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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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동성애자로서 삶을 살아가는 게 불편한 적이 없었다. 주변의 지인들에게는 대부분 커밍아웃을 했고, 잭디와 종/태원은 나에게 끊임없는 남자를 제공해주고, 몇 번의 예쁜 사랑과, 수많은 짧은 연애와, 더 짧은 많은 만남이 있었고, 부모님과는 멀리 떨어져 살기에 내 성 정체성이 부모님과 나의 사랑에 걸리적 거릴 이유가 없었으며, 어떤 자리든 와주고 어떤 부탁이든 들어 줄 게이 친구들, 일반 친구들이 있다. 그랬다. 불편하지 않았다. 친구사이를 나오기 전까지는.
무지 더운 어느 여름날, 친구사이 회원들과 부산을 향하는 희망버스에 올랐다. 뭔지도 모르고, 진보적인 사람들이 모여 야외 음악회 같은 행사를 진행하는 분위기를 상상하며, 빈티지한 티셔츠에 가죽머리띠를 둘렀다. 도착해서 밤이 되었을 때의 실상은 달랐고, 그 충격은 한동안 가시질 않았다. 나가려는 사람과, 막는 사람의 벽은 납득할 수 없는 폭력을 가능하게 했고, 매운 눈과 코를 잡고 겁쟁이처럼 달렸다. 사람을 무서워하고 도망쳤다는 게 너무 자존심 상했고, 공권력의 폭력에 서러웠다. 친구사이가 아니었다면 절대 참여하지 않았을 이러한 연대 활동들은, 소수자인 나의 삶이, 아니, 그냥 모든 소수자의 삶이 불편하다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몇 년 전, 페북의 친구로 등록된, 하지만 게시물은 볼 수 없도록 설정해 놓은 회사의 어떤 분이 내게 질문을 했다. “남웅 씨는 무슨 합창단 활동을 해?” 프로필 사진은 볼 수 있었는지, 지_보이스 공연 전 분장하고 있는 사진을 보고 질문을 하셨다. 나의 대답은 "그냥, 아마추어 합창단 활동해요." 였다. 진실의 일부만 밝히며 불편함을 벗어나려 했던 나의 치졸함이 생각할수록 창피했고, 불편했다. 지_보이스 활동을 하다 보면 항상 대중에게 노출될 기회들이 생기기에, 공연할 때마다, 잡지나 신문에 노출될 때마다 조금씩 불편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는 본가를 방문했다. 마침, 친구사이 활동을 정리한 책자를 가방에 가지고 있었고, 잠깐 영화를 보러 나간 사이 엄마는 내 가방 안의 그 책자를 봤다. 다음 날 아침, 눈물이 한 바가지 고인 눈으로, 엄마는 말했다. “엄마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착한 아들이 이런 사람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한참, 나는 동성애자의 인권과, 해외 유명인들의 동성애 지지에 대해 설명했다. “엄마는, 네가 그들의 인권을 위해 일하는 건 괜찮지만, 우리 아들이 그런 사람이라는 건 인정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 거짓 침묵과 웃음을 지었지만, 심장은 울고 있었고, 그 날 이후에 엄마와의 불편한 대화는 계속됐다.
친구사이 활동을 하면서 겪게 된 일련의 사건? 들을 통해 난 이런 생각을 했다. 친구사이는 어쩌면 나에겐 선악과와도 같아서, 한 입 베어 물고 나서 보게 된, 느끼게 된 불편함 들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눈을 뜨고 본 세상은 불편한 세상이었고, 바뀌어야 하는 세상이었다. 몰랐다면 몰랐을, 알아서 더 불편하게 된...... 2014년 친구사이 대표로서 하고 싶은 일은, 이 불편함이 모두에게 전파됐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불편하지 않다고 믿는, 또는 그 불편함을 무시하면서 살아가는 모두에게, 내가 느꼈던 불편함이 전달됐으면 좋겠다. 다양한 친구사이의 활동들을 통해서 말이다.
[172호][활동스케치 #4]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관람기 (1) : ‘친구사이’를 보는 친구사이, ‘지보이스’를 보는 지보이스
2024-11-04 19:08
기간 :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