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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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1]
네 멋대로 해라: 보수 개신교의 성경구절 해석 비틀기
국내 언론 중에서 조선일보, 국민일보와 함께 성소수자 관련 이슈를 가장 많이 쏟아내는 곳이 어디일까요. 한겨레신문?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정답은 바로 ‘크리스천투데이’입니다. 실제로 크리스천투데이 온라인판(http://www.christiantoday.co.kr/)에 ‘동성애’, ‘동성결혼’이라는 단어로 검색만 하더라도 엄청난 기사가 쏟아져요. 물론 그 내용은 그야말로 ‘극혐’입니다. “전염병처럼 한국사회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는, 하나님의 천벌을 면치 못할 동성애”, “동성애자들을 정죄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들이 변화되고 탈동성애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성윤리의 근간을 흔들며 무분별한 성적 일탈의 극단을 치닫고 있는 동성애의 확산을 예의 주시” 등 다분히 감정적인 글귀부터 악의적인 비난까지, 그 표현방식도 참 다양합니다. 신의 이름을 가장한 인간의 추악함까지 엿볼 수 있는 대목 아닌가 싶어요.
▲최근 ‘크리스천투데이’ 온라인판의 동성애 관련 기사들
그렇다면 하고많은 성경구절 중에 그들이 골라 쓰는 성경구절은 어떤 배경으로 나온 것이고, 왜 하필 그 구절을 들먹이는 걸까요. 사실 (전세계 베스트셀러라고 하기에 뭐가 쓰여있는지 자못 궁금한 나머지) 자진해서 성경공부를 하며 지금도 교회에 다니고 있는 필자는 성경을 보면서도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거든요. 성경에는 서로 사랑하고 베풀며 살라는 좋은 말들이 훨씬 많으니까요. 그럼에도 보수 개신교 세력들이 콕 집어 골라 써 유명해진 성경구절들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또 그 구절들은 어떤 연유로 성소수자 차별 및 혐오를 뒷받침하는 ‘절대적인 근거’가 되었는지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종교신문 1위를 표방하며 활동하는 크리스천투데이에 나온 성소수자 – 그들은 동성애자라는 표현을 더 즐겨 쓰지만 - 차별 및 혐오 기사, 그리고 조선∙국민일보 등 보수언론의 광고에 실린 성경구절을 중심으로 해석 부분을 비틀어볼까 해요.
#1. “너는 여자와 교합함과 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레위기 18:22)
보수 개신교 신자들이 성소수자 혐오 표현을 할 때 가장 활용하는 게 레위기입니다. 그들은 이에 덧붙여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위기 20:13)와 같은 구절을 빨간 글씨로 써 붙이며 동성애를 부도덕한 성관계로 규정하고 이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레위기는 정말 동성애를 악(惡)으로 규정한 부분일까요? 레위기에는 과연 어떤 얘기들이 나와 있고 지금 시대에서는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지 알아보겠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레위기가 나온 배경을 살펴볼게요. 성경에 의하면 레위기는 이스라엘 12지파 중 제사와 종교를 관장하는 레위인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켜야 할 종교, 생활, 관습, 제사의식 등 여러 가지 율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요. 성경구절을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구분해보면, 제사에 대한 율법(1~7장), 사제의 자격에 대한 규정(8~10장), 정결과 부정에 관한 내용(11~15장), 1년에 한 번 있는 속죄일(7월 10일)의 의식(16장), 마지막으로 깨끗한 생활과 예배에 관한 얘기(17~27장)가 담겨 있죠. 이처럼 레위기는 신자들이 지켜야 할 율법의 모든 세부사항을 기록한 부분이어서, 같은 종교 내에서도 현대인이 파악할 수 없거나 부적합해 보이는 주제들을 다루기 때문에 등한시하기도 합니다[i].
한편 가장 눈에 띠는 건 아무래도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는 부분이에요. 그러나 재밌는 것은 누가 봐도 섹스를 연상시키는 이 표현이 실은 ‘Lie with’, 즉 ‘~와 함께 눕다’라는 의미를 놀라운 성적 뉘앙스로 과도 해석해 ‘교합’이라고 표현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성행위를 묘사하면서까지 당시에는 왜 동성애를 금한 것일까요. 이 부분은 옛날 노동력을 중시했던 이스라엘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어요. 즉 ‘동성애=자손 번식을 못함’이라는 생각 때문에 노동력을 낳지 못하는 행위라 규정하여 금지했다고 할 수 있고, 실제로 구약에서는 자녀 출산과 관련 없는 모든 성행위(자위행위나 혼전성교 등)를 죄악시하고 남/여 간의 결혼을 강조했지요. (예수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는 건 함정!) 이러한 배경을 무시한 채 "동성결혼이 성경적 가족관을 파괴한다"며 문화를 믿음으로 만들어버린 보수 개신교인들의 노력이 참 가상합니다.
▲<친구사이 20> 행사 때 혐오세력이 든 성경 문구(레위기 20:13)
주목할 점은 구약성경에서 동성 간의 성관계를 직접 묘사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은 이게 전부라는 것입니다[ii]. 또한 구약성경에서는 동성 간의 관계보다 간음, 근친상간, 수간이 더 많이 언급되며, 레즈비언이나 양성애 등에 대해선 아예 거론되지 않아요. 결국 구약성경 안에서 오늘날 동성애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명백한 규범들은 찾아보기 힘들고, 이는 보수 개신교의 성경 문자주의에 의해 해석되어 성소수자 차별 및 혐오를 위해 입맛에 맞게 사용되는 것이죠.
또 한 가지는 보수 개신교 신자들이 레위기를 받아들임에 있어서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에요. 그들이 말하는 대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한 번 생각해볼게요. 그렇다면 레위기에 나온 것처럼 그들은 과거 이스라엘에서 행한 것과 같이 제물을 바쳐 제사도 지내야 하고,[iii] 11장에 나온 부정한 동물들(돼지, 게 등)을 먹어서도 안 되며, 월경이나 출산을 한 여성은 피를 흘린 불결한 존재로서 어떤 것과도 닿는 것을 금지해야 합니다[iv]. 하지만 보수 개신교 신자 중 이러한 부분까지 실천하거나 이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죠. 무엇보다 레위기의 또 다른 말씀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레위기 19:18)는 왜 실천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과연 그렇다면 레위기에 언급된 나라인 ‘이스라엘’은 현재 성소수자를 어떻게 대할까요? 이스라엘은 일찍이 1988년에 동성애를 비범죄화했으며, 수도인 텔아비브에서는 중동 최대의 퀴어퍼레이드가 매년 펼쳐지고 있어요. 또한 동성애자의 공개적인 군복무가 가능하고,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국회의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작년에는 동성애자들에게 대리모 출산을 통한 자녀 양육을 허용하는 법안을 입법위원회에서 승인했습니다. 보수 개신교 신자들은 이러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뭐라고 할 것인지 되묻고 싶어요. 이들 또한 성경 구절에 나온 대로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외치고 싶은 걸까요?
#2.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창세기 19:4~5)
레위기와 함께 구약성경에서 동성애를 죄악이라 명시했다는 구절은 바로 이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를 두고 ‘소돔과 고모라가 동성애 때문에 신의 징벌을 받아 멸망했다’고 해석하며 특정 성적 행위를 규제하거나 처벌해야 한다고 보수 개신교 신자들은 주장하는 것이죠. 이 또한 창세기 19장 앞뒤에는 어떤 일들이 펼쳐져 있는지,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가 나오게 된 배경과 ‘소돔과 고모라’는 정말 동성애 행위 때문에 멸망했는지 확인이 필요해요.
유대인의 으뜸가는 조상인 – 또한 이복 누이를 부인으로 맞이하고 그 이전에 2명의 첩을 두었던 – ‘아브람’에게는 조카 ‘롯’이 있었는데, 롯은 아브람네와 떨어져 에덴동산 같이 휘황찬란한 소돔에서 ‘악하다고 불리는’ 소돔 사람들과 살게 됩니다(13장). 그 이후 십일조의 기원이 되는 이야기,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된 이야기, 할례의 시초에 대한 이야기가 쭉 나오다가(14~17장) 뜬금없이 다시 소돔이 언급되는데요. 그러면서 보수 개신교 신자들이 소돔의 가장 큰 죄악이라며 나오는 게 바로 19장의 저 구절인 것입니다.
▲<2015 아이다호 문화제> 때 혐오세력이 든 피켓 문구들
과연 소돔이 멸망한 게 소돔 사람들이 롯의 지인들을 ‘상관하려’ 한 저 행위 때문일까요. 소돔의 죄악에 대해 직접 언급되는 부분에서는 ‘교만함과 풍족함과 태평함으로 인해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에(에스겔 16:49)’라고 나옵니다[v]. 그럼에도 보수 개신교에서는 ‘소도미법=반동성애법’이라는 해석을 앞세워 ‘동성애로 인해 나라가 멸망한다’는 어마무시한 주장을 내놓는 것이죠. 재밌는 부분은 이 구절에서 롯의 지인들을 상관하려 하는 사람들을 자연스레 ‘동성애자’, 즉 ‘같은 성에 성적으로 끌리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라본 점이에요. 막상 그들이 이성애자였을 수도 있고, 일부러 굴욕감을 주기 위해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간하려고 한 사람들일 수도 있는데, 어떻게 ‘동성애자’라는 시선이 가능했던 건지 의문이 듭니다.
게다가 중세 유럽을 거쳐 19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동성애는 성향이 아닌 실천으로 간주되었어요. 즉 ‘동성애자’라는 용어 자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sodomite’라 하여 ‘남색을 일삼는 자’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만 있었다는 것이죠. 여기에서 다시 창세기 19장으로 돌아가면 역시 롯의 집에 쳐들어간 소돔 사람들이 의도했던 건 성적 행위를 통한 능멸의 의미가 강했음을 알 수 있는데요[vi]. 다음에 이어지는 19장 8절에 보면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라며 롯이 소돔 사람들에게 자기 딸들을 내어주려는 장면이 나옵니다. 결국 성경 구절에 나온 정황으로 볼 때 그들은 롯의 지인들을 굴욕시키기 위해 성적 행위를 통해 상관하려(take the pleasure with) 했던 사람들이지, 동성을 사랑하여 그 표현으로 성적 관계를 맺으려 하는 게 아닌 것임을 알 수 있어요.
물론 이 부분에서 소돔 사람들이 롯의 딸들(여성)보다 지인들(남성)을 범하려고 한 것을 두고 그들이 동성애자라고 해석할 여지는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건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상관하려 한 행위’ 자체에 있는 것이지 ‘상관하는 사람들의 성향’에 있는 게 아니에요. 행위가 서로 간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게 아닌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뜻이죠. 이러한 부분은 최근 ‘소도미법(sodomy law)’의 폐지 경향만 봐도 알 수 있어요. 프랑스는 1791년 프랑스 혁명 때 소도미법을 ‘피해자 없는 범죄’로 간주해 폐지했으며, 1917년 구소련 역시 러시아 혁명 이후 소도미법에 의거한 동성애를 비범죄화하기도 했죠. 영국은 1861년에 소도미법을 폐지했으며, 미국은 2003년 ‘로렌스 대 텍사스 사건[vii]’을 계기로 소도미법에 대한 위헌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처럼 당시 소돔 사람들의 행위를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행한 성적 범죄’로 확연히 인식하고 소도미법의 동성애 관련 확대 적용을 금지한 나라들은 그렇다면, 보수 개신교에서 말한 대로 나라가 멸망하는 걸 방관한 책임이 있는 것일까요. 어떤 사람들이 나라가 망하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나요?
#3.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린도전서 6:9~10)
“아주 먼 옛날 하늘에서는 당신을 향한 계획 있었죠~
하나님께서 바라보시고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네~”
크리스천으로서 제가 참 좋아하는 찬송가 구절입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절 위한 계획을 하나님께서 세우셨다고 하니, 그리고 본인의 계획과 형상대로 태어난 게 보기 좋다고 하셨다니, 생각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나오는 대목이죠.
신약성경에도 더러 동성애를 비난하는 듯한 구절이 나오는데, 그 중 하나가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저 구절이에요. 특히 ‘남색’이라는 표현에 집착해 보수 개신교에서는 동성애 혐오를 외칩니다. 본인의 계획대로 인간을 만드셨다는 하나님은 그렇다면, ‘동성애자들’을 애초에 ‘남색하는 자’로 지정해서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못 받게 하셨다는 얘기일까요? 이 역시 고린도전서를 누가 썼는지, 그리고 쓴 배경과 앞뒤 문맥상 해석 문제를 짚어봐야겠습니다.
배경이 되는 그리스의 도시 ‘고린도’는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해상 교통과 무역 중심지였고, 선원과 상인들이 많이 몰려 혼잡한 곳이었어요[viii]. 이런 가운데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타락을 우려하며 보낸 서신이 바로 ‘고린도전서’이며, 그 안에는 불륜 관련 정죄(5장), 혼인에 대한 생각(7장), 우상 숭배에 관한 문제(8~10장), 사랑의 특징과 중요성(13장), 예배의 질서와 통일성(16장) 등 신도로서 지켜야 할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우선 가장 문제가 되는 ‘남색하는 자’라는 표현의 어원을 살펴볼게요. 이 말은 그리스어인 ‘arsenokoitai’에서 해석된 용어로, 영어로는 ‘perverts(변태성욕자)’, ‘sodomite(남색꾼)’, ‘homosexuals(동성애자)’ 등으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동시대 그리스 문헌들을 살펴보면 이는 ‘경제적∙사회적으로 힘 있는 성인이 그렇지 못한 젊은 소년을 착취하는’ 부분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해요. ‘남색하는 자’ 앞의 ‘탐색하는 자’의 어원이 ‘malakoi’이고, 이 의미가 ‘male prostitute(남창)’, 즉 ‘남창의 역할을 하는 아이들’을 의미하는 것을 보면[ix], 동성인 소년을 착취하던 – 어쩌면 소아성애자인 – 남자들을 나타냈다고 해도 무방한 것이죠.
이는 곧 ‘남색’이라는 표현에 담겨 있는 의미가 사랑보다는 성적으로 착취하는 행위를 추구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동성연애’라는 용어가 성 정체성/성적 지향을 바탕으로 한 자연스러운 애정관계가 아닌, 동성 간의 육체적 결합만을 지칭하는 관계로 비판 받는 걸 생각하면 ‘남색’이라는 말도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말로 쓰이는 것이죠. 그러므로 동성 간의 진정한 사랑을 추구하는 동성애자들을 비난하기에는 서로 의미가 맞지 않아요. 실제로 고린도전서를 쓴 바울이 지적한 부분도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소아성애 행위’하는 것이었지,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즉 성 정체성/성적 지향은 그냥 그것으로 존재할 뿐, ‘죄다, 죄가 아니다’라고 논란을 벌일 이슈가 아니라는 말이죠[x].
덧붙여 주목해야 할 점은 성경 속에서 예수가 동성애 금지에 대해 직접 언급한 부분이 어디에도 없다는 거예요. 다만 예수가 가장 싫어했던 것은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였고, 항상 강조했던 것은 바로 ‘사랑’이었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태복음 22:39)”,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로마서 13:10)”,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한일서 4:8)” 등 사랑을 강조한 이야기는 무수히 많아요. 과연 보수 개신교 신자들은 예수께서 강조하신 사랑을 실천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아, 홀리라이프(자칭 동성애회복자모임) 분들이 동성애자를 사랑한다구요? 사랑하기 때문에 (찬반의 대상도 아닌) 동성애를 반대하라고,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던가요? 사랑이라는 말, 함부로 쓰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제 16회 퀴어문화축제>반대를 위해 보수 개신교 세력들이 시청광장에서 나눠준 자료들
“네 멋대로” 해석 가능한 성경 속 구절들, 진실은 저 너머에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보수 개신교에서 제기하는 반동성애 관련 성경 구절들은 사회적 배경과 맥락을 고려했을 때 조목조목 비판 받을 여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얘기는 곧 그들의 입장에서 비꼬아 말하면 ‘동성애는 죄가 아니다’라는 주장 또한 성경을 근거로 했을 때 해석의 여부에 따라 공격받을 수 있다는 얘기지요. 실제로 성경에는 ‘동성애는 죄가 아니다’라는 구절 또한 나오지 않습니다. 결국 성경 구절을 동성애와 연관 지어 해석하려는 시도 자체가, 성경 문자주의이자 근본주의라는 커다란 덫에 걸리는 일이겠죠. 그럼에도 보수 개신교에서는 동성애 이슈만큼은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으니까’라는 이유로 대놓고 혐오하며 목숨 걸고 반대합니다.
문득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이주여성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 인터뷰 기사가 떠올랐어요[xi]. 기자가 “언론이 왜 유독 당신을 비난하는 것 같나”라고 물었더니, 그가 “희한하게 언론에 내 이름만 부각돼서 나온다. 의원들이 농담으로 ‘이자스민하고 연루되면 ‘이자스민 등’이라고 나오지 내 이름은 안 나와‘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대답했는데, 참 웃픈 얘기입니다. 많고 많은 성경 속 이야깃거리 중 ‘(그들이 주장하는) 동성애’에 대한 보수 개신교의 남다른 관심과 유별난 혐오 또한 상징적이지 않을까요. 거기에는 물론 개인적인 불편함이 반영된 것이거나, 기존 교회질서와 규율에 익숙해진 탓도 있겠지요. 아니 어쩌면, 반동성애 운동을 통해서 보수 개신교 세력이 결집을 이루고 활로를 찾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xii]. 어찌됐든 보수 개신교에서 아무리 성경구절을 들먹이며 혐오를 외쳐대도 우리네 성소수자들과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친구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예수께서 전파하신 사랑의 힘으로 연대할 거라 믿습니다. 사랑으로 연결된 우리는 강하니까요.
[i] 『레위기(NICOT)』, 고든 웬함, 김귀탁 옮김, 부흥과개혁사, 2014
[ii] 신명기에 “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가 있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남자 중에 남창이 있지 못할 것이니”(신명기 23:17)라는 구절이 나오지만, 이는 동성애보다는 매춘에 대한 얘기이기 때문에 제외시켰다.
[iii] 일부에서는 신약에 나온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영원한 효과를 발휘해 구약의 번제처럼 반복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엑스포지멘터리 레위기』, 송병현, 국제제자훈련원, 2013
[iv] <레위기의 출산, 월경관련법 연구>, 구영롱, 한신대학교 학위논문, 2015
[v] 이 부분에 대해 지현일 선교사는 “이스라엘 백성은 전통적으로 손님을 천사처럼 여겨 대접하는 것을 덕으로 여겼고, 그것을 염려한 롯이 손님 대신 자기 딸을 내어주려고까지 했으나 소돔 사람들은 남자든 여자든 외부인에 대해 학대를 자행하는 자들이었다. 결국 예수는 소돔의 죄가 손님을 냉대한 악함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누구를 부르고 계시는가?』, 지현일, 2014, 도서출판 시한울
[vi] 현대인의 성경(생명의말씀사 출판)에는 이 구절을 “그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소돔 사람들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방에서 마구 몰려와 그 집을 둘러싸고 롯을 부르며 '오늘 저녁 네 집에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을 끌어내라. 우리가 강간하겠다' 하고 외쳤다.”고 해석한다.
[vii] 1998년 로렌스와 동성 연인이 성관계 중 무단 침입한 경찰에 의해 텍사스 주 소도미법 위반 혐의를 받았으나, 2003년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성인 사이에 합의한 비상업적이고 사적인 동성 간 성행위를 주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자유와 사생활을 침해할만한 타당한 이유가 없으므로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한 사건
[viii]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리처드 카벤디쉬 외, 2009.1.20, 마로니에북스
[ix] ‘성서로 동성애를 비난하지 마라’, https://medium.com/@haemanhong/성서로-동성애를-비난하지-마라-c0f07535038
[x] <동성애와 기독교>, 이문균(한남대 교수), 대학과 복음 제10집, 2004
[xi] ‘이자스민 “이렇게 욕먹을 줄 몰랐다… 댓글 다 읽는다”’, 미디어오늘, 2015.4.17.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2761
[xii] ‘보수개신교, '반동성애' 운동이 활로?’, 프레시안, 2015.5.29.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6770&ref=nav_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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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호][활동스케치 #4]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관람기 (1) : ‘친구사이’를 보는 친구사이, ‘지보이스’를 보는 지보이스
2024-11-04 19:08
기간 : 10월
성경에서 하는 말은,
"~~~은 죄다, 아니다"가 아니고,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가 아닐까 했음..
그 문구를 보자마자, 정말 이거다!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