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팅 위협, 범죄의 수단
성 정체성을 볼모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만큼 잔인한 일도 없다.
한국에선 호모포빅한 범죄보다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범죄가 더 많은 형국이다. 물론 사우나 등지에서 게이들의 성 접촉을 유도해서 금품을 갈취하는 이성애자 양아치들의 범죄가 극성을 부린다는 뉴스 보도가 심심찮게 들리긴 하지만,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범죄 사건들에 비하면 그다지 많은 것도 아닐 것이다.
동성애자들 사이의 범죄에서 가장 큰 협박 수단은 뭐니뭐니해도 '아웃팅'이다. 집안, 회사 등에 알리겠다고 협박해서 금품 갈취, 사기, 애정을 빙자한 스토킹 등의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허나 이런 사건들에 대해 동성애자들이 법적으로 대응하기가 수월치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설령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당했다고 해도 경찰에 직접 가서 알리는 것을 꺼리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신상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동성애자들의 공모된 침묵 때문에 외려 아웃팅을 볼모로 삼은 범죄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런 범죄 사건들을 해결하기 위해 몇몇 개인들, 그리고 동성애자 인권 운동 단체에서 여러가지 기획을 제출했지만 대부분 실패로 귀결되었다. 애초에 동성애자 관련 사건들을 공적인 자리로 끌여들여 법적인 절차들(신고, 수사, 법 집행 등)를 밟은 과정 자체가 사건 피해자들의 망설임과 침묵으로 누락되기 일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동성애자 관련 사건들은 사건 피해자 개인의 몫으로 돌려져 일방적인 피해를 당하더라도 참고 인내하는 것이 곧 숙명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거나, 범죄자들에 관한 한 줌 신상 내역 등을 게이 관련 인터넷에 올려 해결하려는 정도의 노력이 기울여져왔다.
영국의 게이 경찰 연합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아웃팅 문제는 전세계 동성애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난제다. 증오 범죄로 몸살이를 앓고 있는 미국의 경우, 내부적으로 동성애자 커플들 사이의 가정 폭력Domestic Violence과 HIV 양성인들에 대한 성적-육체적 폭력에 대한 게이 커뮤니티 안의 다양한 대처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왔고, 지금 현재도 핫라인 운영 등 다각도의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다.
한편 영국에서는 게이 경찰 연합GPA(Gay Police Association)이라는 단체가 존재하는데 이들은 게이 커뮤니티 내부 사건들을 조율하고, 외부의 증오 범죄로부터 게이 커뮤니티를 보호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1990년 소수의 게이 경찰들의 모임으로부터 시작된 GPA는 지금 현재 영국 각 지역에 지부를 둘 만큼 크게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영국 경찰의 10% 정도가 동성애자일 것이라 추산하고 있다. GPA는 이제 막 자기 정체성을 깨달은 게이 경찰들이 커뮤니티에 무난하게 접속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기본적인 활동 모토로 삼은 채 게이 커뮤니티에 경찰 업무에 관한 여러가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GPA의 글록스터셔Gloucestershire 지부는 게이 사우나 등의 크루징 공간을 경찰력이나 외부 호모포비아들로부터 보호하는 것뿐만 아니라 핫 라인을 가동, 이들이 당할 수 있는 여러가지 범죄들로부터 커뮤니티를 보호하고 있다. 또한 동성애자 커플들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정 폭력, 성 폭력 등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30여 명의 경찰들로 구성된 스코틀랜드 GPA 지부에서는 외부의 호모포비아 공격으로부터 게이 커뮤니티를 보호하고 있다.
우린 게이 경찰들이 필요해
아직은 다른 나라에 비해 호모포빅 범죄가 적긴 하지만, 금전 등을 갈취하기 위해 친구에게, 애인에게, 처음 만난 남자에게 '아웃팅' 협박을 해대는 통에 적잖이 내부 민심이 멍 들어버린 여기 한국 게이 커뮤니티 입장에서 봤을 때, 게이 경찰들의 도움은 절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게이 경찰들의 모임은 그들도 '커밍아웃'에 대한 부담이 있을 것이니, 아직은 요원한 일일 것이다. 또 모임 성격이 경찰들이란 '신분' 자체를 드러내놓는다는 조건이 붙기 때문에 여느 취미 모임의 구성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에 응답하는 게이 경찰들의 모임이 한국에서도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모든 모임은 누군가 첫 번째로 '여기 누구 없소?'하고 말하는 순간에 비로소 시작된다는 걸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GPA 공식 사이트(공사 중)
http://www.gay.police.uk/
글록스터셔 GPA 회원들의 사진들
[172호][활동스케치 #4]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관람기 (1) : ‘친구사이’를 보는 친구사이, ‘지보이스’를 보는 지보이스
2024-11-04 19:08
기간 :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