 주고 있었습니다. 미리 공지를 통해 혼인평등소송에 참여한 세 부부들의 이야기를 나눌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원래 생각한 백색 조명 아래서 일상적인 정모가 아닌 주황빛 조명은 묘한 설레임과 기대감을 더 크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정모는 대표 윤하님의 자연스러운 진행으로 세 부부들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하였습니다. 세 커플이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혼인 소송을 시작한 이유, 구청에 혼인 신청을 하러 갔을 때의 에피소드 등 마치 결혼을 마친 피로연 축하자리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 날 놀라운 건 신입 참여자들이 매우 많았다는 것입니다. 친구를 따라 오셨다는 분들과 결혼을 꿈꾸는 커플들, 왠지 멀게만 느껴졌던 결혼이 이젠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로 한 발자국 다가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던 자리였습니다.
친구사이 회원 / 윤
제 꿈은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가정을 꾸리는 것입니다. 이 사랑에 대한 모든 책임을 다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친구사이에서 마련해주신 [결혼할 결심] 모임에 참석하면서 ‘저와 같은 마음을 나누고 싶은 분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혼인평등소송에서 세 부부가 느끼신 다름이 틀림으로 구별되는 나라의 법과 제도를 모임에서 함께 마주하며 큰 상실감이 들었지만, 급진적 수용이 아닌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그날까지 저도 함께 마음을 보태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과정에서 큰 에너지가 필요하겠지만 반드시 큰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쉽지 않은 길을 먼저 걸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늘 응원하겠습니다!
친구사이 회원 / 철
오랜만에 평소보다 긴장한 마음으로 정기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이날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문득 '혼인평등 소송'과 관련해 주위의 나 같은 게이들이나 친구사이 회원들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이 과정이 결코 힘들다고만은 말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제 마음을 솔직하게 꺼내놓고 싶었습니다. 이날만큼은 평소의 제 삶과는 상관없는 불특정 다수에게 제도적 권리를 요구하는 자리가 아니라, 당사자인 우리끼리 어떤 일상을 살고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되돌아보고 공감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사회자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순간"을 묻자, 정남 형은 친구사이에서의 오랜 활동 경험을 다정하게 이야기해 주었고, 기환 형은 백팩과 처음 만나게 된 귀여운 에피소드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제 배우자인 낙타는 담담하게 소송 준비 과정을 말했습니다. 그 순간 저 역시 마음 한구석에서 묘한 위안을 얻었고, 동시에 뭉클해졌습니다. 각기 다른 시간과 풍경 속에서 시작된 사랑이 이렇게 같은 자리로 모여 있다는 사실이 든든하게 느껴졌습니다.
토크가 끝난 뒤 여러 분이 따뜻한 눈빛을 건네고 말을 걸어주셨습니다. "언젠가 저도 결혼할 수 있겠죠?"라는 말을 들은 순간, 가슴이 저릿하고 뭉클해졌습니다. 아마 그 한마디가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함께 있었던 이유일 것입니다. 서로의 일상을 나누고, 이름 붙일 수 없는 불안과 외로움을 조금씩 덜어내기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결혼할까?"라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요.
한동안 그리웠던 종로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이날 여름밤의 공기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정말로 더 많은 사람들이 평범하게 서로를 돌보고 관계를 약속하며, 법과 공동체의 보호를 받는 날이 오기를 바랐습니다.
혼인평등소송 원고 부부, 친구사이 회원 / 규환
안녕하세요. 친구사이 소모임 책읽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과라고 합니다. 이번 정기모임을 통해 혼인평등소송에 나선 친구사이 회원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를 품고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모임을 통해 세 부부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와 혼인평등소송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이유에 대해서 자세하게 들을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동성 부부로 살아오며 겪었던 두려움과 상처의 기억들을 들으며, 제가 성소수자로 살아오며 겪었던 아픈 기억들이 겹쳐 보여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세상과 사회에 맞서는 용기 있는 모습을 보며 대단하기도 하고 부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또한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동성 부부를 온전하게 인정하는 날이 반드시 올 텐데, (그렇게 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세 부부의 그동안의 노력들이 미래에 역사책에 나오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기쁘기도 했습니다.
이번 정기모임에서 규환&낙타님 부부의 이야기도 인상 깊었습니다. 핑크빛 꽃다발과 정성스러운 손편지로 프러포즈 하셨던 에피소드를 들을 때는 저의 죽어 있던 연애 세포가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구청에서 혼인신고를 접수하고 바로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 결과를 듣고 무거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을 때, 구청 직원의 “결혼 축하드립니다”라는 예상치 못한 축하의 인사를 받고 큰 감동을 받았다는 에피소드는 제 마음 또한 뭉클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번 모임을 통해 세 부부의 다양한 경험을 들으며, 그동안 제게 부족했던 성소수자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가득 채울 수 있었습니다. 뜻깊은 시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친구사이 회원 / 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