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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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쟁도, 학살도 중단하라
- 파국을 멈춰 세울 유일한 방법
요즘 꿈을 꿔요.
기억에 남는 첫 번째 꿈은, 제 아이가 죽을 것이고 그걸 막을 수 없다는 예언을 들은 꿈이었어요. “제발 살려 달라”고 애원했고, 아이를 꼭 끌어안고서는 “내가 지켜줄게”라고 약속했어요.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 절규했고, 일어나서도 한참 울음을 토해냈어요. 두 번째 꿈은, 총을 든 제가 사살을 명령받는 꿈이었어요. 죽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저는 한 여성을 쏘았어요. 심장이 뚫린 채 쓰러진 그녀를 보며 안절부절 못했고, 그때도 이 여성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꿈에서 깨어났어요.
제가 꾼 악몽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비극적인 현실이었어요. 새해 벽두부터 우리의 눈과 귀를 의심케 했던 소식들. 잔잔히 피어오르던 소망이 한순간에 짓밟혔던 시간. 납치, 전쟁, 총격, 학살이라는 피가 서린 단어로 채워진 세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감내하고, 다시 분노해야했던 2026년 1월, 우리가 마주한 세계에 대해 당신과 나누고 싶었어요. 이 글을 읽는 우리의 일상에도, 이 글이 바라보고 있는 파국의 세계에도, 퀴어는 존재하고 또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1. 제국의 폭거, 베네수엘라 침공
세계에서 전쟁이 멈춘 적은 없지만 2026년 1월 3일,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은 그야말로 예외적이고 경악스러운 사건이었어요. 한 나라의 대통령과 그의 배우자가 납치되고, 미국으로 연행되어, 구금된 사건 말이죠. 2일 오후 10시 46분, 트럼프의 명령이 떨어지자 전투기, 폭격기, 정찰기, 수색헬기 등 150대로 이뤄진 미군의 항공부대가 일제히 베네수엘라의 수도인 카라카스를 급습했습니다. 이른바 작전명 ‘확고한 결의(Absolute Resolve)’의 시작이었어요. 3일 새벽 2시 경 미국의 특수부대 델타포스는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가 머무는 숙소를 덮쳤고, 작전이 개시된 지 채 여섯 시간도 되지 않은 새벽 4시 21분, 트럼프는 마두로의 압송을 성공했다고 알렸습니다.
미국은 <마약 카르텔 소탕>을 이번 군사작전의 명분으로 밝혔습니다. 2020년 美법무부는 ‘태양의 카르텔(Cartel de los Soles)’이라는 마약조직의 우두머리로 마두로를 지목한바 있고, 이번 마두로 재판의 공소장에도 이 내용이 적시되었습니다. 하지만 ‘태양의 카르텔’은 베네수엘라의 부패한 군부를 지칭하는 관용구이며, 실재하는 조직이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입장입니다. 마약밀매조직을 추적하는 美마약단속국과 UN마약범죄사무소의 보고서에도 ‘태양의 카르텔’은 언급된바 없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조직에 수장이 존재할리도 만무합니다. 이를 인지한 美검찰은 기존 공소장에 서른두 차례나 언급한 ‘태양의 카르텔’을 두 차례로 줄였고, 이조차도 실재하는 조직이 아닌 부패문화의 통칭이라며 내용을 수정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마약카르텔에 관한 주장은 마약카르텔의 마약 유통으로 미국의 정체성이 오염될 것이라는 대중의 공포를 자극합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美행정부는 침략을 정당화합니다. 무슨 이유가 되었든 군사력을 동원하여 강압적인 방법으로 주권국가의 수반을 납치하고, 그 국가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은 식민지배이며, 이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유난히도 솔직한 트럼프는 마두로를 체포한 진짜 목적을 숨김없이 밝혔습니다. 1월 3일, “역사상 가장 놀랍고, 효과적이며, 강력한 방식으로 미국의 막강한 군사적 힘과 능력을 보여줬다(1.3)”라며 흥분했고, 6일에는 베네수엘라가 미국에게 최대 5천만 배럴의 원유를 제공할 것이며, 이로써 얻게 될 약 28억 달러의 석유이권을 양국 국민의 이익이 되도록 사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9일에는 베네수엘라 원유 판매 수익을 美재무부의 계좌에 넣어 관리하고 이에 대해 제3자의 접근을 차단하겠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숨기지 못해 안달 난 제국주의의 탐욕과 패권, 이번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은 제국의 지배에 고개 숙이지 않는 국가에 대한 무력 과시이자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세계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일 정도는 개의치 않겠다는 트럼프의 무도함이 관철된 결과입니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패권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는 미국은 자신들이 세운 자유주의 질서마저 훼손할 정도로 야만을 분출하고 있고, 앞으로도 무고한 이들의 희생을 강요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2. 이란 시민의 투쟁을 포위한 것 –이란 당국의 학살과 미국의 군사적 개입시도
이란에서는 물가 폭등을 비롯한 생계난으로 인해 신정(神政)체제인 이란 정권에 대한 시민의 분노가 타올랐습니다. 지난해 12월 28일, 수도 테헤란 그랜드 바자르(전통시장)에서 촉발된 시위는 큰 충돌 없이 마무리되었습니다. 하지만 2026년 1월 1일에 시위과정에서 21설 청년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후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격화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다음 날인 2일, 트럼프는 “이란 당국이 시위대를 살해한다면 미국이 구출하겠다”라며 정의로운 결단을 내린 양 군사적 개입을 노골화했습니다만, 이는 오히려 투쟁에 나선 시민들에게 난관을 조성했습니다. 3일 이란의 최고 지도자(라흐바르)인 알리 하메네이는 “폭도와의 대화는 의미없다”라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고 인터넷마저 차단했습니다. 고립된 이란에서는 시위대를 향한 무차별적인 살상이 진행되었습니다. 1월 14일, 이란의 인권활동가 집단인 HRANA는 18일 동안의 시위에서 2,615명이 죽고 1만 8,470명이 체포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생존과 자유를 향한 시민의 열망을 무참히 학살한 권력은 무너져야 합니다. 도탄에 빠진 공동체를 구하고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이란 시민의 투쟁은, 지난겨울 응원봉을 들고 광장으로 나섰던 우리와 닮아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란 시민의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극우세력의 주장이기도 한데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한국의 극우세력은 베네수엘라에서든, 이란에서든 트럼프의 침략에 환호하며 ‘가난한 나라는 지배당해도 된다’, ‘독재를 무너뜨리기 위해 미국의 군사개입이 필요하다’는 식의 식민주의적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백악관 인스타그램에 몰려가 한국의 대통령도 체포해달라고 읍소하고, 광화문에 나가 트럼프가 윤석열을 석방해줄 것이라는 꺾이지 않는 기대를 외쳐대고 있습니다.
자국의 폭정을 제압하기 위해 제국을 끌어들이는 것은 또 다른 폭력으로 대체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해 또 다른 파시즘을 내세우는 정치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는 자라날 수 없습니다. 무능한 봉건 왕조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일제의 식민 지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어불성설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투쟁은 민중의 힘으로 봉건 왕조를 타파하고, 일제의 식민지배에도 저항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세계의 모든 독재국가를 미국이 처리해달라는 극우세력의 주장은 미국조차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세계를 경영하겠다던 미국식 팽창주의의 종언이 바로 미국 우선주의(고립주의)를 표방한 트럼프의 출현입니다. 베네수엘라를 침공한 목적이 석유이권에 있음을 당당히 드러내고 동맹국에게 관세폭탄을 투하하는 트럼프에게 군사적 개입은 언젠간 이란 시민에게 내밀 거액의 청구서에 불과합니다.
각 나라의 문제를 제국에게 내맡겨버리자는 한국의 극우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란, 고작 <反이재명>, <反중국>, <反북(한)>, <反동성애>, <反페미>입니다. 비판(Critique)을 ‘안티(anti)’로 대체하고-그들은 이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듯한데-, 공동의 지향을 소거한 채 증오와 혐오를 생산하는 이들에게는 ‘이란 당국=반미’, ‘시위대 시민=친미’라는 왜곡된 이분법만 무성할 뿐, 실제 이란 시민과 연대하고자하는 의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늘날 민주주의를 바라는 세계 시민들이 해야 할 투쟁은, 자국 정부에게 이란 당국의 학살을 멈추라는 목소리를 내도록 압박하고 미국의 군사적 개입 시도에 단호히 반대하는 입장을 표할 것을 촉구하는 일입니다.
3. 미국 미니애폴리스를 집어삼킨 공포정치
트럼프의 폭거는 미국 내의 시민으로도 향했습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소말리아계 인구의 약 33%(8만 6천명)가 트윈시티(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에 모여 사는데요. 2026년 1월 4일, 1,500명에 달하는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불법 이민자 단속을 목적으로 트윈시티에 들이닥쳤습니다. 그로부터 3일 뒤, 백주대낮의 미니애폴리스의 한 거리에서 ICE요원의 총격에 의해 37세의 백인 여성 르네 니콜 굿이 숨졌습니다.
피격 당시 목격자의 진술과 영상을 살펴보면, 르네 굿이 운전했던 차는 ICE요원을 향해 돌진하지 않았고, 오히려 ICE요원이 차안에 있던 르네 굿을 끌어내려고 했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르네 굿은 자신의 앞을 막아선 ICE요원에게 “괜찮아요, 당신한테 화난 게 아니에요”라며 미소를 건넸을 정도로, ICE요원과 충돌할 의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르네 굿이 현장을 떠나려고 하자, ICE요원은 돌연 총격을 가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ICE요원의 살인을 문제 삼기는커녕 르네 굿을 폭도, 불법이민자, 급진좌파라며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근거 없는 증오, 증오를 위해 날조되는 근거. 우리에게도 익숙한 파시즘 정치의 작동 원리이자, 차별과 혐오의 무제한적인 자유를 허용하는 극우정치의 전형입니다. 살인이 정당방위로 둔갑된지 17일 만에, 또 다른 37세의 남성 알렉스 제프리 프레티가 ICE요원의 총격에 사망했습니다. 프레티는 ICE요원에 의해 길거리에 쓰러진 여성을 돕다가 참변을 당했습니다. 누군가를 돕기 위한 그의 선행은 ICE요원의 공무집행을 가로막은 “테러”로 규정되었습니다.
굿과 프레티. 두 사람의 생애를 살펴봅니다. 프레티는 재향군인회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근무했던 간호사였습니다. 병원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과 그가 담당하던 환자들, 그리고 이웃들은 다정하고 따뜻하게 누군가를 돌보았던 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르네 굿 또한 “친절함이 뿜어져 나오는” 이웃이었습니다. 사건 당일, 르네 굿은 6살 아들을 학교에 바래다 준 뒤, 동성배우자인 베카 굿과 함께 ICE요원의 과잉 진압을 감시하는 ‘법적 감시자’로 현장을 돌아다니다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폭력이 난무하는 도시에서 이웃의 안전을 걱정하며 자기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4. 애도와 분노로 파시즘과 맞서는 사람들
미국 전역에선 두 사람을 애도하는 촛불이 밝혀졌습니다. 두 사람이 쓰러진 자리는 정의와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피켓과 꽃으로 덮였어요. 영하 23도 혹한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은 총파업으로, 상인들은 상점 문을 닫는 것으로, 시민들도 일상을 거부하며 ICE가 떠날 것을 요구하는 집단행동에 나섰습니다. 가게를 연 상인들은 시위대에게 몸을 녹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고, 따뜻한 물과 커피, 핫팩을 지원했습니다. 미니애폴리스 주민들은 서로의 안전을 위해 ICE요원을 목격하면 호루라기를 불어주고, 추방작전에 의해 외출하지 못하는 이주민 가정을 위해 음식을 나누고 생필품을 배달하고 있습니다. 두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이들을 결코 외롭게 두지 않겠다는 약속들이 도시를 집어삼킨 공포를 서서히 밀어내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서로를 돌보는 노력들이 “사랑은 증오보다 강함”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증오를 거부하고 연민을 선택하며, 두려움을 등지고 평화를 추구하며, 분열을 거부하고 우리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위의 문구는 르네 굿을 추모하며 그녀의 동서파트너 베카 굿이 우리에게 전달한 성명의 일부입니다. 이는 현재 미니애폴리스 주민들이 파시즘에 저항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어쩌면 파국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밤 꿈을 돌이켜 봅니다. 그리고 저는 ‘꿈이라서 다행이다’는 말을 삼키고, 비명으로 찢어지는 이 세계를 응시하고자 합니다. 베카 굿의 당부를 빌려, 퀴어와 소수자를 혐오하는 한국 사회를, 나와 다른 취약한 존재들과 연대하지 못했던 지난 ‘나’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파국의 세계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퀴어인 우리는, 그곳에 존재하니까요. 우리 모두 사랑하는 사람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오길 바라고 있으니까요.
매번 슬픔과 절망에 압도되어 안부를 묻는 일이 늦어지네요. 새해에도 당신의 소망과 바람이 이뤄지길 기도하고 있어요. 우리가 사는 세계에 애도와 평화가 깃들길 바라면서요.

▲미국 시민사회에서 제작한 전쟁반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제왕적 통치 반대, ICE의 국가폭력을 반대하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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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주소(미국AP통신)에는 미니애폴리스의 상황이 담긴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https://buly.kr/CM0opd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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