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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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흘리는 연습' #3]
⟪흘리는 연습⟫ 관람객 후기
1. 이여로 (문학비평|기획:1)
세상의 어떤 지식과 이야기도 나의 맥락과 접속되지 못하면 무의미하다는 걸 알기에,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소식지 30주년이 구성원들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이 글들이 만들어 온 시간에 대한 헤아림이 강하게 느껴지는, 하지만 터울 님의 말처럼 그것이 “결코 즐거울리 없는” 중층의 정동이, 출판물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을 뿐인데 어떻게 전해진걸까, 전시의 여는 말부터 시작해 전시장 어디에서나 들려오는 〈글레이즈드 사각언니〉, 공간을 차지하지 않지만 시야 어디에나 등장하는 〈어둑서니〉 연작이 형식으로 함께 했기 때문에, 그리고 “엮은이와 소장자가 되는 과정을 통해 퀴어 출판의 동료가 되길” 안내하는 환대와 연대의 감각 속에서 가능했던 게 아닐까, 단체의 개방적 역사를 언급하며 “이 전시에 누가 와도, 친구사이의 역사와 자신의 역사 사이의 접점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는 혜원 님의 말처럼, 이는 내가 민영 씨와 여러 친구들로부터 받아온 환대와 선물의 작은 역사이기도 했다. 사회가 기성의 가치 체계에 접속되기 위해 나를 버리기를 요구할 때, 그때 발생하는 소외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살아갈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기로 할 때 자기 언어가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내게 아마추어리즘이 그러했고 이러한 경험의 구조를 통해 다른 경험들과 만나고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친구사이로서.
2. 김희경 (디자이너|반디자인 연구모임)
나는 기쁘고 자랑스러운 사람들 사이에서 이따금 슬픈 사람들의 슬픈 표정이 생각이 나곤한다. 무지개인권상 수상의 자리에서 웃음과 함께 떨리는 목소리의 눈물을 내비친 수상자처럼 말이다. 프라이드,무지개, 보깅, 퍼레이드, 끼순이, 드랙퀸 등 즐겁고 반짝반짝한 단어들로 지칭되는 순간들 뒤에는 눈물, 슬픔, 분노, 모멸 그리고 추모와 같은 단어를 경유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역사가 있음을, 민영의 옆에서 들어왔기 때문이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는 옆자리 친구에게만 들려주기 아까운 그들의 역사를 전시 <흘리는 연습>을 통해 선보이고 있다. 퀴어들을 외롭게 두지 않겠다는 마음이 연결되어서 만들어진 30년간의 역사를 둘러보는 일은, 어떻게 마음과 같은 슬프고 연약한 것으로 굳세고 단단한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는지에 대한 그들의 연금술을 둘러보는 일과 같아 보인다. 누군가가 각각 기록물, 미술, 디자인, 출판이라는 술법을 써서 구현해낸 이 역사는 마법이 아니라 연금술임이 분명하다. 신묘한 마력을 가진 이가 얍!하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마법이 아니라, 강한 염원을 가진 과거부터의 사람들이 마음과 의지라는 대가를 바쳐서 만들어낸, 역사라는 연금술 말이다.
언젠가 민영은 활동가를 하기엔 겁쟁이라서 미술작가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내게 말했다. 그리고 나서 몇 년 뒤에 천연덕스럽게 ’이젠 더이상 겁이 안나나 보지 뭐‘ 라고 말하곤 종로에서 앞서간 이들과 함께 출퇴근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역사라는 연금술은 마음이라는 재료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응집으로 완성된다고 말이다.
3. 살설 (기묘한연구소)
우리에게 역사가 없다고 말하는 것도 이제는 어느정도 진부해졌다고도 말할 수 있겠고 또 그 ‘역사’가 정말 우리의 역사인지에 대해서도 반문해볼 수 있을 정도의 자의식이 쌓였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지금 여기에서 친구사이는 30주년을 맞이했다고 한다. 아카이브 형식을 전면으로 띄우고 있는 본 전시는 30년에 걸친 친구사이의 활동을 연혁, 책, 출판물, 소식지 등 다양한 형식으로 보여주는데, 많은 아카이브 기반의 전시가 그렇듯 텍스트의 양에 압도되어 아카이빙 자체의 의미만 피상적으로 떠올리고 돌아가게 되는 것과는 달리 최대한 다양한 모습들에 접근할 수 있도록 애쓴 여러 흔적이 보였다.
전시의 초입에는 그 전모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조명에 의한 그림자로 그 모습을 짐작하게 하는 조형이 놓여있다. 가까이 다가서면 초동회를 기점으로 시작되는 친구사이의 ‘기원’을 보여주는 이 조형은 땅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는 모습으로 우리의 역사가 그렇게 근본 없지 않음을 보여준다.
전시장의 꽤 큰 공간을 차지한 통로에는 긴 시간에 걸쳐 친구사이 소식지에 실렸던 여러 텍스트들이 두 가지의 모습으로 놓여있다. 성소수자 개인으로서의 이야기 뿐만 한국 사회 속에 놓여진 구성원의 일부로서 성소수자의 다양한 모습들을 첨예하게 다루어왔던 토막글들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모습을 통해 지금여기에 도착해있는지를 돌아볼 수 있게 된다(커뮤니티 내 성폭력, 애널 섹스를 둘러싼 욕망과 욕정, 생활동반자법의 이슈에 대한 텍스트들이 한 섹션에 모여있기도 하다).
꺾이고 휘어 굴곡지면서 다양한 형태 뿐만 아니라 여러 물성으로 우리의 시선과 동선을 가이드하는 조각은 친구사이뿐만 아니라 여러 퀴어 잡지와 인쇄물들이 아카이빙 되어있는 텍스트들과 또 친구사이와 함께 했던 여러 찌라시들을 한데 모은 공간으로 인도하고, 또 내용 없는 형식으로서만 존재하는 어떤 미래의 지표로 빛나기도 하다가 마지막에는 지금까지 연결된 형태가 끊어진 모습으로 전시를 마무리한다.
연속적이기가 불가능한 사건들의 모음 속에서 또 그것이 승계되기 지극히 어려운, 그렇지만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반복하는 노력들 속에서 생존해온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마무리되는 전시는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그러나 지금까지 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살만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우리가 이루어왔던 역사를 되돌아 보게 한다. 지극히 감상적이 될 수밖에 없는 전시일 것 같지만서도 나름 아름답고 명랑하게 풀리는 구석도 많아 재밌게 볼 수 있다.
4. 연혜원 (퀴어매거진 them 발행인 | 투명가방끈 활동가)
이렇게 좋은 아카이브 전시가 있었나 싶을 만큼 환대를 경험한 전시였습니다. 저는 친구사이가 게이인권단체로서 게이 당사자들을 위한 커뮤니티에 그치지 않고 수많은 연대의 순간에 인권운동단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위해 단체의 개방성을 확장해왔을 뿐 아니라 여타 단체들의 문을 열심히 두드려온 곳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전시는 그러한 단체의 개방의 역사를 환대라는 감각으로 구현했다고 느꼈습니다. 이 전시에 누가 와도, 친구사이의 역사와 자신의 역사 사이의 접점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 믿습니다. 전시를 보는 내내 ‘역사는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구나’라는 말을 되뇌었는데, 여기서 사람을 담당했던 민영, 터울, 경민, 선미님 그리고 다른 친구사이 일원들 정말 존경해요.
5. 하상현 (큐레이터)
아카이브 전시가 어떻게 지금 시대에 ‘전시’가 될 수 있는지 처음 느껴본 감각으로 알려줬다. 준비된 텍스트의 내용을 읽는 경험도 중요하지만, 글을 읽는 경험을 발생시키고, 유물과 기록을 보여주는 전시의 오래된 기능을 새롭게 제시했다. 중앙에서 이뤄지는 영상 상영을 통역자의 몸짓과 함께 퍼포먼스로 만들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관객의 동선과 움직임 자체를 현재 일어나는 퍼포먼스적인 사건으로 만들었다. 감동적인 전시에, 수많은 노동과 노고에 전시를 준비한 모든 이에게 감사한다.
6. 도치 (기묘한연구소)
전시장에 첫 발을 디딜 때, 무언가를 끌어당기는 힘에 소리가 있다면 이런 소리가 나지 않을까 싶은 소리가 온 몸을 천천히 진동시킨다. 그리고 전시장을 모두 둘러보고 나설 땐, 아주 소중한 것들을 온 몸으로 감싸고 있는 듯한 익숙하고도 낯선 거대한 유기체 속에서 나오는 느낌이 든다. 차가운 금속의 다리에 흉터를 여럿 가졌지만, 천천히 뛰는 심장을 가지고 점점 몸집이 커지고 있는 문어와도 같은 형체의 어떤 유기체라고 해야하려나. 그 문어(기획자는 그를 ”어둑서니”라고 칭한 것 같다. 분명 어둠 속에 있더라도 지켜볼수록 계속 커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스스로도 잊어버릴 누군가의 기억을 먹고 자라며 또 다른 누군가를 끌어당기려고 자신의 심장소리를 천천히 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는 30년이 지난 시간동안 스스로도 잊어버릴 누군가의 기억을 먹고 자라며 누구가의 현재를 지탱해주는 거대한 유기체로서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친구사이”의 현재를 만든 하나 하나의 사람과 역사를 섬세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그간 발간된 소식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작업을 구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지금의 나의 삶이 빚을 지고 있는 발자취들을 보고, 듣고, 만지고, 소장할 수도 있어서 아주 뜻깊은 자리였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과 이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 짧게나마 감상을 공유한다.
7. 다비드 (연구자)
이 전시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서면 원고, 구술 기록, 디지털 자료 및 아카이브 작업 등 여러 차원에서 많은 참가자들이 보여준 30년 동안의 개인적인 노력과 공동의 헌신, 희생, 열정적인 헌신을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러나 단순한 아카이빙에 그치지 않는 방식으로, 예술을 통해 그들을 매개하고 엮고 결합하며 반영하였다. 적절한 방식으로 열정적이고 존경심을 가지고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모습이 매우 감명 깊었다. 움직임, 정지, 세밀한 디테일과 숨겨진 상징들이 독특한 방식으로 많은 것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고, 많은 순간들을 소중히 여겼으며, 생각을 자극했다.
8. 권시우(미술비평)
친구사이 기획전 <흘리는 연습>, 사진으로 담지 못한 것들이 많다. 환대의 언어에 이끌리듯 보러 간 전시였고, 아카이브처럼 펼쳐진 그간의 글과 자료들을 제각기 비추고 있는 은은한 조명은, 역사적 사료로서의 소명 의식을 보증하기보다, 개별 글들 사이의 윤곽을 흐릿하게 드러내면서, 여기서 기록으로 남은 것들, 혹은 미처 그러지 못한 홀겹의 언어, 언어로서 사멸한 것들이 기록 안팎에서 서로를 지지하고 있는 듯한 연대에 가까운 제스처, 그로 인한 비/가시적인 포개짐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LGBTQ... 의 대열에 속하는 게이Gay가 혼자서 저절로 공동체화된 게 아니라, 오히려 실재로서의 몸을 잃은 채 부유하는 게이들의 삶과 일상의 편린들이 ‘기록’으로 육화되기까지, 실로 다종다양한 비/당사자들 간의 힘과 알력, 무엇보다 존중이 필요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이자 그것에 대한 일시적인 보증이기도 하다. 정체성 정치가 유도하는 정체성의 고립된 진지 속에서 환대는 어떻게 가능할까. 본 전시는 그에 대한 답변을, 지금 시점에서 공동의 역사를 채굴할 수 있을 만큼, 즉 이 정도로 축적된 (끊임없이 ‘주변’으로 되먹임되는) 시간의 다수성에서 수소문하는 것 같다.
아카이브에 수록된 박민영의 글에서 되짚는 “아름다움”은, 그 과정에 실린 자신의 (오랫동안 고유했던) 시간이 불특정한 관계를 이루면서 부서지는 모습을, 무엇보다 작가로서 소묘할 수 있게끔 미적으로 가다듬고 더불어 간직하기 위한 은유가 아닐까. 그 순간은 온전히 미술이 될 수 없지만, 그래서 “아름다움”으로 맞부딪히기 위해 ‘여기’에 회집된 언어적 가능성이 장르로서의 미술보다 품이 넓어 보인다.
9. 빈집(컬렉터)
귀가 어두워지기 전 마지막으로 직접 초연했다는 서사.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구하려고 저승에서 애원하는 장면을 표현하는 것 같다 회자되는 베토벤의 피아노 콘체르토 4번을 그가 소개한다. 좋구나… 말하지만 이내 흘려 각인되지 못했던 2악장이 이렇게 서사와 함께 뇌의 주름 위에 안착한다.
‘어두운 밤에 보이는 헛것', 어둑서니(라기엔 너무 환한 반딧불이 같은), 그를 따라 지하를 거닐었다. 이야기가 쌓이고 차고 흘러넘쳐 지하에서 지상으로 범람하기를 바랐다. 좁아지는 파이프 끝을 보며 편안히 발 디딜 수 있는 세상이 점점 좁아지는데 쓰러지지 않고 악착같이 버티려면 가난한 이에겐 좀더 뾰족한 굽이 필요하겠다 생각. 그리고 구차하지만 눈과 귀 달렸는데 보지도 듣지 않은 채 내내 무지한 닝겐들에게 최선을 다해 미소지으며 친절하게 흘려준다.
‘여러분, 페미니스트를 무서워하지 마세요….’
(사진 : 터울)
수합 및 정리 /
친구사이 상근활동가 / 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