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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 2003.11.08 00:12

예전에 쓴 글인데, 어글리2 님께서 먼저 재빠르게 올려주셔서(^^) 뒷북으로 올립니다. 아.... 저의 이 귀차니즘의 끝은 어디일까요?

2003-02-12

The Hours

지금 현재 열려지고 있는 베를린 영화제 작품상 수상이 유력시되고 있는 가운데, 'The hours'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디 아워스'를 둘러싼 평론계의 찬반양론이 극명하게 나뉘어져 있다. 먼저 전미비평가협회에서 '올해의 최고 영화'로 추켜세운 반면 타임즈는 젠 체 하는 지적 허영의 영화라며 '올해 최악의 영화'로 뽑고 있다. 평론가 조희문은 아예 '지적 유전자'를 찬양하는 영화라고 가치를 깎아내리기조차 했다.

이 영화는 마이클 커닝햄이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에 대한 오마쥬로 쓴 책을 바탕으로 했는데, 이 책은 98년 풀리쳐상을 받았다.

감독은 '빌리 엘리어트'로 흥행과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낸 스티븐 달드리가 맡았는데, 마이클 커닝햄 소설에다 '세월'을 탈고하면서 우울증에 시달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마지막 생애를 삽입하며 색다른 재미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난 이 영화를 이 달의 영화로 주저 없이 꼽고 싶다. 순전히 개인적인 판단이다.
타임紙 비평에 숨겨져 있는 유럽문화에 대한 미국 식자들의 지속적인 컴플렉스와 영화 속 여성 주인공들이 겪는 자살에 대한 유혹을 '엄살'이라고 치부하는 대단히 '서사적인' 남성 평자들의 얄팍한 자기 방어 따위는 관심 밖이다.

적어도 그들이 '등대로'나 '댈러웨이 부인'의 한 장이라도 제대로 읽었다면, 이 영화 속의 매 씬들이 정교하게 소설 속의 중요 장면을 그대로 필름에 옮겨 미쟝센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그들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자살 충동' 역시 버지니아 울프와 그녀의 책을 읽었던 동시대 여성들이 빅토리아 시대의 숨막히는 가부장제에 맞선 고뇌의 흔적이었음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들은 이 영화가 지적 허영심의 발로라고 깎아내리면서 그 사실을 간파해내는 자신의 지적 능력이야말로 현명하다고 자신했겠지만, 버지니아 울프 하면 깜빡 죽는 허영 덩어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상품가치를 높이려는 차별화된 전략에 골몰하는 매우 멍청한 지적 기생충들에 불과하다. 그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헐리우드 영화 중에 제대로 된 영화가 과연 몇 개나 되겠는가?

'The Hours'가 비록 헐리우드 자본으로 만든 영국영화긴 하지만 그렇게 지적인 체하지 않고 차분하게 버지니아 울프의 자살로 웅변되는 '여성의 자살'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 여성의 자살을, 그리고 서로 다른 시대의 여성 세 명이 느끼는 삶의 고뇌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선 버지니아 울프가 그의 글쓰기 방식으로 채택한 '의식 흐름의 기법'을 영화 속에서도 차용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이 영화의 흐름은 그렇게 세 여 주인공들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진행된다. 세 공간이 연결되는 컷들은 정교하게 계산되어 영화에 배치되어 있고, 카메라 움직임과 공간 배치는 매우 적절하게 안배되어 있다.

물론 이 영화의 결정적인 핸디캡은 의식의 흐름을 주관하는 화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마이클 커닝햄은 '댈러웨이 부인'을 핵심축으로 놓고 로라처럼 집을 떠나 자신의 삶을 선택한 어머니, 그리고 에이즈에 걸려 자살하는 양성애자 아들과 그녀의 옛 연인 이야기를 두 축으로 횡단하면서 자연스럽게 화자를 만들어내지만, 이 영화에서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가 삽입되어 각각 세 개의 이야기가 단독의 주체적 발언권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다.

해서 각색자와 스티븐 달드리는 이야기가 자율적으로 해체되는 걸 제어하기 위해서 세 개의 이야기를 연결지으면서 거의 똑같은 언어, 상념, 상황을 화두로 던져놓고 있다. 자칫 반복에서 오는 지루함을 유발할 수도 있었지만, 세 명의 여자 주인공을 맡은 여배우들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연기를 해냄으로써 영화에 생명력을 부여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높은 코와 비슷하게 하기 위해서 인조 코를 갖다 붙여 대체 니콜 키드만인지 아닌지를 놓고 적잖은 헤프닝을 일으킨 니콜 키드만은 소름끼칠 정도로 버지니아 울프와 비슷한 캐릭터를 창조해냈고, 줄리안 무어 역시 뻔한 내러티브(재미없는 남편과의 일상 생활에서 겪는 여성의 고뇌)를 그나마 생생하게 형상화하는데 그녀가 아니면 해내지 못했을 묘한 카리스마를 제공했다(이 역에는 원래 기네스 펠트로우였다).

영화 런닝 타임이 길어 버지니아 울프가 당시 느꼈던 암울함에 대해 시대상황의 밑그림을 조금 더 첨가하고, 두 번째 상황인 로라 브라운 이야기도 조금만 더 현실에 근거했다면 이 영화가 가지는 장점이 더 부각되었겠지만, 거의 2시간이 되는 런닝 타임이 무력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보다 더 깊고 슬픈 빛을 가지고 있다.

영화를 보기 전,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알아야 할 두세 가지 것들

1. T.S 엘리어트, EM 포스터, 케인즈 등 당시 최고의 식자층들이 모인 '블룸스베리그룹'을 주도적으로 이끈 이는 버지니아 울프와 그녀의 남편 레너드 울프였다. 버지니아 울프가 '세월'을 탈고하고 1941년 주머니에 돌을 넣고 서섹스 강에 투신하여 자살하기 전까지 이 그룹의 멤버들은 환청에 시달리고 두 번씩이나 자살을 기도한 버지니아 울프를 시골인 서섹스로 옮겼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때 환청과 글쓰기 능력에 대한 좌절 때문에 매우 괴로워했으며, 런던에 다시 가고 싶어했다.

영화에 나오는 버지니아 울프의 시골집, 그리고 그녀의 갈등은 이런 배경 하에 그려지고 있다.


2. 왜 그녀들은 여성들과 키스를 하나?

'올란드', 그리고 '댈러웨이 부인'은 버지니아 울프의 양성애가 드러나는 중요한 책들이다. 올란드가 시대를 초월하여 성이 변하는 인물을 그리고 있다면, '댈러웨이 부인'은 실제로 그녀가 좋아했던 여성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아침 꽃에 대한 묘사, 파티에 대한 우울증 등을 통해 그녀가 좋아했던 여성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

영화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의 언니와 키스하고, 로라 브라운은 옆집 여자와, 그리고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메릴 스트립은 아예 레즈비언으로 등장한다.

로라 브라운의 버려진 아들 리처드가 양성애자로 그려지면서 그의 전 애인을 '댈러웨이 부인'이라고 부르고 그녀에 관한 책을 쓴 것은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리처드는 즉 버지니아 울프의 분신이었던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실제로 남편 레너드 울프와 거의 정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몇몇 여성들과 사랑을 나눴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직까지도 그 점은 비밀에 휩싸여 있다.


3. 의식 흐름의 기법

20세기 최고의 영미 소설가인 제임스 조이스와 더불어 '의식 흐름의 기법'의 소설 창작법을 성공적으로 접목한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가 대표적 소설인데, 섬과 육지를 가로질러 한 여성의 심리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줄달음질치고 있다.

의식 흐름의 기법은 자동연상법이라고도 불리워지는데, 창작가의 주관적 심도의 변화와 굴절을 어떤 틀에 끼워맞추지 않고 그대로 묘사하는 방법을 말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프루스트가 이 창작법을 집대성한 소설가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바로 이 창작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해서 컷트와 씬 연결들은 매우 자의적이고 주관적이다. 영화를 볼 때 놀라거나 자지 말고 그대로 시선과 청각을 맡겨 두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진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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