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9월 |
---|
그 남자의 사생활 #11 - ‘어느 멋진 날, 당연한 결혼식’
<지난 9/7일 세기의 결혼식을 올린 김조광수 김승환 부부>
“지금부터 대학생 지지자 대표의 성혼선언문 낭독이 있겠습니다.”
그 순간 내 하얀 셔츠에 오물이 튀었다. 객석의 하객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무대에 난입에 오물을 뿌린 남자는 곧 경호원에 의해 무대 뒤로 끌어내려졌다. 나는 “괜찮아, 그냥 해!”라는 이 한마디에 정신을 차렸다.
지금부터 네 달 전인 5월, 서울 아트나인에서 김조광수 김승환 커플이 결혼 발표 기자회견을 했다. 두 사람의 결혼 소식이 공개되자마자 주위를 뜨겁게 달궜다. 현장에 있던 나는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끊임없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가 우리 사회의 관심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날 이후 우리 엄마도, 친구들도, 심지어 슈퍼아줌마도 알고 각국 외신에도 소개된 ‘당연한 결혼식’, 이 거사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한 내 여정은 훗날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6월,
먼저 주위 사람들을 모은 건 ‘퐝드’형이었다. 5월 기자회견장에 있던 게이커뮤니티 사람은 퐝드와 나 딱 둘뿐이었다. 그만큼 ‘당연한 결혼식’ 이슈가 갑작스럽기도 했던 걸까. 퐝드는 나를 종로가 아닌 여의도로 불러 커피를 샀다. 퐝드는 ‘결혼식이 얼마 안 남았는데 왜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거야? 빨리 뭐라도 해야 되지 않겠어?’라며 나에게 고민거리를 하나 던졌다. 그때만 해도 막연하게 어떤 식으로든 도울 수 있을지 생각은 했지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일들을 떠올리진 못했다. ‘너한테도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잘 생각해봐’라는 한 마디에 나는 며칠 간 골똘히 생각해봤다.
‘이 결혼식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서울LGBT영화제가 열리고 있던 어느 날, 당연한 결혼식을 위해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퐝드가 평소 친분이 있는 나와 노동당의 ‘자민’에게 호출했고 자민이 정의당의 ‘혜연’을 불렀다. 그렇게 셋이 모여서 대학생 지지모임을 만들어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셋은 ‘결혼’이라 제도의 욕망과 냉소 그 어딘가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탈제도화에 익숙한 청년세대면서 또 성 정치와 밀접했다. 그래도 사회의 일반성을 견지하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한다는 데 공감했다. 이제부터 시작인데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하는 건 오히려 비효율적이지 않을까. 가족이데올로기로의 회귀냐고 물으면 그저 ‘우리에게, 우리 친구에게, 우리 가족에게 있을지 모르는 단지 사랑하는 사람이 동성이라는 이유로 박탈당한 권리를 되찾고자 한다.’대답하는 게 최선이었다.
우선 평소 알고 있던 대학 퀴어모임들에 제안서를 보냈다. 하지만 처음부터 많은 대학 모임들이 참여 의사를 밝힌 건 아니었다. 개인의 결혼 자체는 지지하지만 ‘결혼제도’에 대한 온도 차이와 이 결혼을 위해 활동을 벌여야 하는 부담이 그 이유였다. 나 스스로도 이슈에 대한 가치정립이 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활동을 통해 많은 또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렇게 다양한 학교의 친구들과 매주 회의를 하고 정식 세미나를 거치고 난 뒤 탄생하게 된 모임이 ‘이 결혼 찬성일세’였다.
<지난 8/8일 결혼식 카운트다운파티에서 발대식을 한 '이 결혼 찬성일세'>
‘우리는 오늘부터 결혼식 당일까지 김조광수, 김승환 커플과 함께 거리로 나가 시민들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최대한 많은 손님을 결혼식에 초대할 것입니다. 그 동안 빼앗긴 모든 성소수자들의 축복받을 권리를 소급하여 되찾을 것입니다.’ 라는 지지선언서의 말처럼 우리는 홍대, 광화문, 대학로 등으로 무지개 깃발을 들고 나섰다. 거리의 시민들을 직접만나 결혼식에 초대했다.
8월,
우리는 광화문광장에 섰다. 이 날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였다. 김조광수 김승환 커플이 사회를 보는 아래 게이커플, 레즈비언커플이 준비한 프러포즈와 결혼식 퍼포먼스를 했다. 하늘에는 무지개 깃발이 휘날리고 ‘All We Need Is Love'가 흘러나왔다. 결혼반지로 보석사탕을 끼워주었다. 마음을 담은 키스도 나누었다.
혹자는 국가나 사회구조가 개인을 제도(결혼)에 구속해 통제 가능한 상태로 만든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런 시각 이면의 성소수자(개인)들도 우리 안의 다양한 욕구를 확인하고 솔직하고 당당하게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성애자 중심 사회에서 보편적인 제도, 관습들을 보기만 했지, 연습하고 경험할 기회가 적었으니까, 이성애자들에 비해 오랜 연애가 힘들어(보여)도, 결혼 혹은 어떤 형태의 결합이라도 부담스럽게 느껴질지라도 그 행위 자체에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섹슈얼리티의 문제던, 사회 구조의 문제이던 이데올로기의 문제던 말이다. 사회가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다면 언젠가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때가 올 것이다. 사회는 작은 움직임들을 통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실제 커플인 두 사람, 이 날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실제 커플은 아니라고 합니다. 꽃을 받는 사람이 바로 접니다.>
내가 친구사이에 처음 나왔던 2010년 초, 사무실에 있던 ‘이쁜이’님이 내게 ‘친구사이에 나온 계기가 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동성결혼이 합법화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자유롭게 결혼하는 날이 올 거라고 믿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3년 뒤인
9월의 ‘어느 멋진 날’
내 앞에는 천 명의 하객과 결혼식의 아름다운 주 주인공이 서 있었다. 나는 흥분된 목소리로 준비한 성혼선언문을 읽어 내렸다.
결혼을 결심하고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두 사람의 수많은 노력과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용기를 내 이 자리에 서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두 사람의 사랑을 축복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오늘 이 결혼은 성소수자의 행복할 권리를 찾는, 가슴 뛰는 첫 시작이 될 것입니다. 이제 곧 해가 저물고 밤이 찾아오면 달빛은 누구의 집 앞에나 쏟아집니다. 어느 멋진 날, 아름다운 이 두 사람의 미래뿐 아니라 우리들의 미래를 환하게 비춰줄 것입니다. 오늘 밤은 평등한 밤입니다. 앞으로 펼쳐질 두 사람의 행복한 미래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십시오.”
“김조광수 김승환 커플의 결혼이 성사 됐음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홍대 걷고싶은 거리에서 우리들의 작은 퍼레이드>
‘당연한 결혼식’을 지지하는 대학생 모임 ‘이 결혼 찬성일세'는 서울대학교 성적소수자 동아리 ‘QIS’, 서울시립대학교 ‘UQUEES’, 성균관대학교 퀴어모임 ‘퀴어홀릭’, 연세대학교 ‘컴투게더’, 연세대학교 학내 여성주의 세미나모임 ‘페다고지’, 이화여대 레즈비언 인권운동모임 ‘변태소녀하늘을날다.’, 이화여성위원회, 인하대학교&인하공업전문학교 퀴어모임 ‘QIC', 중앙대학교 '레인보우피쉬', 한양대학교 'LGBT인권위(준)', 한양대학교 반성폭력 반성차별 모임 '월담', 홍익대학교 ‘홍대인이 반하는 사랑’, 인권·법률공동체 ‘두런두런’, 부천청년네트워크, 노동당 청년학생위원회, 정의당 청년학생위원회로 이루어졌습니다.
<'당연한 결혼식, 어느 멋진 날'의 공식 포스터>
‘당연한 결혼식 기획단’은 저, 자민, 혜연 그리고 결혼식 엠블럼을 만들어 준 ‘준호’님, 친구사이 ‘재우, 정남’님, 사무를 맡아준 ‘오남’님, 정무를 맡은 ‘퐝드’, 기획단 전체를 책임지신 ‘소라’님, 그리고 결혼식 주인공인 ‘김조광수, 김승환’ 부부가 함께 했습니다.
사족, ‘당연한 결혼식’에 대한 포괄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본 꼭지의 취지에 맞게 제 이야기 위주로 쓴 점 참고 바랍니다.. 아 그리고 결혼식의 오물 해프닝을 겪고 새삼 느낀 건,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벌어진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전투력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죠. 우리가 살다보면 알 수 없는, 또 운명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이 완성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그렇기에 분명 살아볼만 하죠.. 우리 인생의 ‘어느 멋진 날’은 많은 역경과 노력 그리고 열정이 있어야만 진정한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거죠, 그럼!
결혼식 전부터 당일까지 여러모로 활약하고 고생한 대학생 지지 모임...
바쁜 학기 중에 다양한 학교 사람들이 모여서 계획하고 일 꾸리기 어려웠을 텐데,
그 열정이랑 헌신이 참 소중하고 고마워 ^_^
결혼 제도 자체가 워낙 복잡해 그것에 대한 생각부터 각자 다르다 보니
친구 사이 등 성소수자 단체들도 뭘 어떻게 할지 갈피를 못 잡은 것같으니 더더욱...
결국 제도 밖의 소수자들이 시민으로서 평등권, 행복 추구권, 욕망을 드러낸 계기였는데,
그 중요한 현장에서 당당하고 멋지게 성혼 선언문까지 낭독했지.
게다가 봉변에 대한 반응은 차분하면서도 힘이 느껴지고...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모습, 내가 배워야겠다. 앞으로도 기대 만땅이야~! ^ㅁ^b
[172호][활동스케치 #4]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관람기 (1) : ‘친구사이’를 보는 친구사이, ‘지보이스’를 보는 지보이스
2024-11-04 19:08
기간 : 10월
멋진날이었다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