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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케이트 본스타인, 『젠더 무법자 - 남자, 여자 그리고 우리에 관하여』
2015-05-30 오전 01: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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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5월 

[서평]

- 케이트 본스타인, 『젠더 무법자 - 남자, 여자 그리고 우리에 관하여』

 

 

 

금번 책읽당에서 다루었던 책은 케이트 본스타인(Kate Bornstein)이 1995년에 발표했던 『젠더 무법자 - 남자, 여자, 그리고 우리에 관하여(Gender Outlaw: On Men, Women and the Rest of Us)』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이미 전 세계 200여개 대학, 6개 국어로 번역되어 강의 교재로 사용되고 있고, 저자인 케이트는 미국에서 "젠더 해체"를 주장하며 트랜스젠더 운동, 퀴어 운동에서 이미 ‘생불(生佛)’로 존경받는 인물로 현재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얼마 전 북콘서트를 통해 그의 다큐멘터리가 소개될 정도로 케이트의 삶은 다양한 경험으로 채색되어 있는데, 성적 실천을 통한 젠더 해체를 중요한 주장 중 하나로 제시하기 때문에 BDSM1) 정도는 케이트를 이해하는데 있어 필수적일 정도로 흥미로운 인물이다.

 

문제는!!! 케이트의 책을 읽은 감상을 쉽게 소개하기가 힘들다는 점에 있다. 첫째는 케이트의 주장은 간단하지만 – 젠더를 해체하라! – 그것을 학술 외의 영역으로 풀어내는데 있어 본인의 역량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이 책의 등장은 1990년대 미국 내 퀴어 운동의 등장과 그 궤를 함께했다. 이 시기는 미국에서 게이/레즈비언 운동이 주장했던 정체성 운동이 ‘퀴어’로 대변되는 다양성, 상호교차성을 감안한 운동으로 확장되어 넘어가던 시기였다. 특히 제3 페미니즘의 물결이 트랜스젠더 운동의 성장에 기여했고, 케이트의 주장과 책 역시 이러한 흐름의 초입에 놓여 있다. 따라서 케이트의 주장은 기존 퀴어/페미니즘 이론과 접점을 보이기도 하지만, 완전한 젠더 해체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이들과 구분된다.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이후 젠더 수행성, 섹슈얼리티와의 교차성, 그리고 젠더의 유동성이 고려되었지만 여전히 젠더는 유효한 분석 범주이다. 그러나 케이트는 아예 젠더 규범의 해체를 주장했으며, 젠더화된 섹슈얼리티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고 S/M등의 성적 실천이 젠더 해체의 중요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거친 정리는 본인이 트랜스젠더 이슈에 충실하지 못하므로 잘못 정리되었거나 혹은 오해를 야기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한계다.

 

두 번째는 본인 스스로가 트랜스젠더 이슈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가시적으로 트랜스젠더는 낯설지 않은 존재이다. 기왕에 동료로서, 친구로서 존재했으며, 나 자신 그들과 같은 퀴어의 일원이다. 그러나 그들과 내가 친분이 있다고 해서 나 자신이 그들이 처한 구조적 환경을 제대로 이해한 건 아니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케이트는 이 책에서 성인들은 흔히 타인의 젠더 정체성을 질문하는 대신, 이를 설명할 실마리를 찾아서 각자 자기나름의 결론을 내린다고 지적했다. 즉, 멋대로 타인의 젠더를 남녀 이분법적 체계 중 하나에 위치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본인도 포함되어 있었고, 트랜스젠더 이슈는 막연히 퀴어 이슈로 대체되었다.

 

자신의 젠더를 지정받은 '남성'으로 묵인하고, 성별정체성을 ‘게이’로 정체화한 나에게 이러한 세계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올 초 있었던 LGBTI 인권포럼에서 <행성인> 주체의 성소수자를 자녀로 둔 부모님들과의 간담회에서 이 세계 밖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다. 당시 이 모임에 참여했던 청소년들은 스스로를 ‘젠더 퀴어’로 꾸준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게이/레즈비언의 부모님들과는 달리 외과적 수술을 감행해야 하는, 혹은 선택했던 트랜스젠더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고민은 그 결이 다소 달랐다. 그 부모님 중 한 분은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의 인정을 넘어서, 근대의학과의 투쟁에 따른 고단함을 토로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그저 모성애에 대한 감동, 그리고 애잔함이었다. 그러나 한참 뒤 케이트의 책을 통해서 비로소 난 트랜스젠더에 대한 – 혹은 우리에게 있어 – ‘젠더’와 법, 의학의 부담과 억압이 내 상상 이상으로 얽혀져 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흔히 이야기하는 평생에 걸친 커밍아웃처럼, 젠더 해체와 젠더 위반 역시 평생에 걸친 투쟁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사실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물음이었지만, – 끼순이, 티부, 끼탑에 대한 거리두기 등 – 은연중 묵인하고 있던 질문이기도 했다. 케이트의 책은 우리가 미뤄두고 있었던 바로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고전적이지만 도발적인 한 선구자의 답변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대한 소감은 트랜스젠더 이슈에 대해 그저 안다고 생각했던 한 게이의 고백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젠더 이분법 체계에 대해 둔감했던 이의 감상이기도 할 것이다. 사실 1990년대 초반 저술된 이 책의 내용은 그 독자가 성소수자인지 아닌지를 구분하지 않는다. 책에 대한 반응은 그 독자가 기존의 이성애 중심사회, 젠더 이분법적 사회, 규율화된 섹슈얼리티(올바른 섹스, 정해진 체위와 역할)에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고 있는가에 따라 다를 것이다. 가령 게이남성 커플이라고 해도 그 섹스의 내용이 이성애자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기괴한 영역에 놓여져 있지는 않다. 그것은 실제로 종종 이성애 모델을 따르며, – 탑&바텀 – 성기결합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BDSM이나 골든샤워 등은 사실 모두에게 익숙한 영역은 아니며, 때때로 그것은 터부의 대상이 된다. 그렇기에 최근 등장한 십자가를 든 노인들도 채찍 대신 오로지 “*구멍”만 외쳐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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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본스타인(Kate Bornstein)의 최근 모습(가운데)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대한 케이트의 설명은 기존 지정된 젠더와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 익숙한 스스로에게 더 큰 의문을 던진다. 케이트는 자신의 애인을 공식적으로 찾지 못해서 분노하던 우리에게 조금 더 크게 보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선택한 파트너의 성별을 근거로 자신의 성적지향을 규정하는가' 하고 말이다. 케이트가 보기에 성적지향은 많은 경우 성기 선호를 따를 수 있지만 섹스에는 성기를 활용하는 것 외에 많은 영역이 존재한다. 그리고 각각의 영역은 다른 섹스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그렇지만 케이트가 보기에 대개 우리는 기존의 (외성기 구분에 따른) 젠더이분법에 기반해서 상대방을 찾고, 자신의 성적지향을 선택하고, 다시 이를 통해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규정한다. 케이트는 이러한 행위가 기존의 젠더 이분법에 포박되어 자신 정체성의 한계를 스스로 제한하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이 책에서 케이트는 스스로를 “트랜스섹슈얼 레즈비언”이고, 자신의 파트너는 “여성에서 남성이 되고 있는” 사람으로 설명했다. 나아가 자신을 어느 쪽 성으로도 정체화하지 않았다. 이러한 케이트의 주장은 물론 혼란스러울 수 있다. '뭔 소리야?'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과는 별개로 현대 퀴어 이론이나 페미니즘 이론에서 젠더가 의료권력에 의해 지정되고 있음은 오래전부터 지적되었다. 섹스 역시 마찬가지 과정을 밟았다. 인간의 생물학적 차이를 주장하고자 하는 수많은 도구들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남과 여로만 단일화할 수 없는 염색체 구조를 지닌 아이들을 계속 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염색체와 별도로 스스로를 젠더이분법의 경계 밖으로 밀어내는 아이들도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성소수자 운동이라고 할지라도 현존하는 의료체계, 법체계, 문화체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기에 투쟁에 있어 기존의 지배언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의 권리와 우리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기 위해 빌려온 언어, 저항의 언어에는 은연 중 이러한 이분법과 규율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굳어진 언어는 동시에 우리의 태도를 제한한다. 많은 이론가들이 이러한 위험성을 지적한 바 있지만, 그 중에서도 케이트는 이 젠더/섹슈얼리티 관계 전반에 스며들어 있는 이분법적 사고방식 전체를 전복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케이트의 주장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이러한 성찰이 자신의 인생을 토대로 나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케이트의 인생은 다이나믹한데, 스스로의 설명에 의하면 일찍이 백인 비장애인 중산층 가족에서 “미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케이트는 이미 4살 때부터 “남자”로서 지정되는 것을 불편해했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시간 그 자신의 ‘트랜스섹슈얼리티’를 회피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환각제 사용, 사이언톨로지(Scientology)에의 귀화, 세 번의 결혼, 암투병 등 범상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인생을 겪었다. 케이트가 이토록 긴 혼돈 속에 놓여 있었던 것은 세계로부터 주어진 선택이 단 두 가지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양자택일의 젠더 이분법 중 어느 한 세계로의 귀속은 케이트에게 적절하지 않았다. 그러나 젠더 이분법적 강제 하에서 중간 혹은 다른 곳에 서 있는 나 자신은 ‘오류’로 존재하게 된다. 오류는 수정해야 하고 이것은 대개의 경우 외과적 조치로 이어지게 된다고 간주했던 것이 긴 혼돈의 근원이었다고 케이트는 회고한다. 그러나 오늘날 최소한 이론적으로 트랜스젠더에게 외과적 수술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이 필연적인 것이 되는 것은 법과 의학의 영역, 그리고 생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케이트는 1985년 성별 재지정을 위한 수술을 받았고, 그 자신 현재 이에 만족하고 있지만, 외과 수술이 반드시 필연적인 것이자 당위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특히 수술을 통해 하나의 젠더로 포섭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왜곡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찰은 발전하여 트랜스젠더에 국한되지 않고, 젠더 이분법적 세계 내에 안주하고 있는 모든 성소수자들에게 젠더 해체로써 제시되었던 것이다.

 

이쯤 이르면, 역시 이 책은 트랜스젠더 청소녀/소년들, 보다 정확히는 케이트의 후배들에 대한 고민에서 탄생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제목 『젠더 무법자』란 타이틀은 모든 트랜스젠더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젠더 규칙을 어겼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에, 젠더 무법자라고 불릴 수 있다는 케이트의 주장에서 연유한다. 외과적 조치에 대한 케이트의 생각, 문화 상대주의를 강조하는 듯하면서 기존의 '선천적 차이'를 강조하는 사회의 억압, 일상에서의 폭력과 혐오를 극복해내는 마음가짐에 대한 강조는 비슷한 길을 걸어왔던 무법자들에 대한 애정과 배려로 가득하다. 다소 어렵지만 주어진 정체성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을 쟁취하고 재구성할 것을 주장한 용어의 제시, 즉 정체성을 소유하는 것(having an identity)과 정체성이 되는 것(being an identity)에 대한 강조 역시 여기에서 나온 것일 터이다.

 

이 책의 성찰은 분명 트랜스젠더 섹슈얼리티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젠더 체계에 대한 고민은 레즈비언으로서 섹슈얼리티의 위계를 고민했던 게일 러빈(Gayle Rubin)의 고민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이다. 이러한 성찰은 트랜스젠더뿐만이 아니라 젠더 · 섹슈얼리티 관계 내부에 존재하는 우리 모두, 특히 성소수자 모두에게 의미있는 지적이다. 오늘날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은 여전히 전체의 운동지형에서 보면 미약하지만, 그럼에도 유의미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무산 사태에서 우리는 성소수자 운동의 힘과 사회의 다른 재 분야 소수자들과의 연대를 확인했다. 그리고 가족구성권 등 성소수자의 시민권 확장을 위한 여러 노력들 역시 가시화되고 있다. 우리 운동의 다양성과 연대의 힘들은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이 미국의 성소수자 운동의 그것처럼 보수화되거나 정상성에 대한 갈망으로만 가득하지 않을 안전장치를 지니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우리의 소수성은 우리의 진보성을 담보해주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다. 스스로 이러한 착각에 빠질 때 도움이 되는 것은 더 큰 성찰과 해체에 대한 재고이다. 이 책에 나오는 주장들은 어떤 이의 입장에서는 극단적일 수 있고, 또 다른 이의 입장에서는 이제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배 담론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고, 젠더/섹슈얼리티 관계에 있어 이분법적인 구도가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도발적이고, 유의미한 제언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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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본스타인, 조은혜 옮김, 『젠더 무법자 – 남자, 여자 그리고 우리에 관하여』, 바다출판사, 2015.


 

1) 결박과 훈육, 지배와 복종, 사디즘과 마조히즘 등과 관련된 실천의 통칭

 

 

* 위 책은 친구사이 소모임 '책읽당'의 5월 선정도서로, 당일에 언급된 감상과 토론에 기초하여 쓰여진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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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당 회원 / 옥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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