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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은둔 사이의 터울 #2 : 후레자식들
2016-09-23 오전 00: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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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9월 

1.

 

언젠가부터 명절이 다가오면 아프기 시작한다. 원인모를 두통이나 복통, 근육통 등이 온몸을 엄습한다. 본가를 떠난지가 15년이 되었는데, 처음도 아니고 요즘 유독 그런다. 통증은 고향으로 내려간 첫날밤에 절정을 이루고, 오랜만에 맞는 가족들을 공연히 걱정시킨다. 희한한 것은 그런 병증들이 살던 집으로 올라오면 이내 멀쩡해지는 것이다. 심인성 통증이 아닌가 멀리 짐작해볼 뿐이다.

 

실은 명절이야말로 발리 섬의 닭싸움처럼, 그저 그러려니 하고 버티는 의례들로 가득하다. 그것들 하나하나의 유래와 일리를 따지자면 한이 없겠으나 어쨌든 그 닭싸움에 동참함으로써, 나는 부드럽게 식구의 일원이 된다. 그 정도의 눈치란 보통 있는 법이어서 처음 친척집을 돌고 흰소리를 들었을 때에도 그런가보다 하고 참아 넘기는 것이다. 일년에 두번 보는 가깝지도 않은 친척의 오지랖도 혈육간의 애정일 수 있고, 서로의 살림이 얼마나 불었는지 탐색하며 겸양으로 속내를 견주는 일도 그게 예의이거니 생각할 수 있다. 제사 때 집안의 여성들을 쥐어짜 만든 제수음식의 배치를 짐짓 언쟁하는 일 또한 이미 돌아간 조상에 대한 흠모의 정일 수 있다. 한번 몸 담그면 이해 못할 것도 없는 것이 그런 명절의 의례이고 거기에 오직 한 번만 몸 담그는 사람들 또한 드물다.

 

헌데 어느 순간부터 그 모든 것들이 좀체 버텨지지 않기 시작한다. 어찌된 일일까. 외가에 간 어느날 비위를 맞춘답시고 따라간 이모부의 단골 보신탕 집에서 잘게 슬라이스된 수캐의 성기를 웃으며 짓씹을 때에도, 그 모든 것이 비루하다는 걸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스물도 되기 전부터 이미 체득해온 은밀한 예의와 겸양과 애정과 흠모는 이제 와서 비루하고 낯설다기엔 새삼스런 것이다. 원한다면 그 모든 것들에 그럭저럭 웃으며 선선히 넘기고 거기에 무슨 뜻이 있겠거니 생각하면 될 일이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십여 년은 된다. 그런데 이제와 그것들이 왜 구태여 버텨지지 않는 걸까.

 

어느 추석 때 본가에 내려가 제사상 앞에 서는데, 이번엔 몸이 아프지 않은 대신 신경이 하늘 높이 예민해진다. 몸소 배운 사회성의 스킬 대로 얕은 숨을 쉬며 버티는데, 이전에는 선선히 넘길 수 있었던 명절과 친척과 오지랖과 여기에 모인 백치같은 의례들 모두가 토할 것 같아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마치 공연히 까탈스런 티를 내고 히스테리를 부리는 여자(!)처럼, 실은 오래전부터 속으로 짓눌러온 날카로운 감각들이 허공을 베어내고 손끝을 자분자분 저미는 것이다. 20대 때 애써 배우고 익힌 사회성의 시계바늘이 보란듯이 거꾸로 돌아가고, 나는 이 모든 걸 견디면 내게 뭐라도 돌아올 것 같던 그 자리가 텅 비어 나부끼는 것을 본다.

 

입을 다물고 적당히 미소지으면 못내 진중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잠자코 있는 의례를 따르고 따르고 또 따르고 나면 종국에 얻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끝까지 가족들에게 착하고 말없는 자식으로 남게 될까. 그럼 그분들의 기억 속에 나는 게이도 뭣도 아니고, 어른을 잘 헤아리며 뭘 좀 아는 미쁜 손아랫배로 남게 될까. 속아주었든 그것만으로 되었든 그렇게 예쁘게 빚어진 내 자리에 내 얼굴이 없다면, 나는 어찌해야 할까.

 

자식을 배웅하는 황망한 가족들의 표정을 뒤로 하고, 나는 내려온지 하루만에 내가 지내던 곳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기차 속에서 회돌던 신경이 그예 사붓이 가라앉는다. 십몇년 동안 마치 내것같던, 번듯한 여느 아들내미의 얼굴이 사위어가고, 나는 이제 그만 자신을 숨길 수 없고, 그럴 힘도 뭣도 없는 반푼이년의 얼굴로 흩날리는 풍경을 마주한다. 명절 스트레스는 풀어야 맛이라고, 집에 도착하는 대로 자주 가던 이태원 클럽으로 향한다. 추석날 밤, 마치 여느 토요일 밤인 것처럼, 그곳에는 나와 같거나 다른 수백명의 후레자식들이 오색빛 조명으로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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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설가 한강의 중편소설 「채식주의자」는 『창작과비평』 2004년 여름호에 처음 발표되었다. 무던하게 살아온 남편과, 자신의 무던함에 어울리는 여자를 찾아 결혼한, 무던한 가정에서 자란 무던한 아내의 이야기였다. 이후 연작 소설 두 편을 포함한 소설집 『채식주의자』가 2007년 10월 30일 출간되었다.

 

소설 속 아내는 무던한 결혼생활을 영위하다, 갑자기 참아왔던 모든 것들을 참아내지 못하는 상황에 봉착한다. 아내는 겉으로 보기에 서서히 미쳐가고, 남편은 "저 여자에 대해" 사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음을 깨닫는다.1) 그리고 아내에게 도사린 "까마득히 깊은 함정"을 느끼면서,2) 한편으로 "밥을 차려주고 집을 청소해주는 누이, 혹은 파출부"처럼, 아내를 그저 "남인 듯이" 대하고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3) 그러나 삶 한가운데에서 "그 모든 것을 뼛속까지 받아들였"던4) 아내의 정산은, 단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 문예지와의 대담에서, 한강은 "이 세상을 어떻게 껴안아야" 할까, "때로 그게 불가능한 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언급했다.5) 소설을 발표한 후, 한강은 어떤 독자로부터 "왜 이렇게 불편한 소설을 썼"는지, "이 여자의 심리"가 무엇인지 "설명"해달라는 메일을 받았고, 이후 "답을 하지 않으면 당신의 심리 상태도 이 여자와 다를 바 없다고 간주하겠다"는 내용의 메일을 수신했다.6) 

 

『채식주의자』는 2016년 2월 2일 미국에 번역·출간되었고, 5월 17일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다. 8월 15일 독일에도 번역·출간되었는데, <슈피겔Spiegel>은 같은 날 기사에서 "정상적인 삶이라 불리는 범주에 인간을 맞춰넣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비유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1) 한강,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 창비, 2007, 21쪽. 
2) 한강,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 창비, 2007, 33쪽. 
3) 한강,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 창비, 2007, 39쪽. 
4) 한강, 「나무 불꽃」, 『채식주의자』, 창비, 2007, 191쪽. 
5) 한강·강수미·신형철, 「초점-대담 : 한강 소설의 미학적 층위」, 『문학동네』 88, 2016, 34쪽.
6) 한강·강수미·신형철, 「초점-대담 : 한강 소설의 미학적 층위」, 『문학동네』 88, 2016,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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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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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경 2016-09-26 오후 15:56

명절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구나 ^^
다른 분 들도 공감하는 부분들이 꽤 있을 거고
또 일부의 사람들은 꼭 이렇게 까지 느끼기 않을 분도 계실 거 같기도 하네

아무튼 명절 때 사생활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하는 사람들 너무 별로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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