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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내 인생의 퀴어영화 #3 - 바비를 위한 기도
2015-08-29 오전 01: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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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8월 

[에세이] 내 인생의 퀴어영화 #3

: 바비를 위한 기도

 

 
 

* 수만 개의 삶과 사랑, 아픔과 감동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매력에 빠져,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즐겨봅니다.

특히 영화에서 그려지는 주인공들의 삶이

내 삶과 연결되어 있을 때 그 느낌은 배가 되죠.

소식지팀에서 독자 여러분께 손을 내밀어봅니다.

영화로 만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떤 이야기든 소중하게 담아 함께 풀어내보려고 하거든요.
독자 여러분의 이야기가 또 하나의 영화가 되어 지금, 펼쳐집니다.
(기고글 보내실 곳: 7942newsletter@gmail.com)



 

 

 

코끼리를 더듬는 사람들이 있다. 코끼리의 코를 만진 사람은 뱀과 같다 하고, 상아를 만진 사람은 창 같다 하고, 다리를 만진 사람은 나무 같다 말하며 저마다 자신이 만진 코끼리가 진짜라 말한다. 옆에서 그들을 지켜본 사람은 그들을 비웃는다. 너네가 만진 건 코끼리의 일부분일 뿐, 진짜 코끼리가 아니야. 익숙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코끼리를 만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좁은 시각을,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을 진리라 여기는 아집을 꼬집는다. 하지만 내 시선은 늘 한발짝 떨어져서 코끼리를 만지는 사람들을 비웃고 있는 사람에게 향했다. 코끼리의 전체 모습, ‘진짜’ 모습을 아는 것은 그일지 모르겠지만, 정작 코끼리와 함께 하는 것은 그가 아니다. 코끼리의 ‘진짜’ 모습을 알기 위해서 코끼리로부터 떨어져야만 한다면, 그가 ‘진짜’ 코끼리의 모습을 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 엄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사랑해줄 거야." 이 문장에 안겨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무조건적인, 절대적인 사랑에 대한 확신, 믿음이 부러웠다. 물론 그런 건 없다. 성적이 떨어진 아들에게 폭언을 쏟아내는 엄마, 상속문제로 서로를 고소하는 모자를 봐도 알 수 있지만 아들과 엄마의 관계에서도 무조건이라는 것은 없다.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말 앞에 서면 늘 ‘동성애자인데도?’라는 물음이 떠올랐다. 그 조건을 넘지 못한 사례들을 수없이 봤고, 이제는 안다.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안다. 코끼리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바비를 위한 기도>의 바비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의 커밍아웃을 듣고 부모님께 말하겠다는 형에게 절대 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그는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결국 그것은 사실이 된다. 바비의 엄마는 바비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고 더 이상 ‘죄’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 기도하며 그를 ‘치료’하려 하고, 1년 동안 바비는 동성애자가 아니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엄마에게 그런 엄마의 요구는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다. 바비는 엄마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거나 아니면 자신을 잊어 달라고 말한다. 엄마는 있는 그대로의 자식을 거부한다.

 

"난 게이 아들을 둘 수는 없다." 게이가 ‘되기’ 전 아들은 엄마의 자랑이었다. 작가가 되기를 꿈 꿨고, 엄마와 함께 흑백영화를 봐주는 유일한 가족이었고, 그 영화에 관한 세세한 지식들로 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아들이었다. 그랬던 아들이 게이라는 이유로 그 모든 것이 지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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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까지 6개월간 인권법재단에서 일했다.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한 일을 하는 곳이라는 말에 엄마는 내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내 담당이 성소수자 인권이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냐는 물음에 이런 저런 말로 얼버무렸다. 그러다 사무실 사람들과 퀴어축제에서 나눠줄 성소수자 매뉴얼을 만들었다. 그 매뉴얼을 손에 쥐었을 때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때부터 질문이 시작됐다. 엄마는 내가 만든 매뉴얼을 손에 쥐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공익인권법재단에서 일한다는 말에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한 우리 엄마는 계속 나를 자랑스러워할까. 어떤 예감 때문에 슬퍼하게 될까. 아니면 어떤 확신 때문에 화를 낼까. 그럼 나는 어떤 표정으로 엄마를 보게 될까. 나는 엄마를 믿는다, 믿고 싶다. 하지만 혹시라도 그렇지 않다면.
 
‘난 게이 아들을 둘 수는 없다.’ 바비는 다리에서 고속도로 밑으로 몸을 던지는 순간 자신을 거부한 엄마를 떠올렸다. 바비의 다이어리에는 자기의 농담에 웃어주었을 때의 엄마가 보여준 노여움이 일어나지 않은 눈, 잠깐 동안 진짜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잊은 엄마의 눈에 대한 구절이 있다. 나에 대해 알게 되면 엄마는 어떤 눈을 하고 있을까. 두렵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절망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일하는 곳에서 바비의 죽음을 듣게 된 엄마는 보안을 위해 설치된 철문을 잡고 소리친다. "내 아들이 죽었다구요. 나가게 해줘요." 나가게 해달라 울부짖는 그녀가 빠져나온 곳은 단순히 그녀의 일터만은 아니다. 아들이 쓴 일기를 보고 아들이 겪은 고통과 절망을 느끼며 혐오와 편견의 문을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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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에 대한 성경 구절이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바비를 부정한 것은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혐오와 편견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다른 사람과 다른, 있는 그대로의 바비를 받아들이게 된 그녀는 바비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녀는 자식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신에 대한 물음과 자신의 믿음에 대한 되물음 끝에, ‘내가 내 아들을 죽였어요.’라는 처절한 고백 끝에 드디어 있는 그대로의 아들을 받아들인다.
 
영화는 바비와 같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그녀의 나레이션으로 끝난다. "자신이나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계속 노력한다고 약속해주세요." 이것은 그녀가 나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하다. 나 역시 언젠가는 두려움과 의심의 철문을 열고 나와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 엄마도 넘어야할 문턱이 있겠지. 엄마가 그 문을 넘는 것을 거부할지 모르고, 그 모습에 상처 받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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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영화를 본 나는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은 없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사랑은 존재하고, 사랑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있다. 게이라는 조건 앞에 흔들리는 엄마를 보더라도 그 흔들림이 엄마의 고통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하고, 엄마가 편견과 불안의 문을 넘을 수 있게 손을 내밀어 주고 싶다. 이 영화는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프라이드 퍼레이드에서 자신의 아들을 닮은 청년을 꼭 안아주는 바비의 엄마는 이 세상 모든 성소수자 자녀들에게 말한다. "언젠가는 너희 엄마가 너의 모습 그대로를 이렇게 안아주는 날이 있을 거야. 그러니 포기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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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고려대 '사람과 사람' 회장, 친구사이 회원 / 무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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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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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울 2015-08-29 오후 13:06

저 마지막 연설장면 한번 더 보고 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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