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8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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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글쓰기를 권하다 - 안건모, 『삐딱한 글쓰기』
글쓰기. 글쓰기라고 하면 어쩐지 어렵고 대단한, 혹은 지루한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고등학교 시절 대학 입시에서 논술 비중을 늘린다는 발표가 있은 뒤로, 몇 개월간 철학과 비문학 책을 읽고 논박하는 글을 써야하는 수업이 있었다. 그저 오지선다 객관식시험에서 찍기신공을 발휘해오던 나로서는 ‘첫 단어’를 쓰는 데만 해도 한 시간을 골몰할 정도로 무척이나 고역일 뿐이었다. 야심차게 시작된 논술수업이 철학이나 사회 문제에 대해 듣고 토론하는 시간으로 변질돼버린 것은 전적으로 내 탓인 셈이다.
결국 나는 글쓰기와 상관없이 수능점수만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이후의 삶에 더 이상 객관식은 없었지만,그저 줄만 빼곡하게 그려진 답안지를 채우기 바빴고, 각종 과제를 위해서만 한글오피스를 켰다. 다만, 한때 인기를 끌던 싸이월드에 감수성을 드러내기 위해 과장된 문장들을 골라 쓴 것이 글쓰기라면 글쓰기였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글의 이유와 힘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작가나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써야 글로서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에, 글은 여전히 어렵고 강요되는 것에 머물렀다.
군 입대 후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무료하고 단조로운 지경에 이르렀던 때가 있다. 얼마나 단조로웠냐고 물으신다면,난데없이 책읽기를 시작한 정도라고나 할까. 얼마 후에는 한술 더 떠서 독서노트를 만들었다. 그저 몇 문장, 몇 단락을 받아 적는 작업이, 점차 미숙한 단문이 되어 나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신기하게도 쓰면 쓸수록 문장 수는 점점 늘어나 문단을 이루었고, 일상과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하는 과정은 ‘지금, 여기’에 머무를 수 있게 해주었다. 나에게 최초의 일기는 좋은 구절, 탐나는 표현을 필사하고 감상을 적는 허영 넘치는 노트로부터 시작된 셈이다. 돌아보건대,그제야 나와 주변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일 년 동안 글쓰기에 대한 공포를 걷어내고 재미를 붙여가면서, 전역 즈음에는 시나브로 네 권에 이르렀다. 아주 사소한 계기가 글쓰기를 의미 있는 매체로 변화시킨 것이다.
글을 쓰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고, 글이 주는 효용 역시 제각각이다. 현실 참여적인 작가,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글 쓰는 동기를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등 4가지를 들었다. 순전한 이기심에 의한 글쓰기로 시작하는 것은 결코 그릇된 시작이 아니다. 그렇게 시작한 글이 오히려 울림 있고 공감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서도 글쓰기는 이기심에 기인한다. 일상다반사의 감정의 해소를 돕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글쓰기만이 갖는 매력은 지극히 ‘개인적인’ 방법이라는 데 있다. 느낀 바를 적확하게 묘사해보고 나름대로 정리해보는 내밀한 시간이다. 읽고 쓰는 일은 분명 수고스러운 과정이지만, 나를 직시하고, 기뻐하고 위안하는,모든 것이 가능한 혼자만의 방이 되어준다.
“글을 쓰려면 먼저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솔직하게 써 보시라. 써 보는 데 그치지 말고 남에게 보여 주셔야 한다. 보여 준다는 말은 발표를 하라는 말이다. 그걸 자기가 갖고만 있으면 그건 일기밖에 되지 않는다. 살아온 이야기를 쓰면, 그 다음부터는 어떤 글이든 글이 술술술 풀릴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글을 쓰지 못한다면? 내 책임 아니다. 아마 내면의 정직을 토해 내지 않았을 거다. 마음속에 있는 정직을 토해 냈는데 글이 안 된다면? 내 책임이다. 나한테 오시면 어떤 분이든지 글을 쓸 수 있게 해 드리겠다.”(p.127, '솔직한 글을 써야 한다' 中)
나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글 쓰는 것에 대한 그릇된 환상과 두려움을 갖고 있어서, 글쓰기는 삶과 유리되어 귀찮고 어려운 것이 되어버리기 쉽다. 그러나 평소처럼 맛있는 것을 먹거나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로도 풀리지 않는 어떤 외로움에는 시시콜콜한 일상과 감정을 글로 표현해보고 간직하는 일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글쓰기를 망설이고 있는 이들에게 『삐딱한 글쓰기』는 좋은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 노동현장에서 20년간 생활했고 마흔이 넘어 글쓰기를 시작한 저자가, 자기 삶의 중심에 서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주기 때문이다. 글이란 것은 똑똑한 사람들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쉽게 읽히고 생활에 밀착한 글일수록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고 말이다.
만약 『삐딱한 글쓰기』를 통해서 글쓰기에 대한 거부감을 덜었다면, 좀 더 욕심을 내서 『뚜껑 대신 마음을 여는 공감 글쓰기』까지 읽어보기를 권한다. 실제 글을 쓰는 단계에서 틈틈이 참고하면 좋은 책으로, 문장구성에 있어 보다 실용적인 방법론을 다룬다. 예를 들면, 짧은 문장으로 쓰기, ‘~것’의 남발을 줄이기,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기, 묘사를 통해 표현하기 등과 같은 식이다. 간결하고 생생한 문장을 쓰는 방법을 예문과 함께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어서 실전 글쓰기에서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적용해볼 수 있다.
아무리 좋은 글쓰기 책을 읽더라도, 글쓰기라는 것은 결국 개인적인 노력으로 완성된다. 바로 오늘, 자기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짧은 한 문장에서부터 시작해보아도 좋겠다.
* 글쓰기에 관한 책들
- 『삐딱한 글쓰기』, 안건모, 보리, 2014.
- 『우리 문장 쓰기』, 이오덕, 한길사, 1992.
- 『뚜껑 대신 마음을 여는 공감 글쓰기』, 이강룡, 뿌리와이파리, 2010.
-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한겨레출판, 2010.
▲안건모, 『삐딱한 글쓰기』, 보리, 2014.
▲이강룡, 『뚜껑 대신 마음을 여는 공감 글쓰기』, 뿌리와이파리, 2010.
* 위 책은 친구사이 소모임 '책읽당'의 8월 선정도서입니다.
책읽당 회원 / 단팥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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