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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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퀴어자랑 #6] 차(茶)중진담 - 지방 회원들의 폭풍수다
2015년을 맞이해 친구사이 소식지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코너 <전국퀴어자랑>. 일요일이면 일요일마다 어김없이 찾아오지도 않고, 송해 선생님도 없지만, 팔도 방방곡곡에 거주하고 있는 다양한 퀴어들, 그리고 곁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의 세상사는 이야기를 신명나게 소개합니다. 그럼, 다 같이 외쳐보아요. 전~국! 퀴어자랑-
편집자 주 -
이번 전국퀴어자랑에서는 조금 특별한 자리를 마련해 보았습니다. 바로 각 지역을 대표(?)하는 지방 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폭풍수다를 나누었는데요. 그 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을 토해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후문이..
술이 없어도 거침없는 이야기가 마구마구 나온 그 현장, 지금 확인하시죠!
참여자:
진석(30, 현 서울 거주/제주도에서 22년 생활)
낙타(30, 현 서울 거주/경상도 부산에서 27년 생활)
아마(26, 현 광주 거주/전라도 광주에서 26년 생활)
블루베리(22, 현 충청도 거주/충청도 예산에서 22년 생활)
세호(23, 현 강원도 거주/강원도 강릉에서 20년 생활)
Q 고향과 서울에 대한 생각
진석: 일단 전 제주도민이라는 정체성이 별로 없어요.(웃음)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살았지만 부모님 두 분 다 서울 출신이라 어려서부터 특별히 제주도 음식이라고 할 만한 것도 먹지 않았고 친척들이 대부분 서울에 있어서 매년 서울도 자주 다녔어요. 철이 들고부터는 섬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서 제주도에 대한 소속감이 별로 없어요. 그렇다고 서울이 마냥 좋은 것도 아니네요. 폐쇄적인 환경이 답답해서 빨리 뭍으로 나가고 싶었을 뿐이지 꼭 서울일 필요는 없어요. 서울은 오히려 너무 혼잡하고 시끄러워서 서울 외곽이나 경기도에서 살고 싶어요.
아마: 서울은 인구나 인프라 면에서 광주보다 10배 이상인 거 같아요. 실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모든 면에서 잘 갖추어져 있는 느낌이랄까?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오고 싶은 마음이 큰 건 아니지만 한번쯤 살아보고 싶기는 해요.
블루베리: 여기 모임 사람 중에서 저만 유일하게 읍 출신인거 같네요.(웃음) 읍이라 해도 기차역과 가까운 읍내에서 살기 때문에 살면서 큰 불편함을 느끼진 않았어요. 그런데 대학생이 되고 도시생활을 자주 접하다 보니 점점 고향이 답답하게 느껴져요. 가끔 서울에 오면 제가 모르는 브랜드나 프랜차이즈 식당들이 많아서 놀라기도 해요. 하루 빨리 도시에서 생활하고 싶어요. 현재 대전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편입해서 서울로 올라올 생각이에요.
세호: 그냥 스스로 생각하는 거 자체가 지방촌놈이라고 생각하고 지내고 있어요. 23년이라는 기간 동안 지금 지내는 곳을 거의 벗어나지를 못했었고, 그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몇 년 사이의 일이니까요. 전 지방촌놈을 벗어나서 서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 있어요. 수도권 쪽이 게이들이 몰려있는 숫자라든가, 업소 등 게이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행사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죠.
낙타: 전 고향에 있을 때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았어요. 다만 서울에서 몇 년 살다가 고향에 내려가니 문화시설이 좀 아쉽기는 하더라고요. 가령 다양성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나 대형서점이 없는 건 아쉬워요.
경상도에서 올라온 ‘낙타’님의 사진(우). 부산 바다에서 연인과 함께 찍었다고..
Q 고향에서의 추억(경험담, 연애담, 썸남, 벙개?)
진석: 고등학교 3년 내내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도 저를 좋아하는 거 같았지만 친구의 정체성을 알 수 없어서 끝내 고백은 못 했어요. 제주도는 워낙 폐쇄적인 곳이라 커밍아웃은 엄두도 나지 않았거든요. 고3 때는 오히려 그 친구에게 쌀쌀맞게 굴었어요. 이소라 노래 중에 ‘처음 느낌 그대로’라고 있는데 가사내용이 딱 제 이야기예요.
세호: 강릉에 이반업소라고 내걸은 곳이 1곳이 있는데 고3때 처음 알게 됐고 수능 끝나고 가도 되냐고 물어보고 가봤는데 거기서 알게 된 사장 형들이랑 그 형들의 지인들이랑 술도 먹고 가끔 따로 만나서 놀아주시기도 하셔서 재밌었거든요. 그래도 아쉬운 게 있다면 서울 쪽보다는 사람이 많이 적고 은둔들이 많은 편이라 더 많이 만나보지 못했다는 점?
사귄 사람도 몇 명 있는데, 이상하게 사람에 관한 건 어지간해선 지워지지가 않더라구요. 한사람 한사람이 다 의미 있는 만남이었어요. 제가 잘못했든 상대가 잘못했든..
낙타: 수능 끝나고 겨울방학 때 27살 형을 만나 처음으로 섹스를 했어요. 아직까지 날짜도 정확히 기억해요. 왜냐하면 그날이 그 해의 마지막 날이었거든요. 성인식을 제대로 한 거죠. 그 형과 밤을 보내고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새해의 첫 해를 같이 봤어요. 25살 때는 시티를 통해 사람을 만났는데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었어요. 그날 밤 그 친구와 소주방-포장마차-가라오케로 이어지는 부산 게이업소 투어를 했는데 충격이었죠. 이런 문화도 있구나! 결국 그 해 말 종로까지 진출하게 됐죠.
고등학교 때는 ‘푸른산호’라는 닉네임으로 온라인 까페에서 하이틴 로맨스(?) 소설도 썼어요. 퀴어소설이라고 해야 될까나? 나름 조회수도 있었고 팬층도 확보했었죠.(웃음)
블루베리: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스터디 모임에서 만난 1년 선배에게 고백을 받았어요. 그리고 1년 동안 사귀었죠. 그 형이 3학년이 되고 수능준비하면서 헤어졌어요. 그런데 사실 저는 따로 좋아하는 형이 있었거든요. 양다리를 걸친 건 아니고요. 그 형은 일반이었어요. 고백했지만 결국 거절당했죠. 거절하면서 자기는 이해한다고 남들에게 말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던 착한 형이었어요.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소설로 쓰려고요. ‘푸른산호’ 낙타님한테 방법 전수받으면 되겠죠?(웃음)
아마: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까지 온라인카페나 메신저로 활동했는데 ‘버디버디’ [남남방(男男방)]에서 자주 채팅을 했어요. 채팅을 통해 어떤 애를 알게 됐는데 같은 반 친구였어요.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는데 그 친구는 제가 아는 척 하는 것을 싫어하더라고요. 16살 때였나? 처음으로 좋아했던 친구랑은 눈 오는 날 밖에서 손잡고 30분씩 막 걸었는데 그게 아직도 생각나요. 모르겠어요. 그냥 정말 좋았어요.
전라도에 살고 있는 ‘아마’님의 사진
Q 지방 게이 라이프, 이런 건 참 힘들다?
세호: 사람들이 적고 업소도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은둔 생활이었죠. 사람을 만나는 거나 업소들 위치 같은 것들은 게이 어플들이나, 이반시티 같은 사이트들에서 많이 찾았었죠. 그곳에서 홍보들을 많이 하니깐요. 업주들이 홍보를 안 해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거기 게이업소라며?’ ‘사장이 게이라며?’ 같은 말들이 많았어요. 그렇게 해서 알아내고 어지간해선 한 번씩은 다 가본 것 같아요.
아마: 20살 때 처음 지역 커뮤니티에 나왔어요.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처음에는 신기하고 즐거웠는데 점점 시간이 갈수록 실망감만 쌓이더라고요. 향락과 소비문화만 있고 남는 게 없는 느낌. 메신저 통해서 가끔 사람들과 얘기는 했는데 만나기까지가 진짜 힘들었어요. 대화는 잘 됐는데 막상 나가면 바람도 많이 맞고. 휴대폰 없을 땐 혼자 막 1시간 동안이나 눈 맞으며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집에 들어오고. 저는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싶고 문화적인 욕구도 충족시키고 싶었는데 밤의 문화만 있고 낮의 문화는 없는 거예요. 그 이후로 서울도 다니고 다른 커뮤니티를 알아보고 했던 것 같아요.
블루베리: 제가 사는 곳에서 앱을 켜면 다른 도 지역 사람까지 보일 정도에요. 저희는 더 없어요.(웃음) 또래는 더 찾기 힘들고요. 그나마 30대 초반은 조금 있는데 그래서 30대를 조금 만나 봤어요. 제 이상형도 그 나이 또래라서 오히려 더 좋았죠. 아무튼 만날 사람이 없다는 게 가장 힘들고요, 극장이나 문화시설이 없는 것도 너무 아쉬워요.
낙타: 지역에 변변한 커뮤니티가 없고 사람 만나기 어려운 것도 아쉽지만 저 같은 경우엔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 것도 힘들었어요. 철들고 나이가 먹었다고 잔소리가 줄어드는 건 아니잖아요. 전 나이 들고 서울생활에 싫증나면 고향에 내려와 살 생각도 하는데 그때도 부모님 집과 가까이에서 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웃음)
진석: 제주도에서 앱을 켜면 제주도 사람 전체가 나와요. 그만큼 사람이 없는 거죠. 거기다가 제주도는 워낙 폐쇄적인 곳이라 한 집 건너면 거의 다 알게 되거든요. 결국 그것이 두려워 20살까지 제주도에 살면서 단 한 명의 게이도 만나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전 반드시 성소수자 동아리가 있는 대학교에 가고 싶었어요. 결국 대학교 입학통지 받자마자 동아리 까페에 가입했죠.(웃음) 그리고 제주도에서 온라인 활동은 엄청나게 했었어요. 씨버러버(Cyber Lover)까진 아니지만 친해진 친구가 있는데, 걔가 탈반한다고 해서 충격먹기도 했구요.
제주도에서 올라온 ‘진석’님의 사진. 제주도 해변에서 혼자..
Q 나에게 고향이란?
아마: 싫은데 그렇다고 떠날 수는 없고 바꾸고 싶은 것. 마치 XX처럼(?)
진석: 휴양지. 예전하고 비교해 너무 많이 변했어요. 중국인들 소유 땅도 많고. 그래서 이제 는 가끔 내려가도 휴양지처럼 낯설어요. 안타깝고 서글퍼요.
블루베리: 전 제발 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강조) 20년 넘게 살았는데 변한 게 거의 없어요!
낙타: 소중한 곳.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면서 나고 자란 곳에 대한 소중함이 깊어지는 것 같아요.
세호: 사실 저한테 고향은 가족이 있는 곳이라는 것 밖에는 별 의미가 없어요. 고향에 있는 기억이라 해봤자 대부분 가족들과의 기억이고, 특정 장소에 대한 기억들은 거의 없거든요.
강원도에 살고 있는 ‘세호’님의 예전 사진
Q 지방에 살고 있는 퀴어들에게 한마디!
블루베리: 지방에 계신 분들은 상대적으로 인권이나 퀴어문화에 대한 정보나 관심이 적은데 그런 분들에게 ‘퀴어문화축제’에 꼭 한번 참여해 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저도 이번에 처음 참여해 봤는데 느끼는 게 많았거든요.
아마: 지방에 사는 많은 게이들이 서울에 살기를 희망하잖아요. 그런 분들은 서울에서 살아야죠. 그런데 자꾸 올라가기만 하고 내려오지 않는 게 문제 같아요. 많지는 않겠지만 서울에서 살다 내려온 분들과 지역에 사는 게이들이 힘을 합쳐 지역 게이 커뮤니티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어요. 서울에서의 경험과 지방의 인맥을 모아서 좋은 문화를 만들고 지방의 외로운 게이들에게 쉼터와 해방공간을 만들어 준다면 정말로 의미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지금 그 일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함께 해요!
세호: 동네가 좁다보니 누굴 만나려 하면 눈치도 많이 보이고, 게이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행사라든가, 업소들도 많이 적고, 사람도 많이 적을 테지만. 그래도 모두 행복해집시다~
낙타: 아마님 말씀을 듣고 나니까 친구사이 30주년 사업계획을 앞당길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네요. 충청지부 전라지부 경상지부에 더해서 도서지부까지! 오늘 참여하신 분들뿐만 아니라 지역에 계신 분들께 친구사이 지부설립에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진석: 얼마 전 추석 연휴 때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게이들을 처음 만났는데, 다들 나름 만족하며 살고 있더라구요. 확실히 고향 말투로 얘기하니 편하고 좋았어요. 결국 느낀 점은, 어디에서 살든 모두 행복하시길!
<전국퀴어자랑> 연재 순서
#02 경상도 부산 - 전라도 상남자 '카이'의 부산 적응기
#03 전라도 전주 - 지역의 성소수자들과 함께, 낯설지만 같이
#04 경상도 대구 - 저항과 연대의 힘으로 함께 만드는 대구퀴어문화축제
#05 경상도 함안 - 길을 잃는 즐거움 : 게이로서 시골에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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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호][활동스케치 #4]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관람기 (1) : ‘친구사이’를 보는 친구사이, ‘지보이스’를 보는 지보이스
2024-11-04 19:08
기간 :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