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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호][칼럼] 세상 사이의 터울 #10 : 음압병동 402호의 귀신(完)
2020-12-31 오후 15: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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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2월 

 

세상 사이의 터울 #10

: 음압병동 402호의 귀신


 

1.

 

어릴 때부터 다양한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는 편이다. 봄철마다 꽃가루 알러지와 그로 인한 비염, 천식, 결막염 등 다양한 질환을 겪고, 각각의 질환에 따른 대처법도 어느 정도 익혀둔 상태다. 기침 한번 재채기 한번으로 역적이 되는 세상이기에 더더욱 몸 단속에 나서지만, 사람 일이 마음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 코를 풀 때마다 옆자리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일, 어디 방문할 때 내 30년 알러지 병력을 믿고 거기에 호흡기 증상이 없다고 체크하는 일 등은 차라리 익숙하다. 정녕 익숙하지 않은 것은 혹시 내가 코로나에 감염된 건 아닐까-라는 내 안의 공포다.

 

누군가와 노콘 섹스를 한 다음에 HIV 검사 때까지 몸에 핀 두드러기를 보고 온갖 상상된 공포에 휩싸이는 일은, 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어본 경험일 것이다. 그 공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던 방법은, 설령 내가 HIV 감염이 되더라도 그 이후의 삶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내 곁엔 나보다 더 건강한 삶을 사는 감염인들이 있었고 그들의 언행 하나하나가 나에겐 스승이었다. 내 것이라 생각하기도 싫은 어떤 상태에 대해 비로소 윤곽이 잡히고 삶으로 상상할 수 있는 길이 생긴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가 그러했다. 물론 그럼에도 감염인과 비감염인 사이엔 추체험으로 건널 수 없는 피의 강물이 흐르고, 그 격절 또한 내 곁의 감염인과 대화하면서 자연히 마주하게 되는 겸허함이다. 

 

새삼스럴 것도 없는 고뿔을 앓는 와중에 이것이 실은 코로나의 증상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이 시국에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경험이다. 그 공포에서 벗어나기 힘든 까닭은, 내가 코로나에 걸렸다면 그 이후에 벌어질 파국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나와 만난 모든 사람에게 민폐를 끼칠 것은 물론이고, 특히 그 중에 게이를 비롯한 성소수자가 포함돼있다면 그와 나와의 관계는 백일하에 드러나 추궁의 대상이 될 것이다. 성매개 감염을 떠나 누군가와 마스크를 벗고 마주앉거나 악수해서도 안되는 질환에 대해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나와 함께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게이들은 단톡방에서 은밀히 확진자 명단을 공유하거나, 종태원 인증샷을 올리는 게이들을 욕하거나, 그들이 욕한 바로 그 게이들이 했던 행위를 암암리에 하거나 할 것이다. 나는 그런 그들을 욕할 마음이 없다. 

 

나 또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발령된 이 정국에, 내 입과 코에서 나오는 숨결이 온전히 깨끗하지 않은 듯한 이 와중에도, 누군가라도 만나 말을 섞고 비말과 입술을 나누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힌다. 몇 번의 노콘 섹스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그런 충동을 잘 제어할 때도 있지만, 어떤 날은 그에 실패하는 때도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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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너와 내가 무증상 확진자가 아니라는 걸 확신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섹스하면서 너와 내가 HIV 감염인이 아니라는 걸 확신할 방법이 없다는 것과 비슷하고, 콘돔이나 프렙 등 사람과 접촉할 수 있는 몇가지 공증된 예방책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내 모든 걸 팔자 소관에 맡겨야 하는 심정과 비슷하다. 내 신세를 불가해한 팔자에 맡겨야 하는 상황 자체가 스스로에 대한 모욕에 가깝다.

 

현재의 HIV 검진으로는 지금으로부터 3개월 전의 감염 여부가 확인 가능하다. 그건 결국 지금 여기의 내 감염 여부는 알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의 경우 바이러스가 체내에 충분히 증식되기까지 2~14일 정도의 잠복기를 갖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자가격리 기간을 산정한다. 무엇보다 밀접 접촉시 비말이나 공기를 매개로 감염되는 코로나는 HIV에 비해 전염이 압도적으로 용이하고, 따라서 오늘 아침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해서 오늘 저녁에 내가 감염되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없다. 

 

팔자가 상황을 압도하고 존재가 뜬금없는 것으로 취급될 때 사람들은 주로 불안하다. 팔자가 한번 대충 씹어 뱉어놓은 듯한 삶을 가지런히 사는 것이 대체 뭔 의미인가 싶은 것이다. 내일을 낙관할 수 없는 불안한 사람들은 그 모든 사태에 대해 모조리 둔감해지거나, 찰나라도 그 사태를 잊을 만큼 강렬한 자극을 찾아 헤맨다. 내 집안에 불이 나면 남 세상이 타올라도 신경이 덜 쓰이고, 그 불타는 집구석에서 모쪼록 무증상 확진자가 아니어야 할 인간들과 뒹굴며 내 운빨을 시험해보는 마음도 간절해진다. 

 

그러다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원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코로나 검진을 받게 됐고, 과연 양성 판정을 받는다. 연행되다시피 끌려간 음압병동은 정신치료를 위해 위악적으로 천진한 내부로 꾸며져 있다. 의무관인지 수사관인지 모를 사람들이 찾아와 내 동선 하나하나를 체크하고는, 이날 이곳에서 만난 사람과 어떤 관계인지를 묻는다. 나는 이런 시국에도 불구하고 왜 그 사람과 만나게 되었는지를 거듭 변명하고, 그 변명에 아랑곳않듯 취조관은 똑같은 질문을 반복해 물어온다. 끝도 없는 질문에 답을 지어내는 과정에서 나는 점점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그와의 일을 떠들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비로소 만족스런 얼굴을 한 취조관들이 떠나고, 사생활과 서사를 다 빼앗긴 파리한 몰골의 수용자들은 서로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얼굴이 내 얼굴과 진배없음을 거울을 보지 않고도 예상할 수 있을 때쯤 잠에서 깼다. 눈을 뜬 후에도 한동안 꿈과 현실이 서로 분간되지 않았다.

 


 

3. 

 

2020년 7월 24일,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 대책본부는 이태원 집단감염 사태 이후 음압병동에 머물렀거나 자가격리를 경험한 당사자들과 집담회를 가졌고, 당시의 녹취록을 포함한 대책본부의 활동백서를 12월 출간했다. 이 자리에서 5월 2일 킹클럽을 방문한 이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참가자는, 자신이 머물던 치료실 안에 CCTV가 있었고, CCTV로 안 보이는 사각지대에 조금만 오래 있어도 병원 직원들이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고 증언했다.2)

 

한편 12월 20일 서울시 송파구 소재 동부구치소에서 총 184명의 확진자가 발생했고,3) 4차에 걸친 전수조사 결과 시설 내 확진자는 30일 기준 800명을 넘어섰다.4) 이에 대해 서울시는 문제의 원인 중 하나로 "과밀한 수용에 따른 확진자와 비확진자의 분리수용 공간 부족"을 언급했다.5) 확진자 수가 폭증함에 따라 정부는 수용밀도 감소를 위해 서울 동부구치소 수용 인원 중 일부를 청송교도소로 이감 수용했고, 이에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잇따랐다.6) 

 

12월 25일에는 서울시 송파구에 위치한 장애인 집단거주시설 신아원에서 2명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4일만인 29일 시설 내 확진자 수는 60여명으로 불어났다.7) 이렇게 확진자 수가 폭증한 원인으로 확진자가 나온 시설의 수용자 모두를 한 집단으로 묶어 외부와 격리하는 방식, 즉 '코호트 격리'가 지목되었다. 이에 따라 29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7개 장애인권단체들은 코호트 격리조치 해제와 시설 수용자에 대한 '긴급 탈시설' 이행을 촉구했다.8) 더불어 국제장기돌봄정책네트워크(International Long Term Care Policy Network)가 2020년 4월 12일 처음 발표하고 10월 14일 수정보완한 케어홈(장기요양시설) 코로나19 관련 사망률 국제 예비조사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사망자 중 집단시설 거주 사망자 비율은 약 46%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9)

 

 

-

 

1) 이 절의 내용은 필자가 쓴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감정과 경험 - 그 날 그 시각 그 클럽에 있었던 한 게이의 사례」, 『제12회 성소수자 인권포럼 : 인권을 켜다, 평등을 켜다』, 2020.8.22/9.9, 28~29쪽의 글을 전재하였다.

2)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 대책본부, 「수다회 녹취록(2020.7.24.)」,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 대책본부 활동백서』, 2020.12, 257~258쪽.

3) 「신규확진 1097명, 역대 최다…"서울동부구치소 180명대 무더기"」, 『뉴스1』, 2020.12.20.

4) 「코로나19 확진자 800명 발생한 동부구치소... 정부 대책은?」, 『BBC NEWS 코리아』, 2020.12.30.

5) 「폭주하는 동부구치소…762명 확진에 1명 사망」, 『MBC 뉴스데스크』, 2020.12.29.  

6) 「동부구치소 확진 수용자 청송 이감 '작전'…주민 일부 반발」, 『연합뉴스 TV』, 2020.12.28.

7) 「4일만에 확진자 58명 증가, 코호트 격리 장애인 시설에 재앙」, 『오마이뉴스』, 2020.12.30.

8) 「서울시청 앞 45개 텐트, ‘집단감염’ 신아원 긴급 탈시설을 촉구하다」, 『비마이너』, 2020.12.29.  

9) 「Mortality associated with COVID-19 outbreaks in care homes: early international evidence」, 202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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