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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호][칼럼] 딱, 1인분만 하고 싶어 #6 : 그렇게, 불안(정)(함)과 함께 살아가는 나날
2025-04-30 오후 18:52:15
기간 4월 

 

 

[178호]

[칼럼] 딱, 1인분만 하고 싶어 #6

: 그렇게, 불안(정)(함)과 함께 살아가는 나날

 
 
 

 ■ 오랜 친구들과의 대화

 

 

지금 나에겐 10년 넘게 매달 만나며 꾸준히 서로의 소식을 나누는 은둔 게이 친구 2명이 있다. 여기서 은둔이라 함은, 술번개나 클럽 정도는 나가고, 연애도 종종 하지만, 주변에 본인이 게이임을 아는 가족이나 일반 친구가 없고, 속해 있는 게이 커뮤니티 또한 없는 사람을 말한다. 안타깝게도 나만의 게토(가족)를 구축하고자 동질적인 집단을 찾기 위해 노력해 온 오랜 나날에 비하면 참, 적은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수영, 독서, 부동산 스터디, 스키 등 다양한 게이 커뮤니티에 나가봤지만, 지금까지 그 관계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어쩌면 같은 대학 동문이라는 어설픈 집단 소속감이 우리를 묶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그 모든 것과 상관없이 이 친구 2명이 ‘나’라는 사람을 지금까지 잘 버텨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사진1.jpg

 

< 사진 1. 며칠 전, 고향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 >

 

 

1990년에 태어난 출생아의 기대 수명이 대략 70세였다고 하니, 한국 나이로 36살, 인생의 절반 정도를 살았다는 전제 하에 드는 고민이 있다. 밤늦게 퇴근하고 운동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밤 12시나 새벽 1시. 당장이라도 지금의 방향을 멈추고 더 안정적인 무언가, 그게 무엇이 되었든 환상의 다른 길을 선택할까. 나라는 사람의 주제도, 현실도 이제는 파악했다면 지금이라도 그만둘 때는 아닐까 종종 새벽 감성에 빠질 때가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그렇게 축 처질 때 전화를 걸면 오래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내가 살아온 그간의 많은 이야기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고민들을 이해해주(지는 않지만, 그런 척이라도 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겠지.

 

 

24살에 처음 만난 우리는 어느새 35살을 훌쩍 넘어버렸고, 분명 그 사이 우리는 더 행복하자고, 더 자리 잡자고, 더 안정을 찾자고 1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왔는데도, 왜인지는 모르게 각자의 삶은 여전히 제각기 모습으로 흔들리고 있다. 안정적인 삶을 택하고자 고향에서 공무원이 되는 것을 선택한 친구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 싫었기에 서울에 있는 안정적인 공기업을 선택한 친구, 그리고 역시 안정을 꿈꾸며 대학원 그리고 정치라는 곳을 선택했던 나. 대학 졸업 당시만 해도 우리 셋은 각자의 환상 속에서 존재했던 안정적인 삶을 택했다고 믿었지만, 결국 10여 년이 지난 지금, 불안(정)(함)이라는 놈은 여전히 각자가 선택한 삶의 방식 속에서 새롭게 작동하고 있다.

 

 
 

■ 왜 나를 연구하고 있는건지

 

 

처음 시작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여기까지 온 건 관성이라는 게으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석사를 졸업하고 나면 결국 언젠가 다 박사에 진학하니까 ‘이왕 할거라면 미리 해야지’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이제 와서 곰곰이 돌이켜보아도 대체 왜 대학원에, 그중에서도 박사까지 진학했는지 그 시작이 명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날 짓눌렀던 생각만큼은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대체 내가 뭐가 특이하단거지”. 6년간 나는 연구실 세미나에서 개인 연구를 발표해도, 정부 R&D 수행 중 용역에 관한 질문을 해도 항상 특이한 애였다. 물론 오랜만에 쓸만한 헤테로 남성 석·박사과정 노예가 제발로 굴러왔다고 생각했으나, 어느날 갑자기 그 노예가 본인의 성정체성이 너희들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대놓고 하니 당혹스러울 수도 있지. 그나마 그 특이함이 용인될 수 있었던 건 규모가 한창 커지고 있던 연구실에서 신입생 모집에 내세울만한 쓸만한 악세사리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아직도 교수님이 박사 2학기 수업 시간에 모두 앞에서 이야기했던 그 말이 잊히지 않는다. “우리 연구실은 다양성을 중시해. 봐봐. 이렇게 특이한 애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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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2. 2024년 12월 4일 00시, 국회 앞 여의2교 >

 

 

박사 3학기부터 1년 반 가까이 찾아온 코로나는 연구실이라는 공간에 갇혀있는 무력함을 더욱 짙게 만든 시간이었다. 끊임없는 커밍아웃이 지겨워 언젠가부터 소문으로 자리 잡은 ‘커밍아웃 게이설’, 내가 연구에서, 용역에서 주장을 강하게 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뒷말들—“내 게이 친구들은 안 저러는데 쟤는 왜 굳이 저렇게 드러내야 해”, 난 게이라서 그 주장을 한 게 아닌데, 점점 입을 다물고 헤매는 나날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나를 연구(관찰)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다 지나서 보니 나를 연구(관찰)하는 건 사람들이 아니었다. 결국 나 자신이 부족했고 현명하지 못했기에, 좁디 좁은 연구실에 갇혀 넓게 보지 못했기에, 내 안의 불안(정)(함)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겪어야 했던 경험들이었다. 결국 내가 나를 불필요하게 연구(관찰)하는 일에 스스로를 가둔 것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결국 박사 학위 논문 심사 과정을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 6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대학원을 뛰쳐 나왔다. 세 번의 학위 논문 심사 과정에서 나는 왜 그렇게 매번 울었을까. 기껏 잘 차려입고 가서, 30대 중반이 다 되어서, 이것만 끝나면 지긋지긋한 연구실을 훌훌 떠날 수 있었는데, 그때의 난 무엇이 그렇게 슬펐고 억울했던 것일까. 겨우 이것밖에 못할 주제에, 하고 싶었던 연구는 나중에(여건이 나아지면)로 미뤄놓고 그렇다고 큰 돈을 벌 만한 연구도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한때 자신감 넘쳤던 그때의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또 그럼에도 자신감 넘쳤던 그때의 나 자신이 그리워 지금의 내가 더욱 미웠다. 그렇게 나에게 학문이라는 것은 더는 없다라고 생각하던 2025년 초봄, 대학원을 나온지 1년 반만에 교수님께 연락이 왔다. “시간도 흘렀으니 이젠 학위에 다시 도전해보라.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박사를 받고 나가야 너도 날개 펴고 살 수 있다.” 감사했다.

 

 

 

■ 정치가 하고 싶긴 하니

 

 

흔히 말하는 ‘사회’라는 곳에 나온 지 이제 2년 차, 일하는 분야가 분야다 보니 때때로 “그래서 정치가 하고 싶은 거니?”라는 질문을 종종 듣게 된다. 참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이다. 당장 이런 질문을 듣게 되면 “아니… 정치에 대한 정의가 너무 많지 않나”라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고는 한다. 누군가는 학문, 기사 등에서의 논쟁을 ‘정치한다’라고 부르기도 하고, 누군가는 시민 운동을 ‘정치한다’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입법 기관 및 정당이라는 정치 산업 내에서 일하는 사람을 ‘정치한다’라고 부르기고 하고, 그리고 가장 협소하게는 입법 기관에 지역을 대표하는 선출직 공무원이 되기 위해 선거에 임하는 정치인으로서 살아가는 사람을 ‘정치한다’라고 부르기도 한다(그런 의미에서 난 퀴어 정치라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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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3. 2025년 4월 15일, SELUB 트럼프 대통령을 당선으로 이끈 SNS 대선 전략 >

 

 

이 수많은 정치라는 의미 속에서 정치가 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게 되면, 참 난감하다. 학술대회에서 ‘이건 논문이 아니라 정치’라는 질문을 욕설 마냥 듣기도 했고, 운동을 하는 친구에게선 당시 국회에 들어가던 나의 모습이 ‘네가 하는 건 정치가 아니라 기회주의에 권력 추구일 뿐’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누군가 보기에 나는 정치하는 사람이었고, 또 누군가 보기에 나는 정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당시 내 삶의 방향과 조건에 맞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살아내고 있을 뿐이었는데. 잠깐이지만 내가 경험했던 정치라는 산업에서 종사한다는 것은 권력에 가까워질수록 불안(정)(함)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곳이라는 것이다. 너무 무섭기도 했고, 어이없게도 그 무서움에 무뎌지기도 하고.

 

 

그래서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참 어이없게도, 나는 불안(정)(함)이 가득한 삶을 살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러나 애초에 안정이라는 것이 토종-지방 출신-성소수자-정치 산업 종사자의 삶에서 가능한 것일까 곰곰이 돌이켜본다면 글쎄, 돈이고, 집이고, 일자리고, 가족이고 마치 밸런스 게임 마냥 결국 이 중 무언가 하나 이상은 안정될 수 없는 것이 결국 나의 현재라면 내 마음 하나라도, 내 일상 하루라도 안정시키고 살자는 것이 요즘의 마음가짐이다. 물론, 결국 네가 하고 싶은 건 선출직 공무원 아니야? 라고 누군가 뚜렷하게 묻는다면 “앞으로의 내가 스스로가 만들어가기 나름이겠지만 맞다”라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부족한 나를 열심히 성장시킬 거야”라고 덧붙여줘야지. 그리고 그렇게 끈질기게 버티고 버텼음에도 어줍잖은 불안(정)(함)에 끝내는 잡아먹혀 도전하지 못했다 하더라고, 같은 성소수자 누군가가 커밍아웃하고 선출직에 도전한다고 하면 그의 당선을 위해 물심양면 도와야지.

 

 

 

■ 미안해. 안 그래도 특이한데, 특이한 꿈까지 꿔서.

 

 

어디서부터 이 모든 것이 시작되었을까. 가끔 그 시작점을 반추하면 우연히 떠오르는 한 시점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 당시 동네 게이 형(엄마)의 친구였던 낙타의 소개로 만난 터울 팀장님과의 연으로, 친구사이 소식지에 ‘모두를 위한 서울(Seoul For All)’이라는 기획글을 (지금 생각하면 혼자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너무 말도 안되게 큰 이야기를) 석사과정 중에 기고했던 나날들이 그 시작점은 아니었을까. 당시 기획글을 쓰기 위해 영미권 게이들과 관련된 여러 글을 읽던 중, 허핑턴포스트에서 게이라는 것이 참 외로운 삶이라는 글(함께 있어도 외롭다 : 게이들의 새 전염병, 외로움)을 우연히 본 적 있는데, ‘커밍아웃과 법·제도적 권리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게이 남성들이 외로움과 소외, 정신적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는 주제의 글이었다. 당시에는 그저 그렇구나 하고 스쳐 지나간 글이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며 내 안의 외로움이 스멀스멀 올라오면 나도 모르게 그 글이 새삼 생각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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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4. 2025년 4월 24일, 제21대 대선 성소수자 국정과제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 >

 

 

내 삶은 여전히 내일이 깜깜하다. 차라리 아예 안 풀리면 다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기라도 할텐데, 아직까진 어설프게 풀려나가는 것 같아 기분이 참 찜찜하다. 작년 총선 이후, 수많은 의원실과 정당 채용 공고에 원서를 넣었다. 이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에 지원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친구사이 소식지팀 활동을 넣어서, 때로는 자기소개서에 성소수자임을 커밍아웃까지 하며 원서를 넣었다. 그렇게 가끔이지만 커밍아웃하고 정당과 의원실에서 면접을 볼 때마다, 설사 떨어지더라도 내 실력이 부족해서 떨어졌다고, 혹은 내가 그 직무에는 적합하지 않았기에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실력도 힘도 없는 주제에 커밍아웃까지 해놓고 채용해달라고 징징거리는 것 같았다. 어느새 ‘내가 게이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 정체성을 탓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나도 싫었다. 결과적으로 원하던 곳에서 소식은 듣지 못했지만, 계엄과 함께 좋은 기회가 연결되어 연초부터는 한 정치 스타트업에서 커밍아웃한 구성원으로서 나만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조직에 들어가서 커밍아웃한 경험은 있어도, 처음부터 커밍아웃하고 들어간 건 인생 첫 경험이었다. 이곳이 내 도전의 끝일 수도 있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발판일 수도 있겠지만, 나 개인에게 의미있는 약속의 시작이기에 하루하루 마음을 다잡고 일하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훌쩍 흘러 벌써 봄이네. 며칠 전, 고향에서 올라오는 기차에서 부모님과 통화를 했다. 우리는 언제 즈음 마음 편하게 가족 여행을 갈 수 있을까 이야기하다 나도 모르게 “엄마 아빠 미안해, 안 그래도 특이한 자식이, 특이한 일까지 해서”라는 말이 나왔다. 가족, 친구들, 고등학교 동창부터 학부, 대학원, 국회, 선거캠프, 지금의 정치 스타트업까지. 나라는 개인에게 커밍아웃이란 다시 0살로 돌아가, 내가 관계 맺었던 사람들과 다시 처음부터 관계 맺는 초기화 과정이었다. 이젠 그렇게 '다시' 관계를 맺는 과정이 너무 지겹다. 정말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더 이상 그런 관계는 적어도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는 하지 않겠다고 혼자 다짐도 했다. 어쩌면 나에게 외로움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가진 여러 불안(정)(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었을까? 어릴 적 난 막연하게 이 외로움이 내가 위로 올라가면, 좋은 인연, 좋은 일자리, 좋은 집을 가지게 되면 언젠가 안정이 찾아오고, 내 안의 불안(정)(함)은 다 극복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의 난 내 삶의 불안(정)(함)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익혀 나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내 안의 불안(정)(함)의 이유를 내가 게이이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탓할 수 있는, 그런 변명 어린 삶을 더 이상 살아가고 싶진 않다.

 

 

 

이 글을 읽은 후, 다음 두 글을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칼럼] 딱, 1인분만 하고 싶어 #4 : 개똥 밭이 내 밭이라면 
[칼럼] 딱, 1인분만 하고 싶어 #5 : 다시, 신명나는 싸움판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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