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LGBT영화제에 가면 낯설도록 익숙한 그들이 있다.
기억을 거슬러 작년 5월로 돌아간다. 화창한 5월 초여름, 내 길었던 군생활의 끝을 서울LGBT영화제와 함께했다. 그리고 1년 뒤인 2013년 6월, 제13회 서울LGBT영화제가 개막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오순도순 모여 영화제를 준비하는 사람들. 그 안에는 낯설도록 익숙한, '이제는 친구사이'부터 연인사이의 다양한 그들을 볼 수 있다. 서울LGBT영화제의 남자스텝은 총 8명, 그 중 이성애자 한 명을 제외한 7명은 동성애자이고 그 중 6명은 현재 친구사이에서 활동중인 회원들이다. 서울LGBT영화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묵묵하게 ‘발랄한 저항’을 만드는 생물학적 남자들
#1. 2년차 스텝에 이제는 영화감독까지 ‘굿타임’
지난해 친구사이 <게이컬쳐스쿨>을 통해 단편 데뷔작 <좋은 사람 생기면...>과 <십년의 커밍아웃>을 통해 당당하게 감독으로 데뷔했다. 소감이 어떤지.
“서울LGBT영화제는 퀴어영화를 사랑하는 게이를 비롯한 레즈비언, 트렌스젠더 등 다양한 성소수자들이 참여하는 일중에 하나고, 친구사이도 지보이스 등 문화 활동을 위주로 게이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단체이기 때문에 친구사이와 서울LGBT영화제에 함께 하고 있는 것이 자기발전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해.”
영화제 스텝 2년 만에 정식으로 초청된 감독님이 됐는데, 특별한 소감이 있을 것 만 같다.
“처음에 영화제 일을 시작할 때는 영화를 찍게 될 거라는 생각을 못했는데 일을 통해 자신감을 갖게 됐어. 결정적으로 게이컬쳐스쿨을 통해 실행에 옮겨질 수 있었지. 일단 작년만 하더라도 내 영화가 영화제에 상영 될 거란 생각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는데, 도전을 통해 잊어버렸던 나의 예전 꿈에 다시 접근할 수 있어서 인생에 큰 에너지를 다시 주는 일이 된 것 같아.”
친구사이, 서울LGBT영화제를 통해서 얻고 싶은 것이 있나요?
“친구사이 활동의 영역이 처음부터 있었나, 그 당시에는 누군가 처음 시도하고 누가 고정적으로 노력해서 그런 일들이 점차 늘어난 것으로 생각해. <게이컬쳐스쿨> 2기생을 모집하는 것처럼 친구사이 활동의 범주가 그런 식으로 넓어지기를 기대해.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그런 터전이 되는 것이 친구사이와 서울LGBT영화제의 역할이 아닐까.”
현재 형이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거죠?
“<지보이스>를 처음 할 때 구체적으로 내가 주도해서 어떤 활동을 욕심내서 못했는데, 이번에 영화제를 하면서 정말 내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는 일을 찾게 된 것 같아.”
굿타임에게 서울LGBT영화제란?
“애증’인 것 같아. 애증관계, 일단 규환이가 있고, 죽도록 고생을 하기도 했고, 데이랑 많이 싸우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계속 하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는 그런 존재야.”
#2. 한김에 스텝까지 ‘경민’
서울LGBT영화제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소감을 말해주세요.
“솔직히 자의는 아니었는데, 데이형이 처음에 디자인 부탁을 했고, 그것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시작을 했어. 그러다가 회의도 나오고 전반적으로 시작하게 됐지. 지금은 회사일이 바빠서 솔직히 영화제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도 잘 몰라서 개인적으로 아쉬웠어. 그래도 마지막에 카달로그 작업할 때 성소수자들 다큐도 보고, 시나리오도 읽고, 퀴어 영화 정보들을 접해서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아.”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일은 없었나요?
“일단 내가 본업이 있기 때문에 애초에 돈을 바라고 했으면 시작을 안했을 거야. 오히려 돈을 받았으면 부담이 됐겠지. 오히려 좋은 퀄리티를 위해서 디자인 같은 것은 어쨌든 돈을 쓰더라도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사무국장님이 뒷수습을 많이 해줘서 죄송하기도하고.”
친구사이와 서울LGBT영화제를 같이하니 어땠나요?
“난 아직 친구사이 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 없고, 일로서는 서울LGBT영화제가 처음인데, 목적이 뚜렷하니까, 마음가짐이 다르긴 해. 어느 정도 부담감이 있어.”
경민에게 서울LGBT영화제란?
“뭐라고 해야 되지. 어렵다. 잘 모르겠는데, 나한테도 ‘애증’인 것 같아. 중요한 행사고 어쨌든 내가 참여를 잘 못했으니까. 어떻게 보면 좋은 행사인걸 알면서도 어쩔 때는 솔직히 짜증나기도 했는데, 잘 마쳐서 다행이야.”
#3. 일 잘하는 언니, 오뎅쿤
서울LGBT영화제와 인연이 어떻게 되는지.
"처음 승일이형을 통해서 데이형을 만나게 됐는데, 원래 내가 공연일과 홍보마케팅 일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소개를 받아 자연스럽게 스텝으로 합류하게 됐어. 영화제에서도 협찬팀 사람이 필요 했고, 나도 하는 일이랑 관련이 있다 보니까 하게 됐지."
같이 일을 하면서 친구사이 사람들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
"그런 건 있다. 사실 다 아는 사람들인데 승일이형이나 규환이나 다 그냥 좋은 형 동생이었지 손발을 맞추면서 일을 하는 사이가 아니었잖아. 규환이가 쓸 만한 아이라는 걸 알게 됐어. 친구사이에서 많이 부려먹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데이형이 ‘참 무서운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웃으면서 사람에게 일시키는, 왠지 내 일인 것 같고, 형이 하는 일이 맞는 것 같고 말이야.(웃음)"
서울LGBT영화제 일을 하면 애인이 생긴다는 말을 들었다는데.
"데이형이 그랬다. 데이형이 함 감독님의 에피소드를 얘기하며 “한 스텝이 영화제 안에서 연애를 시작했다.” 그때는 내가 솔로였으니까. 그 말로 날 꼬셨지, 그러면서 함 감독님의 애인 사진을 딱 보여줬을 때 “아, 괜찮다.” 싶어서, 영화제에서 일하면 나도 이런 남자를 만날 수 있겠다 했는데, 자봉(자원봉사자) 다 여자고, 아무것도 없었다.(웃음)"
오뎅쿤에게 서울LGBT영화제란?
"‘증권’이다. 또 다른 나의 자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창구, 영화제가 앞으로 많이 커서 성장하면 수익이 생기고, 우리가 같이 이 일을 끝내고 회식할 수 있는 돈이더라도 그렇게 돼야 된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다들 열정으로만 일을 하고 있으니까. 영화제가 잘 됐으면 좋겠어."
#4. 이제는 서울LGBT영화제의 얼굴 프로그래머 ‘데이’
지금까지 영화제를 이끌어오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아무래도 모든 스텝이 재능기부로 일하다보니 전문화된 사람이 없다는 점, 그래도 올해는 다행히 준비를 잘 했지만, 나 말고 누군가 책임져줄 사람이 필요했지. 아직 우리들도 제대로 된 일을 안 해봤기 때문에, 새로운 스텝들 교육이 필요했어. 그런 게 사실은 사람을 키우는 과정이긴 한데 나 같은 경우는 챙길 일이 많아서 부담스러웠어. 최대한 친구사이에 있는 능력자들을 끌어들였잖아. 디오는 못 끌어 들였지만.(웃음)”
뒤풀이에서 자주 보는 친구사이 회원들이 영화 보러 많이 안와서 서운한 점은 없는지.
“아, 내 취향이 다르나봐, 남자 취향도 다른데 영화 취향도 다르구나 생각했지. 내가 광수 형 사귈 때 주위에서 이해를 못했어. “왜 같은 여자를 왜 좋아하냐.” 하고. 또 나의 문제는 영화를 고를 때 좀 더 가벼워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자칫하면 영화제가 가벼워 질까봐, 균형을 맞추면서 발랄함을 잃지 않는 느낌이 중요했어. 만약 발랄한 작품이 많았다면, 친구사이 회원들이 많이 보러 오지 않았을까? 회원들은 즐거운 거 좋아하니까. 그래도 밤샘상영은 많이 왔는데, 그때 틀었던 밝은 영화들의 컨셉이 친구사이 회원들과 잘 맞았던 것 같아.”
친구사이와 서울LGBT영화제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지점은 어디라고 보는지.
“이번에 개막식 때 아이다호 영상 트는 것이 대표적인 시너지 효과지. 올해 영상이 잘 만들어졌고 어떻게든 사람들한테 알려야 하니까, 그렇게 친구사이를 도울 수 있을까 해서 개막식 때 사람 제일 많으니까 틀기로 했지. 친구사이가 도울 수 있는 것은 토요모임 같은 자체 번개를 때려서 많이 보러 오는 것, 그래도 그걸 강요할 순 없다고 생각해. “왜 관심 없지?” 이런 생각은 당연히 안하고, 그래도 밤샘상영까지 안 왔으면 머리채를 잡았겠지. “이년들이 안와?” 하고, 언니들 빼고(웃음)”
데이에게 LGBT영화제란?
“‘기쁨’인 것 같아. 영화제를 통해 다양한 작품을 보여주고 관객들이 너그럽게 봐줄 때 기뻐. 영화를 보는 동안 어두운 공간에서 자기와 스크린과 대화의 시간이 하나의 중요한 운동이라고 생각해. 그런 점에서 힘든 점도 많지. 본업이 있는데, 결혼식도 하는데, 또 규환이나 승일이형이나 오뎅쿤이나 경민이나 친구사이 회원들과 내가 뭔가 같이 일을 하면서 서로 도움이 된다는 게 중요해. 그게 아니면 그만두지. 돈을 벌어, 명예가 있나, 드랙하고 호객행위나 하고,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웃음)”
#5. 서울LGBT영화제 집행위원장 김조광수
서울LGBT영화제가 커뮤니티 안에서 재능기부로 이뤄지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 회사(청년필름) 애들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없고, 단지 영화를 좋아하는 애들인데, 그렇게 긍정적인 애들만 있으니까 영화가 흥행이 잘 안 된 것도 있지. 좋은 영화를 만드는 건 좋지만, 어떤 측면에서 봤을 때 그런 사람만 있으면 회사 일이 잘 안 되잖아. 일에 대한 욕심과 돈이 있어야 되는데, 동기부여가 필요한 것 같아. 서울LGBT영화제도 마찬가지고.
모르겠어. 나는 항상 어떤 식으로 일을 했냐면 나는 일을 벌이고, 나를 받쳐주는 사람들이 일을 해결하고, 회사, 학생회장도 그렇고 다른 조직에서도 그랬었는데, 영화제랑 친구사이 같은 경우는 그런 스타일로 가기엔 약간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지. 그 부분을 어떻게 조율을 해야 할지가 내 과제 인 것 같아. 친구사이도 좀 그런 것 같아. 그걸 어떻게 조화롭게 만들어 낼지. 내가 할 수 있느냐. 친구사이는 내가 대표를 그만둬도 당장 무리가 없지만, 영화제는 내가 그만뒀을 때 대안을 찾기가 어렵잖아. 앞으로 조화를 이루며 일할 수 있을지 걱정이 돼. 올해는 경험이 없었으니까 그렇다 치고 내년에는 그나마 경험이 있으니 판단을 ‘이렇게 해보자, 저렇게 해보자’ 그런 의견들을 낼 수 있겠지. 그래도 걱정은 조금 하고 있어."
파트너랑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 주위에서 걱정하는 것이 있어. 실제로 사사건건 부딪힐 때가 많지. 일을 안 하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 파트너랑 일을 같이 하다보니까 감정이 생기는 거야. 지금까지 싸운 일이 없었는데, 최근에 들어와서 자주 싸워, 이를테면 다 영화제 일인거야. 영화게 일이 벅차니까. 가까운 사람들한테 감정을 실어서 얘기를 하게 되고, 같이 일을 안 하면 싸울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왜 영화제 때문에 파트너랑 싸워야 하는지 그런 생각도 해."
광수형에게 서울LGBT영화제란?
"아까 누가 애증이라고 했는데, 나한테는 ‘계륵’이야. ‘뜨거운 감자’ 혹은 계륵, 그니까 감자를 막 먹고 싶은데 막 먹을 수는 없잖아. 서울LGBT영화제를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너무 좋고, 영화제를 맡은 후 보람이 있고,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여러 가지 일들, 파트너와의 관계, 영화제 안에서 스타일 때문에 부딪히는 문제 등 차라리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그런 의미에서 ‘계륵’인 것 같아."
스텝들이 영화제를 애증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처음 서울LGBT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았을 때 다른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이 “여기서 돈을 받지 않으면 길면 3년이다. 의무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라고 했어. 애증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좀 오래된 사람들일거야. 책임감 같은 것들이 있어서 시작을 했는데, 돈도 못 받고 힘들고, 그걸 못하면 자기 스스로도 불만이고, 남들도 막 스트레스를 주니까, 돈을 받으면 참는 부분이 있는데, 3년 이상 끌고 가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지. 그래서 ‘애증’이라고 하는 것 같아."
#6. 그리고 나
서울LGBT영화제의 올해 기조는 '발랄한 저항'입니다. 실제로 영화제를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 왜 그러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5명의 발랄한 인터뷰이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같이 일하면서도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됐습니다. 사적으로, 또 일적으로 이어진 관계엔 이런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친구사이에에서 만나 또 다양한 관계과 경험들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영화제엔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지 궁금하지 않나요?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서울LGBT영화제는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면 개인적으로 '애증'에서 '애'에 무게를 두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선 저는 작년 영화제 자원봉사를 통해 군 제대 후 친구사이도 다시 나올 수 있었고, 올해는 스텝으로 영화제에 참여하게 되면서 작은 일들 하나하나 배우고 느끼고 있는 중이니까요. 저에게는 설렘이자 열정이기도 한 서울LGBT영화제는 올해 벌써 13번째를 맞이해 다채로운 국내외 퀴어영화들과 프로그램들로 관객 여러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국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낯설게, 또 익숙하게 어디에선가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 올해 퀴어문화축제의 친구사이 회원분들, 서울LGBT영화제의 많은 사람들을 통해 느낄 수 있는 6월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손 꼬옥 잡고 답답한 세상을 향한 발랄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보아요! 퀴어문화축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는 6/16일 까지 낙원상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서울LGBT영화제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사진 찍어주신 친구사이 터울님 감사드립니다.
[172호][활동스케치 #4]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관람기 (1) : ‘친구사이’를 보는 친구사이, ‘지보이스’를 보는 지보이스
2024-11-04 19:08
기간 : 10월
아이고, 다들 심신의 고생이 보통 아니네요 ㅠㅇㅠ
비록 시간이 없어 많이는 못 봤지만,
성소수자뿐 아니라 일반 관객한테도
유일 무이한 퀴어 영화제로서 참 소중하죠.
정말 고맙고, 더운데 건강 잘들 챙기시길. 화이팅이예요~!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